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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린강이 지휘하는 배화교의 선발대(先發隊)가 곰석골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선발대는 본진(本陣)보다 한 시진(2시간)정도 거리를 두고 있으며 혈영대 중에서 신법과 경공이 뛰어난 30명으로 구성되었다. 선발대 앞에 깎아지는 절벽들로 이루어진 두 개의 산봉우리가 나타났다. 어떻게 보면 영장평원의 입구와 비슷하지만 절벽들 사이가 멀고 그 사이에 난 길도 넓어서 3대의 마차가 마주보고 달려도 충분할 정도다. 다만 깎아지는 절벽위에 약간의 평지가 있고, 언덕 사이 샛길도 상당히 길어서 적(敵)이 매복(埋伏)하기 적당해 보인다. 선발대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가 10명씩 조 나누어 1조는 좌측, 2조는 우측 절벽으로 달려가고 나머지는 샛길로 향한다. 1조가 향한 절벽은 원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오르는 것은 힘들지 않지만 정상까지 상당히 멀어서 한참을 달리다보니 숨이 턱까지 올라온다.
“힘들군. 잠시 쉬었다 간다.”
조장의 말에 나머지 무사들도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숨을 고른다. 이제 정상까지는 일각(一刻, 15분)정도 남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아름드리나무가 빡빡하고 무성하게 자란 넝쿨식품들이 나무들을 휘감고 있어 어떻게 보면 음산한 느낌마저 든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은 없습니다. 완전히 원시림 같습니다.”
“나도 보고 있어.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으니 유심히 살피면서 올라가자.”
무사들이 다시 나무들 사이로 빠르게 이동하여 정상에 도착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가슴까지 후련한 느낌이다. 한편 반대편 산봉우리로 향한 2조는 풀 한포기 찾아보기 힘든 바위들만으로 이루어진 길을 지나 정상에 도착해보니, 정상은 지나온 길과는 다르게 한쪽은 무성한 숲을 이루고 절벽근처는 나무가 보이지 않고 잡초들만 무성하다. 무사들은 숨을 고르고 조심스럽게 절벽 쪽으로 접근해보니 멀리 반대편 절벽 위에서 1조가 손을 흔들고 있고, 까마득한 절벽 밑에 3조가 주위를 살피고 이동하고 있었다.
“모두들 이상 없나 보군.”
“조장! 저기 숲도 살펴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야지. 가보자.”
조장을 선두로 10명의 무사가 숲을 향해 달려간다.
“쉬이이익~”
공기를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30여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온다.
“이런~ 피해~”
무사들이 재빨리 몸을 날렸지만 화살들은 피할 공간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모양인지, 5명의 무사가 다리나 가슴을 붙잡고 바닥을 구른다.
“크윽~”
“슝~ 슝~ 슝~”
운 좋게 화살을 피한 나머지 무사들이 안심하는 순간 이번에는 60여개의 화살이 날아와 아직 착지(着地)도 못한 나머지 무사들을 향해 날아가고, 무사들은 고슴도치가 되어 바닥을 구른다.
“파파파파~”
나뭇가지를 박차는 미세한 소리와 더불어 20여개 은색 그림자들이 바닥을 구르고 있는 무사들에게 날아가더니 번쩍이는 빛과 함께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순식간에 바닥을 구르고 있던 10명의 선발대(先發隊)가 머리와 몸이 분리(分離)되며 차가운 시체로 변한 것이다.
1조는 2조와 3조의 모습을 확인하고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전진(前進)했다. 봉우리에 끝에 있는 절벽은 약간의 경사(傾瀉)가 있지만 대충 살펴봐도 20장(丈, 약 66m) 이상으로 상당히 길다. 중간쯤 이르렀을까? 가장 선두로 달리던 조장의 몸뚱이가 갑자기 솟구친 하얀 빛에 가랑이에서 머리까지 반으로 갈라지더니, 붉은 피를 뿌리며 두 쪽으로 갈라진다.
“뭐~ 뭐야. 아악~”
발바닥이 따끔거리는 느낌과 함께 불쏘시개로 다리를 쑤시는 것처럼 엄청난 통증이 밀려오고, 그와 때를 같이 등줄기에 싸늘한 느낌과 함께 허리가 끊어지며 달리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상체(上體)가 하체(下體)와 분리(分離)되며 바닥을 구른다.
“이........이런~ 마.......크윽~”
"사각~ 사사사각~"
땅속에서 솟구친 20여명의 무사가 배화교 선발대를 도륙(屠戮)하고 검(劍)에 묻은 붉은 피를 털어낸다. 모두들 은색 무복(武服)을 걸치고 있는데, 검의 피를 털어낸 무사(武士)들은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시체들을 자신들이 튀어나온 구덩이로 밀어놓고 흙으로 대충 덮더니 연기처럼 살아진다.
앞을 향해 달려가던 3조가 나무위로 올라갔다. 양쪽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샛길이 끝나고 넓은 분지(盆地)가 나타났는데, 저 멀리 분지(盆地) 끝에 어림잡아 100여개의 군막(軍幕)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고, 곳곳에 무리지어 있는 무사들이 공놀이를 하거나 검술(劍術)을 연마하고 있다. 느낌상 샛길이 끝나고 분지(盆地)로 들어서는 입구에 몸을 숨기고 있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조장은 욕심 같아서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자세히 살펴보고 싶지만 적(敵)에게 발각(發覺)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 자명하니 조원들에게 눈짓을 보내고 조심스럽게 왔던 길로 향했다.
“조장! 이대로 돌아가는 겁니까?”
“너무 위험해.”
“그래도 이대로 돌아가긴..........”
“1조나 2조에게 맡기면 돼. 가자.”
3조가 다른 선발대(先發隊)와 헤어진 곳에 도착하여 한참을 기다렸지만 양쪽 봉우리로 갔던 1조와 2조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조장!.......더 기다려야 합니까?”
시간을 보니 이제 본진(本陣)과 한식경(30분)정도 거리밖에 남지 않았다. 더 이상 지체하면 선발대(先發隊)로써의 의미가 없다. 그들은 다른 조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본진(本陣)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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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지(盆地)에 있는 가장 크고 화려한 군막(軍幕)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천마마련을 출발하여 이곳 곰석골에 1차 방어선을 구축한 초하벽과 소행표를 비롯하여 이막수와 사우 등이다.
“양쪽 봉우리에 매복(埋伏)하고 있던 무사들로부터 전서구가 왔습니다. 배화교 선발대(先發隊)로 보이는 놈들을 제거(除去)하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초하벽이 먼저 회의를 소집한 이유를 설명했다.
“제갈무경님의 예상대로군요.”
“동정호변을 피해 육로(陸路)로 본련이 있는 장사(長沙)까지 가려면 이곳 곰석골을 지나는 길이 가장 빠르니 배화교 놈들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선발대(先發隊)는 모두 제거(除去)한 겁니까?”
이막수의 질문에 하벽이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양쪽 봉우리로 올라온 놈들은 제거했지만, 샛길로 온 놈들은 그냥 보냈다고 합니다.”
“음~ 그래요. 그럼 놈들도 우리가 이곳에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겠군요.”
“그래서 여러분을 소집한 겁니다.”
“공자의 작전은 뭐죠?”
“일단 은마마령대 일천을 반으로 나누어 양쪽 절벽에 배치하고, 나머지 일천의 은마마령대와 배교 술사님들로 샛길 중간에 일차방어선을 구축합니다. 그리고 금마마령대는 분지 입구에 이차방어선을 구축하고 놈들의 반응을 기다려볼까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십이사(十二死)들도 일차방어선에 동참(同參)하면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막수님께는 따로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곧 있으면 날이 어두워집니다. 배화교 놈들도 먼 길을 달려왔으니 오늘 당장 공격하진 못할 겁니다. 이막수님은 배화교 본진(本陣)에 잠입(潛入)하여 놈들에 대해 파악해 주세요. 그리고 사우님과 왕천유님은 오른쪽 봉우리의 은마마령대를 지휘해 주세요.”
“잠깐만! 저도 함께 비랑과 함께 가겠습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유미림이 나섰다. 하벽은 난감한 표정으로 이막수를 바라본다. 유미림은 홀몸이 아니다. 아직 초기지만 임신한 몸으로 적(敵)의 심장부에 잠입(潛入)하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그래서 일부러 제외한 것인데 이막수와 함께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미림! 너무 위험해. 미림은 이곳에 있어.”
이막수가 잠시 고민하다가 미림의 손을 잡고 말한다.
“하지만........!!”
“나 믿지. 몸성히 다녀올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아........알았어요.”
유미림이 할 수 없다는 듯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하벽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소행표공자! 공자는 왼쪽 봉우리의 은마마령대를 지휘해 주세요. 그리고 초벽하.”
“말씀하세요.”
“너는 유림소저와 함께 후방을 맡아줘~”
“뭐야! 나보고 뒤치다꺼리나 하라는 말이야.”
초벽하가 쏘아보며 앙칼지게 소리친다. 공식적인 자리라 예의(禮意)를 차려 대우해 주었더니 자신보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소리에 열이 받은 모양이다.
“우리가 편하게 싸울 수 있도록 뒤를 받쳐주는 것도 커다란 임무야. 또 미림님도 함께 계시잖아.”
하벽의 말에 벽하는 발끈하려다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미림을 보고 한숨을 쉬고 만다. 하벽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고, 임신한 유미림을 혼자 둘 수는 없지 않는가?
“부대배치는 끝났고, 아직 구체적인 작전은 없습니다. 무경님으로부터 배화교의 계략적(計略的)인 전력(戰力)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아직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일단 이막수님께서 놈들에 대해 살피고 돌아오시면 다시 논의(論議)하는 것이 순서일 겁니다.”
“그 사이에 놈들이 먼저 공격(攻擊)을 시작하면 어떻게 대응(對應)합니까?”
이번에는 소행표가 질문하다.
“양쪽 봉우리는 전략적(戰略的)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그곳이 점령(占領)당하면 속절없이 이곳 분지(盆地)까지 밀린다고 보셔야 합니다. 소행표공자나 사우님께서는 이점을 명심하시고 놈들이 봉우리로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封鎖)해 주세요.”
“설마 그곳에 뼈를 묻으라는 말씀은 아니죠?”
소행표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질문한다. 초하벽이 너무 단호(斷乎)하게 말하니 당황한 모양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끝을 보자는 것은 아니니 감당키 힘든 공격(攻擊)이라면 물러나야겠죠.”
“그럼 원천적으로 봉쇄(封鎖)하라는 의미가 뭡니까?”
“봉우리를 염탐(廉探)하려 왔던 선발대(先發隊)가 전멸(全滅)했으니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 겁니다. 매복(埋伏)같은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니 놈들이 봉우리로 접근하면 아예 초기부터 강력하게 대응(對應)하라는 뜻입니다.”
“막는데까지 막고, 아니데 싶으면 후퇴(後退)하라는 의미로 알아들으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또 질문 있나요?”
초하벽의 참석자들을 돌아보아도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모두들 말씀이 없군요. 자 그럼 이제 이것으로 회의를 마치고 각자 위치로 이동해 주세요.”
하벽의 말에 모두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드디어 배화교와의 전투(戰鬪)가 시작되었다. 이번 전투에 중원 무림의 운명(運命)이 걸렸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겁다. 소행표가 먼저 오백의 은마마령대를 이끌고 출발하고, 사우와 왕천유도 오백의 은마마령대와 함께 출발했다.
“수랑! 조심하셔야 해요.”
“알았어. 내일 중으로 돌아올게. 미림도 나 없는 동안 조심해.”
이막수가 맞잡은 손을 놓고 하늘로 솟구치자, 겉에 있던 초벽하가 미림의 손을 잡아준다. 지금까지 아무리 위험하고 힘들어도 유미림은 향상 이막수와 함께였다. 이번에 사랑하는 이를 홀로 적진(敵陣)에 보냈다. 사랑하는 이를 믿지만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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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마차를 향해 일마(一魔)가 다가와 창문을 두드린다.
“드르륵~”
“일마(一魔)! 무슨 일이죠?”
창문이 열리며 벽안환요가 고개를 내밀고 질문한다.
“선발대(先發隊)가 방금 돌아왔는데, 천마마련 놈들이 나타났다고 하네.”
“그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벽안환요가 일마(一魔)의 말을 전하자 혁린강이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적당한 곳을 골라 야영(野營)을 준비하라고 하세요.”
“알았어요.”
벽안환요가 혁린강의 말을 전하자 일마(一魔)는 곰석골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자리를 정하고 각 대장들을 불려 모았다.
“앞에 천마마련 놈들이 나타났다. 부대별로 군막(軍幕)을 치고, 경계(警戒)를 늦추지 마라. 한마디 더하면 이곳에 오래 머물 수도 있으니 군막(軍幕)을 튼튼하게 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알겠습니다.”
각 대장들이 흩어지더니 부하들을 이끌고 야영(野營)준비에 들어갔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혁린강이 십대마왕들과 부대장들을 소집해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천마마련 놈들이 나타났다고 했습니까?”
혁린강의 질문에 일마(一魔)가 입구를 지키고 있던 무사에게 손짓하자 선발대(先發隊)로 갔던 3조 조장이 들어왔다.
“제가 설명하기보다 직접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불렸습니다........조장 이야기해봐!”
3조 조장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서서 지도 앞으로 갔다.
“이곳에서 일다경(15분)정도 거리에 곰석골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시면 이곳입니다. 양쪽에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 사이로 샛길이 있는데 마차 3대 정도가 동시에 지날 정도로 상당히 폭이 넓은 편입니다. 하지만 양쪽에 있는 봉우리가 깎아지는 절벽(絶壁)을 이루고 있어 조를 나누어 양쪽 봉우리와 샛길을 동시에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샛길은 대략 20장(丈)정도이며, 끝에 넓은 분지(盆地)가 있는데 그곳에 천마마련으로 보이는 놈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놈들의 정확한 정체나 숫자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양쪽 봉우리를 조사하러 갔던 나머지 20명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매복(埋伏)하고 있던 놈들에게 당한 것으로 추측 됩니다. 이상으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조장의 설명이 끝나자 혁린강이 턱을 받치고 지도를 유심히 바라본다. 이곳 곰석골에서 천마마련이 있는 장사까지는 삼일정도의 거리가 남았다. 또한 자신이 파악하기로 곰석골은 진입로(進入路) 좁고 양쪽에 절벽이 있어 수비(守備)하기는 최상의 조건이나 장소가 협소(狹小)하여 대단위 전투(戰鬪)를 펼치기는 적당하지 않다. 그런데 천마마련 놈들이 본영(本營)을 버리고 이곳에 진을 쳤다. 목적이 뭘까?
“설명 잘 들었어요. 피곤할 것이니 그만 가서 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조장이 나가자 혁린강은 다시 한참동안 지도를 살펴본다. 이곳에서 장사까지는 앞서도 설명했지만 삼일정도 거리다. 하지만 곰석골을 우회(迂廻)하면 삼일이 아니라 열흘이상 더 걸린다.
“공자님.....!!”
혁린강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말이 없자 옆에 있던 벽안환요가 살짝 어깨를 잡으며 부른다.
“잠시 생각 좀 했어요. 음~~ 일단 분지(盆地)에 있다는 놈들이 정말 천마마련인지..........인원이나 전력(戰力)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 갔군요.”
“제가 가서 알아볼까요?”
벽안환요가 스스로 나선다.
“환요님께서 나설 일은 아닙니다. 일마(一魔)님."
"예! 말씀하세요.”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놈들이 누군지. 인원이나 전력(戰力)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서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혁린강이 일어나자 바늘에 꾀인 실처럼 벽안환요도 함께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일마(一魔)는 입맛을 다시다가 주변을 살펴본다.
“공자님 말씀 들었지. 누가 갈래.”
일마(一魔)의 말에 나머지 십대마왕과 대장들이 눈치만 본다. 섬서성에서 이곳까지 쉽지도 못하고 계속 행군(行軍)하여 몸이 천근만근이다. 누가 잠도 못하고 염탐(廉探) 같은 위험한 일을 맡으려 하겠는가?
“쩝~ 모두 싫다는 말이군. 좋아. 내가 간다. 대신 혈영대 대장하고 흑풍대 대장도 동행한다. 다들 이의 없겠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혈영대장과 흑풍대장이 똥 씹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한다. 회의가 끝나자 일마(一魔)가 선두로 혈영대장과 흑풍대장이 샛길을 이용하여 분지(盆地)로 향했다. 한편 자신의 군막(軍幕)으로 돌아온 혁린강을 따라 벽안환요가 들어왔다. 남들의 이목(耳目) 때문에 조심하지만 평소와 다른 모습에 환요가 참지 못하고 따라온 것이다.
“공자님! 무슨 고민이라도 계십니까?”
환요가 혁린강의 앞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왜요? 제가 이상해요?”
“평소에는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지시하시는 분이 오늘은 일마(一魔) 오라버니께 모든 걸 맡기셨잖아요?”
“잠시 생각할 것이 있었어요.”
“뭐죠?”
“저는 의도적으로 흑독애와 포탈랍궁 등 우리의 전력(戰力)을 분산(分散)시켜 놓았어요. 그럼 서로 추구하는 이상(理想)이나 목적이 다른 중원의 여러 집단도 힘이 분산(墳山)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50년 전 은하대전과 같은 참패(慘敗)는 당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거죠.”
“.................”
“지금까지는 제 생각대로 진행됐어요.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제가 최악으로 생각하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죠?”
“50년 전의 천무일룡처럼 중원의 힘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영웅이 나타난다면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가만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제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공자님께서 마수마랑을 염두(念頭)에 두고 하시는 말씀 같은데, 지금 상황은 50년 전과 다릅니다. 우린 벌써 중원의 삼분지 이를 점령(占領)했고, 이제 흑도(黑道)만 밀어버리면 중원 무림이 통째로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됩니다. 더구나 아군(我軍)의 사기(士氣)는 하늘의 찌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수마랑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죠?”
“겉만 보면 환요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그동안 이루어놓은 모든 일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어요. 구파일방과 칠대세가로 대표되는 백도(白道)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놈들은 백도맹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고, 다잡았다고 생각했던 대장군부와 대륙상회도 유유히 빠져나갔으며 가장 믿었던 빙궁마저 우릴 배신(背信)하고 마수마랑을 선택함으로 적(敵)으로 돌아섰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가 힘들게 점령(占領)했던 지역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겁니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일들이 마수마랑과 연결된다는 것은 저도 알아요. 하지만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제 중원에 남아 있는 힘은 흑도(黑道)밖에 없어요. 놈들만 쓸어버리면 끝입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편하게 생각하고 싶은데, 제 예상과 너무 다르게 진행되니 당황스럽습니다. 이번일도 그래요. 천마마련이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발대(先發隊)의 보고를 들으셨으니 곰석골이 수비(守備)하기 최적의 장소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하지만 대단위 전투(戰鬪)를 벌이긴 장소가 협소(狹小)합니다. 더구나 천마마련이 무엇이 아쉬워 철옹성(鐵瓮城) 같은 본영(本營)을 버리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까요?”
“......................”
“제 생각에 분지(盆地)에 있다는 놈들은 천마마련의 선발대(先發隊)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자~ 그럼 선발대라고 치고, 굳이 선발대는 보낸 이유가 뭘까요? 일부라면 무슨 의도일까요?”
혁린강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머리가 복잡하다. 환요가 복잡한 머리를 흔들고 바라보니, 혁린강은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중얼거리고 있다. 환요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님! 공자님!”
환요의 부름에 혁린강이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제가 너무 복잡한 가요. 그냥 단순히 말해..........보이지 않은 거대한 손에 의해 조정당하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이번일도 제갈무경과 마수마랑의 작품일 겁니다.”
“피곤하신 것 같아요. 오늘은 일찍 주무세요.”
환요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드럽게 안아주자 품에 안긴 혁린강이 짧게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들었다.
“제가 환요님께 걱정을 끼쳐드렸군요. 죄송합니다.”
“섭섭해요. 다시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제가 옆에 있을게요. 오늘은 아무생각하지 마시고 주무세요.”
혁린강이 피식 웃으며 침상에 눕자, 환요가 옆에 앉아 머리를 쓸어준다. 오늘 따라 어린 정인이 애처롭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지혜롭고 강한 남자다. 무엇이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까? 혁린강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눈을 감았다. 마수마랑이 강해지길 원한다. 절대자(絶對者)로 군림(君臨)하는 태상교주가 두려워하던 천강성이길 기원한다. 그에게 희망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이 자꾸 어긋나자 불안하고 답답하다. 마음의 돌로 쪼개져 한쪽에서는 마수마랑을 응원하고 있는데, 한쪽은 불안과 초초에 떨고 있다. 무엇에 대한 불안일까? 그가 천강성이라면 패배(敗北)가 확실할 것이라 인정하고 은근히 그걸 바라고 있지 않는가? 그럼 무엇이 불안한 것일까? 지금 겉에 환요가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벽안환요.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자신도 환요를 아끼고 있다. 그녀가 잘못 된다면..........생각만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불안.........초조.........그건 아마도 책임감 때문이 아닐까? 지금 밖에 수천의 혈영대와 흑풍대가 있다. 그들이 누군가? 바로 아끼고 사랑하는 동포(同胞)이자 교도들이다. 자신은 그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혁린강은 계속된 상념(想念)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어둠을 뚫고 일마(一魔)와 대장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샛길로 접어들었다. 이곳부터는 적(敵)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 최대한 은밀하고 빠르게 이동해야 한다. 일마(一魔)의 신호에 맞추어 나머지 대장들도 지형지물(地形地物)을 이용하여 몸을 숨기며 앞으로 전진(前進)했다. 샛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미세한 호흡소리가 들린다. 일마(一魔)와 대장들이 주위에 있는 아름드리나무로 오르더니 가장 상단의 가지를 박차고 일학충천(一鶴衝天)으로 솟구쳐 점처럼 변했다. 풍운의 음양비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일반인들은 새로 착각할 만큼 높은 곳이다. 3개의 그림자가 분지(盆地) 중간에 사뿐히 착지하더니 군막(軍幕)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곳곳에 불을 밝히고 있는 보초들이 눈이 띈다. 그리고 100여개의 군막(軍幕)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는데, 개개의 군막(軍幕) 입구에도 별도의 보초들이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일마(一魔)일행은 군막(軍幕)들 주변을 한 바퀴 둘려보고 가장 구석진 곳의 보초들에게 접근하여 순식간에 제압하여 한명씩의 옆구리에 끼고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일마(一魔)가 기(氣)로써 소리를 차단하고 혈이 제압되어 눈만 깜박이고 있는 보초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누구.........?”
“퍽~”
보초무사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일마(一魔)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뱃가죽을 파고든다.
“욱~”
“묻는 말에만 대답해. 너희들은 누구냐?”
“헉~ 헉~ 천마마련의 은마마령군입니다.”
보초무사는 의외로 순순히 대답한다. 굳이 숨길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은마마령군! 너희들만 온 것이냐?”
“금마마령군도 함께 왔습니다.”
“인원은 얼마나 되지?”
“금마마령군 전체와 은마마령군 2천입니다.”
“금마마령군 전체라고 하면 얼마나 되는 거야?”
“이천입니다.”
“음~ 또~ 다른 놈들은 없어?”
“천마공자(天魔公子)님과 무정공자(無情公子) 그리고 취봉(醉鳳)소저도 함께 있습니다.”
“무정공자(無情公子)? 그놈은 또 뭐야?”
천마공자(天魔公子)가 초하벽의 별호이고 취봉(醉鳳)이 초벽하의 별호이며 그들이 천마마련주의 손자와 손녀라는 것은 들었다. 그런데 무정공자(無情公子)는 누굴까? 그동안 천마마련이 외부활동을 하지 않았던 관계로 그들에 대해 밝혀진 것이 많지 않다.
“북마련의 대표로 이번 전투에 참여한 분입니다.”
“북마련? 그건 또 뭐야?”
일마(一魔)가 짜증난다는 듯이 다그치자 보초무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일마(一魔)님! 그냥 놈들을 잡아가죠.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보다 못한 혈영대장의 말에 일마(一魔)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보조 무사들을 옆구리에 끼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은밀하게 자신들의 본진(本陣)으로 돌아갔다.
<< 계속 >>
------ 작가 주 -------------
** 분지 [basin, 盆地]
위치에 따라 산지 내부에 있는 것을 산간분지, 대륙 내부에 있는 것을 내륙분지라고 한다. 미국 서부의 대분지 등은 산간분지이며, 내륙분지로는 아시아 대륙 내부의 타림 분지와 쓰촨[四川] 분지 등이 있다. 분지저(盆地底)의 성인(成因)에 따라 침식분지와 퇴적분지로 나누어진다. 침식분지는 기반암석이 분지저에 노출하여 침식된 것으로 대륙 내부의 건조지역에 많다. 풍식(風蝕)에 의하여 형성된 와지(?地)의 볼손(bolson) 등이 그 예이며,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알제리 등에 분포한다. 퇴적분지는 분지저에 퇴적물질이 두껍게 쌓인 것을 말한다. 또 분지구조가 생성된 원인에 따라 단층분지 ·곡강분지(曲降盆地) ·칼데라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들을 총칭하여 구조분지라고 한다.
분지 연변의 한쪽 또는 양쪽이 단층에 의한 것으로 분지저가 상대적으로 침하(沈下)하여 생긴 것을 단층분지라 하고, 그 중 한쪽이 단층애(斷層崖), 다른쪽이 경동지괴의 배후면으로 이루어진 것을 단층각분지(斷層角盆地)라 하며, 거의 평행한 단층에 의해서 형성된 것을 지구분지(地溝盆地)라 한다. 곡강분지는 분지의 중심부가 최대의 침강량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리 분지와 런던 분지 등도 분지저는 얕으나 완만한 곡강운동에 의하여 형성된 곡강분지이다. 분지상(盆地狀)의 지형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지질구조적으로 지층이 중심부를 향해서 기울어져 있을 경우에는 구조분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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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배하교에 천마마련의 모든것이 밝혀지면 오히려 급습당하는 편이 더~빠를것 같은데 큰일이네??
감상요~~~~~~~~~~~~~~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