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바 전설살인사건
2007년, 일본 추리문학계는 일흔이 넘은 노작가가 세운 대기록에 놀라움과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긴다이치 코스케’와 함께 일본의 국민 탐정으로 불리는 ‘아사미 미쓰히코’를 주인공으로 한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가 누적판매 부수 1억 부를 돌파한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살아 있는 거장으로 칭송받고 있는 작가 우치다 야스오에 의해 1982년 첫선을 보인 이래, 총 111편의 작품이 출간된 이 시리즈는 명실공히 일본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탐정물로 인정받은 것이다.
우치다 야스오는 마흔일곱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광고제작사 사장이었던 그는 1980년 《죽은 자의 목령》을 자비출판하며 데뷔하였는데, 이 작품이 아사히신문에 소개되는 등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자 작가로 전업하였다. 1982년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의 빅히트로 대중문학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 야스오는, 2008년 ‘제11회 일본 미스터리 문학대상’을 수상하며 대중성과 함께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2010년에는 작가 데뷔 30주년을 기념하여 ‘우치다 야스오 베스트 셀렉션’이 출간되었는데, 당시 출판 기념회에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은 베스트셀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비롯한 많은 일본 추리소설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의 공로에 경의를 표하기도 하였다. 여전히 열정적인 집필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출간 20주년이 되는 2012년에 마지막 작품을 출간하겠다고 발표, 벌써부터 많은 독자의 아쉬움과 애교 섞인 원망을 듣고 있다.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는 드라마는 물론 영화, 만화, 게임 소프트 등 그 어떤 탐정물보다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드라마의 경우, 일본의 모든 방송국이 경쟁적으로 제작에 참여, 2011년 현재 총 108회의 드라마가 방송되는 진기록을 낳기도 하였다. 평균 17%(케이블과 지역민방 채널이 많은 일본에서는 20%가 넘으면 대히트작이라고 한다)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 지금도 후지TV에서 새로운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는 등 여전히 높은 인기는 누리고 있다. 《덴카 전설 살인사건》은 베니스와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일본 영화의 거장 이치카와 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하였으며, 또한 주인공 캐릭터 자체가 일본 추리만화 중 가장 유명한 《명탐정 코난》의 ‘쓰부라야 미쓰히코’에 차용되기도 하였다. 시간과 세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며 진정한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여전히 무수한 화제를 낳으며 흥행과 작품성 모두 검증받은 이 시리즈가 국내 추리소설 독자의 필독도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기대한다.
명문가의... 골칫덩이, 프리랜서 르포라이터
시대를 초월한 ‘아사미 미쓰히코’의 매력
오가는 사람으로 늘 혼잡한 기차역에서 젊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고토바 법황’의 유배 경로를 따라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으로, 그녀는 여행 일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단순 강도사건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지만 의미 있는 목격자나 용의자가 쉬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녀의 소지품 중 유일하게 행방을 알 수 없는 ‘고토바 전설’ 고서와 관련된 이들이 차례로 살해되고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지만 발 빠른 범인에 의해 농락만 당할 뿐이다. 상사와의 충돌로 독자적인 수사에 나선 노가미 형사 앞에 8년 전 그녀가 당한 사고를 알고 있다는 아사미 미쓰히코가 나타나 그를 돕겠다고 나선다.
‘세련된 재킷을 걸쳐 입고 도요타 세단을 몰고 다니는, 스타일리시한 서른세 살 독신남’이자 ‘프리랜서 르포라이터로 활동하는 명문가의 철부지 차남’으로 설정된 아사미 미쓰히코. 그는 일본 탐정소설의 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 전후(戰後) 시대에 인기를 끌었던 긴다이치 코스케(덥수룩한 외모에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천재)나 아케치 고고로(완벽하고 냉철한 인텔리) 등과는 확실히 차별되는 캐릭터로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그 현대적인 매력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에 처음 등장하여 지금은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아사미이지만, 초창기 작가는 그저 일회성 인물로 생각했다고 한다. 작가의 내면을 투영하여, 냉철한 탐정과는 거리가 먼 ‘인정’과 ‘물렁함’을 지닌 아사미가 이렇게 사랑받게 된 것은 전형적인 탐정물에 집착하지 않고 좀 더 다양한 작품을 바랐던 독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을 비롯한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에는 극단적으로 악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는 범죄자를 단순한 악으로 단정하지 않고, 오히려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슬픔과 고뇌에 집중하는데 이는 주인공의 수사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건의 퍼즐을 풀어가는 한편, 범인이 ‘절대 악’이 아닌 것처럼 아사미 역시 ‘절대 선’의 입장에 서는 일은 없다. 아사미는 우리가 그러듯 타인의 죄를 벌하는 데 있어 고민하고, 사건보다는 사람을 읽으려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스펙터클한 액션이나 놀라운 반전, 기괴한 트릭 없이도 1백 편이 넘는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던 동인이기도 하다. 또한 이 시리즈는 일본 역사에서 유명한 장면이나 전설을 소재로 차용하면서도 독자에게 일본적인 가치관이나 문화관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 독특한데, 이는 더 많은 대중을 포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