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대 국회는 이른바 유신체제하의 국회로서 6년 임기였는데, 국내외적으로 변화하는 정치정세 속에서 박 정권의 대북정책을 충실하게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했다.
1973년 6월 이른바 ‘6.23선언’(6.23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주37)이 발표되자 당시 야당인 신민당이나 민주통일당조차 “6.23선언은 2개의 한국을 인정하고 분단을 영구화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를 초당적으로 지지 결의해야 한다며 1973년 6월 27일 국회 본회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대통령의 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에 관한 결의안>이 제기되었다.
“대한민국 국회는 박정희 대통령이 6.23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에 관한 정부보고를 접수하고 현상유지를 바탕으로 하여 긴장완화를 지향하는 현 국제사회의 조류를 직시하면서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은 한민족의 자주적인 노력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다는 민족사적 당위성에 비추어 이 선언에 따른 국가정책추진에 필요한 총력 외교태세의 조성에 거국적으로 참여하여야 하는 시대의 요청을 절감하면서 평화를 지향하는 인류의 염원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향한 5천만 한민족의 의지를 담은 박정희 대통령의 6.23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을 전폭적 그리고 초당적으로 지지할 것을 결의한다.”(주38)
이 때 신민당의 정일형 의원만이 ‘6.23선언’은 “두 개의 한국을 승인하는 그런 결정인데, 분단을 우리 스스로 선언하는 반민족 행위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에 찬성할 수 없다(주39)고 주장하였으나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1974년 10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안보 및 외교에 관한 질문을 통해 김영삼 의원은 “통일문제는 민족의 문제이지 정권의 독점물이 될 수 없는 것”이라며 정부는 남북대화의 주무가 “국회의 감시권 안에 있고, 국회를 통하여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국토통일원으로 넘기고 이를 국민적 차원에서 뒷받침할 수 있는 초당적인 ‘남북대화협의기구’를 국회의 상설기구로 구성할 것”을 주장하고 “나는 통일을 위해서 남북분단의 비극을 국제사회에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 지구상의 어디든지 갈 것이며 어떠한 사람과도 만날 용의가 있다”(주40)고 하였다.
또 1975년 10월 6일 국회 본회의의 신민당을 대표한 기조연설에서 김영삼 의원은 남북당사국과 미국, 소련, 중공, 일본 등 한반도 관련 6개국이 참가하는 ‘동북아 평화회의’를 제안했는데, 이 회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바탕을 조성하기 위하여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과 남북한에 대한 미, 일, 중, 소 4개국의 교차승인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남북한 당사국이 주도적으로 6개국 평화회의를 실현하기 위해 먼저 ‘남북한외상회의’라는 새로운 남북대화의 창구를 마련할 것을 남북한 양측에 제의하였다.(주41)
10) 제10대 국회에서의 통일논의(1979.3~1980.10)
제10대 국회는 1979년 3월 구성된 뒤 반년 만에 10.26사건, 그로 말미암은 12.12사태와 그 다음 해 5.17군사반란으로 이어진 비정상적인 군사정권의 교체라는 정치 사회적 격동 속에서 1980년 10월 해산되어야 했다.
1979년 3월 30일 조상호 의원은 이미 국회 외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문안작성까지 마친 <남북대화촉진에 관한 결의안>을 제기하여 본회의에서 이를 가결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민족적 염원인 평화통일에의 길은 남북한의 책임 있는 당국간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서만이 성취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1.북한당국은 7.4공동성명에서 서로가 확인한 원칙 및 제반 합의사항을 존중하여 1.19 박정희 대통령의 제의를 성실히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다. 1.남북대화의 성공적 추진을 위하여 정부는 국민의 중지를 집결시키는 노력을 다 할 것을 요구한다.”(주42)
11) 제11대 국회에서의 통일논의(1981.4~1985.4)
제11대 국회는 1981년 3월 25일 총선을 통해 구성된 뒤 전두환정권의 통일정책을 지지결의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제11대 국회가 개원되자마자 1981년 4월 18일 박동진 의원이 제기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두환 대통령 1.12제의(주43) 지지 결의안>을 원안대로 만장일치 가결하였다.
“1. 우리는 한민족의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통일국가건설이 민족사의 절대적 과업임을 확신하고 이것을 성취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한다. 1. 지난날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대하여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1. 우리는 조국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서 혁명선동이나 전쟁과 같은 폭력수단을 동원해서는 안되며 허위선전과 비방으로 일관된 현실성 없는 방안의 제시가 되풀이 되어서도 안된다고 확신한다. 1.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 민족이 당면한 남ㆍ북한간의 대화중단 상태를 볼 때 전두환 대통령의 1.12제의는 진정한 조국애로부터 우러나온 결단으로서 이것이야말로 남ㆍ북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상호신뢰감을 조성함으로써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향한 현안무제를 타개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도 획기적 방안이라는 것을 국내외에 거듭 천명한다. 1. 이에 이러한 1.12제의에 대하여 거국적 초당적 지지를 보내는 바이며 앞으로 국민운동과 국제운동을 통하여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1972년 7월 4일에 발표된 남북공동성명의 대화정신이 충실히 구현되도록 뒷받침할 것을 다짐한다. 1. 북한의 최고책임자는 1.12제의를 민족사의 신기원을 이룩한다는 대승적 견지에서 조속히 받아 들일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우리의 결의가 전국민의 통일의지로 승화되어 나갈 것을 확신한다.”(주44)
그리고 1981년 11월 23~24일 국회 외무위원회가 주관하여 ‘80년대 통일전망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이 날 “북한의 고려연방제안의 분석과 평가”(정종식 : 한국일보논설위원), “김정일 후계체제 확립과 대남정책 전개전망”(김창순 : 북한문제연구소장), “남북대화에 대한 북한내부의 장애요인 분석”(강인덕 : 극동문제연구소장), “미ㆍ일ㆍ중 3각관계 발전과 남북한관계 추이 및 이에 대한 대응책”(박봉식 : 서울대학 교수) (주45) 등의 주제 논문들을 발표하고 토론하였다. 그러나 공청회의 내용은 이북 체제에 대한 반공 적대적 내용일 뿐 민족화해나 통일을 향한 고뇌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첫댓글 분단된 국가에서 통일논의는 그 자체로도 통일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