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는 티벳불교 다큐멘터리를 참 자주 보는데, 열 번도 더 봤을 거요. 지금도 시간만 나면 보는데, 유튜브에 티벳불교라고 이렇게 치면은 스물아홉 꼭지가 촥 다큐멘터리로 찍은 게 나옵니다. 아주 좋은 내용이에요.
거기에 티벳불교 전체를 환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은 티벳불자들은 승속을 막론하고 계속 염주 돌리고, 한 손에는 염주 돌리고, 한 손에는 마니차라고 해서 마니차라고 하는 거 그 안에 돌리는 그 기구가 있는데, 그 안에 경이 들어있어요. 혹 경문이 들어있기도 하고, 옴마니반메훔이 새겨져 있기도 하고. 왜 누런 통을 이렇게 돌리는 것도 있고 그렇죠? 그게 전부 이제 마니차라고 하는 거 그거 돌리는 일인데
그게 여러 가지가 돼있어요. 손으로 작게 해가지고 돌리는 것도 있고, 뭐 크게 이제 절에다 쭈욱 돌아가면서 돌면서 돌면서 돌리도록 돼있고, 탑처럼 쌓아놓고 돌리도록 돼있고, 어떤 건 크게 아주 뭐 집채만 하게 해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같이 힘을 써야 돌아가도록 돼있는 그런 것들도 있고, 혹 어떤 것은 이제 빛을 받으면은 빛의 힘에 의해서 저절로 돌아가게 돼있고, 혹 불을 키면은 불의 힘에 의해서 또 돌아가게 돼있고, 혹 물레방아를 이용해서 돌아가게 돼있고
그와 같이 불법을, 부처님의 경전을 널리 세상에 편다고 하는데 그렇게 마음을 씁니다. 하 대단해요. 그 신심이.
그래서 염불을 이제 염불심부동(念佛心不動) 그랬어요. 그 사람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부처님을 생각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나 깨나 마니차를 돌리고 염주를 돌리는데, 말을 타면서까지. 그 사람들 말 많이 타잖아요. 말을 타면서까지 그 마니차를 돌리고 말을 탄다니까.
내가 참 그것보고 감동해가지고 ‘아 저렇게 신심이 있구나.’ 끊임없이 부처님을 그 떠난 적이 없어요. 염불심부동이래. 부처님을 떠난 적이 없어. 마음에. 그래서 참 가난하게는 살지마는 정말 마음은 편안하고 평화롭게 신심을 가지고 환희롭게 살아요.
그 취재하는 사람이, 그 사람들 이제 라사에 와가지고 평생 라사 구경 한 번 하는 게 이제 소원인 그런 사람들도 있거든요. 저 티벳 그 왕국. 그 몇 년을 번 돈을 가지고 꼬깃꼬깃 모아가지고 가져와가지고 거기에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거라. 자기도 거지와 똑같애. 집에서 사는 것도 거지처럼 살아. 그러면서 자기가 번 돈을 가지고 와서, 이 성지에 와서 내가 보시를 하고 가야지 하고
그래 그걸 취재를 했어요. “아 이거 돈 어디서 생긴 돈이고 왜 나눠주고 하느냐?”하니까. “나는 고향에서 여기에 가져와서 돈 나눠줄려고 돈을 벌었다. 그래가지고 여기 와서 보시를 한다. 보시하는 것은 우리 불자의 기본 마음이다. 기본자세다. 그러므로 나도 이제 공덕을 받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쭉 하더라구요.
아 참 자기도 거지나 다를 바 없어. 내가 보기에. 그런데 그거 하나 개의치 않고, 자기 가난한 거 전혀 개의치 않고 그렇게 이제 보시를 하는 거야.
그게 이제 염불심부동(念佛心不動)이야.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동요함이 없는 거.
그래서 우리 불자들은 그게 기본이겠지마는, 합장주라도 하나 손목에 걸고 우리 운동선수라든지 뭐 감독이라든지 뭐 이런 사람들이 이번에 죽은 그 사람도 보니까 염주 걸긴 걸었드만, 그 이제 좀 유명한 사람이 염주를 손에 걸고 운동선수나 감독이나 그런 사람들이 염주 걸고 있으면 아주 반가워요. 아주 반가워. 그 사람들이 뭐 경기에 이기든 지든 간에 상관없이 자기가 믿는 바는 그거야. 믿는 바는 부처님이라고. 그 자세가 좋은 거야.
그래 우리 불자들은 기본적으로 합장주 하나 정도는 반드시 몸에 지녀야 되고 또 목에 염주 걸고 다니면 더욱 바람직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여기 있잖아요.
그게 말하자면 우리가 부처님 생각하는 게 뭐 불법생각한다 하는게 여러 가지로 표현이 가능합니다. 그게 뭐 염주 꼭 차야 불법 생각하는가? 맞는 말이에요. 그렇지마는 그 100% 맞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부처님을 생각할 수 있는 것 한 방법으로써 또 염주를 가지는 거, 염주를 차는 거 그것도 좋은 방법이 되는 거예요. 하나의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우습게 볼 게 절대 아닌 거죠. 그 한 번씩 그렇게 돌리고 하면은 염불 한 번 더 하잖아요. 관세음보살 뭐 화엄성중 이렇게 한 번이라도 더 하게 되니까. 그렇게 하나하나 그 신심이 쌓이는 거지. 뭐 달리 무슨 뭐 방법이 없잖아요. 그거보다.
그래 그 티벳불자들은 염주 절대 손에서 놓지 않고 마니차 놓지 않고 그렇게 살아요. 아주 그 참 신심을 그래서 신심의 어떤 그 생활을 하다 보니까 말하자면은 어떤 가난한 생활,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불편해 보이는 생활인데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고, 가난함을 느끼지 않고 그게 결코 불행하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끝도 없어요. 그러니까 신심을 일으키면서 사는 거죠.
若能念佛心不動이면
뭐라고? 만약 능(能)히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면은
則常覩見無量佛이니라
항상 한량없는 부처님을 보고 또 본다. 도견(覩見) 볼 도(覩)자, 볼 견(見)자. 한량없는 부처님을 보고 또 본다. 염주 한 번 돌릴 때마다 한 알, 한 알 돌릴 때마다 부처님이야. 끊임없이 부처님이야.
참 표현이 근사하잖아요. 그다음 이제
9. 十廻向位
若常覩見無量佛이면 則見如來體常住니
若見如來體常住면 則能知法永不滅이니라
若能知法永不滅이면 則得辯才無障礙니
若能辯才無障礙면 則能開演無邊法이니라
若能開演無邊法이면 則能慈愍度衆生이니
若能慈愍度衆生이면 則得堅固大悲心이니라
十廻向位
십회향위(十廻向位)라 그랬어요.
① 若常覩見無量佛이면
만약에 항상 한량없는 부처님을 보고 또 보게 될 것 같으면은
則見如來體常住니
곧 여래가, 여래(如來)의 체(體)가, 여래의 본체가 항상 머물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랬습니다.
若見如來體常住면
여래(如來)의 체(體)가, 본체가 항상 머물고 있다. 이 우주법계에 가득히 있다. 여래는, 이 우주법계에 항상 가득히 있는 것을 보게 될 것 같으면
則能知法永不滅이니라
법(法)이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처님을 그렇게 이해하고 그래서 여래의 체가 상주할 것 같으면 법이 역시 영원히 소멸하지 않고 머문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된다. 법은 뭡니까? 마음의 진리라. 온 우주만유가 가지고 있는 근본법칙이에요. 그게 이제 법입니다. 그게 소멸할 택이 없죠. 그러면 지구가 돌아가지가 않지. 해가 뜨지도 않고 한 번 뜬 해가 지지도 않고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그게 다 어떤 불교에서 말하면 그게 법이고, 진리고 영원히 멸(滅)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② 若能知法永不滅이면
만약에 능(能)히 법(法)이 영원히 소멸하지 않음을 알 것 같으면, 그런 이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 이치를 완전히 알 거 같으면
則得辯才無障礙니
변재(辯才)가 무장애(無障礙)여. 변재가 장애가 없어. 아주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 이치에 맞도록, 부처님은 우주법계에 상주한다. 법도 영원히 멸하지 않고 상주한다. 이 이치를 제대로 알 거 같으면, 거기에 기준을 삼아서 설명할 거 같으면 변재가 장애가 없어. 그냥 뭐 입만 떼었다 하면 그 이치고
若能辯才無障礙면
만약 변재(辯才)가 장애(障礙)가 없음을 얻게 될 거 같으면은
則能開演無邊法이니라
무변법(無邊法) 가이없는 법을 개연(開演) 열어서 연설하게 된다. 그렇습니다. 변재도 출중하고 변재가 출중하면은 거기에 맞춰서 법도 끝없이 끝없이 법을 연설할 수가 있게 된다.
③ 若能開演無邊法이면
만약에 능(能)히 무변(無邊)한 법(法)을, 가없는 법을 열어서 연설하게 된다면
則能慈愍度衆生이니
자비와 연민으로, 사랑과 연민으로 중생(衆生)을 제도하게 된다. 사랑과 연민으로
그렇죠. ‘아 저 사람은 왜 이치를 모르고 저렇게 살까? 왜 저렇게 인과를 모르고 저렇게 살아서 저 고생을 하는가? 모든 것은 인과의 원리대로 돌아가는데, 잠깐 사람 앞에 눈속임을 하고 결과적으로는 큰 과보를 받는데’ 참 사랑과 자비심이 저절로 나죠. 그래서 그런 것을 깨우쳐 주는 거.
그래 이제 우리 불교에서는 의식주 문제를 도와주는 거, 그다음에 기본적인 의료혜택을 도와주는 거, 기본적인 교육을 도와주는 거 다섯 가지 내가 정리를 그렇게 했어요. 옛날에는 의식주를 제일로 쳤잖아요. 그다음에는 별 이야기 없고, 그다음에 사사공양(四事供養)이라고 해서 의식주에다가 그다음에 의료 그래서 네 가지. 지금은 또 기본교육도 필요해. 그래서 저 학교도 지어주고 뭐 우물도 파주고 스님들이 그렇게 그런 활동을 많이 하는데
그래요. 그게 아주 기본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제일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인데, 불법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런 그 의식주와 의료와 교육에 또 자비를 베풀지마는 그보다 더 우선하는 보시, 진리의 가르침을 펴는 것.
진리의 가르침은 구체적으로 뭐냐? 내가 늘 말하죠. 인과의 이치를 우리가 알고 인과의 이치를 설명해 주는 거 그거다 말이야. 그렇게 좋은 땅에서 아프리카 그 아주 어떤데 보면은 척박한 땅도 있지만, 어떤데 보면은 녹지대 아주 좋은 땅 있는데 펑펑 놀려. 거기다 곡식을 심으면 얼마나 잘 되겠어요. 그게 전부 인과의 법칙인데, 그런 것 좀 가르쳐가지고 그 깨우쳐주는 거 이게 부처님은 더 우선으로 했습니다.
부처님은 의식주 도와준 적 없어요. 중생들에게 의식주 도와준 적은 없고 사람 인성을 개발해. 지혜를 개발하고 이치를 알게 하는데 부처님은 아주 열중했습니다. 거기에 보살행을 다 쏟아부었어요. 자기의 생애를 거기다 다 쏟아부었습니다. 그래서 만인들에게 그 진리를 가르치고, 참다운 이치를 가르치는 데 그렇게 노력을 했던 거죠.
그래서 불법에는 그러한 것들을 염두에 늘 둬야 됩니다. 그래서 불법도 가르치고, 진리도 가르치고 의식주 문제도 도와주고 또 의식주 문제를 도와주면서 한편 진리도 가르쳐주고, 이걸 이제 어느 한 가지만 치우치지 말고 같이 이제 보살행을 해야 되는 거죠. 보살행 참 좋은 말입니다.
若能慈愍度衆生이면
그다음에 만약에 능(能)히 사랑과 연민으로써 중생(衆生)들을 제도하게 되면은
則得堅固大悲心이니라
대비심(大悲心) 크게 연민이 여기는 마음이 견고함을 얻게 된다. 아주 견고하게 돼. 관세음보살처럼, 지장보살처럼 그렇게 아주 견고한 그런 대비심을 갖추게 된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어 여기 이제 현수품은 뭐 『화엄경』 어느 구절 하나 소중하지 아니함이 없지마는, 특히 이제 현수품은 이렇게 그 시형식으로 되고 해서 공부하기 좋도록 돼있습니다.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_()()()_
대방광불 화엄경...고맙습니다 _()()()_
念佛心不動. 동요함이 없이 부처님을 생각한다.
_()()()_
🙏🙏🙏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