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간식거리로 옥수수 빵을 자주 사주곤 하였다. 지금은 아이들의 입맛도 변해 버렸고 나도 언제부터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오기 보다는 가족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사다 나르다 보니 옥수수 빵은 가끔씩 먹어 볼 수밖에 없는 간식거리가 된지 오래이다.
빵집 옥수수 빵에는 건포도도 들어 있고 나에게는 약간 달작한 맛이 감도는데 초등학교 시절에 급식으로 받아 먹었던 옥수수 빵은 요즘의 옥수수 빵과는 사뭇 맛이 다르다. 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에 급식은 강냉이 죽이었다. 양은 은색 컵에 3분의 2쯤 담아 급식소 앞에서 받아 마시고 씻을 겨를도 없이 바로 뒤 친구에게 컵을 넘겨주면 그 친구의 컵 안에 선생님이 죽을 담아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컵 모양은 삼각형 모양에 가까웠고 입을 대는 위의 모양은 둥글었다. 그런데 참 맛있었던 것으로 생각나고 2학년부터는 강냉이 빵으로 노란색 알알의 입자가 보드라운 정사각형(약12㎝×12㎝) 크기의 빵이었다. 3학년부터 옥수수 급식 빵이 나왔는데 1,2학년까지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맛있게 먹었고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특히 2학년 때 빵 맛이 아직까지도 다시 한번 먹고 싶은 빵 맛으로 지금도 군침이 돈다.
추억 속의 옥수수빵 맛을 만들어 판다는 빵집에 들러 오목조목 빵을 사 가지고 와 먹어본 적도 있었는데 그 옛날 그 맛이 아니었다. 그 때로부터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버려 그 때 그 맛을 정확히 알아내지 못한 것인지 왜 그 맛나는 빵을 만들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 빵 기술은 훨씬 다양하게 놓아져 있는 것만은 확실한데 급식 빵쯤이야 하고 업신여긴 것은 아닐 테지만 하여튼 나는 내가 사온 빵에서 그 때 그 빵 맛이 아님에 고개를 저었을 뿐이다. 거기에는 분명 나의 입맛도 변해져 있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간식거리가 별로 없었던 때를 떠올려 보면 오히려 고급 간식거리로 아이들에게는 기다려졌던 시간도 되었고 맛도 한결 더 좋게 느껴졌던 기억으로 생각하면 실마리가 풀려진다.
나는 어떨 때에 옥수수 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아버지는 이 급식 빵을 좋아하셨는데 3학년부터 6학년 졸업할 때까지 난 이 빵을 거의 먹지 않고 아버지에게 드리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영상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난 빼빼마른 몸에다 달리기를 잘해 학교에서 엄청 잘 달리는 달리기 선수였다. 출발할 때의 순발력도 뛰어났고 마지막 단계를 잘 마무리하는 선수로도 탁월하여 육상부 선생님은 나를 출발선에 뛰게 할까 끝마무리에 내보낼까 고민고민하셨다. 특별히 달리기 선수에게는 급식 빵 2개와 계란 한 개를 주었는데 빵을 집으로 가져오기 위해 빵을 먹는 척 하다가 친구의 눈치를 보고 배가 불러 못 먹겠다고 가방에 넣어 왔던 것이다. 아버지의 입맛이 짧아서인지 밥보다는 빵을 더 좋아하셨고 계란까지 드리니 집에 키우는 암탉이 알을 많이 낳아주어 계란은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날계란은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 못 먹고 집으로 가지고 오다 깨져서 가방을 버린 적도 많았다.
지금처럼 빵집이 흔했다면 나의 급식 빵이 아버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도시의 변두리에서 농사만 짓고 사는 형편으로서는 ‘다과점‘에서 급식 빵처럼 자주 먹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엄마는 어린 딸이 빵을 먹고파도 참고 집으로 가져오는 마음을 알아차리시고 처음에는 용돈을 대신 주시더니 오랫동안 빵을 드리니 자연히 용돈 받는 것도 사라져 버렸다.
2학년 오후반이었을 때 하루는 갑수랑 논도랑 물에서 고무신으로 미꾸라지를 정신없이 잡다가 여름날의 해넘이를 잘 알지 못해 학교 갈 시간을 넘기고서 수업을 마칠 시간에 교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급식소로 빵을 출석한 아이만큼 신청하여 가지러 가셨다가 돌아 오셨는데 늦게 와서 조용히 앉아 자습하는 나를 몰라보고 가져온 빵 개수와 아이들의 수가 맞지 않아 당황한 모습으로 몇 번이나 아이들의 수를 세고 또 세고....... 갸우뚱하시게 한 나이기도 하였다.
옥수수 식빵을 투명한 보랏빛 포도잼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발라줄 때 묘한 기분에 빠져들곤 한다. 그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가 학교가 파하여 돌아오기를 무척 기다리셨다가 입맛이 없던 중에 옥수수 빵을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떠오르면 어떤 때는 왠지 뿌듯한 기분도 든다. 보통 하루에 두 개씩 드렸고 달리기를 잘해 네 개를 받아오는 날은 아버지 앞에서 신나했던 딸을 보고
“이제는 너 먹고 싶으면 먹고 남겨오지 않도록 해라”
하고 울먹이신 날도 있었다.
어린 날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달력을 갖다 놓고 하루가 지나면 가위표를 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계절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서 한 살을 더 먹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니만 세월이 빠르다는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 즈음에는 벌써 소중했던 많은 것들이 잃어져 버린 상태가 된다는 것을 왜 알지 못 했을까? 옥수수 빵을 집으로 가져오기 위해 친구들 앞에서 배가 불러 못 먹겠다고 하며 슬며시 가방으로 빵을 넣어왔던 날들의 연기력이 지금 생각하면 대단했던 것으로 나는 자찬하고 싶다. 아버지에게 옥수수 빵을 드리고자 내가 3학년에서 6학년까지 빵을 먹어 본 양을 다 합쳐본다면 총 두개를 넘지 못할 것이기에.......
옥수수 빵을 드시고 기운을 차리셨던 아버지의 눈에 어린 딸은 어떻게 비쳐졌을까? 그 빵이 어린 것이 참고 가져온 빵임을 알고도 먹을 수밖에 없었던 병중의 아버지의 마음을 그 누가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아버지는 늘 나의 두 눈에 강력한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 주시곤 했다. 일일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알 수 있었던 그 아름다운 아버지의 눈빛이 진정 사랑임을 어린 나였지만 알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