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야(雪夜)
-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끝에 호롱불 야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女人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시집 「와사등」(1939)> (첫발표: 조선일보, 1938.1.8)
추회 : 지나간 잘못을 뉘우침
차단한 : 차디찬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눈오는 날 밤의 정경을 통해 지향 없는 그리운 감정과 상실감에서 오는 서글픔을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시인의 천부적인 이미지 조형 능력이 ‘그리운 소식, 서글픈 옛 자취, 여인의 옷 벗
는 소리,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 차단한 의상’ 등을 통해 유감 없이 발휘되고 있
다. 그러나 제5연의 ‘잃어진 추억의 조각’에서는 감상(感傷)의 차원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시인이 원천적인 주지 시인이라기보다는 낭만적인 서정 시인으
로서의 측면이 강했음을 반증한다.
▶ 성격 : 회화적, 애상적
▶ 심상 : 회화적 심상
▶ 구성 : 강설에 의한 유추
① 한밤에 흩날리는 눈 - 먼 곳의 그리운 소식(1연)
② 눈 - 서글픈 옛 자취(2연)
③ 눈을 맞이하는 설레는 심정(3연)
④ 눈 내리는 소리(4연)
⑤ 눈으로 말미암은 추회(追悔)(5연)
⑥ 눈에 서리는 슬픔(6연)
▶ 제재 : 눈
▶ 주제 : 눈오는 밤의 정경과 그리움
<연구 문제>
1. 시인 특유의 내면 공간의 조형(造形) 능력이 뛰어난 두 어절의 시구를 찾아 쓰라.
☞ 마음 허공
2. 이 시에서 시인이 원천적인 면에서 서구적 이미지스트 시인보다 낭만적인 시인으로
서의 체질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두 단어를 찾아 쓰라.
☞ 추회, 슬픔
3. 이 시에서 제재인 ‘눈’을 나타내고 있는 시구 넷을 찾아 쓰라.
☞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 서글픈 옛 자취,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 차
단한 의상
4. ㉠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한 것인지 한 문장으로 설명해 보라.
☞ 눈의 이미지를 관능적으로 표현한 시행으로서, 눈이 사르륵사르륵 내리는
소리를 은유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눈 내리는 밤의 정경 속에 피어오르는 추억과 환상을 그린 시다.
마지막 두 줄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 내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에서 확인되는 것
은 사물을 마주한 시인의 감정 상태이다. 눈은 정화(淨化)된 슬픔이다. 눈이 억누를 수
없는 슬픔처럼 마구 쏟아지지 않고 정화된 슬픔처럼 차분하게 내리는 것은 시인(혹은
화자)의 슬픔이 과거의 추억으로 은은하게 되살아 오기 때문이다.
눈이 ‘그리운 소식’, ‘서글픈 옛 자취’, ‘잃어진 추억의 조각’, ‘차단한 의상’으로 비유되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눈은 과거의 추억을 환기시켜 주고, 그 추억은 현재의 나를 슬픔
에 젖게 한다. 그렇다면 ‘나’를 슬프게 하는 추억, 과거의 경험 내용은 무엇일까?
‘여인’은 ‘나’의 추억의 중요한 부분이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가 단순한 감각
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다른 시행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것은 마지막
연의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 흰눈은 내려……’와 관련
이 있으리라. 이것은 또 제3연의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과도 관계가 있을 터이다.
여기서 우리는 ‘홀로’와 ‘호올로’라는 두 개의 부사가 놓인 자리를 생각하게 된다. 나도 ‘
홀로’이고 여인도 ‘호올로’이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의
외로움이다.
여인은 지금 내 앞에 있지 않고 ‘머언 곳’에 있으며, ‘차단한 의상’에서 암시되듯이 여인
은 나에게 냉정하다. 여인에 대한 나의 감정은 일방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추억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은 슬픈 추억이지만, 여인은 나에게 신비
로웉 존재다. ‘머언 곳에 여인이 옷 벗는 소리’는 부정(不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환
상적인 여인의 신비를 나타내는 것이리라.
<맥락 읽기>
1. 화자는 누구인가?
☞ 내, 나
2. 듣는 사람이 있는가 ?
☞ 아니다. 홀로 있다.
3. 화자는 어디에 있는가 ?
☞ 눈 내리는 뜰에 홀로 서 있다.
4. 그는 무얼하고 있는가 ?
☞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5. 화자는 내리는 눈을 무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
☞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 서글픈 옛 자취,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 (차단한 의상)
6. 눈의 비유적 표현으로 볼 때 화자는 지금 어떤 심적 상태에 있으며 또 그 이 유는 무엇
인지 생각해 보자.
☞ 심적 상태 : 서글픔, 그리움에 젖어 있다.
☞ 이 유 : 먼 옛날의 서글픈 추억 때문에
7. 시를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그 추억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어떤 여인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
8. 그렇다면 그것과 관련된 시구를 찾아 보자.
☞ 머언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 차단한 의상
9. 읽는 이의 마음을 빼앗는 표현이 있다면 ?
☞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10. 무얼 표현한 것인가 ?
☞ 눈내리는 모습
11. 어떤 효과를 내는가 ?
☞ 눈이 싸르락 소리를 내며 고즈넉이 내리는 모습을 표현함과 동시에 화자의 생각
속에 있는 한 여인의 상을 떠올리게도 한다.
<생각해 볼 거리>
1. 화자와 추억속의 여인을 주인공으로 짧막한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