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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10309 영광스러운 즐거움 200421 주일 시160811
1. 지금은 혁명적 전환의 시대
-사회의 모든 구조가 비대면적 산업으로 전환되는, 지금 그 과정에 있습니다.
이번 정부의 3차 추경예산 가운데 8,000천억원이 과학정보통신 분야의 디지털 뉴딜사업에 투자 예정이라고 합니다.
“비대면 사업을 확장하겠다”
*산업과 노동의 발전형태 = 수작업->기계화 ->전산화(전산화電算化 computerization) =>디지털화
*디지털 : 디지트(digit)는 사람의 손가락, 동물의 발가락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셀 때, 하나하나를 딱 떨어지게 셀 수 있습니다. 중간 값을 취하지 않고 한 자리씩 끊어서 표현하기 때문에 애매모호하지 않고 정확한 것이 특징이지요. 다시 말해, 디지털은 어떤 값을 딱 떨어지게, 끊어서 표시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시계는 바늘이 없이 숫자로만 표시 됩니다. 바늘이 있는 시계와는 달리 정확하게 숫자로 구분되어 시, 분, 초가 표시되는 것입니다.
체중계 중에서도 바늘이 있는 체중계와 없는 체중계가 있지요? 바늘이 있는 체중계의 경우 1과 2사이에 바늘이 위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숫자로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바늘이 있는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뿐이죠. 반면 디지털 체중계는 이런 애매모호함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숫자로 표시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이란 일반적으로 데이터를 한 자리씩 끊어서 다루는 방식이라 할 수 있으며, 애매모호한 점이 없고 정밀도를 높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화는 코로나 때문에 기속화!!
2. 교회도 통째로 바꿨다.
다음기사를 봅시다.
교회도 통째로 바꿨다.. 찬양예배 없애고 '통성기도' 자제
뉴스1 정재민 기자2020. 6. 13. 09:05
[코로나가 바꾼 대한민국②] '감염 뇌관' 떠오르며 자성 목소리
일상이 된 '온라인 예배'..드라이브 스루 '심방'·개인 큐티
[편집자주]바이러스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실제 그렇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대한민국을 휘몰아치며 '구석구석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그 현장에서 새로운 변화와 또다른 희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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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신도들이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코로나19 대비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예배당으로 향하고 있다./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정재민 기자 = 통성기도, 찬양예배, 새벽기도….
ddakbom@news1.kr
(다음은 기사내용 요약)
-찬양예배 없애고 '통성기도' 자제
바이러스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실제 그렇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대한민국을 휘몰아치며 '구석구석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그 현장에서 새로운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13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전날(12일) 기준 수도권 개척교회발 코로나19 확진자는 95명으로 집계됐다
한국 교회의 특성을 보여주는 '통성기도'도 점점 없어지고 있고, 예배 자체도 줄어들었다. 수요예배, 학생부 예배 등을 줄이고 비말(침방울) 노출 가능성이 큰 찬양예배, 새벽기도 역시 하지 않은 교회가 늘고 있다.
일각에선 줄어드는 소모임, 예배에 대한 안타까운 목소리도 있다.
교인 정모씨(62·여)는 "코로나19로 교회 문화가 완전히 바뀌었다.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 기본적인 것부터 문제가 됐다"며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되기도 한다"
또 다른 교인 김모씨(49)는 "만남과 교제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였는데, 코로나19로 그럴 기회가 아예 없어 믿음에 금이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3. 이쯤해서 우리는 교회를 왜 다니는가, 왜 주님을 믿는가?를 묻게 된다.
신앙생활은 왜 하는가?
왜 시간과 물질을 바치며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4. 오늘의 구약 본문 말씀 시편 16:8-11이 그 답이다.
시편 16편은 다윗이 생명의 위협가운데서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노래한 것으로 메시야 예언시입니다.
1)시편 16편은 일차적으로는 축복과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부활과 영생을 확신하며 죽음의 위협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2)2차적으로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주님께서 가장 먼저 부활하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실 것을 예언적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증거할 때 베드로와 바울에 의해 인용되어졌습니다(행 2 : 31 ; 13 : 35).
3)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 재림과 함께 있을 성도의 부활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부활의 승리를 노래하며 기뻐하고 있지만 평안하고 축복된 상황 속에서 지은 시가 아닙니다.
죽음조차 각오해야 하는 위기 상황가운데 고백한 것입니다(1절) .
10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여기서 스올은 옛날 성경에는 음부로 번역된 단어인데, 사람이 죽어서 가는 지옥과 같은 곳입니다.
죽음의 위급한 상황임을 알수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의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이렇듯 기쁨과 소망에 찬 노래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의 믿음이 얼마나 확고하고 분명한 것이었는가를 증거해 줍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자신이 비록 당장은 죽음의 위기에 처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죽음 이후의 부활과 영생으로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죽음조차 넘어서서 신앙의 확신과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 담대하게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부르짖고 있는데,
이는 평소 그의 삶이 여호와만을 자신의 산업과 소득과 분깃(5절)으로 삼는 철저한 여호와 중심의 삶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 시대보다 훨씬 분명한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진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시편 16:8-10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이 말씀의 일차적인 의미는 분명 하나님께서 결단코 자신을 죽음의 위기에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그러한 신앙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은 오고오는 모든 세대에게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예언의 말씀은 일차적으로 다윗 자신의 구원으로 성취되었으며,
오랜 세월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성취되었으며,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있을 성도의 부활로 완전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미리 내다 본 다윗은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라고 신앙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 오늘 말씀의 핵심 요절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과 그로 인해 하나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에 관해 고백하고 있는 말씀으로 궁극적으로 영생의 소망과 그로 인한 영원한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상당한 도전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예언은 오실 메시야가 핵심으로 사실 부활과 영생의 소망은 신약의 말씀에 비해 희미한 것이 사실입니다.
구약은 어디까지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핵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구약 본문의 말씀은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반복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다 이미 오신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였으며,
또 선명하게 부활의 소망을 간직하며 살고 있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런 소망과 확신이 있는가?
우리 신약의 성도들의 믿음 생활에 과연 기뻐하며 즐거워 함이 있는가?
도전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부활의 확신으로 가득한 우리의 믿음생활로 기쁨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신약 본문 말씀 베드로전서 1:3-9
베드로전서는 A.D.64년, 로마에서 시작된 네로황제(Nero, A.D.54-68)의 기독교 대박해가 점차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어갈 시점에 로마에서 활동 중이던 사도 베드로가 소아시아 지역의 여러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공식 서신입니다.
베드로전서는 1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부활 승천으로 구속사(救韻史)의 시대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갓 이전되었고 이방인들도 신약 교회를 통하여 구속사의 지평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하였던 격변기에,
로마제국의 대대적인 박해에 직면하게 된 소아시아 지역의 여러 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고 그러한 박해를 인내로 극복하며 더욱 성결한 삶에 힘쓰도록 권면하기 위해 기록한 서신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의 교훈들은 비록 초대 교회 당시와 같은 대외적인 핍박은 없지만 세상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더욱 교묘하고 집요하게 성도들을 공격하는 사탄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고난에 직면하게 될 현대의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임박한 말세의 고난 가운데서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며 주의 재림을 대망케 하는 귀한 지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3-5절.
-고난 속에서도 성도가 기뻐할 이유가 제시된 말씀입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도들을 거듭나게 하였으며, 산 소망임을 노래합니다.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기업임을 노래합니다.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런데 우리의 천국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안에서 보호받고 있음을 증거합니다.
6-12절.
-성도가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은 결국 성도 자신의 믿음의 연단을 위한 도구로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고,
그리고 이 고난을 이긴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영혼의 구원을 얻으며,
동시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성도들은 환란중에도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고 말씀합니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환란중에도 오히려 기뻐하는 확실한 믿음이야말로 주님이 재림 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본적이 없는 분,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고, 말할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이유는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영혼 구원의 감격이 곧 믿음의 요체가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8-9절의 말씀을 한걸음 더 들어가서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여기서 핵심적인 말을 찾아보면 주어로 “너희가”, 그리고 목적어로 “예수를” , 동작을 가리키는 동사로 “사랑하는도다”, “믿고-믿다“, 그리고 기뻐한-기뻐하다”가 있습니다.
요약하면 “너희가 예수를 사랑하고, 믿고, 기뻐한다“
쉬운말로 풀면 “너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고, 너희가 지금도 예수를 보지 못하지만 믿고, 너희가 예수를 밀할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
-너희가 예수님을 과거에도 못보았고, 현재에도 보지 못하지만 사랑하고, 믿고, 그리고 말할수 없는 영광스런 즐거움으로 기뻐한다는 말씀입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본적이 없는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면서 말할수 없는 영광스런 즐거움으로 기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 해답이 9절입니다.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에 한번도 본적이 없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고, 말할수 없는 영광스런 즐거움으로 기뻐한다는 말씀입니다.
영혼의 구원이 무엇이기에 본적도 없는데, 그렇게 사랑하고 믿고, 말할수 없는 영광스런 즐거움으로 기뻐할까?
사람이란 어던 존재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답을 얻어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창세기 2:7.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1)사람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육체)
-이 육체는 나중에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창세기 3:19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욥기 34:15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시편 146: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전도서 3:20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 생기가 바로 영혼이다.
그래서 사람은 흙과 생기의 결합으로 사람이 죽으면 흙과 생기가 분리되어 흙은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전도서3:21
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전도서 12:7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3)문제는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면 썩어 물이 되고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소멸되지만
그러나 영은 소멸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가 심판을 받는다는데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요한복음 5:28-29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4)그러면 왜 사람은 심판의 대상이 되는가?
심판은 죄와 직접 관련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범하여 그 죄가 인류안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담의 뒤를 따라 불순종함으로 죄가 왕노릇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12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3:10-12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5)그래서 모든 사람은 심판을 피할수 없습니다.
로마서 6:23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이 사망은 영원한 형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기, 즉 영혼은 죽어 없어지는 물체, 육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8-9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6)모든 인류가 죄가운데서 죽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사랑과 구원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로마서5:8-9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7)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주인 삼고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얻는 구원, 그런데 이 구원이 선물입니다. 공짜입니다.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영광스러운 즐거움’입니다.
우리가 모두가 죄인들이고, 따지고 보면 억만가지도 더 될텐데, 그 모든 죄를 주님이 다 지고 가셔서, 믿음으로 구원을 선물로 받았으니 이런 은혜, 이런 횡재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본적이 없지만 만난적도 없지만 믿고 사랑하고, 기뻐하는데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도 즐거움은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지요?
단순한 즐거움부터 시작해서 차원높은 즐거움이 있습니다.
맛있는 식사를 하면 마음이 즐겁습니다.
좋은 옷을 사입어도 마음이 즐겁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즐겁습니다.
사업이 잘되고, 승진도 하고, 출세도 하면 즐겁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 즐겁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무언들 그 즐거움이 영원한 것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은 세월이 가면 잊게 되어 있습니다.
잊는 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러나 가슴에 자식을 묻은 부모는 평생을 잊지 못합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구원받은 은혜도 평생을 가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경계하고 도 경계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현실에서는 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기억하라 Remeber!!, 기억하라 Remeber!!.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절기를 지키는 것도 계명을 지키고 말씀을 암송하라는 것도, 기도와 찬송도...모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왜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잊으면 안되는가?
1)구원의 은혜를 잊어 버리면 구원의 삶을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고 타락여 버림받았던 것은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고 부패하여 구원의 대열에서 이탈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고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구원의 날까지 우리의 믿음을 지킬수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잊으면 안되는가?
2)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고, 우리가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속죄의 제물로 삼으셨는데....그 하나님의 사랑을 독생자를 보내신 사랑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다 자식을 낳고 살지만 자식이 화를 당하느니 차라리 내가 당하고 말지 하는 생각이 부모님들에게는 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보다 더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큰 사랑을 입은 우리가 그 사랑을 잊어버린다면 그야말로 배은망덕한 존재요, 구원이 없는 백성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요?
ex)김포에서 제주행 비행기 운임이 만약 5만원이라면 5만원 내고 표를 사면 제주까지 확실하게 갑니다.
그렇듯이 천국가는 비행기가 있어서 운임을 받는데 얼마가 적정한 요금이 될까요?
천만원? 1억? 10억? 1천억?
만약 가진 재산 다 주어야 천국행 비행기표를 사야 한다면 사야 할까요? 사지 말아야 할까요?
그래도 타는 사람이 있을까요? 반대로 너무 비싸다고 안타는 사람이 있을까요?
만약 천국가는 비행기 표가 있다면 우리의 전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천국행 비행기표를 사겠지요?
왜냐하면 천국가는 것,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지도 않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고,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신앙생활은 바로 우리, 여러분과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영원한 심판대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요 보답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썩고 변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확신하기 때문에 환란가운데서도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며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성도간의 교제와 만남이 안된다고 믿음생활에 활기를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몸이 아프고, 경제가 안좋다고, 일이 안풀린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고, 영광된 새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죄를 지고 죽으셨으나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신 주님을 사랑하고, 믿으며, 영광된 즐거움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구원받았고 영광된 천국은 이제 곧 실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인과 나그네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 영광된 천국의 새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며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