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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西域)의 비화(秘話)
서장(西域)!
돈황(敦煌)의 서쪽 지방이기에 서역이라 불리며
흉노(凶奴)의 서쪽이고 오손(烏孫)의 남쪽이다.
중원인(中原人)에게 있어 변방 오랑캐의 나라인 듯 여겨지고 있는 서역지방은
떠도는 말과는 달리 꽤 비옥하다.
그곳에는 소완(小宛) 대완(大宛), 자합(子合), 서야(西夜), 의내(依耐) 고묵(姑墨),
온숙국(溫宿國)을 비롯한 서역삼십육국(西域三十六國)이 존재한다.
이렇듯 많은 소국(小國)의 존재는
서역의 비옥함과 풍요함을 밝히는 한 가지 증거가 될 것이다.
중원에서는 수만 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 풍속과 학문
, 그리고 말과 글이 중원과 다른 곳이 서역이다.
그러나 하나의 위대한 무국(武國)이 세워진 후
서역은 과거와는 달리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 대무신국(大武神國) 〉
이 신비의 무국은 영륭리남산맥(永隆里南山脈) 중 입마령(立馬嶺) 근처에 위치한다.
신민(臣民)의 총수가 삼천(三千)에 불과한 천하에서 가장 적은 나라이지만
그 이름은 신화(神話)보다 뛰어났다.
―대무신국 사람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 같이 천하를 뒤흔들 만한 절세신공(絶世神功)을 지니고 있다!
환몽(幻夢)처럼 아련하고 신기루와 같은 대무신국…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고,
다른 국가와 교역도 하지 않아
인간세상의 나라 같이 여겨지지 않는 곳이 바로 대무신국이었다.
그러한 대무신국이
수만 리 밖에 있는 중원천하에까지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일까?
사십 년 전, 중원천하를 질타하며 피로 황하(黃河)를 붉게 물들였던
십이거마(十二巨魔)를 물리친 고금제일고수(古今第一高手)가 있었다.
정의무성(正義武聖)!
그 위대한 무황이 세운 나라가 바로 대무신국이었다.
정의무성의 무공은 무림계가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뛰어난 것이었고
, 어느 누구도 그의 칠 초 이상을 받아내지 못했었다.
그는 십이거마를 격퇴해 무신(武神)으로까지 추존되었다.
정의무성은 자신을 추종하는 정파고수(正派高手)들을 이끌고 은거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대무신국이었다.
정의무성은 분명 중원인(中原人)이었다.
그런 정의무성이 십이거마를 퇴치했다는 전설적 공전을 세운 후
중원을 떠나 대무신국 안으로 은거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었다.
― 정의무성탕십이마(正義武聖蕩十二魔)
천하혈풍(天下血風)이 거두어졌다.
십이거마(十二巨魔)의 망령(亡靈)이 다시 나타나지 못하리라!
정의무성이 단신으로 황산(黃山)에서 십이거마와 겨루어
십이거마를 제명한 후 그런 말이 노래로 불려졌다.
그 후 정의무성이 중원을 떠나 서역에 대무신국을 건설하자
또다른 노래가 만들어졌다.
서역행(西域行)이라는 제목으로 인구(人口)에 회자(會炙)된 노래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대무신국으로 가라!
기연(奇緣)이 있을 지니, 그것은 바로 대무신국의 신민(臣民)이 되는 것이다.
오호라, 중원의 정사오기(正邪五奇)를 누가 존귀(尊貴)히 보랴.
대무신국이 그 위에 있지 않는가?
정사오기(正邪五奇)란 정의무성이 십이거마를 제압한 후 평화로워진 중원천하에 나타나
입신지경(入神之境)에 달한 무공을 과시한 초강무인들을 말한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으로 불리지 못한 이유는
바로 서역에 대무신국이 있어서였다.
그들 다섯은 이렇게 불리운다.
검신(劍神)이라 불리는 모산(茅山) 검보(劍堡)의 창건자
백의검제(白衣劍帝) 이궁(李宮)―
뇌공문(雷公門)의 문주로 완산(琓山) 천주봉(天柱峰)에
남천관(南天關)을 세운 남천신군(南天神君)―
백골에 살을 붙이는 의술을 지녔다는 천약선자(千藥仙子)―
남해(南海) 보타산(普陀山) 허리에 세워져 있는
천후사(天吼寺)의 방장(方丈) 천후존자(天吼尊子)―
녹림(綠林)을 장악한 흑도제일인(黑道第一人) 흑면제군(黑面帝君)―
이들 오대기인의 무공은 정사무림의 어떠한 절기보다도 고강한 것이었으나
그 누구의 것도 천하제일의 절학으로 인증받지 못했다.
천하제일이라는 지위는 정의무성 한 사람을 위해
언제나 비워져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림천년사(武林千年史)에 있어 가장 악랄했고, 강했던 십이마두를
단신으로 소탕한 그의 천만공덕(千萬功德)에 대한 무림인들의 진정에 찬 칭송의 발로였다.
그가 세운 업적은 영원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세상 그 어떤 것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정의무성의 원대하고 숭고한 업적은 아주 오랜 옛날의 전설로만 여겨지게 되었고,
대무신국의 존재는 세인들의 머리에서 희미해지게 되었다.
그것은 정의무성을 찾아가 몸을 맡기고 절기를 전수받으려 했던
수많은 무림고수들의 서역행이 좌절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숱한 무림인들은 서역 영륭리남산맥을 샅샅이 뒤지고도 대무신국을 찾지 못했다
. 서역행가(西域行歌)를 부르며 대무신국을 찾아 떠났던 무림인들은
쓸쓸한 마음이 되어 중원으로 돌아와야 했다.
일월(日月)의 부침(浮沈) 속에 대무신국의 존재는 허언(虛言)인 듯 여겨지게 되었고,
대무신국을 찾기 위해 중원을 떠나 서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전무하게 되었다.
결국 인간이 쌓아 놓은 것은 모두 허물어지는 법인가.
대무신국이란 이름은 정의무성이 십이거마를 소탕했다는 전설적 사건과 함께
빛바랜 고서(古書)의 한 구절로 변화해 갔다.
간혹 할아버지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옛날 이야기일 뿐이었다.
***
만추(晩秋).
핏빛보다 붉은 단풍(丹楓)이
하늘에 닿을 듯 천 리 넘게 이어져 가고 있는 산맥을 불태우고 있을 때였다.
스산한 추풍(秋風)이 일며 낙엽이 질 때,
장엄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마천거봉(摩天巨峯) 하나가 있었다.
너무 높아 그곳에 이르면 말을 세워야 한다고 해서
입마령(立馬嶺)이라 불려지는 천장거봉이다.
길이 없어 위로 오를 수 없고, 너무 높아 나는 새도 비켜가야 하는 입마령….
그 후면에 형성되어 있는 만장절벽(萬丈絶壁) 아래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검은 안개는
안력(眼力)을 방해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밤부엉이의 눈이 아무리 날카롭다 해도 검은 안개를 뚫어볼 수 없을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사람이건 금수(禽獸)건 흑무 안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방향 감각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비한 검은 안개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면
지옥문(地獄門)을 대할 듯 공포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흑무로 감춰져 있는 입마령 아래의 분지(盆地)는
바로 세상 사람들이 꿈에서라도 그리워하고 있
는 세외선경(世外仙景)이요 무릉도원(武陵桃園)이었다.
거대한 면적을 갖고 있는 분지 내에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기화요초(琪花瑤草)들이 많았다.
선란(仙蘭), 지초(芝草), 옥지(玉芝) 같은 영약(靈藥)들이
평범한 화초(花草)같이 도처에서 자라고 있고,
빛이 아름답고 우는 소리가 고운 영금(靈禽)들이 그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넓은 초지에는 날아갈 듯한 처마를 지니고 있는 고루거각(高樓巨閣)이 즐비했다
. 빈한한 사람은 아예 없는 듯 하나같이 화려하고 웅장한 누각들 중에서도
화려의 극을 달리는 웅장한 건축물이 보인다.
황금누각(黃金樓閣)!
팔괘(八卦)와 육합(六合)의 변화에 따라 축성(築城)된
일백팔개(一百八個)의 누각의 초점(焦點)이 되고 있는 삼층 누각의 빛은 금빛이었다.
금(金)은 곧 황(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지존(至尊)의 빛이고 중앙(中央)을 암시하는 빛깔이었다.
금빛 삼층 고루의 축성술은
전국시대의 명장(名匠) 노반(魯般)이라 해도 흉내낼 수 없이 오묘했다.
처마의 선은 여인의 섬섬옥수(纖纖玉手)같이 아름다웠고,
단청(丹靑)의 빛은 저녁 노을보다도 그윽했다.
거대한 분지 안은 언제나 봄이었기에 누각의 창문들은 하나 같이 활짝활짝 열려
누각 주위의 기화요초에서 일어나는 향기(香氣)를 누각 안으로 흘러들게 하고 있었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삼층 창문을 열어 놓고
화원과 가산(假山)을 살피는 금포노인(金袍老人) 하나가 있었다.
백발홍안(白髮紅顔)의 노인으로 양 뺨은 십육 세 소녀의 뺨같이 붉고 보드라워 보였다.
"흠…."
주사(朱砂) 같이 붉은 입술이 벌어지며 드러나 보이는 희디흰 치아의 열 또한
조금도 훼손됨이 없었다.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노인은 과거 젊었을 때 천하를 풍미한 절세의 미장부임을 연상케 했다.
눈빛이 또한 매우 신비했다.
세상을 포용하는 눈빛이랄까?
모든 것을 관대히 허용하는 탈속하고 신비로운 눈빛에는
현기(玄機)와 함께 고뇌가 떠올라 있었다.
"노부의 생시에는 별 일이 없으리라…."
그의 중얼거림 소리 또한 현기와 고뇌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심복지환(心腹之患)이 되는 것은 사후(事後)의 일이다.
노부가 죽으면… 누가 그들을 막을 것인가?"
노인의 우수 어린 목소리에는 천하를 걱정하는 대의지심(大義之心)이 깃들여 있었다.
"아…십이거마의 맹세(盟誓)를 믿고 살계(殺戒)를 지킨 것이
지금에 와서 후회스러운 일이 되다니…칠마전(七魔殿)이 웬 변괴(變怪)란 말인가?"
노인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을 떠올렸다.
― 호생지덕(好生之德)을 밝혀 주십시오.
무성(武聖)이 계신 한 중원땅을 밟지 않겠습니다.
저희들을 살려 주신다면 이후 참회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오십 년 전이었던가?
금포노인이 살광(殺光)을 폭사하고 있을 때
그의 발 아래 꿇어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던 일곱 명의 괴인(怪人)이 그들이었다.
"으음…무저갱(無底坑)에 가둬 다시는 태양(太陽)을 보지 못하게 한
혈발마(血髮魔), 취마(醉魔), 잔도마(殘刀魔), 만독마(萬毒魔), 백절마(百絶魔)가
무저갱을 뛰어나올까만 걱정했었는데…
목숨을 구걸하고 서장(西藏)으로 도망쳐간
심마(心魔), 음마(淫魔), 태양마(太陽魔), 현음마(玄陰魔), 비마(飛魔), 검마(劍魔), 선마(扇魔)가
오히려 심복지환(心腹之患)을 만들다니
……."
아…이럴 수가!
노인의 입술 사이에서 나오는 인명(人名)은 오십 년 전 세상에서 사라진
십이거마의 이름이 아닌가?
오대천마(五大天魔), 칠대사마(七大邪魔)로 불렸던 그들
십이거마가 또다시 거론될 줄이야.
"천기(天機)가 변화되고 있다
. 아, 인간의 유한(有限)한 능력을 완전한 것으로 오인해 지나친 관용을 부린 것이
이렇듯 뼈저린 후회가 되는구나.
만생자(晩生子)에게 모든 기대를 걸었지만…
그 아이의 무공은 노부의 삼성(三成)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노부가 죽었다는 소문이 날 경우 그 누가 칠마를 막을 수 있겠는가?"
노인은 장탄식과 함께 흰수염을 움켜쥐었다.
"그들은 노부가 죽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심마(心魔)의 신복술(神卜術)은 워낙 뛰어나, 노부가 죽을 경우 나타나는 천기가
심마에 의해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금포노인은 황혼과 함께 서쪽 하늘에서 나타난 성류(星流)를 살피고 있었다.
아주 괴이한 천기가 있었다.
유난히 밝고 커다란 별 하나가 언제부터인가 그 찬란한 빛을 잃고 껌벅껌벅거리고 있고,
그 근처를 일곱 개의 혈성(血星)이 맴돌고 있었다.
유난히 밝으나 그 빛이 점점 미약해져 가는 별은
바로 금포노인의 운명(運命)을 알리는 성좌(星座)였다.
그 주위를 맴도는 일곱 개의 별은
서역에서 훨씬 서쪽에 있는 서장(西藏) 안에 숨어 살고 있는 일곱 거마를 나타내는 것으로,
바로 그 움직임이 금포노인에게 고뇌를 안겨주는 것이었다.
금포노인은 앉아서 십만 리를 살필 수 있는 재간을 지니고 있었다.
천문지리(天門地理)에 능통한 때문이었다.
"이곳 입마령 아래에 나라를 세우면 노부를 능가하는 후사(後嗣)를 본다는 천기를 믿고
중원을 떠나 이곳에 대무신국을 세웠는데…
아아, 노부가 발견한 오십 년 전의 천기는 거짓이었단 말인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대무신국(大武神國)!
전설로만 여겨지고 있는 천하에서 가장 신비로운 무국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금포노인은 전설적인 장소 대무신국을 세운 과거의 영웅 정의무성(正義武聖)이며
지금은 대무신국의 태상국왕(太上國王)이었다.
정의무성은 천하무림의 수호신이기에 그의 탄식은 곧 무림의 암울한 장래를 암시한다.
대무신국의 현재 국왕은 대검제(大劍帝)다.
대검제는 정의무성이 육십이 되었을 때 본 아들로 이제 나이 서른이었다.
대검제는 천성이 영민하고 성품이 후덕한 사람이었으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갖고 있었다
. 정의무성같이 위대한 무신을 아버지로 둔 사람으로서는
불행이라 할 정도로 체질이 약한 것이다.
너무나 만생한 처지이기에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여간 정의무성이 환갑의 나이에 본 아들 대검제는
정의무성의 오대신공(五大神功)을 삼성도 익히지 못했다.
그것은 대검제 일인에 한하는 불행은 아니었다.
대검제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나리라 작정했었던 정의무성은
대검제가 병약해 더이상 진보하지 못하자 인생의 만년(晩年)을 통한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거기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천하제일고수였던 정의무성은 무림을 종횡하면서도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 십이거마를 모두 죽였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정의무성은 십이거마 중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은 것이다.
십이거마 중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오대천마는
다시 나올 수 없는 무저갱 안에 가뒀고,
그래도 악행이 덜한 칠대사마는 점혈(點血)로 금제(禁制)하고 중원 밖으로 추방해 버렸었다.
그것은 오십 년 전 비사(秘事)였다.
그런데 그 일이 지금 후환이 되어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서장으로 도망쳐 다시는 중원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한 칠대사마의 움직임이
천기상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죽지 않았다.
그들 일곱은 노부가 죽는 순간을 기다리며 서장 깊숙한 곳에서 절치부심하고 있다.
노부는 그것을 안다."
정의무성은 나직이 중얼거리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용서받지 못할 마두들은 죽였어야 했다.
아…노부가 무슨 활불(活佛)이라고 그들을 과감히 용서해 주어
이런 후환을 빚고 있단 말인가?'
정의무성은 모든 것을 자승자박이라 여겼다
. 그가 손을 모질게 놀리지 못했기에 오늘 같은 우환이 있다고 믿었다.
칠대사마는 워낙 가공할 자들이라 이미 금제를 풀고 더욱 악독한 무공을 연성했을 것이다.
오십 년 전에도 무적이었던 그들이기에 당금 천하의 누구도 그들을 제압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또 한번 혈세천하를 의미한다.
"아…아버님."
방 밖에서 장년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 정의무성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정의무성의 아들로 태어나 정의무성의 오묘한 절기를 다 익히지 못해
평생을 자탄 속에서 보내고 있는 대검제가 그 장본인이었다.
"들어와라, 문은 열려 있다."
문이 열리며 정의무성이 입고 있는 금포의 모양과 빛깔이 똑같은 금빛 예복을 걸친
서른 살 남짓한 문사(文士) 기질의 장한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그의 품안에는 금빛 포대기가 안겨져 있었다.
"아… 아들이옵니다."
대검제는 정의무성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 듯
일 장 떨어진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금빛 포대기를 들어올렸다.
"흐음…!"
정의무성의 눈빛이 이채를 발했다.
'이 아이는 체질이 약해 소산(所産)을 갖지 못하리라 여겼다.
그리고 며느리 또한 병약해 노부의 후대가 아 아이에게서 단절되리라 여겼는데,
손자를 보게 되다니….'
그는 기쁜지 슬픈지 측량키 어려운 표정을 하며 금빛 포대기로 시선을 돌렸다.
'이 아이의 체질을 그대로 이어 받았을 것이니 역시 병약하리라.
며느리의 태맥(胎脈)을 짚었던 어의(御醫)의 소견 또한 그렇지 않았던가?
아주 약한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그러나 나의 손자임에는 틀림없지.'
정의무성은 포대기 안의 아이가 울고 있지 않다는 것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다.
대검제는 정의무성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아주 괴로운 표정이 되어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무엇이 죄송하느냐?"
"아… 아버님을 닮은 아이를 생산시키려 했는데… 불행히도 소자를 닮아 약골이옵니다."
정의무성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건… 건강하지 않은 정도가 아닙니다."
"뭣이라고?"
"아기는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정도로 약합니다
. 아버님의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리게 되었으니…
자식된 도리로 하늘을 우러러 보며 살 자신이 없습니다.
아버님, 용서해 주십시오."
대검제가 금빛 포대기를 위로 쳐들었다.
포대기 안에는 갓난아기가 담겨 있었다.
피붓빛이 유난히도 푸르고, 군데군데 자색 반점이 나 있는 아기였다.
게다가 얼굴 표정이 석고같이 굳어 있었고 울지도 않았다.
갓 태어난 아기가 울지 않는다면 지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거… 거의 죽어 태어난 자식… 을 아버님께 보이게 되어 송… 송구스럽기…"
대검제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더듬거렸다.
너무도 위대한 부친을 두었기에 그의 삶은 항상 그늘이어야 했다.
"아니다!"
정의무성이 갑자기 아들의 두 어깨를 움켜쥐었다.
"으으…!"
대검제가 어깨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느낄 때 정의무성의 호기로운 목소리가 그의 고막을 강타했다.
"으허헛…네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효행(孝行)을 했구나.
이렇게 뛰어난 손자를 내게 안겨주다니 말이다."
"예에…?"
대검제는 부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정의무성 대무신왕(大武神王)이 이렇게 기뻐하기는 삼십년 만에 처음이었다.
"얘야."
정의무성은 아들의 어깨를 쥐고 흔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너는 이 아이가 어떤 아기인지 아느냐?"
대검제는 포대기에 싸여 있는 자신의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지 이제 일각(一刻)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 그리고 열흘 안에 죽을 천부적인 약질이었다.
그런 아들을 낳아 대무신왕에게 지극한 심려를 끼치리라 생각하고 있던 대검제에게
대무신왕의 웃음은 너무도 뜻밖의 일이었다.
"이 아이는 칠음절맥(七陰絶脈)이다. 그것은 너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정의무성이 흰 이가 유난히 싱싱해 보였다.
"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십절(十絶)중 의절(醫絶)께서 이 아이가 칠음절맥으로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죽으리라 했습니다.
영단(靈丹)을 복용한다면… 한 오 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으허허…어찌 오 년이겠느냐? 이 아이는 천하에서 가장 오래사는 운세가 될 것이다
. 이 아이를 탈태환골(脫胎換骨)시켜 천하에서 가장 건강하고 영리하게 할 작정이다."
"탈태환골이오?"
정의무성은 이미 생각을 정한 듯 일사천리로 말했다.
"믿기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칠음절맥에 걸린 아이를 말이다
. 그러나 본국(本國)의 힘을 한데 모으면 이 아이를 탈태환골시킬 수 있다.
너는 대무삼신단(大武三神丹)과 철혈역근대법(鐵血易筋大法)에 이은
일천일개정대법(一千日開頂大法)을 아직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예에…?"
대검제의 입이 딱 벌어졌다. 부친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이… 이 아이에게 대무신국의 모든 힘을 기울이시겠단 말씀이옵니까?
칠음절맥에 걸려 태어난 병약한 아이를 위해 말입니까?"
정의무성은 소매를 내저었다.
"허허…남달리 병약하기 때문에 칠음절맥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십 배 뛰어난 지혜(知慧)를 갖고 있기 때문이며
, 조사(早死)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칠음절맥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절맥이 치유된다면 이 아이는 한 살이 되기 전 일어나 걸을 것이고,
두 살이 되기 전 제자백가(諸者百家)를 줄줄 외울 것이다."
정의무성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천부적으로 칠음절맥이라면 아이의 지능은 타인에 비해 십 배가 된다.
다만 인간의 상리(常理)를 깨는 지혜이기에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 가야 한다는 것이 섭리였다.
"내가 드넓은 중원을 떠나 이곳 영륭이남산맥 안에 칩거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말하는 사이 아기는 대검제의 손을 떠나 정의무성 품에 안겼다.
대검제는 부친이 수십년 더 젊어 보인다 여기며 황송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이 이곳에 대무신국을 세우신 이유는
단 하나 이곳에 나라를 세울 경우 대영웅(大英雄)을 후사(後嗣)로 둘 수 있다는
천기(天機)에 따르시었습니다."
"그렇다. 나는 세상이 싫어 여기 나라를 세운 것은 아니다.
애비를 능가하는 후사를 두기 위해 이곳에 나라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아이를 내 품안에 안고 있는 것이다."
정의무성이 기뻐 외치며 아기를 번쩍 쳐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경미한 파공성을 일으켰다.
"으― 앙!"
아이가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렸다.
정의무성의 진원지기(眞元之氣)가 지력(指力)에 실려
아기의 대혈(大穴) 몇 군데를 점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아주 미약했지만 정의무성은 조금도 낙담하지 않았다.
"으허허… 너는 이제 천룡왕자(天龍王子)이다.
네 이름은 무천룡(武天龍)! 너는 할애비의 진전(眞傳)을 모두 이어 받을 수 있는
천하유일지재(天下有一之才)이다.
범인(凡人)보다 백 배 뛰어난 사람이라야만 익힐 수 있는
대무신공(大武神功)의 소주인(小主人)으로 태어난 것이다."
대무신국의 태상국왕 정의무성이 아이를 안고 기뻐 외칠 때였다.
"상왕(上王)…!"
"상왕, 큰일이옵니다!"
"속하(屬下) 삼밀사(三密使) 여기 대령해 있습니다.
상왕께서는 어서 속하들을 만나주십시오."
누각 아래 와서 다급히 외치는 세 명의 은포노인(銀袍老人)이 있었다.
하나같이 이 갑자 이상 나이 먹은 노인들로
일신의 수양이 생사(生死)를 달관할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그들이 지금 이성을 잃고 있었다.
세 명의 은포노인은 대무신국의 삼대봉공(三大封供)이었다.
그들의 신분은 하나같이 어마어마했지만 그 내력을 소상이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과거 흑도대종사였다가 정의무성에게 감복해 정의무성의 하인이 되기를 자처했던
적지만리객(赤地萬里客)!
천하에서 가장 빠른 경신술(輕身術)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하늘을 나는 도깨비라고 불려졌던 동해(東海)의 기인(奇人) 비천신매(飛天神魅)!
소림사(少林寺) 장문인이 될 신분이었으나
소림장문인이라는 지위 또한 세속의 명리라고 훌훌 떨쳐버리고
광인같이 살다가 정의무성의 하인이 된 바 있는 광승(狂僧)!
그들은 정의무성이 아들과 함께 있는 누각을 바라보며 장읍을 하고 크게 외쳤다.
"칠장군(七將軍)이 서장(西藏)에서 돌아왔습니다. 어서 나와 주십시오!"
"상왕, 촌각이 급합니다!"
세 노인은 이제껏 살아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감정의 동요를 잃지 않았었다.
그런 그들이 이리 당황하고 있는 이유라면 실로 엄청난 사건이 발발했음에 틀림없는 일이었다.
"상왕…!"
"속히 납시소서!"
그들이 정의무성 있는 곳을 향해 세 번 계속해 외칠 때
정의무성은 갓 태어난 친손자를 안고 대검제와 함께 창문을 통해 가볍게 뛰어내렸다.
기이하게도 정의무성은 삼대봉공의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조금도 놀라워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짐작했다.'
정의무성은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한 표정이었다.
"상왕, 큰일이옵니다."
삼대봉공이 정의무성 앞에 한 줄로 꿇어앉아 무엇인가 말하려 할 때
정의무성이 왼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다 알고 있소."
그가 차분히 말하자 삼대봉공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다 알고 계시다니?'
'칠장군이 막 돌아왔거늘…?'
그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의무성은 손자 무천룡을 꼭 끌어안고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칠장군을 서장으로 보낸 지 열흘!
문제가 없었다면 그들은 닷새 전에 돌아왔어야 했소.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쯤 다쳐 돌아오리라 알고 있었소."
"예에? 칠장군이 다쳐 돌아올 것을 미리 아시고 계셨소이까?"
적지만리객이 크게 외치자 정의무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은 하늘을 가리켰다.
"저 위를 보시오."
정의무성이 가리키는 암천은 일곱 개의 혈성이
하나의 금빛 별을 감싸고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일곱 개의 흉성(兇星)은 오십 년 전 본좌의 손 아래 무공이 폐쇄 당한 채
서장으로 도망간 칠마를 상징하는 것이오
. 보시오, 저것들은 아직 번쩍이고 있지 않소?
칠마의 무공과 힘이 건재하다는 천기(天機)요."
모두의 탄성과 함께 정의무성의 말이 이어졌다.
"열흘 전 칠장군을 서장으로 보낸 이유도 저 때문이었소.
칠마를 상징하는 일곱 개의 흉성이 점점 더 밝아지기에
그들이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는 지를 알아내기 위함이었소."
정의무성은 아주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모르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 허다했다.
그것은 뜬구름 같은 평판이 아니고 정의무성의 가치를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었다.
"칠장군이 오일 전에 돌아왔다면 칠마는 칠장군에 의해 잡히거나 죽었을 것이오.
하지만 그들의 힘은 이미 칠장군을 능가했소.
사실… 본좌는 오일 전부터 칠장군이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소."
"으음…하오면…"
"본좌가 오일 동안 침식을 전폐한 진정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소
. 칠마의 힘을 너무 약하게 보고 칠장군을 보내
그들을 제압하라 한 것을 후회했기 때문이오."
"그럼 칠마가 거대한 세력을 만들어 권토중래(捲土重來)의 순간을 획책하고 있다는 것도
이미 아셨단 말씀이옵니까?"
삼대봉공의 질문이 정의무성의 입가에 신비한 웃음을 만들어 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의무성은 무천룡을 쓰다듬다가 아주 느긋이 말했다.
"조금 전 이런 일이 생겼다면 나는 즉시 금붕(金鵬)을 타고 날아가 칠마의 수급을 잘라왔을 것이오
. 그러나 태자(太子)가 태어난 이상 그럴 수 없소."
"예에?"
"허허… 천일개정대법(千日開頂大法)을 즉시 시작할 것이오.
그래야 태자를 천하대영웅으로 만들 수 있소.
칠마에 얽힌 일로 시간을 뺏겨 천하기재로 탄생한
태무신국의 태자를 요절케 할 수는 없기 때문이오."
정의무성의 말이 여기에 이를 때였다.
"아니 됩니다… 아니 되옵니다!"
다급히 부르짖는 목소리와 함께
중인들을 향해 비틀비틀 다가서는 백의의 백발노인 하나가 있었다.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 있고 안색이 초췌해질 대로 초췌해진 노인은 지금 걷기도 힘든 상태였다.
"아니 되옵니다, 상왕! 지금 떠나지 않으신다면 실기(失機)이십니다."
다급히 외치며 정의무성 앞으로 와 무릎을 꿇는 사람은
열흘 전 서장으로 떠난 일곱 명의 장군 중 우두머리인 천장군(天將軍)이었다.
그의 나이는 이미 백을 넘었고, 오십 년 전부터는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이었다.
그러한 천장군이었지만 지금의 상태는 천하에서 가장 비참했다.
마공(魔功)과 독공(毒功)에 당한 채 쉬지 않고 만 리를 달렸는 지라
원기(元氣)가 탈진해 앞으로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운세였다.
그는 조금 전 대무신국으로 돌아와 급보를 알리고 쓰러졌었다.
다들 그가 쓰러져 죽은 것으로만 알았는데
바람결에 흘러드는 정의무성의 말을 알아듣고 미친 듯 달려온 것이다.
"당장 서장으로 가셔야 합니다.
지금 가신다면 상왕의 무공으로 그들 칠마를 천초(千招)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라도 늦추신다면 그들을 죽이는 데 만초(萬招) 이상을 허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백일 이상 지체하신다면…
상왕의 무공으로도 그들을 죽일 수 없습니다."
천장군은 천지금은옥동철(天地金銀玉銅鐵)의 칠대장군 중 우두머리 중 유일한 생환자였다.
그의 요청은 간절했고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정의무성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늦었네. 칠마를 죽일 기회는 이미 사라졌네."
"예에…?"
천장군의 하마 같은 입이 딱 벌어졌다.
"칠마를 치는 데 칠장군을 보낸 것이 실수였네.
칠장군을 보낸 일은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한 잘못이었지.
그들은 아마 깊이 숨어들었을 것이네.
그들은 마공을 더 닦아 나를 죽일 자신 있는 후에야 다시 모습을 나타낼 것이야."
"하… 하오나…"
천장군이 정색을 하고 항변하려 하자
정의무성이 신비한 미소와 함께 다시 고개를 저었다.
"대무신국의 신민(臣民) 모두를 동원한다면
그들을 한달 이내에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인가?"
"그… 그렇습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그들을 잡을 수 있겠지.
그러나…그 일을 위해 천하에서 가장 값진 것을 희생시켜야 하네."
"무엇을 희생시킨단 말씀입니까? 설마…태자를…?"
정의무성은 무천룡을 굳게 감싸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상왕, 대무신국에는 무수한 영약이 있습니다.
태자가 병약한 몸으로 태어났다는 말은 이미 들었습니다.
하오나 영약을 복용시킨다면 수명을 한 달 이상 연장시킬 수 있소이다.
태자 때문에 출군(出軍)을 미루신다는 것은…."
"본좌의 마음은 이미 굳어졌네.
칠마가 다시 살아났기에 본좌의 마음이 더욱 굳어졌다고 말할 수 있지."
정의무성의 표정은 아주 굳었다.
그는 천천히 중인들을 쓸어보았다.
삼대봉공은 물론 대검제는 감히 그의 시선을 맞받지 못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 정의무성은 말을 이었다.
"본좌는 지금 양자택일(兩者擇一)의 기로에 있네.
하나는 지금 당장 대무신국의 전고수를 이끌고 서장으로 들어가 칠마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고
, 다른 하나는 대무신국의 모든 힘을 모아 나를 능가할 기재 하나를 만드는 것이네."
"……."
"상리대로 한다면 칠마를 치는 길은 선택하는 것이 상책(上策)일 것이네.
그러나 본좌는 후자(後者)를 택하기로 이미 작정했네."
삼대봉공과 천장군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상왕…."
"이것은 칠마가 상상보다 강하기 때문에 더욱 굳어진 결심이네."
정의무성은 천장군의 부상당한 위치를 살피며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칠장군이 오일 전에 돌아오지 않은 이후
본좌는 칠마가 오십 년 전의 수준을 세 배나 능가했음을 깨달았네.
짐작컨대 칠장군 중 천장군을 제외한 여섯 장군은 칠마 중 심마(心魔)를 제외한
여섯 마두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야.
모두가 오백 초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네."
"부끄럽소이다, 상왕."
천장군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정의무성은 품에 안은 아이를 다독이며 천천히 거닐었다.
"천장군은 칠대사마(七大邪魔)의 우두머리이며,
과거 십이거마를 통틀어 가장 악랄하고 가장 영리한 심마(心魔)를 만나
그의 심마공에 이렇게 되었을 것이야."
"그… 그렇습니다."
"심마는 충분히 천장군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
. 한데도 최후의 순간 손을 거두고 천장군을 놓아 보냈을 것이네. 그렇지 않소?"
천장군은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상왕께서는 진정 신인이십니다.
속하가 겪은 일을 직접 보신 듯이 모두 알고 계십니다."
정의무성은 신비로운 혜안을 반짝였다.
"심마의 나쁜 꾀는 천하제일이고 본좌를 능가하는 부분이 많네.
그들이 달포 전 칠마전(七魔殿)이라는 거점을 노출시켜 본국의 주의를 끌고,
본좌로 하여금 칠장군을 보내 그 내막(內幕)을 알아 오라고 했던 때부터
모든 것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지."
"그들이 일부러 정체를 노출시켰단 말씀이십니까?"
중인들은 모두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네. 심마는 자신들의 동정이 하늘 위 일곱 개의 흉성으로 나타나자
정체를 더 이상 숨기지 못함을 알게 된 것일세.
그들의 움직임이 천기로 나타나자…
어쩌면 본좌가 직접 나서 그들을 찾을 수도 있다 여겨
일부러 칠마전을 만들어 칠장군을 유혹했던 것일세."
천장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칠마전의 존재가 놈들의 함정이었다면…어떤 이유로 속하를 살려보낸 것이옵니까?"
"심마가 천장군만을 살려 보낸 이유는…일부러 나의 노여움을 사
내가 서장으로 와 주기를 바라고 한 것이네."
"왜 그런 위험을 자초하는 것입니까?"
정의무성은 자색 반점으로 얼룩진 아이의 볼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들은 천하에서 단 한 사람 본좌를 두려워하고 있네.
그들은 본좌가 살아 있는 한 중원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었고,
본좌가 살아 있는 한은 그 맹세를 지킬 것이네
. 그래서 본좌를 빨리 죽게 하려는 방법을 이런 식으로 고안한 것으로 생각되네
. 나의 평화로운 마음을 깨뜨려
내가 예정된 천수보다 십 년 정도 단명해 죽으라는 것을 기대하는 심사에서 말일세."
실로 놀라운 지혜 싸움이었다.
칠대사마 중 우두머리가 되는 심마(心魔)는 마도 인물 중 가장 뛰어난 자였다.
무공의 강하기만을 따진다면 십이거마 중 혈발마(血髮魔)가 최고였으나
심기로 따지면 심마의 반도 안 되는 육체적인 힘에 지나지 않았다.
심마는 자신의 지모를 너무도 과신했지만 정의무성은 그를 능가했다
. 그렇기에 심마를 비롯한 십이마두가
오십 년 전 정의무성 한 사람에 의해 제명당해야 했던 것이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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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
즐감.
즐감하구 갑니다!
감사
감사 드립니다
즐겁게 봅니다
즐독입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