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월왕 구천과 싸워 크게 패한 오왕 합려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했다.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가 간했으나 듣지 않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모으다㉢깨닫다')"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ut=tooltipOff() href="http://handic.daum.net/dicha/view_detail.do?q=11-14-33-02" target=_blank ;>會㉡헤아리다㉢이르다')"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ut=tooltipOff() href="http://handic.daum.net/dicha/view_detail.do?q=14-01-23-07" target=_blank ;>稽㉡산신㉢능')"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ut=tooltipOff() href="http://handic.daum.net/dicha/view_detail.do?q=11-07-03-01" target=_blank ;>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가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야 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백비의 진언에 따라 구천의 청원을 받아들이고 귀국까지 허락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 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 회계의 치욕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이로부터 20년이 흐른 뒷날 월나라 왕 구천이 오를 쳐 이겨 오왕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굴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