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타이 석굴의 내부 -- 석굴의 제일 안 쪼게 탑이나 불상(신앙 대상물)을 안치한다.
두 종류의 석굴을 뚫었다.
사원 형식의 서굴에는 탑이나 불상을 모시고, 승려도 사원 안에서 거처하면서 매일 예배를 올렸다. 스님들은 석글의 측면에 작은 승방굴(비하라 라고 한다)을 뚫어서 수행도 하고, 거처도 하면서 사원의 종교의례와 관리를 맡았다. 사원형식의 석구을 차아타이(사원이라는 뜻) 양식이라 하고, 나중에는 순전히 수행만을 위하여 승방굴(비하라라고 한다.)만 갖춘 석굴이 나타났다. 비하라 양식이라고 하였다.(불상이나 탑을 모시지 않고, 순전히 스님들이 거처하면서 수행만을 목적으로 뚫은 석굴 입니다.)
석굴사원이 나타난 기원 전후에는 상업이 성행하며너 돈 많은 상인이 많았다.
그리스 상인이 쓴 항해일지에 인도의 서‘족 해안에 항구 도시가 많았다. 항구도시에서 인도 내륙으로 향하는 지역, 또는 무역루트인 데칸고원 지역에 서굴사원이 많았다.
석굴 사원을 만드는데 돈 많은 상인들이 기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자 무역상들 이외에도 상인 자본가, 길드 조합원(산치 대탑에 상인 세공업자가 나온다.) 정원사, 어부, 부녀자, 승려 등 다양한 사람들이 기부하였다. 평민 기부자가 늘어나면서 사원의 규모가 작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평민들이 신앙하는 민속신 중심의 힌두교 사워을 조성하였으리라 믿어진다. 한두교 양식의 석굴이 많아지느 이유이리라. (불교는 교리거 철학적이고 어려워서 평민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5세기 경부터라고 한다.(굽타 앙조 시대이다.)
이처럼 섞굴 사원 조성의 이면에는 역사적-사회적 배경도 있다. 또 승려들이 사회 분위기를 적절히 이용한 면도 있다.
불교 석굴 사원이 밀집해 있는 곳을 보면, 상인들이 다니는 길목인 곳이 많다. 사원건립이 기부하는 일차 목적은 선업(善業)을 베풀어 래세 의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목적이지만, 상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좋은 장소에 석굴사원을 만들어서 행운을 바라는 무역상인들의 시주를 노리는 목적도 있었다. 아잔타 석굴이 대표적인 보기이다.(종교, 미술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세속적인 욕망과 어우러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걸 염두에 두고 바라보면 또다른 재미가 느껴집니다.)
다시 말하자면 석굴사원이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서굴 사원을 차이타이 양식과 비하라 양식의 두 양식으로 나누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