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역은 베이스다.
남들은 솔까지 올라가는데, 나는 미에서 끝이다. 대신 많이 내려가기는 한다.
문제는 그걸 오랜 세월동안 몰랐다는 것이다.
당연히 음악시험 볼 때 상당한 고초가 있었다.
교회에서 청년중창단을 한 적이 있었는데, 성가대 지위자가 나의 음역을 외모로 판단했던지 삐쩍 마른 나를 테너에 집어넣었다. 보통 저음을 내는 성악가들은 포동하다.
대학교 2학년때 그당시 유행하던 통기타를 배웠다.
통기타는 노래 반주용이다. 그런데 내가 기타 치며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음역이 비슷한 임지훈, 정태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냥 남들 반주나 해줬고, 이정선 기타교실이란 책에 타브악보를 보고 연주를 했다.
그걸 보던 친구 한명이 차라리 클래식 기타나 배우란다. 그래서 “그래볼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구석에서 이정선 기타교실 책에 있는 바하의 부레를 치고 있는데, 한 2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여자분이 한참을 보시더니 자기 남편이 클래식 기타 학원을 하는데 한번 와보라신다.
시간을 좀 보내다가 1991년 신정이 지나고 찾아갔다.
의정부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기타학원이었다.
성이 나와 같은 안씨여서 안선생님이라 불렀다.
이러이러해서 왔다고 하니 매우 반가와하며 그날 자기 아내와 흥분해서 밤새 그 얘기를 했단다. 뭐 흥분할것까지 있나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해가 좀 됐다.
기타학원에 대부분 통기타를 배우러 온다.
나름 전문 연주가인데 통기타 가르치려면 재미가 없을것이다.
물론 가끔 클래식 기타를 배우러 오는 사람도 있는데, 그마저 한달 넘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 교육은 뭘 해도 스파크타식이다. 마치 전문연주가를 길러내는 방식이어서,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을 포기하고 만들고, 가르치던 선생을 지치게 만든다.
그런데 난 이미 그 지저분한 바하의 부레를 혼자 연습해 연주할 정도의 열성이 있었으니, 죽어라 연습했던 본인 예전 생각도 났을테고 흥분할만도 했을 것이다.
교재가 아주 고전적인 카르카시교본이다.
운지의 기초를 배우고, 쉬운 연습곡을 치는데, 조표가 하나씩 는다.
곡 하나하나 정확히 연주 못하면 다음 시간에 그 재미없는 곡들을 다시 연습해서 와야한다. 진도가 나갈리가 없고, 대부분 지쳐서 포기한다.
그런데 난 통기타를 클래식기타같이 치고 있었으니 이미 어느정도 익숙했고, 집에 박혀서 아무 것도 안하고 죽어라 연습만했기에, 쉽게쉽게 통과했다.
그렇게 한달도 안돼, 조별 연습곡들을 끝내고, 어려운 연습곡을 시작하면서, 들어줄만한 쉬운 연주곡을 병행했으니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달 지나 학원비 낼때가 됐을때 공조롭게도 나의 수입원인 과외가 끊겼다.
나는 수입이 없으면 지출도 없앤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가장 큰 문제는 안선생님은 좀 무뚝뚝한 분이셔서 칭찬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잘하고 있는건지 못하고 있는건지도 몰랐고, 다들 최소한 이정도는 하나보다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들은 유일한 긍정적인 말은 보조선생님이 “시간 무지 많은 가봐요. 이렇게 연습을 다 해오고…”였다. 아마 칭찬이라도 좀 받았더라면, 부모님께 학원비 받아 등록했을 것이다.
막상 안선생님께 좀 쉰다고 하니 엄청 실망하시는게 눈에 보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 좁은 의정부에서 안선생님이 만났던 학생중 가장 싹스있었던 학생이었을 것이다.
하여간 그때부터 1년동안 혼자 나름 열심히 연습했다. 기본은 갖췄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까지도 연주했다.
그리고 1년후 다시 복귀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바뀌었다. 안선생님 제자중 하나가 인수한 것이다.
그 선생하고는 나보다 4살 밖에 안 많아 친하게 지냈는데, 나는 그 선생이 좋아할 두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바둑이었고, 둘째는 무척 말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 당시 나는 말없이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두달동안 바둑만 두고 술 마시고 놀다가 별 진전이 없어 그만 뒀다.
그 후에도 연습은 계속했었는데, 연습양이 점점 줄어들고, 이런 저런 일로 한참 연습을 안했더니, 어느 순간 악보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악보를 본다는건, 눈이 악보 콩나물 대가리를 보면, 신기하게도 손이 저절로 정확한 음을 집어낸다. 마치 타자를 배운후 글자를 보면 손이 저절로 가듯이... 그런데 그게 더 이상 안되고 악보에서 더듬더듬 도레미.. 를 세야하고, 자판에서 손가락위치도 세야하니, 죽을 맛이었다.
그때부터 새로운 곡 연습은 포기하고, 예전에 했던 곡을 부활시키는데 중점을 뒀고, 악보를 못보기에 악보를 한줄씩 반복 연습해 통째로 왜워 버렸다.
외워 연주하는 것의 문제는 중간에 틀려 중단이 되면, 어딘지 몰라 처음부터 다시해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부활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곡이 부활하기 전에 내가 사망하겠다.
첫댓글 기타는 제가 손이 무뎌서 잘 안되더군요.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냥 될때까지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