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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김정일의 애인이었으니 언론에서 관심 가질 만한 이야기가 많죠. 저랑 한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잔 사이기 때문에 들은 소리가 참 많습니다만 더 말하고 싶지 않아요. 언니가 걱정돼서요. 언니는 저를 자기 후계자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질투도 하지 않고 참 친동생 대하듯이 잘 대해주었어요. 그 안에선 저도 외로웠지만, 언니도 외롭긴 마찬가지였어요. 언니는 자주 나를 품에 안고선 ‘넌 내 뒤를 따를 거야. 너랑 나랑은 외롭게 살아야 해’라고 했어요.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언니의 목소리는 슬펐어요. 언니는 참 착했어요. 원래 학교에선 ‘미옥 동지’라고 불러야 하지만 방에 돌아와 둘이 있으면 저보고 언니라고 부르라고 해요. 언니에겐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참 많이 그리워했죠. 언니의 장에는 김정일이 준 선물이 많았어요. 제가 어떤 때는 ‘이것 정말 예뻐요’하면 언니가 ‘너에게 주고 싶지만 장군님이 주신 선물이 돼서 못 주겠구나’ 그랬어요. 그러면서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집엔 엄청 많아. 너도 이제 장군님 모시게 되면 나처럼 큰 집도 받고 온갖 선물도 받을 거야’라고 말했어요.”
▼ 언니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우리는 26~27세면 제대를 해요. 제대할 쯤이면 소좌나 대위 정도가 되죠. 하지만 김정일과 그런 사이였던 여성들은 이후에도 독수공방을 해야 해요. 봉건시기 궁녀처럼 말입니다. 물론 최고의 대우는 해주죠. 제대한 뒤에 김정일의 사랑을 받으면 비서로 계속 옆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미옥 언니도 김정일의 각종 심부름과 잡무를 대신해서 하는 일이 많았는데, 분명 제대하지 않고 계속 김정일 옆에 남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랑도 신임도 두터웠거든요. 관계가 너무 깊이까지 들어가지 않은 여성들은 호위국 군관 등과 결혼시켜 비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하죠. 김정일도 최소한의 도덕은 있어요. 저만 해도 머리를 쓰다듬거나 손을 만지고 그러긴 했지만 학생인데다, 스무 살이 넘지 않아서인지 따로 부르진 않았어요. 제가 조금만 더 오래 있었다면 언니처럼 그랬겠죠.”
▼ 김정일 위원장 최측근이라는 김옥이라는 여인에 대해 들어보셨죠. 혹시 미옥이라는 그 여성이 아닌가요.
“한국에 와서 김옥이라고 하는 여인의 사진은 봤는데 북에서 본 적은 없어요. 사진을 보니 귀엽고 발랄한 스타일이더군요. 그렇지만 미모로 따지면 미옥 언니가 훨씬 예쁩니다. 그리고 김옥이란 여성이 그와 반말을 하는 사이라고 하던데 저는 그 보도가 믿어지진 않습니다. 그는 순종적인 여성을 좋아해요. 문고리 정치니 뭐니 하면서 김옥이란 여성의 역할을 몹시 대단하게 보던데,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는 절대 여성과 권력을 나눌 사람도 아니고, 그런 상황까지 가게 만들 사람도 아닙니다. 미소 언니는 약간 야심도 있고, 질투도 있었는데 김정일이 그런 건 별로 좋아 안 했어요. 그렇지만 미모로만 판단할 수도 없어요. 한번은 어디 갔더니 미옥 언니가 서른 살이 갓 넘은 듯한 여성에게 깍듯이 대하는 거였어요. 누구냐고 물었더니 ‘장군님의 신임받는 비서로 대단한 여자’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보건대 그 여성의 미모는 별로였어요.”
김정일, 향수 뿌리는 법 가르쳐줘
▼ 김정일의 여성에 대한 취향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간단히 대답하기 어렵군요. 그냥 저의 느낌대로 말할게요. 일단 눈을 가장 중요하게 봐요. 그리고 눈과 머리카락의 조화를 따지죠. 그는 제 머리가 숱이 많고 까만데, 눈동자도 까맣다고 좋아했어요. 눈동자가 갈색이면 머리도 갈색이어야 하고, 눈동자가 까맣다면 머리카락도 까매야 한다는 게 그의 미학관입니다. 다음엔 입을 봐요. 특히 아무리 예뻐도 입술이 얇으면 무조건 싫어해요. 코는 오뚝해야 하죠. 아무튼 그의 취향은 상당히 섬세해요. 제 손가락을 잡고 자세히 살펴보면서 손가락이 긴 것을 보니 감수성이 풍부하겠다고 그랬어요. 화장도 진하게 하면 싫어해요. 한번 속눈썹을 붙이고 나갔더니 싫어해서 다신 달고 나가지 않았어요. 향수 뿌리는 법도 가르쳐줄 정도로 우리에겐 자상하게 잘해주었어요. 미소 언니가 한번은 향수를 많이 뿌리고 들어갔더니 향수는 허공에 먼저 뿌리고 거기에 몸을 갖다 대야 한다고 알려준 적도 있어요. 우리가 쓴 화장품은 전부 프랑스제였어요. 샤넬도 있고 다른 것도 있고 그래요. 저희에겐 굽 높이가 5㎝ 이상인 신발은 주지 않았어요. 그의 키가 작아서 그랬나 봐요. 여성이 자기보다 키가 크면 좋아 안 해요. 그가 제일 좋아하는 치마는 밑에만 주름이 있는 그런 치마였어요. 그래서 우리가 입는 옷도 그런 것이 많았어요. 아무튼 그것도 얘기하려면 길어요.”
▼ 남한의 탤런트들이 북한에서 태어났다고 가정했을 때 김정일에게 뽑힐 확률이 가장 높은 여성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기준이 달라서요. 여기선 보통 키가 커야 탤런트가 되고 카메라를 잘 받으려면 성형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두 가지는 결정적 결격사유죠. 성형 여부를 따지지 않고 뽑는다면 음, (그는 한참을 생각했다) 이산에 나왔었던 한지민이 뽑혔을 것 같습니다. 아담하면서도 참한 이미지니까요.
북한 탤런트 누구누구가 김정일의 애인이란 소리도 많이 나옵니다. 1970년대엔 그랬는지 몰라도 5과가 생긴 이후론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입니다. 전국에서 정말 고르고 골라 뽑은 미인들을 숨겨두고 있으면서 굳이 말이 새나갈 수 있는 여자들을 애인으로 삼을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습니다.”
▼ 김정일이 지어준 미향이라는 과거 이름과 당시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밝혔는데, 괜찮을까요.
“어차피 제가 누군지 다 알지 않겠습니까. 김정일의 옆에 있다가 남한까지 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럴 일도 없어요. 저말고는 또 나오기 힘들 겁니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최고의 대우를 받는데 탈북할 이유가 없어요. 다만 5과에서 제대하면 자기 고향엔 못 가게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예전에 해외 언론에 나가 제 과거 이야기를 잠깐 한 적은 있었는데, 그때는 제 이름도, 주변 인물 이름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교육받던 건물도 밝히기 싫어 대충 말했어요. 그들은 선정적인 데 관심이 많아 ‘기쁨조’나 ‘만족조’가 있느냐 뭐 이런 것을 집요하게 따지는 바람에 그냥 있다고도 했습니다. 상세하게 밝히기 싫어 얼렁뚱땅 넘어간 까닭에 과장된 것이 많아요. 그러나 지금은 제가 이름까지 다 밝히고, 그냥 있었던 사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뿐입니다.”
▼ 그렇다면 얼굴이 나가는 것은 왜 거절하십니까. 어차피 저쪽에서 다 알고 있을 텐데요.
“제가 이 인터뷰를 하는 이유가 뜨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죠. 처음에 한국에 와서는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은 ‘과거 기쁨조 미향’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 제 사진이 나가면 성가신 일이 많아지겠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고요. 그리고 한국은 안전한 곳이 아니잖아요. 이한영 피살사건 때 보시다시피 저들은 마음먹으면 실행할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만약의 경우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저를 없애도 제가 따로 남긴 상세한 이야기가 다 공개돼 책으로 나간다면 암살이 별 효과는 없을 거예요. 오히려 테러국가라는 이미지만 더욱 각인될 겁니다. 그렇긴 해도 굳이 얼굴을 공개할 생각은 없어요.”
▼ 왜 남한에 오게 됐는지 독자가 궁금해 할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 나름의 사연과 아픔이 있습니다. 조용히 가슴에 묻어두고 싶은 것일 수도 있죠. 그냥 아주 간단히 말씀드리면 저의 가족이 북한에선 용서 못할 역적이 돼버렸습니다. 역적의 딸을 김정일의 옆에 둘 수는 없잖아요. 미옥 언니가 저를 붙안고 ‘넌 이제 살기 힘들 거다. 다시 못 보겠구나’하면서 몹시 슬퍼했어요. 언니가 ‘너 죽지 않게 내가 최선을 다할게’ 그러면서 돈도 많이 주었어요. 헤어질 때 저도 엄청 울었어요. 1997년 저는 중앙당 보위부에 갇혀서 참 오랫동안 심문을 받았어요. 그렇지만 제가 할 이야기가 뭐가 있겠습니까. 어느 날 보위부 사람이 이야기하더군요. ‘장군님 말씀에 따라 목숨만은 건졌으니 감사하라’고요. 그 순간 미옥 언니가 생각났어요. 저는 깊은 산골 오지의 혁명화 구역으로 추방돼 한동안 세상과 격리됐어요. 이해되지 않는 게 추방 나갈 때 김정일이 준 선물을 뺏지 않고 다 갖고 나가게 해요. 유배 중에 은인이 생겨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그가 알려준 선을 따라 몇 달 뒤 북한을 벗어나 남한까지 오게 됐습니다. 다시 떠올리긴 싫지만 그 과정을 써도 아마 두꺼운 책 하나는 나올 거예요. 에피소드 하나 이야기할게요. 중국에서 북한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 북한 식당에 간 적이 있어요. 나름 안경을 쓰는 등 변장을 하고 말이죠. 그런데 그 식당에서 일하던 한 여인이 저를 자꾸 쳐다봐요. 저는 그녀가 낯은 익은데 선뜻 생각은 안 났어요.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제가 다가와서 조용히 ‘실례지만 혹시 아무개 아닙니까’하고 묻는 거예요.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요. 그는 5과 시험 볼 때 나랑 함께 3차까지 올라왔고, 최종 시험 때는 같은 호텔에서도 생활했던 애였는데, 왜 중국에 나와 있는지 모르겠어요. 5과에는 뽑혀도 최종까지는 못 간 미모의 여자애들은 따로 교육시켜 호텔에 상주시키면서 외국 요인들을 접대하게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해외까지 나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곤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왔어요. 그게 벌써 10년 넘었군요. 요즘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들은 권세 있는 간부집 자식 중에서 선발된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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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제가 오고 싶어서 온 길은 아닙니다. 운명이 이끈 것이죠. 그리고 남한에서의 삶에 대해 벌써 결론을 낼 수는 없다고 봅니다. 30대에 ‘인생을 잘 살았습니까’ 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듯이 말이죠. 잘 왔
는지는 몇십 년 뒤에 대답할 문제가 아닐까요. 아마 북한에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 행복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행복이란 별것 아니구나 하고 느끼죠. 결국 행복이란 자기가 느끼는 감정 아닌가요. 김정일과 있었던 일은 제 일생의 일장춘몽일 뿐입니다. 살아갈 날은 그 순간의 몇십 배입니다. 앞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목표와 꿈은 잃고 싶지 않습니다. 꿈이 뭐냐고요? 훗날 북한에 돌아가 부모 잃은 애들을 돌보는 고아원 원장이 되고 싶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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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려준글 잘 읽었네...넘 재미있고 새롭게 살아가는 또 다른 세계를 본것 같아..참 좋아..
글의 주인공도 이제야 말로 새로운 세상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잘 살아야 할텐데...
경혁이가 찾아내서 도와줘라 ㅋㅋ
휴~~1편서부터 완결까지 보통 호기,인내심으로는 찬찬히 읽을 수 없는글......
^^* 흥미롭게 잘 읽었다!!
오케바리 탱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