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른 생각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옛날 교통시설과 통신시설이 불비할 적에 급히 소식을 전하는 수단으로 전보(電報)를 많이 이용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글자 수에 따라 요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이용자는 한자라도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다보니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지 못하고 대강만 알 수 있게 ‘ 모친 위급 속래’, 아니면‘ 부친사망 급 속래’등으로 줄여서 기재했다. 유족이 빨리 오게 하는 것이 목적임으로 되도록 간명하게 전했다.
그 시절 우리고장에서 해프닝이 벌어졌다. 서울로 나가 출세한 자식이 하도 고향방문을 하지 않는지라 그의 장형이 ‘모친사망’이라는 전보를 쳤는데,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급기야는 그가 내려왔고 따라서 직장에서는 부의금이 모아져서 전달되었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보니 모친이 정정해 계시는 것이 아닌가.
그가 불같이 화를 냈지만 이미 엎질러진 일이었다. 그렇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전보를 친 형을 누구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하도 자식을 보고싶어 하는 모친의 뜻이 간절했기 때문에 그의 형은 나몰라라 할 수가 없었고 그것을 이해 해서였다.
그런 촌극에서 보듯이 전보지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그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급할 때 보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도 ‘오직 다급하면 전보를 쳤을까’하고 인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간명한 글쓰기는 그러나 통신시설이 발달하고 교통이 편리한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선호되고 있다. 워낙 사람들이 바쁘게 살다보니 글줄임이나 말줄임 현장이 뚜렷한 것이다. 그 일례로 카톡으로 보내는 문자도 보면 선생님을 ‘쎔’으로 줄이는가 하면 좋다는 것도 ‘대박’이란 한마디로 다 표현해 버린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다. 죽음을 앞둔 페르시아왕 미젤이 신하들을 불러놓고 하나의 소망을 피력했다.
“인간의 역사에 대해서 소상하게 피력한 책을 구해오라”
이에 따라 신하들은 전국으로 흩어져서 왕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을 6천권이나 구했다. 그리고 이를 낙타 12마리의 등에 실어서 궁궐로 가져왔다.
“페하, 이 책을 보시면 인간의 역사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 알겠도다. 그런데 이 방대한 책을 언제 다 읽는단 말이냐.”
해서 분량을 오백 권으로 줄이게 되었다. 그래도 병환이 깊어진 왕이 생각할 때 그것도 무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 한권만 골라라”
그래놓고는 그것마저 벅차보였는지 말했다.
“내 병이 이미 깊었는데 읽기 어렵겠구나. 그것을 한마디로 줄여보아라”‘이에,
신하가 말했다.
“폐하 이 책들을 한마디로 줄이면 인간으로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사람의 한 생입니다.” 하자 미젤은 그때서야 안도의 미소를 흘리며 “그럼 나도 이제 떠나야겠구나”하고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있다. 옛날 어느 고을에 구두쇠로 소문난 첨지가 살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아까워하여 자린고비 생활로 철두철미하게 아끼고 살았다. 그는 누구에게 단 한번도 베푼 적이 없는데다 흉년이 들면 고리대업을 하여 이득을 챙겼다. 그는 자식들도 돈이 아까워서 학교를 보내지 않고서 일을 시켰다. 그런 그는 당대에 그 고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그가 죽었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너무 인색하게 산 것을 의식하고 호사스런 장례를 치렀다. 무덤도 크게 쓰고 둘래석까지 꾸며놓았다. 그런데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 비석도 호사스럽게 세워야겠는데, 글을 모르니 어디에다 부탁할지도 몰랐다. 무학인 아들은 생각 끝에 인동에서 학문이 높다는 서당 접장을 찾아갔다.
“특이한 자취라도 있으신가?”
“그런 것은 없습니다.”
“어려울 때 마을주민 구휼이라도?”
“그런 일 없습니다”
“어허, 혼자 잘 먹고 혼자만 잘 살았군 그래”
그러면서 한지에 먹물을 찍어 일필휘지로 넉자를 적었다.
‘食之死止(식지사지)’. 먹다가 죽었다는 말이었다.
일자무식인 아들은 그것도 모르고 비문을 받았다는 생각에 기뻐 날뛰었다.
그러니까 전자의 이야기는 이야기의 함축을, 후자는 살아온 생을 한마디로 축약한 셈이다.
이것을 떠올리면서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다. 최근에 나는 수필쓰기의 길잡이로서 ‘수필쓰기 핵심’이란 개정판을 낸바 있다. 전에 썼던 것인데 이번에 뺄 것은 빼고 보탤 것은 보태서 펴낸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서 혹여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거기에다 무엇을 담았습니까’. 그러면 나는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수필은 아무래도 인간적으로 비교적 흠이 적은 사람이 살아가며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허구가 아닌 진실로 쓴 글'이라고. ‘한권으로 묶었을 때 투명하게 드러난 자서전’이어야 한다고. 줄여 쓰는 말을 생각하다가 그런 생각을 해 본다. (2019)
첫댓글 두 가지 예화의 대비에 문장의 축약이라는 명제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무래도 수필은 미사여구와는 먼 이웃이니 부사나 관형사의 절제가 기본이 되는 듯합니다.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있어 수필을 뒤집어보니 '필수'이군요. 과연 무엇이 필수란 말이냐고 물으니,
선생님의 결론이 다가와 말을 거네요. 수필가에는 무엇보다 인격이 필수라는 점을 일깨워주네요.
그러다가 '진솔'의 한계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번에 수필쓰기의 핵심을 다시 개정판으로 내면서 거기에 무엇를 강조하고자 다시 책을 고쳐내게 되었는가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간추린 보기의 예화를 들어 글한편을 썼습니다.
수필은 비교적 흠이 적은 사람이 진실되게 쓰는 것이라는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화려함보다는 진실됨을 요구하는 문학장르가 수필이지요. 그래서 소설이나 시보다 수필을 좋아하는 이유인 듯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무 세상을 막되게 산 사람은 수필 쓰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