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와트를 가보지는 못했으나
여기 올라온 사진과 전에 읽었던 기행문이
생각나 너무 잘 어울릴것 같아
필자의 양해 없이 퍼다 놓았음니다.
그곳에 갈때는 가이드북을 버리고 가야한다-앙코르와트
실크로드를 관통하는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만난 한 여행자의 독백을 오래 동안 잊지 못했다.
"석양이 질 무렵이었는데 나는 맨발이었고 땅거미가 밀림 저편에서 기어 나올 때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다..기괴하고 장엄한 건축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신의 품을 벗어나려는 가련한 인간의 몸부림이었을까.........?"
그리고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거기에 갈 때는 가이드북을 버리고 가야 한다.
그대 인생을 망친 지식들이 그대의 아름다운 영혼에 거미줄을 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감동적인 독백은 5년 동안 각인되어 끝없이 유혹했고 기어이 그곳을 찾았다.
어떤 이는 죽은 자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눈물을 흘리는 곳,
어떤 이는 밀려오는 감동에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낄 수 없는 곳,
바로 앙코르와트라는 곳에.....처음 그 사원들을 보았을 때,
너무 아름다운 부조에 숨조차 쉴 수 없었고
감동이 땅거미처럼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세포에 옹알옹알 맺혔다.
끝없는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 앙코르와트 사원의 지붕으로 일몰이 질 때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도 없었다.
캄보디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세 가지 정도이다.
인구 700만 중 200만을 학살한 정신병자 폴 포트,
그는 안경을 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였다.
넘치는 해골이 화면에 가득한 영화 킬링필드,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앙코르와트이다.
하지만 캄보디아에 발을 디디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과연 "인간의 문명은 진보했는가..?" 라는 지독한 의문이다...
오랜 내전이 만든 천형과도 같은 가난,
허물어져 가는 원두막으로 길게 이어진 집들,
깡마른 몸에 맨발을 하고 당나귀처럼 물건을 나르는 7세 정도의 어린이들,
지뢰에 팔 다리를 잃고 거리를 떠도는 많은 사람들,
그들의 공통점은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것이다.
인생이 그 자체로 고뇌인 어린이들과 불구의 몸으로 구걸하는 그들에겐 고개를 돌리는 힘 마저 힘에 겨운 듯 했다.
인간은 동전의 양면처럼 神에게 경외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神을 애써 무시하려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였고 앙코르를 다녀온 뒤로 사고의 변화가 왔는데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조각들은 종교의 힘이 아니면 절대로 만들어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297년, 원나라 사신 주달관은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우던 앙코르제국을 여행하면서 진랍풍토기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왕은 왕국을 위해서 여자로 변신한 머리 아홉 개 달린 뱀과 황금의 탑에서 매일 밤 성교를 한다. 왕이 코끼리를 타고 행차하면 백성들은 대단한 충성심을 보인다...." 주달관보다 701년 늦게 찾아 간 앙코르와트지만 꿈속에서 그를 만나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당신은 앙코르와트가 리빙필드였을 때,
난 앙코르제국이 죽음의 킬링필드일 때 이곳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왔던 701년 전이나 지금이나
앙코르는 세월의 풍상 앞에 조금 낡고 지쳤을 뿐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네요..
우리는 아마도 비슷한 운명인 것 같습니다...
당신은 원나라의 사신, 난 가난한 여행자로 세상의 오지를 운명처럼 떠돌고 있으니까요..
이 세상에 캄보디아 인보다 더 따스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미소들이 죽음의 땅 킬링필드를 희망의 땅 리빙필드로 만들어 갑니다..."
기억되어 아름다운 것과 기억되어 고통스러운 추억들이 있다.
지금 내게 캄보디아는 기억되어져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아니 너무 고통스러워서 행복해 진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앙코르와트를 갈 수 있는데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비행기로 이동할 수 있고
쾌속정을 타고 톨레삽 강을 거슬러 올라가 앙코르에 가는 낭만적인 방법이 있다.
바다처럼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지는 동양최대의 호수인 톨레삽은
앙코르 제국의 번영을 만든 젖줄이기도 하다.
가장 멋진 방법은 태국 국경을 통과해서 포이펫에서 트럭을 타고
시소폰을 지나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으로 이동하는 경로이다.
이 루트는 전 세계 배낭 족이 뽑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길인데
통과했다는 것으로 경력이 되는 지옥의 루트이기도 하다.
방콕에서 비행기로도 쉽게 갈 수도 있다.
앙코르와트에서 만난 한 일본학생은
중국을 돌다 광동지방에서 기차로 베트남으로 이동해 프놈펜으로 왔고 배로 앙코르와트까지 왔다고 한다.
육로로 방콕으로 가서 비행기로 네팔로 가서
육로로 인도의 뉴델리 이란을 지나 터키까지 가는 멋진 일정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방콕에서 기차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여행할 수 있고
석양이 지는 메콩 강을 건너 라오스의 비엔티엔까지 갈 수 있다.
한국의 배낭 족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루트는 비행기로 방콕으로 이동하여
미얀마와 라오스 등의 고산족들을 보고
육로로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을 거쳐 실크로드를 따라 파키스탄, 인도, 네팔, 인도, 이란 ,터키, 유럽으로 가는 여정이다.
나는 전 세계 배낭 족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루트인
태국 국경을 지나 앙코르로 가는 육로를 택했다.
방콕의 버스 터미널에서 아란행 버스를 탔는데
4시간을 달려 이른 새벽에 국경에 도착했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은 폭이 5미터가 안 되는 실개천이 흐르는 작은 다리로 만들어져 있다.
입국 신고서, 비자 신청서, 검역 카드, 세관신고서 인데 별달리 어려운 점은 없다.
비자수수료는 20불인데 안내인들은 눈치를 보며 25불에서 30불까지 천차만별의 호객행위를 한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작은 천막 같은 이민국의 직원이 20불을 내건 30불을 내건 태연하고 당연한 듯이 비자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국경에서 트럭을 탈 때 한 팀을 모아 가격흥정을 하면 유리하다.
트럭의 앞좌석은 5불 뒤는 2불인데 작은 트럭의 앞좌석에 운전기사를 제외하고 4명이 탄다.
정보에 의하면 트럭 앞자리가 차라리 지옥이라고 했다.
트럭엔 일본인 커플과 잘생긴 이탤리언 파브리지오, 캐나다 커플이 탔고 짐을 잔뜩 가진 현지인들, 닭과 기타의 가축들이 차곡차곡 탔다.
우리 모두는 경악과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지켜보았는데
작은 픽업 트럭은 어느새 커다란 덤프트럭의 크기로 변해 있었다.
푸드득거리는 닭들과 가축들을 보면서 앞좌석에 타지 않은 것을 조금은 후회했지만 작은 의자에 네 명이 앉은 좌석 또한 위태롭기 그지없는 지옥처럼 보인다.
한번 가면 살아오지 못한다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이층으로 개조한 낡은 버스에 꾸부리고 앉아 48시간을 간 적도 있는데
일곱 시간의 거리는 거꾸로 매달려도 갈 수 있다는 오만함도 있었다.
하지만 차가 출발해서 채 삼십 분도 되지 않아
그런 오만함과 자신감은 초라하게 붕괴되었다.
오래된 내전으로 푹푹 패인 곳은 길이 아니었고
몇 번을 차에서 점프하고 떨어지면서 과연 내 엉덩이가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아니 과연 살아서 앙코르와트에 갈지 두려움도 밀려왔다.
먼지는 자욱하게 밀려와 입 속에 모레가 씹히기 시작하고 한시간이 지나자 먼지로 인해 온 몸이 석고상처럼 되어 버렸다.
이리저리 패인 닦여지지 않는 길, 너무 힘들고 지쳐 잠시 잠이 들면 여지없이 머리는 무엇인가에 부딪혀 혹이 생기고 다리도 꼼짝할 수 없기에 조금씩 마비되어 갔지만 너무 비좁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길의 곳곳에 군인들이 검문을 하며 기사에게 통행료를 받는데
밤에 군복을 거꾸로 입으면 바로 강도로 변신 가능한 군인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더 황당한 경우는 작은 협곡에 아슬아슬하게 나무다리를 만들어 놓고 통행료를 받는 마을 주민들이다.
자동차 바퀴 두 개가 다닐 수 있는 다리인데 한 쪽의 나무를 빼 놓고 기다린다.
바퀴 두 개가 갈 수 있는 삐걱거리는 나무다리를 위태롭게 건너며 보는 아래의 작은 계곡은 두려움과 절망이 반죽되어 있다.
수렁에 빠지거나 돌 틈에 차바퀴가 끼면 모두 내려 밀면서 몇 시간을 가서 시소폰이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대부분 내렸고 기사는 한 시간 이상을 현지 승객을 모으기 위해 기다렸다. 10세 정도의 어린 소녀들이 손에 콜라와 초콜릿 한 개씩을 들고 몰려와 장사를 한다.
남자 배낭족보다 여자 배낭 족들을 집중공략 하는데
그 애들의 멘트는 모두 기계처럼 똑 같았다.
"마담, 눈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네요...당신은 너무 아름다워요..."
처음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어린 여자아이들은 차를 떠나지 않고 아주 행복하게 웃고 떠들며 즐거워한다.
일본 애와 캐나다 여자가 미지근하고 대부분 녹은 초콜릿을 사 주자 애들은 세상에서 가장 밝고 깨끗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트럭 주변이 학교인양 즐거워하며 말을 이었다.
"고마워요 마담, 당신은 천사 같이 아름다워요...."
파브리지오와 나도 몇 개의 너무 뜨거워 마실 수조차 없는 음료수와 초콜릿을 샀는데 그것을 산 것이 아니라 천사보다 순수한 그 애들의 행복한 미소를 산 것이다.
1년째 여행중이라는 파브리지오는 운동화도 거의 낡고 청바지도 자연스럽게 찢어졌는데 붐차를 알고 있는 축구광이기도 하다.
미지근한 음료수로 브라보를 외치는 그 친구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전형적인 이탤리언이다.
쌀국수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트럭으로 돌아오자 다시 전쟁은 시작되었다.
짐을 가득 가진 현지인 들과 약간의 가축들이 타기 시작한다.
짐을 높게 쌓은 트럭이라 경사진 언덕을 옆으로 가다 반쯤 뒤집혀 진 적이 있는데
닭 한 마리가 자유를 찾아 탈출했고 주인과 닭이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인다.
"김, 졸면 죽거나 아님 병원의 응급실일거야..."
그리고 우린 별다른 말 없이 어둠이 깔리는 지옥 같은 길을 불안스럽게 바라보았다.
고통과 견딤의 한계에 오면 인간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지옥같은 고행의 길은 계속 되었고 군인들의 검문에 상납을 마친 기사의 불만소리,
다리에 긴 나무를 꽃아 차를 못 지나가게 만들고 통행료를 받는 주민들의 모습이 끝없이 이어진다.
영혼과 육신이 모두 지쳐 혼백이 떠난 몸을 이끌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글로벌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글로벌의 한국인 주인은 세계 곳곳을 떠돌다 앙코르와트에 반해 눌러 살게 되었다고 한다.
야심한 밤에 혼자 찾아 든 낯선 여행자를 보고 그 죽음의 길을 혼자 찾아 온 한국인은 한번도 없었다며 위로해 준다.
154킬로미터의 짧은 거리지만 8시간 이상을 지옥 같은 픽업트럭에 있었다.
거울을 보니 먼지로 만든 석고상 그 자체였고 샤워를 했지만 아무리 비누로 벗겨도 몸에 가득한 먼지와 모레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여럿이 모여 침대 하나만 빌리는 도미토리는 2불이고 샤워 실이 달린 트윈베드는 6불이다. 매우 사치스럽지만 너무 지쳐 6불 짜리 트윈을 얻었다.
앙코르의 모든 유적 군은 310평방km의 넓은 평원에 700여 개(같은 사원의 건물들을 따로 떼어서 보면, 1000여 개)의 건축물로 이루어진 단일 유적지로서는 최다의 건물로 만들어진 세계적인 유적지이다.
1993년에 앙코르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우선 보존 세계 유물 명단에 올랐다.
천 개에 달하는 건물들이 700년 이상이 지나도 비교적 잘 보존된 것은 앙코르 제국이 깊고 울창한 밀림 속에 위치해 있고 대부분 사암(샌드스톤)으로 조각했기 때문이다.
앙코르 제국의 유적지는 몇 개의 유적 군으로 나누어지는데 앙코르 톰이 대표적인 곳으로 앙코르는 도시, 톰은 크다는 의미, 와트는 사원이란 의미이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힌두교의 비쉬누 신을 모신 앙코르와트와 앙코르 톰에 있는 대승 불교적인 관세음 보살을 모신 바욘 사원이다.
나는 어느 곳에 가나 점을 찍듯이 이동하고
얼마나 많은 곳을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다녔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여행을 벌레처럼 혐오한다.
가끔씩 출판되는 여행관련 책자를 보면 짧은 기간에 수많은 나라와 지역을 이동한 위대한 여행가의 영웅담이 많다.
그들의 이동거리와 시간을 환산하면 역에서 역, 터미널에서 터미널로 이동한 시간 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들이 서술한 것은 보고 느낀 것이 아니라 귀로 얻은 간접경험인 것이 허다하다.
가끔 그 같은 유혹적인 여행기를 보노라면 인생 자체가 허망해 지기도 한다.
여행을 가장 잘 하는 방법은 현금이나 어학의 실력이 아닌 얼마나 많은 현지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에 좌우된다.
가이드북이나 기타의 매체를 통해서 정보를 얻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얻는 생생한 정보이다.
시엡립에 바람개비를 파는 노점상이 있는데 그가 파는 바람개비의 가격은 현지인 들에겐 백 원 정도지만 대략 삼백 원이 합리적이었다.
일단의 한국인 배낭 족이 흥정하자 주인은 육백 원이라고 말했다.
배낭 족들은 큰 소리로 값을 흥정하며 50원에 산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한 주인은 급기야 백 원까지 내렸지만 그들은 50원에서 요지부동이다.
그들이 떠난 후 노점상 주인은 종이로 만든 바람개비를 손으로 몇 번을 구겨 바닥으로 내 던졌다.
그의 영혼은 구겨진 바람개비보다 더 심하게 구겨지고 상처받았을 것이다.
50원에 사려하다 웃고 떠들며 떠난 인간들과 길가에서 물건을 팔던 노점상의 차이는 어머니의 나라를 잘못 찾아 온 슬픈 인연에 불과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그들은 여행객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돈지갑으로 생각한다.
그들에겐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여행자 또한 흥정을 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런 흥정들은 때때로 여행의 최대묘미가 되기도 한다.
여행에서는 얼마를 깎았는가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고
얼마나 적절한 요금을 어떻게 지불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전혀 필요 없는 바람개비를 적절하게 흥정하여 삼백 원을 주고 사면서 말을 붙였다.
"물건이 너무 좋군요 선물용으로 적격입니다...."
그 분은 환하게 미소지으며 한국은 부자이고 매우 친절한 사람이라고 기분 좋게 받아줬다.
좀 전의 사람들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는데
그 충동만큼이나 나 자신이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좀 전에 떠난 사람도 한국인이고 나도 한국인이란 것을.
총과 칼로 부자나라가 될 수 있지만 총과 칼로 문화를 사거나 뺏을 순 없다.
조국을 떠나면 모두 애국자가 지만 여행을 할 때면 총칼이 없이 선한 문명을 일군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울 때가 많다.
유혹적이고 허망한 여행기로 혹세무민하는 것도 총칼로 부자가 된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돈 잘 쓰고 호기를 부리는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 들의 좋은 친구, 가난한 여행자이길 소망하며 길을 떠난다.
앙코르에 대한 약간의 정보가 있었지만
1000개에 달하는 사원이 있고 유적 군을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만 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른 아침에 게스트 하우스의 안내와 정보를 보면서 나 같이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짧은 시간에 앙코르 유적의 모든 것을 느끼고자 했던 것 자체가 허황한 욕심이었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오토바이와 기사의 하루 임대료는 5불인데 글로벌의 주인이
톰이라는 18세의 잘 생긴 아이를 소개해 줬다.
그 녀석은 몇 개의 영어 문장을 알고 있는데 말끝마다 존칭을 붙였다.
"톰..그냥 김이라고 불러 아님 부라더 라고 하던가..."
우린 바로 친구가 되었고 일주일 동안 교대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불가사의하게 만들어진 수많은 사원의 순례를 시작했다.
톰이 가진 일정표에는 하루에 열 개 이상의 사원을 다니는 것인데
일주일이면 유명한 모든 사원을 보는 평범한 코스라고 소개한다.
톰과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가장 유명하고 불가사의한 건축물인 앙코르와트, 바욘 사원, 가장 아름다운 부조라는 반테스레이라는 곳만 보기로 했다.
천 개의 사원 중 세 개만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잡아 밀림이고 평야지대인 앙코르제국에 유일하게 인공으로 만든 산인 프놈바켄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는 일정을 짰다.
첫날 오토바이로 밀림을 뚫고 신비한 앙코르와트의 입구에 서자 거대한 사원은 기대 이상의 감동과 환희로 깊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초 수리야바르만II 세에 시작하여 약 30년 간 건축되어 힌두교에서 우주의 보호와 질서를 유지하는 비쉬누에게 헌정되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로 이 사원은
수리야바르만II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사원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것은 모든 사원의 출입구는 동쪽인데 해가 지고 죽음을 뜻하는 서쪽으로 출입구가 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원의 복잡함과 아름다움은 정말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앙코르와트는 동서로 약 1,500미터, 남북으로 약 1,300미터의 거대한 사원인데 건물의 높이가 지상에서 213미터에 달한다.
왕코르 와트는 석조 건축물로 만들어진 우주의 축소판으로 지상에 있는 우주의 모형이다. 중앙의 탑은 사원의 정 중앙에 세워져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을 상징하며 5개의 탑은 메루산의 5개의 큰 봉우리를 나타낸다.
성벽은 세상 끝을 둘러 싼 산맥을 뜻하고 있다.
그리고 둘러싼 호수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하고 있다.
앙코르와트의 3층 중앙 탑들이 있는 곳은 천상계를 상징하고, 2층은 인간계, 1층은 미물계를 나타낸다.
캄보디아인들은 높은 산은 하늘과 가깝다고 믿었고
신은 메루산의 정상에 있다고 생각했다.
메루 산으로 형상화되는 중앙 성소의 높은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매우 가파르며 계단 폭이 좁은데, 이는 그 길은 인간이 이용하는 것을 위하여 지은 것이 아니라 신이 이용하도록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을 모르는 나는 조금씩 기어올라갔다 쉽게 내려오지 못하고 성소의 정상에서 공포에 떤 기억도 있다.
메루란 히말라야를 의미하며, 메루 산 주변을 6-7개의 산맥이 둘러치고 있는데
이것은 지식을 뜻하고 그 사이를 바다가 있어 구분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건축물의 웅장함과 돌로 세워진 건물의 모든 곳을 장식한 조각들보다
햇빛에 따스하게 달궈진 사원의 난간이나 베란다에 누워 오가는 사람과 검게 보이는 앙코르와트의 건물들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좋았다.
회랑을 따라 오고 가는 사람들,
작은 돈에 유창한 영어로 가이드 해 주는 소수의 사람들과 그들의 힌두교에 대한 설명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서구인들의 표정, 앙코르와트로 지는 해도 아름다웠지만 사원의 지붕으로 달이 뜨자 그곳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으로 변했다.
힌두교의 요정인 압사라가 사원의 지붕에서 캉캉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사악함과 괴기함에 소름이 돋았고 미칠 듯 밀려오는 희열에 세포가 요동을 치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감동은 땅거미처럼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육신을 감쌌고 하루 동안 태양에 달궈진 돌의 온기는 삶에 지친 타락한 영혼에 안식을 부여해 줬다.
앙코르 평야의 밤을 수놓은 별들이 평원의 저편으로 떨어지고 가끔은 내 마음 속으로 유성처럼 날아들었다. 전생을 찾아 떠난 여행과 같은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든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 온 그 날밤 정말로 꿈을 꾸었다.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나가라는 뱀이 나를 조금씩 잡아먹는 흉측하고 소름 돋는 꿈이다.
나가는 앙코르와트의 모든 건축의 난간을 길고 긴 몸으로 장식하는 뱀의 신이다.
힌두교의 유명한 신화인 우유의 바다 휘 젖기에 나오는 세사라는 거대한 뱀이 전신일 것이다. 꿈속에서 노예로 끌려가 평생 중노동을 하다 죽어간 자들의 영혼도 뚜벅뚜벅 걸어나와 비참한 목소리로 울부짖기도 했다.
요사하고 사악한 기운에 휘감겨 있지만 너무 아름다워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앙코르와트의 첫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둘째 날 수많은 사원들 중 관세음보살의 얼굴이 있는 바욘 사원을 찾았다.
바욘은 12C후반 - 13C초 사이에 지어졌고, 불교 사원으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왕이었던 자야바르만 VII가 최초로 대승불교를 들여왔고, 스스로를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로 믿고, 대승불교를 장려하기 위하여 갖가지 사원과 빈민구제시설 등을 많이 지었다고 전한다.
각기 동서남북으로 향한 채 한 덩어리로 붙어있는 4개의 안면 상의 미소는 참으로 인간이 표현하기 힘든, 신만이 소유하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미소였다.
기둥과 벽면에 부조로 표현된 수천 개의 요정, 압사라의 표정도 그 하나 하나가 각기 달랐으며 나름 데로 의미를 담은 미소를 짖고 있었다.
사원을 장식한 얼굴들이 모두 비슷했지만
빛의 위치와 밝기, 방향 등에 따라서 엄하게, 또는 자상하게 천의 얼굴로 변해 간다.
아침 일찍, 혹은 해가 지는 오후가 바욘 사원에선 최고인데 나는 아침 일찍 가서 해가 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앙코르 제국의 모든 사원은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있으면 기괴한 소름이 돋는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앙코르와트보다 나는 바욘 사원을 가장 좋아한다. 그곳에 가면 모든 방향에서 보이는 거대한 얼굴들이 내가 아닌 내 속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것 같다.
지뢰에 두 손을 날린 어린 소년이 영어로 사원의 조각들에 대한 설명을 해 준다고 계속 따라다닌다. 얼마냐고 묻자 10불이라고 대답했는데 10불이면 내가 캄보디아에서 사치스럽게 하루를 먹고 자는 금액이다. 당시 그곳 노동자의 한달 월급이었다.
그 친구의 가이드를 받고 벽면 가득한 부조에 대한 신비를 풀어 갔는데
가장 큰 문제는 친구가 교과서처럼 외우는 설명 외엔 생활영어가 도무지 안 된다는 것이다.
바욘 옆에 있는 코끼리 테라스도 아름다운 조각의 극치였다.
오토바이를 교대로 운전하면 톰과 나는 3일이라는 시간을 바욘에서 보내다 저녁이면 괴기스러운 앙코르와트 사원으로 와서 주먹만한 별들이 가슴속에 지는 것을 보았다.
4일째 되던 날 반테이스레이 사원을 찾았다. 모든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는 규모는 작지만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의 하나이다. 앙코르에서 복원 작업을 했던 프랑스 건축가들의 의견들도 이 사원을 보석에 비유하거나, 크메르 예술의 극치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반테이스레이는 하르샤바르만 2세"의 손자이며 바라문교의 승려였던 야즈나바라하란 사람이 건축하였으며, 세인들은 이 사원이 다른 앙코르 사원들보다 건축술과 장식이 인도문화에 매우 가깝다고 한다.
특히 정교한 장식의 특별한 조각 기법은
붉은 색의 단단한 사암을 이용해서 자단 목에 목각을 하듯이 정교한 기술을 뽐내고 있다. 앙코르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며, 양각의 깊이가 가장 깊어서 거의 소조에 가까운 부조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사원이다.
특히 사원의 양쪽에 부조된 압사라는 거의 사람모양과 흡사하게 조각되어 있다.
앙코르에 산재한 1000개의 사원들 중 가장 아름답고 사실적으로 조각한 곳이다.
시엠립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어 톰과 내가 교대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하루를 지낸 곳이다.
저녁이면 다시 바욘에서 해지는 것을 보았고 앙코르와트의 회랑에 누워 괴기한 아름다움에 빠졌다.
앙코르에 산재한 모든 사원은 바욘을 제외하고
모두 힌두의 신화를 조각한 것인데 어쩌면 바욘도 예외는 아니다.
건물의 외벽은 부처를 조각했지만 사원의 중심부에는 쉬바 신의 링가(성기)가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가 융성했을 때 바꾼 것이겠지만..앙코르에서 힌두교의 신화를 모르면 암흑을 걷는 문맹이 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는데 비단 앙코르가 아니더라도 세계의 어느 유적지를 가나 역사적 사실을 알고 관찰하면 시공을 초월해 그들의 과거가 보이고 그들이 만들고 이루고자 했던 꿈이 보인다.
사랑의 신인 까마가 카일라사 산 정상에 앉아 있는 쉬바에게 염주를 주는 모습도 있다. 쉬바 주변에는 고행자 들이 있고, 인간의 몸과 짐승의 머리를 한 수문장들이 이 장면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시키고 있다.
우리가 아는 까마수트라는 까마라는 사랑의 신이 만든 것인데 수트라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그 외에도 우유의 바다 휘 젖기와 아기로 변신한 크리슈나(쉬바와 더불어 힌두교에서 최강의 신 비슈누, 앙코르와트의 주인) 새로운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의 아내이자 힌두 최고의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시타가 라바나에게 유괴되는 장면,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의 모델이 되는 하누만이 라마를 도와 악의 화신 라바나를 베는 모습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는 힌두교의 상식은
브라만(사제계급), 크샤트리아(군인 정치가), 바이샤(상공업종사자) 수드라(하층민)등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각기 카스트가 있고 카스트대로 살면 윤회를 벗어나 해탈한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어찌 보면 인도를 여행하는 것 보다 앙코르와트를 가는 것이 힌두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빠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힌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무인데 의무는 전생에 걸친 업(카르마)을 현실에서 해소시켜 완전한 자유로서의 해탈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욕망이 있는 한 업(카르마)은 영속적으로 작용해서 윤회를 벗어 날 수 없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행위와 욕망은 필수불가결 하게 계속되는데 인간의 행위와 욕망사이에 의무를 집어넣어 그 영원한 순환고리를 끊어 버리고 신의 은총을 받는 것, 그것이 힌두가 추구하는 영원한 해탈 길이다.
앙코르를 잘 알기 위해서는 힌두교에 대한 상식이 꼭 필요한데
힌두에서는 인간의 삶을 네 단계로 나누고 점진적인 해탈을 유도한다.
경제적 수단을 의미하는 아르타. 육체적 욕망을 뜻하는 카마, 질서와 법을 의미하는 다르마, 절대 사유를 의미하는 모크샤, 이 네 가지의 목적은 우리가 사는 삶의 여정과도 일치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억겁의 세월을 보내왔소"`라고 말하면 당신은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겁이란 시간은 힌두에서 나왔고 1겁은 2천 마하유가이고 인간의 시간으론 86억 4천만년이기 때문이다. 2천 마하유가가 합친 것이 1칼파(겁)인데 1마하유가는 432만년이고 1마하유가는 다시 크리타 유가(172만 8000년) 트레타 유가(129만 6000년) 드바파라유가(86만4천년) 칼리유가(43만 2000년)으로 나누어진다. 크리타유가는 정법의 시대로 무병장수하며 인간의 수명은 4000살, 트레타 유가는 정법의 4분의 1이 없어진 시대로 3천살을 살며 드바파라 유가는 2000살, 지금 우리가 사는 말세의 칼리 유가는 인간의 수명은 짧아지고 체력 지력 감성 모든 것이 뒤떨어진 최악의 세상이라고 한다.
힌두에서는 12 년간 완전히 금욕(마스터베이션 포함)하면
해탈을 얻는다는데 실제로 인도에서 만난 어떤 수행자는 20년 이상을 성관계를 안 했고 아주 무거운 무게를 성기에 매 달고 있을 테니 사진을 찍고 돈을 달라고 한 적도 있다.
완전히 해탈을 하기 위해서 금욕을 할 때 넘치는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요가라고 하는데 요가는 적절한 동작을 통해 인체의 차크라를 열어서 우주의 기를 받는 것이다.
요가는 결합하다 합일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힌두교에는 우주를 지탱시키는 세 명의 주신이 있는데
우주를 창조한 브라만, 우주를 보호하고 유지시키는 비쉬누(앙코르와트의 주인),
우주를 파괴하고 악을 벌하는 쉬바(거의 모든 사원의 주인)이다.
지금 인도에서 브라만교의 절대자였던 브라흐만은 왕따를 당하고 거의 모두가 쉬바를 믿거나 비쉬뉴를 믿는다.
힌두에 있는 수많은 신들도 거의 이 세 명의 부인이거나 자식,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신들이 대부분 이다.
앙코르와트의 주인이자 우주의 질서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신인 비쉬누는
마하트마 간디가 죽을 때, 헤이 라마라고 외쳤다고 하는 바로 그 신의 이름이다.
라마란 말은 전 인도인의 해탈을 보장해 주는 말이다. 라마로 환생하여 불멸의 사랑이야기를 남긴 비쉬누는 지금까지 9번을 환생했고 10번째로 환생할 때는 백마를 타고 온다는데 마지막으로 우주를 구원한다고 한다.
앙코르와트에 가면 눈부시게 아름답고 괴기한 사원들 속에 힌두교의 모든 신비와 실체를 리얼하게 경험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인도의 아그라에 있는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타지마할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한다.
타지마할도 아름다웠지만 앙코르에 산재한 수많은 사원들 중 가장 초라한 것보다 감동을 주지 못했다.
물론 나라는 개인적인 인간의 잣대로 잰 것이지만,
세계의 곳곳을 떠돈 내게 앙코르와트는 영원한 불가사의로 남아있다.
그것은 아름답고 기괴한 사원들의 모습 때문이 아닌 너무도 똑 같이 느껴졌던 두 번의 경험 때문이다.
"마담, 당신의 눈은 별처럼 빛나요...당신은 너무 아름답군요..."
오직 이 영어밖에 모르고 미지근한 콜라를 팔던 천사의 미소를 가진 아이들,
그 뜨거운 콜라처럼 앙코르와트의 회랑에 깔린 달궈진 돌들이 등위로 따스하게 밀려와 영혼을 데워 준 행복한 느낌들,
그런 소중한 기억들이 앙코르제국을 가득 메운 1000개의 사원들보다 오래오래 각인되었다.
그 죽음의 길을 역으로 거슬러 방콕에 왔을 때, 그 길이 천국이었고 풍요로운 방콕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영혼과 육신이 모두 지쳐 여행을 마칠 때면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
돈버는 일과 아름다운 여자, 술 취해 실없이 웃고 떠드는 사람들 속에 잠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겠지만 순식간에 이방인의 개념이 반대의 착각으로 변신 할 것이다.
앙코르에서 잠시 삶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겼고 신성과의 합일을 소망했던 영혼은 보다 더 많이 뺏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차가운 도시의 한 복판에서 추악한 아귀다툼을 하겠지.
미지근한 콜라를 팔던 아이들의 미소를 잊고
영혼을 데워 주던 앙코르와트의 아름다운 돌들도 기억의 저편으로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명상과 수행 없이 사는 슬픈 내 영혼을 인지하지도 못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여행의 목적은 다르다.
하지만 먼 곳에 있는 것이 대부분 아름답게 보이듯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것은 행위자체가 아름다울 것이다. 기억되어 아름다운 것과 기억되어 고통스러운 추억들이 있다.
지금 앙코르와트는 기억되어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아니 고통스러워서 행복해 지는 곳이다.
그리고 그 아름답고 신비한 곳을 알려준 친구의 독백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석양이 질 무렵이었는데 나는 맨발이었고
땅거미가 밀림 저편에서 기어 나올 때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다..
기괴하고 장엄한 건축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신의 품을 벗어나려는 가련한 인간의 몸부림이었을까.........?"
"거기에 갈 때는 가이드북을 버리고 가야 한다.
그대 인생을 망친 지식들이 그대의 아름다운 영혼에 거미줄을 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