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고개에서 부르는 노래와 삶
이 애 경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지휘자의 손끝이 공중에서 유려한 호를 그린다. 조만간 다가올 정기 연주회를 앞두고, 우리는 요즘 한 마디의 화음과 호흡을 다듬으며 뜨거운 열기로 연습실을 채우고 있다.
작년 이맘때 첫 정기 연주회의 그 떨리고 벅차오르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두 번째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감회가 새롭다. 돌이켜보면 오십 대 중반의 나이에 합창단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 것은 나에게 큰 도전이고 용기였다.
쉰의 고개를 넘어서며 상담사로서 타인의 말 못 할 고민과 아픔을 매일같이 듣는다.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다독이고 온기를 전하는 일은 더없이 의미 있고 보람찼다. 반면 정작 가슴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게감과 피로가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시 낭송은 내게 숨 쉴 구멍이 되어준 소중한 쉼터였지만, 조금 더 깊은 울림으로 분출하고 싶다는 갈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아파트 게시판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지역 여성합창단 단원 모집 소식은 내 마음속에 신선한 바람으로 불어 들었다.
첫 연습 날, 단원들과 지휘자 앞에서 간단하게 파트 테스트를 받던 순간의 부끄러움과 떨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낯이 뜨겁다.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고향의 봄’을 불러 보란다. 서른 명 남짓한 단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사시나무 떨듯 노래를 마친 나에게 지휘자가 이번에는 두성으로 불러 보란다. “네? 두성요?” 당황하고 난감해하는 나를 보며, 지휘자는 더 난감했을 것이다.
지정받은 메조소프라노 파트에서 생소한 발성법을 하나씩 배워가며 합창이 단순히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 또 다른 표현의 세계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높고 맑은 소프라노와 낮으면서도 깊은 알토 사이에서 전체의 화음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메조소프라노의 음색이 함께 어우러지며 합창이 완성되어 간다.
합창에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드는 과정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참 많이 닮아 보인다. 나 혼자 목소리를 크게 낸다고 해서 좋은 소리가 되지 않으며, 그렇다고 내 소리를 아예 숨겨버려도 화음은 완성되지 않는다. 상대의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내 소리의 높낮이와 크기를 끊임없이 조율해야 한다. 그리하여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적절한 거리와 경계를 찾아가야 한다.
혼자 부르거나 읊조릴 때는 알지 못했던, 서로가 양보하고 어우러지며 만드는 풍성하고 단단한 울림에 마음이 사로잡힌다. 가슴 깊은 곳에 담아 두었던 숨을 머리 위 공명판으로 올려보내며 소리를 다듬어가는 과정을 통해 내 안에 갇혀 있던 찌꺼기와 지친 감정을 호흡에 실어 던져 낸다.
‘두성’도 모른 채 당황했던 첫날의 떨림을 지나,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름다운 하모니로 결실을 본 첫 연주회 무대를 잊을 수 없다. 조명이 켜지고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숨소리가 느껴지던 무대 위,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첫 화음이 홀 안에 울려 퍼지던 그 순간의 전율과도 같은 감동. 그때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받쳐주던 배경이 아닌 무대 중앙에서 빛나는 전경으로 함께 했다.
지금, 나는 그 무대의 감동을 넘어 두 번째 정기 연주회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때의 떨림을 뒤로하고 이제는 조금 더 깊어진 호흡에 섬세하게 화음을 맞춰가며 가사 하나하나에 마음을 실어 본다.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 과하거나 튀지 않으면서 내 고유한 음색과 내면의 소리를 발견하고 조율해가며 삶의 지혜를 배워 간다.
2막 세계 민요 연습에 들어섰다. 경상도 민요인 ‘옹헤야’를 포함해서 아프리카 전통민요까지 각각의 독특한 멋이 있는 노래다. 특히 2막은 율동을 함께 하기에 더욱 재미있다. 물론 그만큼 집중과 연습이 필요하다.
피아노 반주가 경쾌하고 신명 나다. 무대 위 환한 조명 아래에서 다시 퍼져나갈 우리의 소리와 감동을 위해 오늘도 가슴 속 울림을 모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