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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MBC '작가를 만나다' 인터뷰 인터뷰 일시 : 2008년 5월 15일 오전 10시 방송 일시 : 5월 18일 일요일 아침 7시 10분 충주MBC 홈페이지에서 ON air, AM
마음속에 일어나는 정서나 사상을 운율과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을 우리는 ‘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 속에 담긴 시심은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잊고 살았던 정서를 되찾아 주기도 하는데요. 우리가 마음에 되새기고 살아가면 좋을 현대시들이『세속과 초월 사이에서』라는 책 속에 모두 모였습니다. 책의 저자 이승하 시인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Q : 안녕하세요! A : 안녕하세요!
Q : 도서출판 역락을 통해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라는 문학평론집을 발간하셨는데요. 선생님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책이라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집필을 하게 되셨나요? A : 평론은 대개의 경우 청탁을 받고 쓰게 됩니다. 월평이나 계간평, 시집 해설이나 서평 등 청탁을 받고 쓰게 되는 글은 마지못해 쓰는 것이므로 글쓰기가 아주 괴롭습니다. 그래서 저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주제를 정해서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번 평론집은 2005년에 낸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10대 명제』에 이어 펴낸 일종의 주제비평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획을 세워서 쓰고 싶은 글을 써 책으로 묶어낸 것이지요.
Q : 청취자 분들에게 간단히 책 소개 부탁드려요. A : 종교는 초월을 지향하고 우리의 삶은 세속을 떠날 수 없지만 문학은 세속과 초월을 다 다룹니다. 특히 시인들은 식욕과 성욕과 웃음의 세계를 다루는가 하면 시를 쓰면서 부처와 예수를 만나기도 하고 원효 같은 고승을 만나기도 하지요. 저는 한국 현대시 속에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들과 가장 성스러운 세 인물이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싶어 글을 썼고 책을 펴내게 된 것입니다.
Q : ‘부처’, ‘예수’, ‘원효’, ‘음식’, ‘자궁’, ‘웃음’ 등 11개의 명제를 통해 한국 현대시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11개의 명제와 시 선정 기준이 궁금합니다. A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한국 현대시에서 음식을 다룬 것, 자궁에 대해 상상의 날개를 편 것, 해학성이나 골계미를 추구한 시를 살펴보았던 것은 시인들이 이 세속 세계를 어떻게 다루고 있나 살펴보기 위해서였고요, 부처와 예수, 원효를 직접 등장시킨 시를 논함으로써 시인들이 영원의 세계, 혹은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외에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낙동강이란 글은 고향 찾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 한국 근현대 시에 나타난 서울은 지난 30년 동안 수도 서울에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며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이 있어 서울을 노래한 시인들의 시세계를 살펴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Q : 이 가운에 가장 애착이 가는 시를 꼽으신다면요. A : 제가 다룬 시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윤동주의 「십자가」입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 졸업반 때 이 시를 썼는데 마침 그 무렵이 창씨개명이 막 실시되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되었을 때입니다. 또한 조선총독부가 조선어 교육 전면 금지조치를 단행했을 때 이 시를 썼습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듯이 윤동주에게 예수는 수난자이면서 구세주였고 사람의 아들이면서 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윤동주는 식민지 현실의 고통에 짓눌려 자포자기하는 대신 예수의 수난과 영광을 시화하는 작업을 하면서 용기를 얻었던 것입니다.
Q : 이 책은 ‘이렇게 읽으면 좋다’라고 안내를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글쎄요, 하나님을 믿는 분에게는 제 글 가운데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부처와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원효를, 불교를 믿는 분에게는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예수를 권하고 싶습니다. 부처나 예수의 행적, 그리고 가르침을 보면 두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비와 사랑이 다른 뜻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종교가 서로 반목질시하지 말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더욱더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뿌리가 같고 힌두교와 불교의 발상지가 같습니다. 중동의 종교분쟁은 어찌 보면 형제간의 싸움입니다. 시인들이 자신의 시 속에다 모신 부처와 예수, 그리고 원효대사를 연구하면서 저는 소박하게나마 세계평화를 꿈꾸었고 독자분들도 저의 이런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Q : 지난 5일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이 타계를 하셨지요. 참 안타까운 일이었는데요, 95년도에 선생님께서, 『토지』완간 1주년과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이 소설을 노랫말로 압축하는 작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노랫말이 서사음악극 「토지」로 무대에 올려 졌고, 이번에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국악 관현악으로 다시 연주가 되지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A : 예, 한국문단의 거목이 사라져 숙연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저는 『토지』를 국악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서사음악극의 대본으로도 썼었지만 「토지의 장르 변용에 따른 문제점 연구」라는 논문과 「미시사적 관점에서 본 토지의 지식인 유형 연구」라는 논문을 쓰면서 『토지』를 여러 차례 정독했습니다. 『토지』는 한국 문학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입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데 대해 다시 한번 애도를 표합니다.
Q : 선생님의 「화가 뭉크와 함께」는 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등단작인데요, 그 때문인지 이승하 시인 하면 뭉크를 떠올리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문인들은 등단작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고 하던데, 어떠세요? A : 물론입니다. 이 시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서 제 등단작이자 대표작 비슷하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건 등단작 이후의 작품이 별 볼일 없다는 뜻도 되지요. 하하. 그 시는 베트남전이 끝난 이후 남쪽 사람들이 북쪽 인민해방군의 보복을 두려워해 배를 타고 국외로 탈출하다가 풍랑을 만나 몽땅 빠져죽은 외신보도를 보고 쓴 것입니다. 신춘문예 당선작 치고 아주 예외적인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힌 것이죠.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과 연결지어 써본 것인데, 시를 끌고가는 화법이 말더듬이의 화법이어서 주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Q : 84년 등단 이래 쭉 문인으로서 활동을 해오고 계신데요. 그동안 선생님의 시는 어떤 변화를 거쳐 왔고, 어떤 생각이 축을 이루고 있는지 자평을 좀 해주세요. A : 저는 제 시작의 지향점이 폭력과 광기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하는 꿈을 피력하는 것입니다. 변화라면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인식 가운데에서도 사랑을 탐구하고,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꿈꾸고, 아파서 반짝이는 별을 찾는 작업을 해온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요즘 광우병이니 조류독감이니 하는 신종병과 지진이니 사이클론이니 하는 천재지변 보도를 접하고 보니 또다시 이 세계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래도 시인이기에 희망의 별을 찾고 싶습니다.
Q : 작년에는 예술인들의 삶을 노래한 시집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를 내셨지요. 어쩌면 시인이란 신명에 운율을 바치는 광대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오늘날 시인으로 살아가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A : 방금 말씀드렸듯이 이 세상의 부조리와 부단히 싸우고 비극적인 현상들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더 많이 아파하고 절망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기쁜 일에 더 많이 기뻐하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신명이 나서 한바탕 춤을 추는 춤꿈이 시인이기도 합니다. 예술창작행위에는 기본적으로 유희정신이 깔려 있거든요.
Q : 사실 선생님께선 89년 경향신문에 소설로도 등단을 하셨지요. 시와 소설 그리고 평론에서 두루두루 활동을 하고 계신데, 이 세 활동에 각각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요? A : 소설은 10년 동안 매년 1편씩 써서 소설집을 묶어냄으로써 일단락 지었습니다. 소설은 일종의 노동이며 이야기꾼의 산물인데 제 기질과 맞지 않음을 알고는 일단은 접어두고 있습니다. 비평 쓰기는 소설 쓰기보다도 힘들지만 직업이 대학교수이다 보니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낸 책에 실린 글들은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쓴 것들이 아니라 쓰고 싶어서 쓴 것들이므로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므로 다른 시인들이 쓴 시를 읽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다른 시인들이 쓴 시를 읽는 과정에서 평론 쓰기는 계속될 것이고, 시는 제 자신을 찾는 작업이므로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Q : 현재 학교에서, 문인을 양성하고 계신데요. 요즘 주목하시는 시인이 있다면요. 아울러 오늘날 선생님 눈에 비친 시단은 어떤 모습입니까? A : 말초적인 감각의 시가 각광을 받고 있는데 저와 그와 반대적 의미에서 진지한 성찰의 시, 심오한 사색의 시를 좋아합니다. 작고 시인 중에는 서정주, 구상, 임영조 시인의 시가, 연세가 높은 시인 가운데 강인한, 오세영, 허형만 씨의 시가 좋고요, 그 아래 세대 시인 중에는 장석주, 이은봉, 김영래 같은 시인의 시를 좋아합니다. 말초적인 감각보다는 깊이와 넓이를 두루 갖춘 시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우리 시단의 모습은, 글쎄요, 류시화나 원태연, 이정하, 용혜원 같은 베스트셀러 시집을 내는 시인들의 기세가 한풀 꺾이자 유명시인들이 편집한 비교적 가벼운 시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데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시라는 것은 결국 억눌린 소수자의 부르짖음이나 문명과 전쟁과 질병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까요. 세상살이가 많이 아픈데 시인들은 거저 가벼운 말장난이나 일삼고 있지 않은지 제 자신부터 반성해볼 일입니다.
Q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A : 기호학에 관한 관심이 있어 연작시를 쓰고 있는 중인데 내년쯤이나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평론 쓰기는 당분간 접고 그동안 소홀히 했던 시 쓰기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Q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 :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