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누군가로부터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갑자기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물음이 될 것 같다.
무어, 말이 쉽지 행복의 조건이 어디 한두 가지로 요약정리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명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이란 자신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느낌이라서 이를 명징하게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행복”이란, 자신이 느껴야 이룩되는 주관적인 관념이지만, “행복한 사람”은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에 의해서 표현되는 객관성을 지녔기 때문에 자칫, 행복과 행복한 사람에 대한 혼선이 일 수도 있을 법하다.
똑같은 악조건하에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신만 불행하다고 스스로 패배의식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중복장애인으로 익히 알려진 헬렌켈러는 “ 난 단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고 자서전에 밝히고 있다.
이와 반대로 유럽을 평정했던 나폴레옹은 “ 나는 단 엿새만 행복감을 느껴보았고 그 나머지 날은 매우 불행하기만 했다고 술회 했다.
나폴레옹은 전투에서 승리한 엿새 동안만 행복감에 취했다는 말이다.
오래전 미국에서 실시되었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와 동메달리스트를 선별하여 메달 수상 당시 행복감 정도를 실험한 일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최고 등위인 금메달에 이은 은메달리스트의 행복감이나 만족감이 더 크다고 생각하겠지만 실험 결과는 이와는 정반대였다는 사실이다.
은메달리스트보다 동메달을 딴 선수들의 행복감과 성취감이 더 컸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주된 이유로는, 은메달리스트는 일등인 금메달을 놓고 경쟁을 했기 때문에 금메달을 놓친 상실감이 컷던 것이고, 동메달리스트는 자칫했으면 등외로 밀려났을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3등이라도 한 것에 대한 만족도가 더 컷다 는 실험 결과를 내놓은 일이 있다.
앞 서의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행복이란 느낌은 상대적인 조건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비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해도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그렇지 않은 삶의 조건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행복의 조건이란 온전히 자신만이 가지는 절대적인 느낌이므로 이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게 풍족한 마음으로 한가위 명절에 조상님을 만나고 일가친지들을 만나서 화목한 시간을 가지기를 희망해본다.
아무리 비단 금침에 휩쌓여 있더라도 내 스스로 불행하다고 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나 같다.
행복은 나만이 알 수 있는 신묘한 느낌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