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오일장 / 박갑진 (2023. 6.)
매월 끝자리가 2,7일 날에는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장날 전날이 되니 어머니께서는 분주하게 몸을 움직이신다. 오일장에 가지고 가서 돈이 될 물건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광방으로 들어가신다. 죽 휘둘러 보시더니 콩단지에서 콩을 퍼서 자루에 담으신다. 그리고 한참 서 계시다가 뭔가 생각이 나셨는지 자루에 넣었던 콩을 조금 다시 퍼서 단지에 넣으신다. 아무래도 먹을거나 내년 씨앗으로 남겨 놓아야 할 요량이다. 다음에는 팥 한두 되 정도 봉달이에 싸고 바구니에서 계란을 꺼내 열 개씩 몇 줄을 볏짚으로 싸매신다. 계란은 지금에는 오히려 마트에서 사다가 반찬으로 먹지만 그 당시는 돈이 없어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산골 마을 서산에 해가 저물고 어둠이 찾아오면 부엌에서 어머님은 식구가 먹을 저녁을 준비하신다.
시골 밤은 길고도 빨리 어둠이 찾아온다. 저녁이 늦어지면 호롱불을 켜고 저녁을 먹어야 하며 또한 호야등을 부엌 벽에 걸어 놓고 설거지를 하신다. 그렇게 저녁을 마치고 밤이 어두운데 호롱불도 켜지 않고 마루나 방에서 부모님과 함께 가족이 도란도란 저녁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조용히 금세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어머님은 깊은 잠도 없으신 모양이다. 새벽이 되기 전에 일찍 일어나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누구보다 먼저 깨끗한 물로 세수하시고 물을 길어와 부엌 벽 받침대 한가운데 있는 돌받침 위에 정화수를 각각 떠놓으시고 두 손을 합장하여 절하며 소원을 빌고 또 빌으신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셨다. 그때 어머님은 무슨 소원을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빌었을까? 어머니께서는 가족이 무탈하고 건강하게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셨겠지......
아버지는 아침 먼동이 뜨기도 전에 들에 나가서 망태에 깔을 베어 집으로 메고 오신다. 동네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신다. “농촌에서는 해뜨기 전일이 반나절 일이여!” 그렇게 매일 아침을 시작하신다. 어머니는 “시장에 가려고 하니 큰 닭 한 마리 잡아 주어요.” 하신다. 아버지가 닭장에 손을 깊이 넣고 닭을 잡으려 하니 서로 잡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푸드닥거리며 난리를 친다. 마침내 제일 재수 없는 닭이 잡히고, 닭은 새끼줄에 발이 묶인 채 마당 한쪽 구석에서 눈을 감고 졸고 있다.
어머님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시고 어제 준비한 물건들을 챙겨 머리에 이고 닭을 옆구리에 끼고 삼베 적삼 입으시고, 아주까리 기름으로 곱게 머리단장 하시고 마을 앞 작은 고개를 넘어 십릿길 오일장을 가신다. 시장 구경을 하고 싶어 따라나서니, 너는 너무 멀어서 걸어 못 간다고 오지 말라 하신다. 떼를 쓰면서 따라간다. 처음 시장 가는 날이라서 모든 것이 생소한 풍경이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에는 한나절에 왕복 두 번 다니는 버스가 있는데 어머니께서는 차비를 아끼시려고 왕복 이십 리 길을 걸어서 시장에 다녀오시곤 한다. 고개 넘어 얼마쯤 걸어가니 신작로가 나왔다. 시장가는 도로가에는 장돌뱅이들이 미리 와서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물건 사려고 흥정을 청한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물건 시세를 잘 모르니 묻기만 하고 팔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계속 걸으면서 시세를 가늠하는 것이다. 상인들이 팔라고 보따리를 빼앗고 밀리치고 옥신각신하는 동안 대략 값을 예측하게 된다. 시장 가까이 와서는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한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어머니의 삶의 지혜였다. 시장 부근에서 닭도 판다. 시골에서는 시장이나 와야 모처럼 돈을 만져 볼 수 있다. 평소 집에 돈을 저장해 두고 마음대로 쓰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이제 마련한 돈으로 시장을 봐야 할 차례다. 자녀들 학용품비 용돈 이웃집 빌린 돈과 농비 등 써야 할 곳을 먼저 계산하고 남은 돈으로 시장을 보신다. 시장에 오랜만에 오니 살 것도 많은데 눈으로만 보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이곳저곳 두루 돌아다니다가 꼭 필요한 물건만 사신다. 시장에는 펑펑거리면서 튀밥이 튀고 여기저기서 싸구려 물건을 사라고 외쳐대고 돼지고기 국밥집 냄새는 허기진 코를 찌른다. 국수, 빵 과자 먹을 것이 많다. 먹고 싶지만 돈을 아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사달라고 졸라댈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어머니는 돼지국밥 한 그릇 안 사 잡수시고 시장을 그대로 빠져 나오신다. 얼마 남지 않는 돈으로 샘비과자와 풀빵를 사 주셨다. 그때 나는 어머님 조금 잡수시라는 말도 않고 혼자서만 좋다고 먹었던 일로 기억이 된다. 참으로 어리석었던 것 같다.
그때 먹었던 샘비과자의 맛은 지금도 은은히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그 시절 어머니의 근검절약 하시는 모습은 우리 모두의 옛 어머니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시장에 가실 때는 같이 가지만 오실 때는 혼자 오신다고 한다. 시장에서 같이 돌아다니는 동안 맛있는 요기를 해야 하는데 서로 눈치가 보여지기 때문에 떨어져 장보기를 하고 혼자 집에 오신다고 한다. 그렇게 어머니는 시장 가셔도 먹고 싶은 국밥 한 그릇 안 사 잡수시고 그냥 허기진 배를 참고 십릿길을 걸어서 집으로 오신다. 돌아오는 길 배가 고프면 고개 넘어 길가 바위틈새에서 나오는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시곤 했다.
그 시절 나는 어머니가 시장에 갔다 오시는 날이면 혹시라도 맛있는 과자라도 사오시지 않을까 하고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거의 빈손이었다. 어머니라고 귀한 자식에게 맛있는 과자나 용돈을 넉넉히 주고 싶지 않으셨겠는가. 그때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 못 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배고픈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지금도 동네 고개마루를 넘고 넘어오시던 어머니의 그때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고 생각이 난다. 시장 가신 어머니가 맛있는 과자를 사오길 기다렸던 어리석은 철부지 소년시절, 이제와 아무리 해도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어머니의 삶의 모습이 그립고 또 그립다. 어렵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행복했던 것 같다.
지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장 달려가고 싶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옛 모습을 생각하니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며 보고 싶어진다. 먼 훗날 어머님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오늘 따라 어머니의 모습이 몹시 그리워진다.
첫댓글
박갑진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오일장 풍경이 눈에 선하게 펼쳐집니다. 글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