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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마곡사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불사에도 남다른 관심을 지녔던 일현스님. 불교신문 자료사진 |
진연스님(천안 승천사 주지)은 “조계종 스님 가운데 최고의 어산(魚山)을 했던 어른이 바로 일현스님”이라면서 “충남불교를 말할 때 일현스님을 빼놓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일현스님이 종단과 지역불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현스님은 만공스님 제자인 용음스님의 맏상좌이다. 일현스님의 사제로는 응담스님, 지선스님, 도연스님, 지정스님, 수만스님 등이 있다.
앞서 연재에서 밝힌 대로 모친 봉업스님과 함께 수덕사로 출가해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일현스님은 이후 염불을 중심으로 수행자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다. 40여 년간 오후불식하며 정진의 끈을 놓지 않은 일현스님은 종단의 정체성을 구현하는데도 한몫을 했다. 진연스님의 말이다.
“우리스님이 중진으로 활동하셨을 때는 우리나라가 교통사정이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일현스님은 손수 자전거를 타고 많은 절을 돌아다니셨는데, 그 뜻은 종단에 등록하지 않은 사설사암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여러 절들이 종단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충남 연기군 광덕사를 다녀올 때의 일화이다. 마침 아랫마을에 일이 있던 한 비구니 스님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논길과 들길을 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비포장 길인데다가 뒤에 탄 비구니 스님이 ‘불편’했던 일현스님은 별 생각없이 앞만 보고 페달을 밟았다. 한참을 달리다 자전거가 가벼워진 것 같아 멈추어 뒤를 돌아보니 비구니 스님이 온데 간데 없었다. 같은 시각 500여 미터 거리에 있는 논 위에는 방금 자전거에서 떨어진 비구니 스님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만큼 상을 갖지 않았던 어른이 일현스님이다.
일현스님은 세속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마을 주민의 자녀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 교육불사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마곡사에 고등공민학교를 세워 10여 년간 후학들을 양성했다. 당시 마곡사 인근에 살던 학생들이 학교를 가기위해서는 30리 정도 떨어진 공주까지 가야하는 불편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스님의 학교건립은 마을주민뿐 아니라, 정부당국의 환영을 받았다.
배출된 인원만해도 300여명을 훨씬 넘긴다. 이후 문교부(지금의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중학교를 개교하면서 마곡사 고등공민학교는 자진해서 문을 닫았다. 진연스님은 “스님께서 학교를 운영하면서 득을 본 것은 하나도 없으셨다.”면서 “단지 어린 학생들이 멀리까지 가서 공부하는 불편을 겪지 않게끔 해주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셨다.”고 회고한다.
상좌와 불자들에게 “중 노릇을 좋게 하라”는 당부를 늘 하셨던 일현스님에 대해 많은 후학들은 “특별히 어떤 이론을 갖지 않고, 오로지 행동으로서 부처님 가르침의 진면목을 보여주신 분”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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