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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성경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찌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십 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13)」
아빕월(첫달)
주님께서는 그의 경륜 가운데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들을 창조하셨는 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함으로 타락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나, 온 만물이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 하고 더 좋은 것, 새로운 것을 주시기로 작성하시고 놀라운 일들을 진행하셨다. 그런 일들 중 하나는 이스라엘(야곱) 자손이 애굽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생활 했을 때 그들은 애굽왕 바로의 학정이 너무 심함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그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하나님은 그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다(출 2:23∼25). 이리하여 주님께서는 10가지의 재앙(이적)을 애굽에 내리사 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셨는 데, 그 재앙의 마지막 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유월절로 기념하는 내용이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기 위해 열 번째의 재앙, 곧 마지막 재앙을 애굽에 내렸는데 그것은 애굽의 바로 왕과 그 신하들과 백성들의 장자와 짐승들의 처음 난 것들을 멸하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 14일 저녁에 일년 된 흠 없는 수양을 잡아 그 피는 그들이 잡은 양고기를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는 집의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집 안에서 양고기를 먹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모세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대로 실행함으로 그들은 죽음의 사자가 지나갈 때에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른 피를 봄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나 그들의 생축들은 어떤 해도 입히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출 12:1∼13). 그러나 그러한 내용을 알지 못함으로 준비하지 아니한 애굽 왕과 그 신하들과 백성들의 집의 장자들과 짐승의 초 태생들은 멸망을 당함으로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다(출 12:29∼36).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인도자인 모세에게 그 날짜에 대해 해의 첫 달 십사 일 저녁에 일년 된 흠 없는 숫양을 잡아 그 피는 그 집의 문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했다. 이때의 일년 된 흠 없는 숫양은 우리 주 예수님을 상징하고 그 피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뜻한다. 이 내용에서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출 12:2)’라고 했다. 이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키는 월력이 있었는 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월력을 만드셔서 그것을 지키게 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키는 그들의 월력을 제쳐 두고, 새로운 월력을 만드셨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새로운 시작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옛 것을 끝내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월력을 따라 생활하는 데 새로운 월력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창조물로서 새로운 삶,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것을 뜻한다. 옛 것을 끝내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 곧 옛 이스라엘을 끝내고 새로운 이스라엘로 새로운 삶의 출발을 하는 것을 뜻한다. 민수기 9장 5절에서는 “그들이 정월 십사 일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다 좇아 행하였더라”고 했다. 이것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서 내신 새로운 월력을 따라 행한 것을 나타낸다. 정월은 첫 번째 달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유월절을 지킨 것은 새로운 월력을 따라 새로운 시작, 곧 애굽에서 나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명기 16장 1절에서는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고 했다. 이 내용과 출애굽기 12장 2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빕월(정월) 첫 날에 유월절을 지켰는 데 그것은 그들이 그달에 애굽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뜻한다. 즉, 예수님께서 한 마리의 숫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요 1:29) 부활하심으로 옛 것은 끝나고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는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했다. 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다.
첫 사람과 둘째 사람
유월절에서는 애굽 사람들의 장자와 가축들의 초태생들은 멸망을 당했으나, 이스라엘 자손들이나 그들의 가축들의 초태생들은 멸망을 당하지 않고 보존이 되었다. 이 내용의 장자는 아들들 전부를 대표해서 말하고 초태생은 가축들 전부를 대표해서 말하는 데, 그것들은 또한 옛 창조물을 예표한다. 그러나 장자들이나, 가축의 초태생들을 멸하는 것은 옛 창조물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이에서 보존을 받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새로운 창조물로 예표된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옛 창조물을 끝내고 새 창조물을 창조하셨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창)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다. 이렇게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15장 45∼47절에서는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첫 사람(아담)은 땅에서 났다고 했고, 둘째 사람(마지막 아담)은 하늘에서 나셨다고 했다. 이것은 사람들을 분류하면 땅에서 난자와 하늘에서 난 자가 있다는 것이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난자들 전부를 말하고,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난 자 전부를 말하고 있다. 땅에서 난 자들 전부를 단체적인 첫 사람으로, 하늘에서 난 자들 전부를 단체적으로 둘째 사람으로 말하고 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난 자들 전체를 대표하는 첫 사람, 곧 옛 사람으로 말하고 있고,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난 자들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 곧 새 사람(고후 5:17, 엡 2:15)으로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13장 32, 33절에서는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라고 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두고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두고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라고 했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사람의 아들(인자)로 불려졌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기 전에는 사람의 아들로 불려 지다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하나님에 의해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도다’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이것은 사람의 아들로서 죽고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사셨다는 것이다. 로마서 1장 2∼4절에서는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예수님에 대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난 사람이고 거룩한 영으로 말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했다. 육신으로 보면 흙에 속한 형상을 가지고 생활하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했을 때는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으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너는 내 아들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고린도전서 15장 47∼49절에서는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생활하셨을 때는 땅에 속한 형상을 입고 있었으나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하늘에 속한 형상, 곧 신령한 몸을 입으셨다. 이것은 옛것을 끝내고 새로운 것을 시작한 것이다. 땅에 속한 것을 끝내고 하늘에 속한 것을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먼저 옛것을 끝내야 한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이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옛것을 끝내고, 다시 사심으로 새로운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창)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다. 사도는 새로운 창조물의 삶을 중히 여겼고 이를 위해 계속해서 달려갔다.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삶을 사는 것이다. 골로새서 3장 8∼10절에서는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했다. 주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창조물이 산출되었다. 그러므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다고 했다.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므로 우리는 새 사람의 삶,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둘째 사람인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하나된 삶, 곧 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첫(옛) 언약과 새 언약
주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창조물을 산출하셨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약속도 세우셨다. 히브리서 8장 6∼10절에서는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찌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먼저 첫 언약보다 새 언약이 더 좋은 약속이며, 더 좋은 언약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언약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에 세운 언약, 곧 첫 언약과 같지 아니하다고 했다. 또한, 새 언약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라고 했는 데, 이것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생명주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고린도후서 3장 2,3절에서는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 했다. 옛 약속은 먹으로 돌비에 썼다고 했고, 새 언약은 하나님의 영으로 육의 심비에 기록했다고 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은 의문에 속한 것이지만 새 언약은 살아있는 영에 의해 이뤄지므로 생명을 준다고 했다. 이렇게 옛 언약은 의문에 속한 것으로서 정죄하고 죽이는 일을 하지만 새 언약은 살아있는 것으로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새 언약이 옛 언약보다 더 좋은 것으로 말해진다. 히브리서 8장 6절에서는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고 했다. 새 언약이 옛 언약보다 더 좋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8장 7절에서는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첫 언약에 흠이 있었기 때문에 둘째 것을 추구했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허물을 발견하시고서는 때가 오면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는 데, 그 새 언약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세운 언약과 같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하고 난 뒤에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주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약속하신 새 언약을 세웠는 데, 그 새 언약은 살아있는, 생명이 있는 언약으로서 옛 언약보다 더 좋다고 했다. 히브리서 8장 13절에서는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고 했다. 첫 것, 곧 첫 언약은 옛 언약으로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세운 언약을 말한다. 그런데 첫 언약, 곧 옛 언약은 낡아지고, 쇠하여지고, 없어져간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으심으로 세우신 새언약은 살아있는 놀라운 언약이다. 누가복음 22장 20절에서는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 잔을 나눠주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잔에 대해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심으로 세워지는 언약으로서 새 언약이라고 했다. 이렇게 새 언약은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것이다. 히브리서 7장 18, 19절에서는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고 했다. 전엣 계명인 이 율법은 연약하여 무익하므로 폐하고 새 계명인 새 언약을 주셨다. 그것은 새로운 출발인 셈이다. 유월절 또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의 택한 백성들이 주님과 함께 죽고 새로운 백성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을 나타내듯이 (주님께서는 그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월력 대신에 새로운 월력을 주셔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새 창조물(새 사람)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셨다. 옛 계명 아래서 옛 사람의 삶을 살게 하지 않고, 새 언약을 주셔서 새 사람의 삶을 살게 하셨다. 그것은 죽으심으로 옛것을 끝내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것이다.
새로운 신분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새 사람으로, 새 신분을 가지고 살게 하셨다. 빌레몬서 1장 10∼16절에서는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저를 돌려 보내노니 … … 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라고 했다. 사도는 감옥에 갇혀 있는 가운데서 주님께로 인도한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고 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노예)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후에는 종에서 뛰어나 주님 안에서 사랑 받는 형제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을 말한다. 요한복음 1장 12, 13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했다.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하나님의 자녀(아들)라고 했다. 히브리서 2장 11, 12절에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인 그리스도 예수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인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이 다 같이 하나, 곧 한 하나님께로서 났기 때문에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사도행전 13장 32, 33절에서는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시고는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낳았다’라고 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너는 아들이라’고 함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했다. 이렇게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아들)이므로 우리는 서로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신 형제들이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새로운 신분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또 예수님과 함께 형제가 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며, 신분상의 놀라운 변화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생명주는 영이 됨으로(고전 15:45) 이뤄진 것이다. 골로새서 3장 9∼11절에서는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산출된 새 사람 안에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의 분별이 없다고 했다. 이것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다 같이 서로 형제들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육신, 곧 옛사람 안에서는 여러 차별이 있지만, 주 예수님 안에서는 다 같이 형제로서 분별이 없다고 했다. 이것은 참으로 복되고 놀라운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우리에게는 놀라운 신분들이 주어졌다. 하나님의 자녀(아들), 예수님의 형제들, 어린양의 신부(요 3:29), 하나님의 권속(엡 2:19) 등의 여러 신분이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러한 것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신분들이다. 우리에게 이렇게 새로운 신분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