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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고전 12:4~31) 유익을 위해 주신 은사
우리 몸에는 손도 있고 발도 있습니다. 손만 하더라도 손가락이 있고 손톱이 있습니다. 얼굴도 있습니다. 얼굴에 눈 코 귀 입이 있고 눈썹도 있습니다. 주름살까지 있습니다. 다양합니다.
본문을 보면 몸에 대한 지체 비유가 나옵니다(12~16). 몸은 하나이지만 지체는 여러 개다. 발, 손, 귀, 눈이 아무리 부정해도 몸에 붙어 있습니다. 길거리에 발만, 손만, 귀만, 눈만 따로따로 다니는 것 보았습니까? 하나의 몸에 붙어 있습니다. 14절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여러 개 있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서로 역할이 다릅니다(17~21). 온 몸이 눈이면요? 눈이 팔에 여기저기 있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눈만 있으면 듣지도 못합니다. 귀가 있어야 합니다. 귀가 백 개가 있어도 눈이 없으면 못 봅니다. 귀가 없으면 귀가 천 개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눈도 있고 귀도 있으면 다 해결됩니까? 냄새는 어떻게 맡습니까? 귀로 냄새 맡고 눈으로 냄새 맡을 수 있습니까? 코가 있어야 합니다. 18절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각 역할이 다른 지체를 각각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몸의 지체는 내가 낫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서로 돌보아 합니다(21~26). 눈이 손더러 쓸 데가 없다. 머리가 발더러 쓸 데가 없다. 아닙니다. 서로 도움을 줍니다. 손이 어느 날 생각해보니 속이 상했습니다. 입은 가만히 있으면서 자기가 수고해서 떠주는 밥만 낼름 낼름 받아먹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만 두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힘이 없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밥을 먹지 못해서 몸이 쇠약해져서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보완하는 관계입니다.
25절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서로 분쟁하면 서로 죽이고 결국 함께 죽습니다.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손이 고통을 받으면 몸이 같이 고통을 느낍니다. 조그마한 가시가 손가락에 박히면 온 몸이 함께 아픕니다. 영광을 받으면 함께 영광을 받습니다. 상을 탈 때 손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온 몸이 함께 받습니다. 함께 즐거워하게 됩니다. 남이 아닙니다.
은사는 다양합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 이 한 몸과 여러 지체의 비유를 들었습니까? 27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모습, 남녀노소 빈부귀천 등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각각 역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서로 귀하게 여기고 돌보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말하고 나서 본론에 들어가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28~31). 각각 서로 다른 은사가 주어졌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에 왜 그러느냐고 다투지 말고 왜 그것 밖에 못하느냐고 하지 말고 서로 각자의 은사가 다르고 영역이 다르고 분량이 다른 것을 존중해주면서 서로 자신의 은사로 도우라는 것입니다. 다 똑같은 은사를 가졌다면 눈만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모든 지체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각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입니다. 하지만 성령은 하나입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이나 주님은 한 분이십니다. 사역도 여러 가지이나 이끌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4~6). 영적으로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각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고 성령을 나타내시므로 은사가 나타나게 하시는 것은 좋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7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가 유익하고 성도가 서로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은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골고루 필요합니다. 서로에게 필요하고 서로 공급해주어야 합니다(8~11). 몸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즐겁게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은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은사는 좋은 것입니다.
은사는 유익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서로 간에 유익이 되게 합니다. 은사는 좋은 것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인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은사가 임합니다. 은사는 좋은 것입니다. 교회에 좋고 서로에게 좋습니다. 가정에도 좋고 사회에도 직장에도 학교에도 좋고 나라에도 좋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질수록 9가지 열매가 충만해집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온유, 충성, 절제의 열매가 열립니다. 이것만 열리더라도 얼마나 좋아지겠습니까? 그런데 성령이 충만해질수록 열매도 충만해지지만 은사도 충만해집니다. 은사가 충만해질수록 모두가 더 좋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은사란 그런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은사도 함께 충만해집니다. 은사와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까지 잘 해내게 하십니다. 사람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충만히 임하셔서 하나님께서 친히 주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충만할수록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매우 실제적인 분이십니다. 말로만 거창하게 떠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실제로 그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한다고 하면 하십니다. 그런 실제 능력도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우리에게 실제적인 은사를 주셔서 실제로 기도하고 실제로 전도하고 실제로 찬송하고 실제로 예배드리고 실제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은사를 발견합시다.
우리 각자에게 은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이상의 은사는 있습니다. 다만 잠자고 있을 뿐입니다. 깨어나면 놀랍고 무서운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누구나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은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사 발견에 대한 책이나 체크리스트를 살펴보면 알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월터 A. 헨릭슨이 쓴 『훈련으로 되는 제자』와 같은 책입니다. 은사를 발견하는 네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는 형식으로 바꾸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보면 안다.
은사의 목적이 몸을 세우는 것이다. 은사는 결코 우리 자신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은사를 모르고 있다면 아마도 그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어울리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드릴 때 은사의 발견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적극적으로 함께 주님을 섬겨 나가도록 바란다. 다른 사람을 섬겨 나가는 동안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점차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2. 자신의 은사라고 생각되는 것을 해보면 안다.
가르치는 은사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가르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으나 확신이 없으면, 가능한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가르치는 것을 실습해 보면 된다. 가르칠 때 내 자신이 참으로 그런 은사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3. 자신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곳, 그리고 가장 쉽게 자신의 믿음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면 안다.
어떤 사람의 은사는 그의 관심이 가장 집중되어 있는 곳, 그리고 그가 가장 쉽게 자신의 믿음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발견된다. 나 자신(저자)의 삶을 예로 들러 설명하겠다. 나는 신유(병 고침)의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아픈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을 낫게 해주고자 하는 믿음을 갖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나는 말씀을 나눌 수는 있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나를 발견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뢰하고 감당해 낼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4. 솔직한 평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가능성이 있는 자신의 은사를 발휘할 기회를 가져보면 안다.
만일 가르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몇몇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가르치는 것을 관찰하고 평가해 주는 기회를 만들라.
은사에 대한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월터 A. 헨릭슨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특정한 은사가 없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순종을 명하신 영역에서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전도를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특정한 영역에 은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제한할 수 없다. 은사를 받은 전도자가 아니더라도 전도를 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전도는 은사가 있든 없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인 것이다.
이처럼 은사에는 특별은사와 일반공통은사가 있습니다. 마치 교양필수과목과 전공필수과목과 같습니다. 과목의 차원이 다릅니다. 하지만 꼭 통과해야 합니다. 필수입니다. 은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더 잘하고 그냥 잘하고의 차이입니다. 은사는 더 잘하게 합니다. 전도의 특별은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더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는 공통적으로 해야 합니다. 전도는 필수입니다.
하나님은 사명만 주시지 않고 할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성령을 주신 이유도 그렇습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없어서입니다. 성령은 좋은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도 좋은 것입니다. 성령님의 별칭은요? 돕는 자이십니다. 무엇을 돕습니까? 기도, 거듭, 성화, 거룩, 자기 부인, 육신의 생각을 꺾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을 닮게 해주십니다. 전 인격면과 권능면에서. 공통은사 뿐만 아니라 특별은사를 주기도 하십니다. 성령님은 필요한 은사와 여러 가지를 공급해주십니다.
성령 충만할수록 은사도 충만해집니다. 하지만 은사와 인격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는 다릅니다. 열매는 성품의 면이고 은사는 일의 면입니다. 서로 다른 것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품은 좋은 데 일을 못하고 일은 잘 하는 데 성품이 좋지 못한 경우입니다. 성령 충만을 한쪽만 받아서 그렇습니다. 양쪽을 골고루 균형 있게 받는 것이 좋습니다. 더 좋은 인격의 열매, 더 좋은 사역의 열매가 맺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은사의 종류는요? 은사하면 생각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비적인 초자연적인 은사입니까? 그런 은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은사의 일부에 해당됩니다. 다양한 좋은 은사가 많이 있습니다. 본문 28절에 나오는 은사만 보더라도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로마서 12장 4~8절에 나오는 은사는 더 다양합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은사는 다양합니다. 그 은사를 주신 것은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사용할 때 사도 베드로가 권면한 것처럼 사용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대접하고 서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사자가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은사를 행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7~11절이 그러한 것을 말해줍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은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셨습니다. 서로 세워주라고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앞장서서 이끄는 사람 역시 그러함을 에베소서 4장 1절에서 7절을 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주셨는데 하나가 되는 데 유익하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사도 바울은 말씀을 맡은 자들에게도 당부하였습니다. 군림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하는 유익을 위해 은사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과 12절을 통해 강조하였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은사는 이처럼 유익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진 은사에 대해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은사가 최고라고 여기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은사를 강요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특정은사 없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강요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유익에 있어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은사를 무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활용하지 않아도 구원에는 지장이 없다는 식이 되면 곤란합니다.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주신 은사는 모두 다 귀합니다. 질서 아래 유익을 위해 사용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고 세우는 데 좋은 것입니다. 서로 세워주는 데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겸손 가운데 잘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은사공동체입니다.
은사하면 초자연적 신비적인 은사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얼마나 다양한 은사가 있는지 모릅니다. 은사에는 다양한 은사가 있습니다. 다스림, 사도적 은사, 기술, 예능, 영분별, 권면, 전도, 믿음, 구제, 병고침, 도움, 대접, 중보기도, 통역, 지식, 지도력, 긍휼, 지혜, 말씀의 은사 등이 있습니다. 이 은사를 성령님이 각 사람에 따라 각자에게 맞는 은사를 골고루 나누어주십니다.
이 은사를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러한 은사로 이루어진 하나의 은사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한 성령의 여러 은사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자랑도, 강요도, 무시도, 제한도, 무관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받은 은사로 서로에게 봉사하며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보다 더 성령 충만하여서 보다 더 은사를 잘 사용하여 교회와 서로를 더 잘 세워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은사로 말미암아 언제 어느 공동체에나 서로에게 더 큰 유익이 있고 더 큰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2014 로고스성경교육원 https://cafe.daum.net/logosbibleinstitute/JJuM/211 원장 이서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