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도(祈禱):(Greek euchesthai, Latin precari,
French
prier, to plead, to beg, to ask earnestly).
피정에서 안경렬 신부님의 강의를
토대로 기도의 정의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기도란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정의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도 그렇지만, 하느님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뜻은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들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는 방법 가운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을 읽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또는 직접 말씀해 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성경을 필사(쓰고, write)하고, 성경 내용을 묵상하고, 성경 말씀을 서로 나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기도의 어원은 구약성경을 보면 사무엘 하권(7:27), 열왕기 상권(8:28)에서처럼 "중재한다, 사이에 들어간다"에서
유래한다. 신약성경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기원, 무엇을 의탁함, 원함" 등에서 기원한다(Luke 5: 33; 22: 42; Col 1: 3).
구약 시대의 기도는 전지 전능하시고 살아 계신 인격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의 기도였다. 하느님은 선하신 분이시므로 선한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고, 또한 하느님과 화합이 가능하며 잘못을 용서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신약 시대의 기도는 영적이다. 아버지를
대하듯
솔직하고 확신에 찬 마음과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것과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었다. 즉 인간은 일시적이고 사소한 소원을 하느님의 뜻에 복종시켰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올바르게
구하기만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Luke 11: 9-10)고 하였다.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는 신뢰심과 인내 그리고 확신을 가져야 하고, 하느님의
뜻에 일치해야 한다. 그런데 기도는 사사로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으로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기도의 자세를 어떻게 취하는 것이
좋은가 보자. 먼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는 일어서며, 죄를 고백하고 통회할 때는 무릎을 꿇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앉는다. 기도는 언제나
해도 좋으나, 가능하면 조용하고 하루 중
제일 좋은 시간을 택해야
한다. 아침은 하루의 모든 일과를 드리며, 저녁은
하루를 반성하고 감사하고
내일을 의탁하며 편안한 밤이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좋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장 좋은 기도의
장소이다.
교회에는 감실이 있으며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고 성체를 이루는 제단이 있기에 가장 좋다.
기도에는 소리기도(念經祈禱)와
마음기도(默想祈禱)가 있다. 소리기도는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을 하느님께 표현하기 위해 소리내어 하는
기도이다. 이는 어떤 기도문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정성되이 외움을 말한다. 마음기도는 하느님과
직접 관계되는 일이나 하느님께로
이끌어 가는 일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한다.
특히 마음 기도는 하느님께서 내
앞에 현존하심과 그분 앞에 자신이 대면해
있는 마음으로, 자신의 영성 생활에
대해 관찰하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주님과 대화하며, 감사하고 새로운 결심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묵상 자료는
대자연, 성경, 신심 서적, 교회의 가르침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신비적(神秘的) 기도가 있는데, 이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깨닫고 있든 없든,
우리의 모든 생활에 하느님께서 침투하시는 분위기이며 그 동향을 말한다. 기도는 일상 기도, 성체 중심의 기도(미사 전례, 성체 기도
등), 축성, 축복, 화살 기도 등이 있다. 그리고 기도의 요소로는 흠숭, 감사, 간구, 참회 등이 있다. 그러나 기도는 단순히 기도문을 외우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화해야 한다(2데살 3, 5). 흠숭(欽崇)이란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거룩하심과 선하심을 공경하는
것이며, 감사(感謝)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섭리하시고 사랑과 은총을 풍성히 주심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간구(懇求)란 하느님의 오묘한
진리와 이치를 알 수 있도록 구하고, 자신과 타인의 구원과 행복을 청하는
것이다. 참회(懺悔)란 자신을 반성하고 뉘우치며 용서를 청하는 것을 말한다. 기도와 전례들을 수록한 기도서 :
천주 성교 공과(功課)가 1862년 목판으로 인쇄되어 출간되었다. 그 후에, 1963년 2차 바티칸 공의회 결정에 따라, 1969년 가톨릭
기도서가 출간될 때까지 약 백여년간 한국 가톨릭교회의 공식 기도서였다.
(2) 묵상기도
(默想祈禱)
묵상은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
몰두시켜 하느님의 현존 속에, 하느님과 관련된 일에 대하여 생각에 잠기는 것을 말한다. 묵상은 신앙의 신비나 그 진리,
예수님이나 성인들의 생애,
성경, 교회의 가르침 등을 깊이 생각함으로써, 신앙을 보다 깊이 통찰하고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알게 한다. 그러나
이는 관상과는 구별된다.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 수련묵상법은 그 좋은
예이다. 묵상기도는 생각만으로 드리는 마음의 기도이다.
묵도(默禱)는 "말없이 기도하다, 묵상하다, 명상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소리기도(염경기도, 통경기도)와 구분한 마음기도(묵상,
명상)이다. 통경기도란 여럿이 함께
소리내어 하는 기도이며, 염경기도
역시 소리내어 하는 기도이다.이렇게 보면
눈을 감는 것(默念) 역시 마음기도
혹은 그 준비라고 말할 수 있다. 눈을 감는다는 뜻은 생각을 모아 일체의 잡념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동작이다. 일반 종교 의식이나 국민
의례에서도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음으로써, 번잡한 세상과 인연을 끊고 고인(故人)이나 심오한 진리에 마음을 기울인다. 우리는 영성체, 복음
낭독, 강론 후 묵상 때 눈을 감고 우리의 마음을 드높은 세계로 올린다. 언제
어디서고 조용히 눈을 감고 영원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마음의 눈을 돌린다면,
우리는 깊은 신앙으로 인도될
것이다.
(3) 염경기도(念經祈禱 라틴어: oratio vocalis 영어: Vocal
Prayer)
기도는 크게 염경기도와
묵상기도로 나누어진다. 염경기도란 자신의 생각과
마음 속의 감정을
하느님께 표현하기 위해 소리를 내어서 하는 기도를 말한다. 그러나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형식 즉,
교회가 정한
기도문을 마음 속으로 그 뜻을 깊이
생각하면서 읽거나, 외어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기도서의 모든 기도문, 미사경문,
로사리오기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염경기도는 개인적으로, 혹은 여러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다.
(4) 9일 기도(라틴어 novena 영어 novena)
개인이나
공동체가 특별한 은총을 받기 위하여 9일 동안 계속하여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의 근거는
사도들이 성모마리아와 함께
예수 승천 후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였던 데서 찾을 수 있다(사도 1:13-14). 또한 당시 그리스와
로마에서 위대한 인물이 죽었을 때 9일간 슬퍼하던 풍속을
그리스도화한 것이라는 설(說)도 있다. 9일
기도는 수 세기 동안 교회에서 장려되어 왔는데, 특히 17세기초에는 교회
축일을 앞두고 그 준비로서, 또는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 많은 신자들에 의해 즐겨 바쳐졌다. 보통 9일 기도는 규정된
기도문과 함께 고해성사, 영성체 등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교회는 성령강림
대축일을 앞두고 각 본당별로 9일
기도를 바칠 것을 권장하고 있다.
(5) 통회의 기도(痛悔∼祈禱) act of contrition
하느님의 자녀로서 죄를 지은데 대해
가슴 아파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드리는 기도. 고해성사,
저녁기도 등의 일부를 이루며, 자신의 죄를 반성할 때 일반적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자신이 범한 죄를 뉘우치고, 슬퍼함과 동시에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덕(德)의 행위. 죄를 뉘우치는 행위란 죄를 싫어하고 미워했다면 범하지 않았을 과거의 죄를 대상으로 하여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연결된다.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슬퍼한다는 것은 죄로 인해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이 이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동반한다. 이 통회가 유효하기 위한 4개의 조건이 있다. ①
일시적 기분이나 감정으로 통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통회의 마음이 우러나와야 한다. ② 그래서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 죄가 사해지도록 해야 한다. ③ 지금까지 지은 모든
대죄(大罪)를 슬퍼하여 고해성사를 통해 죄가 사해지도록 해야한다. ④ 주체적으로 자신이 지은
죄가 최대의 악임을 인식하고 여기에 합당한 보속을 한다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통회에는
완전통회(完全痛悔 혹은 上等痛悔), 불완전통회(不完全痛悔 혹은 下等痛悔)가 있다. 마지막으로 통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따라서 통회 이후는 하느님이 정해준 법에 따라 생활하며 절대로 죄를 범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6) 저녁기도(라틴어 vesperae 영어 vespers)
①
아침기도인 찬미경(讚美經, Laudes)과 함께
성무일도(聖務日禱)의 두 개의 돌쩌귀로서 가장 중요한
시간경(전례헌장 89조 a). 저녁기도는 하루 동안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은총과 작자가 올바로 행한 것에 대해 감사드리기 위해서 낮이 기울어
저녁이 될 때 바치는 것이다. 교회 전통에 있어 저녁은 특별히 촛불을 밝히면서 하느님의 창조행위와 유대백성들의
이집트 노예생활에서의 해방,
십자가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행위와 최후만찬을 기념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특별한
종교적 의미로 인해 신자들은 아침뿐만 아니라 저녁에도 다 함께 모여서
하루 일의 마침을 감사하고 일에서 해방되어 인간의 가장 고귀한 행위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원래 저녁기도는 밤기도(night
office)의 일부였으며, 기도를 바칠 때 촛불을 켰으므로 명칭이
‘Lucernarium’이었다. 이 저녁기도는 성 베네딕토(St. Benedictus a Nursia, 480?∼547) 시대부터 해가 지기 전
저녁에 외워졌고 중세 후기부터는 오후에 외워졌다. 1971년에 개정된 성무일도서에는 찬미가, 두 개의 시편, 신약성서에서 따온 찬가(canticle),
성경소구, 응송, 막니피캇, 청원기도,
주의 기도, 본기도, 강복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로마전례에서는 모든 주일과 대축일에 제1 저녁기도와 제2 저녁기도를 바친다. 저녁기도는 장엄하게
제단에서 향을 피우는 동안 막니피캇이 노래될 때 절정에 오른다.
② 일반 신자들도 저녁 한때 마음을 수습하고 하루 생활을 반성하며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하고 감사하는 저녁기도를 바친다. 한국
주교회의는 일반신자들이 저녁기도로 반성의
기도와 통회의 기도, 신덕송과 망덕송, 애덕송을 외울 것을
결정하였다.
(7) 끝기도(라틴어 completorium 영어 complines)
자정(子正)이 지난 후라도 밤의 휴식으로 물러가기
전에 바치는 하루의 마지막 성무일도(聖務日禱). 종과경(終果經)이라고도 한다. 그 기원은 일반적으로 성 베네딕토(St. Benedictus, 480~547)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성 바실리오(St.
Basilius, 329~?)가 저녁기도 후에
바치는 기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을 볼 때 그 이전에도 그러한 기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끝기도와 일치하는 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리스식
전례에서 5세기 초에 끝기도가 존재하고 있었다.
즉 콘스탄티노플의 루피니아네(Rufinianes)에서 끝기도를 바치고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끝기도는 양심성찰,
찬미가, 시편,
성경소구, 응송,
시메온의 노래(Nunc dimittis), 맺는 기도,
강복, 성모 찬송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성무일도
(8) 성무일도(聖務日禱 라틴어 Officium Divinum 영어 Divine
Office)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공적(公的)이고 공통적인 기도.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함께 기도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그 다음 여러 지방에서는 공동기도를 위해 특별한
시간을 배정하는 관습이 발전하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부(敎父)들은 다른 시간들도
공동기도로써 거룩히 지내기 시작하였다. 공동으로 바친 이 기도는 점차 일정한 시간의 주기로서 좀
더 확실한 형태를 취해 시간경 혹은
성무일도가 되었다. 시간경을 바치는
방법에 있어, 여러 시대에서 중대한 변경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에는 개인으로 바치는 관례를 들 수 있다. 교황 성
비오(St. Pius) 5세가 1568년 공포한 로마 성무일도서(Breviarium Romanum)는 라틴 교회의 공적
기도의 통일성을 가져왔다. 1911년 교황 성
비오(St. Pius) 10세는 새 성무일도서를 편찬했는데, 매주 150개의 시편들을 외던 옛
관습을 복수시키고 시편부분의 전체
배열을 변경시켰다. 최신판 ≪성무일도서≫는 교황
바오로 6세의 교회헌장 <라우디스 칸티쿰>(Laudis Canticum, 1970. 11. 1)에 의해
공포되었다. 이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의 지시에
따라 성무일도의 내용과 배치를 전면적으로 개정한 것이다. 사제와 부제들은 성무일도를
바칠 의무가 있으며, 수도자들은
수도회의 회헌에 따라
성무일도를 바치게 되었다. 일반신자들도 바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성무일도서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전례시기 고유 ②
연중시기 주일 ③ 성무일도
통상문 ④ 전례용 시편 ⑤
성인 고유부분 공통 성무일도 ⑥ 죽은 자를 위한 성무일도. 이상의 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은 정시과(定時課,
canonical hours)를 포함하고 있다. 즉 독서의 기도,
아침기도, 3시경, 6시경, 9시경, 저녁기도,
끝기도 나누어진다.
(9) 아침기도(라틴어 Laudes, Matutinum 영어 Lauds,
Matins)
① 가톨릭 교회의 일반
신자들이 아침에 드리는 기도, 이는
하느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께 속죄하는 하루가
되도록 생활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는 기도이며
조과(早課)라 부르기도 하였다. 일찍이 3세기의 테르툴리아노(Tertulianus)는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가리켜
합법적인 기도라고 한 적이 있고, 로마의
히폴리토(Hippolytus of Rome)에 의하면 신자공동체는 아침마다 주교가 지정한 장소에 모여
사제와 부제로부터 봉독한
성서와 관련된 주제의 강론을 듣고
기도를 하였다.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칙령 이후 신자들이 급증하자 교회는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의
시간을 정하고 이 기도를 드리도록
모든 신자에게 명하였다. 신자들은 새로운 하루를 주신 아버지 하느님께
예수를 통하여 감사를 드리며(골로 3:17), 하루 일과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1고린 10:31) 성실히 수행 할 수 있는 은총 주시기를
자유롭게 기도한다. 이러한
자유기도에 익숙하지 못한 신자들을 위하여 또 공동으로 기도드릴 때의
편의를 위하여 한국 천주교주교회의는
주의 기도와
봉헌의 기도 등으로 구성된
아침기도문을 만들어 두었다. ② 성무일도(聖務日禱)의 찬과(讚課). 이는
찬미경이라고도 불린 기도인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아침기도’로 바뀌었다. 아침기도는 찬미가
시편, 성경소구,
응송, 즈가리야의 노래,
청원기도, 주의 기도,
본기도, 강복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기도의 이러한 구성과 성무일도의
기도시간 편성은 이미 6세기 베네딕토(St. Benedictus)의 저서에 나타나며 이보다 앞서 3세기에 신자
공동체가 일정한 장소에 모여 기도하였던
아침기도에서 그 원형(原型)을 찾을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무일도의 개정에
있어 원칙을 정하면서 "아침기도인 찬미경과 저녁기도인
만과경은 온 성교회의 존엄한
전통에 따라 매일 성무일도의 두 개의
돌쩌귀로서 가장 중요한 시간경으로 간주될
것이며 또한 이런 관점에서 바쳐져야 한다"(전례헌장 89)고 하였다. (⇒) 성무일도
(10) 영광송(榮光誦 라틴어
doxologia 영어 doxology)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 또는
기도, 찬사를 ‘영광송’이라고 부른다.
미사 때 소리 내어 외거나 부르는 "하늘 높은 곳에는
천주님께 영광"(Gloria in excelsis Deo)으로 시작되는 기도를 대(大)영광송(doxologia
major)이라고 하며,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Gloria Patri)이라는
기도를 소(小)영광송(doxologia miror)이라
한다. 성서에 있어서의 영광송은 보통은 하느님께 바쳐지지만 약간의 경우, 예를 들면
로마 16:27,
묵시 5:12에서처럼,
그리스도에게 바쳐지고 있다. ‘영광’ 즉
doxa(gloria)라는 말이 거의 늘 사용되기 때문에 'doxologa'라는 명칭이 생겼다. 그리스어 doxa[의견, 찬사] +
logia[학, 지식]가 합해서 된 말이며, ‘글로리아’(Gloria)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영광송에 나오는 최초의 말로부터 파생되었다.
영광송의 옛 말은 ‘영광경’(榮光經)이었는데, 이는 소영광송을 가리키는 용어였음이 확실하고, ‘영복경’(榮福經)이라는 옛말이
대영광송 쪽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한국
천주교회 초기 때부터 쓰여 온 이 말은 오늘날에 와서는
영광송으로 일괄하여 바뀌었으므로, 재래의 영복경이 대영광송으로, 재래의
영광경은 소영광송의 의미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성삼위를 찬미하는 내용이지만,
성령을 끝에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는
로마식 미사 전례의 대영광송의 경우,
라틴어 본문은 9세기 이래 종국적으로 결정된 것이며,
작자는 명확하지 않다. 처음에는 주일 및 순교자의 축일에 주교에게만 이를 부르도록 허용되었고,
신부에게는
부활 대축일에만 허용되어 왔는데, 11세기부터 그 구별이
없어졌다. 오늘날에는 대림절과 사순절 아닌 모든
주일과 대축일과 축일과 특수한 행사 때에
대영광송을 노래하든지 읽는다. [참고문헌] E.v.
Goltz, Das Gebet in der altesten Christenheit, 1901 / A. Baumstark, Die
Textuberlieferung des Hymnus angelicus, 1919 / J.A. Jungmann, The Mass of the
Roman Rite, tr. F.A. Brunner, vol. 2, New York 1951~1955. [참고 : 현재 개정된 영광송은
다음과 같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11) 주의기도(라틴어 Pater
Noster, Oratio dominica 영어: Lord’s Prayer)
그리스도 예수님이 몸소 가르쳐주신
기도문. 기도의 방법을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루가
11:2-4)과 산상수훈의 일부(마태 6:9-12) 등 두 가지로 기술되어
있다. 후자가 현재의 주의 기도 형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주의
기도는 7가지
희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세 가지는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네 가지는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다. 주의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 교도의 공동유산인데, 여기에는 성부(聖父)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신뢰,
하느님의 초월성, 은총을 간구하는
기도의 필요성,
도덕의 근원이
하느님의 의지를 행함에 있다는 인식, 그리고
구원조건으로서의 악과의 투쟁 등이 망라되어 있다.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추가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라는 부분은 16세기에 덧붙여진 것으로 원래
성서 자료는 아니다. 주의
기도는 사도시대 이후 교회 전례와
예비자 신앙고백의 일부가 되었으며
교부와 교회학자들의 각별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12) 본기도(本祈禱 라틴어
collecta 영어 collect)
미사에 있어, 말씀의
전례 직전에
미사의 개회식을 마무리짓는
사제의 짧은
기도. 미사에 참석한 모든 신자들의 마음 속 청원을 모아서
사제가 대표로 바치는
기도로서 성자(聖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힘으로 성부(聖父)께 올려지거나 혹
성자께 올려지는
기도이다. 이 때
사제는 양 팔을 벌리고
기도하는데, 이는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장엄한
기도의 자세이다.
사제가 먼저 “기도합시다”라고 하면 신자들은 잠깐 동안
침묵 중에서 각자 기도의 지향(志向)을
묵상하고,
사제의 기도가 끝나면 이
기도에 마음을 결합시키고 동의하는 뜻으로 “아멘”하고
응답한다. 본기도는 4, 5세기경부터 글로 써서 준비한 뒤 미사 중에 바쳐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것들 중 의미
있고 아름다우며 너무 길지 않은 적당한 것들이 추려져 미사경본에 수록되었다. 오늘날 본기도는 항상 일정하지
않고 주일과 주요
축일미사 때마다 조금씩 다른데,
사제는 그날에 정해진 본기도를
미사경본에서 찾게 된다. 본기도는 그날의 독서와
복음, 강론과 연관되는 가장 중심적인
기도이다
(13) 화살기도
자녀가 부모에게 매달리듯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과 원의를 하느님께 올리며, 간절한 기도를 짧게 올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예수 마리아 요셉, 저를 도와 주소서”,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이시여, 주님의 마음과 제 마음을 같게 하소서” 등의 간단한 말마디를 수시로 하는 기도를
말한다
(14) 묵주기도(영어 Rosary)
장미화관, 장미 꽃다발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 Rosarium이며 묵주(默珠), 혹은 묵주의
기도를 가리키는 말. 묵주란
구슬이나 나무알을 열 개씩 구분하여 여섯 마디로 엮은 염주형식의 것으로 십자가가 달려있는 물건이며, 이를 사용하여 성모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묵주의 기도라
한다. 로사리오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도미니코 성인(St. Dominicus, 1170~1221)이 선교하는데 어려움을 당하여 성모께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던 중, 성모님이 나타나서 묵주를
주시고 묵주의
기도를 널리 전하라고 하셨다는 전설(Alan de la Roche의 Apologia에서),
도미니코회원이 신앙의
진리를 연속하여 설교할
때 작은 주제가 끝날 때마다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합송하였던 설교방식에 유래한다는 설, 12세기 문맹자들이 전례에서 시편의
구절을 읽는 대신 주의 기도 150회를 3부분으로 나누어 암송하던 관습에서 발전되었다는 설 등이다. 그 뒤로 여러
교황은 로사리오의 역사적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심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칙서를 통하여 로사리오를 널리 권장하였다. 로사리오의 방식은 여러 가지이며, 교황
성 비오 5세의 칙서(1569년)는 그 방식을 표준화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 표준에 따르면 로사리오는
염경기도와 묵상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즉 성모송
열 번과 주의 기도 및 영광송
각 한 번이 모여 한 단을 이루고 그 한 단이 모여 5단 또는 15단이 된다. 묵상기도의 내용은 구원의
역사이며 이를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로 구분하였는데, 각 신비는
5개의 묵상주제로 이루어졌으므로 모두 15개의 주제가 되어, 염경기도 15단을 드릴 때 각 단마다 각 주제를 묵상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로사리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염경기도를 드리는 것이요, 가장 먼저, 가장 깊은 체험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사신 성모를 통하여 그분의 신비를
접근하고 친밀해지며 구원의
신비와 일치하면서 성모처럼 인류 구원의
협조자 구실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성모는 1858년 루르드(Lourdes)에서, 1917년 파티마(Fatima)에서 각각 발현하여 로사리오를 열심히 바치라고 당부하였다. 교회는 로사리오 축일을
지내고 로사리오 성월을
정하여 로사리오에 의한 신심을
장려한다. 묵주란 매괴(枚塊)라고도 하는데 이는 중국에 많이 나는 장미과의 낙엽 관목(落葉灌木)으로, 향기가 나는 떼찔레를 말한다. 또 묵주란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기 위해 구슬을 열 개씩 구분하여, 보통 다섯 마디로 엮은 염주 형식의 환(環)을 말한다.그리고 묵주 기도를
로사리오(Rosarium)라고도 하는데, 이는 로사리오라는 말이 장미 꽃다발(花冠)을 뜻하기 때문이다. 결국 묵주 기도란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신비 속에서 성모님께 드리는 장미 꽃다발이다. 따라서 묵주는 염주와는 무관하다. 초세기 이교인(異敎人)들에게는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쓰는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초대 교회 신자들도 이 관습을 따라, 기도 대신 장미꽃을 하느님께 바치곤 하였다.특히
순교 때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썼다. 이는 하느님을 뵙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예모(禮帽)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밤중에 몰래 순교자들이 썼던 장미관을 한데 모아 놓고, 그 꽃송이마다 기도를 한 가지씩 올리곤 하였다.한편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隱修者)들은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낱알을 둥글게 엮어 하나씩 굴리면서 기도의 횟수를 세곤 하였다. 죽은 자들을 위해 시편 50편이나 100편을 외웠는데, 글을
모르는 사람은 시편 대신 주님의 기도를 그만큼 바쳤다. 이때 그 수를 세기가 불편하므로 열매나 구슬 150개를 끈이나 가는 줄에 꿰어
사용하였다.그런데 12세기에 이르러 삼종 기도가 널리 보급되면서, 성모님께 대한 신심도 깊어져, 주님의 기도 대신 성모송을 50번이나 150번을
위와 같은 식으로 하였다. 그러다가 열 번째는 좀더 큰 열매나 구슬을 사용하여 시편의 후렴처럼 주님의 기도를 바쳤다.그뿐만 아니라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깊어지자, 성모님의 다섯 가지의 기쁨, 즉 성모 영보(주님 탄생 예고), 예수 성탄, 부활, 승천, 성모 승천 등과 관련지어 묵상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후에는 성모 칠락(七樂)을 묵상하다가는 급기야는 열다섯 가지 기쁨을 묵상하기도 하였다.그러다가 13세기에는 영광송이
삽입되었다. 성모송 10번마다 영광송을 하였는데, 이는 성무 일도 시편을 외울 때마다 하는 영광송을 본뜬 것이다. 그런데 당시 알비파 이교인들이
툴르즈 지방을 침략하자, 성 도미니코는 묵주 기도란 마리아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라면서,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이때 드디어 초대 교회의
신심과 연결된 장미 꽃다발, 즉 ‘로사리오’라는 말이 등장하였다.15세기에 이르러서는 두 가지 형태의 묵주 기도가 등장한다. 하나는 도미니코
묵주 기도로 150번의 성모송을 연속적으로 바치면서, 예수님이나 마리아 생애 중 중요한 순간들을 묵상하는 것이었다.그러다가 1464년 알랑 드
뤼프 수사는 그 신비들을 강생과 수난, 부활에 따른 환희, 고통과 영광 등 세 가지 신비로 묶어 묵상하였다. 그 후 이 기도는 급속도로 퍼져
나가 전통적인 신비 15가지로 자리 잡았다.그런데 한편 프란치스코 묵주 기도는 알랑의 경우보다 앞섰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기도는 주로
성모님의 칠락을 묵상하였는데, 오늘날 ‘칠락 묵주 기도’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3. 신심: 묵주 기도는 만민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마리아와 함께 묵상한다. 뿐만 아니라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신비를 묵상한다. 이 신심의
본격적인 전파는 1830년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열심히 이 기도를 바칠 것을 호소하면서부터이다.1830년 파리에 처음으로 15개의 보석으로 꾸며진
반지를 끼고 성모님이 발현하셨고, 1846년은 라살레트에서 머리, 가슴, 발에 오색 찬란한 꽃(薔薇)으로 만든 화관을 두르고 발현하셨다. 그리고
1858년에루르드에 발현하셨을 때는 묵주를 들고 나타나시어 베르나데타에게 직접 기도를 가르쳐 주기도 하셨다.1883년 교황 레오 13세는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 기도를 바칠 것을 호소하였고, 교황 비오 10세는 묵주 기도만큼 아름답고 은총을 많이 내리게 하는 기도가
없다고 하였다.그 후 1917년 파티마에 6번이나 성모님이 나타나시어, 매일 묵주 기도를 15단씩 바치면 전쟁이 끝나고 죄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중 세 번째 발현하셨을 때는 각 단(端)을 바친 후, 구원을 비는 기도(救援誦)를 바치라고 하셨으며, 마지막 발현에서는 당신 자신을
‘매괴의 모후’라고 선언하셨다.묵주 기도는 이처럼 마리아께서 가장 기뻐하는 선물이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라도 바칠 수 있는 기도이다. 특히
교회에서 본보기로 정한 15가지 신비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지향을 두고 다양하게 그 신비를 묵상하는 것도 매우 유익할 것이다. 4. 구성과
기도 방법: 1569년 교황 비오 5세는 그 방법과 구성을 표준화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묵주 기도는 소리 기도와 마음 기도로 되어 있다.
소리 기도로 성모송 열 번, 주님의 기도 및 영광송 각 한 번씩 한다. 이것이 1단(端)이며 한 꿰미(꾸러미)는 5단 또는 15단으로 이룬다.
그리고 마음 기도로는 환희(歡喜), 고통(苦痛), 영광(榮光) 등 세 개의 신비로 되어 있는데, 각 신비는 5개의 묵상 주제를 이루고 있어 한
주제를 한 단마다 묵상한다. 먼저 (십자가를 잡은 채, 발 부분에 친구) 성호경과 사도 신경을 한다. 그리고 다음의 묵주 알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한다. 이렇게 세 개의 묵주 알을 각각 차례로 잡아 가며 성모송을 세 번 할 때, ‘성부의 지극히 거룩하신 딸 마리아, 성자의 평생
동정이신 어머니 마리아, 성령의 지극히 정결한 짝이신 마리아’를 묵상하기도 한다.그리고 다섯 번째의 묵주 알을 잡고 영광송을 한 다음, 원하면
구원송을 하고 이어서 묵상 주제인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외운다. 예를 들어 “환희의 신비 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라고 한다.그리고 이어 주님의 기도를 바친 다음, 갈라진 다음의 묵주 알을 잡고 성모송을 열 번 한다. 그리고 성모송을 할
때마다 알을 하나씩 넘긴다. 이렇게 묵주 알을 열 번 넘기면, 중간에 조금 큰 알이 나온다. 그때 그 묵주 알을 잡고 영광송과 원하면 구원송을
한다. 그리고 이어서 “…의 신비 2단, …묵상합시다” 한다.그리고 전과 같이 주님의 기도를 바친 다음, 묵주 알을 하나씩 넘기면서 성모송 열
번을 한다. 다음에도 같은 방법으로 3단, 4단, 5단 한 다음 (십자가에 친구를 하기도 함) 성호경으로 끝을 맺는다.그런데 보통 환희의 신비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고통의 신비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영광의 신비는 수요일과 토요일에 바친다. 그리고 사도 신경을 생략하기도 하나, 되도록
생략하지 않도록 한다. 또한 이 기도는 묵주를 들고 공동으로 하되, 특히 미사 전례 중에는 삼가야 한다.묵주기도는 주님의 기도 1번, 성모송
10번, 영광송 1번을 1단(段)으로 삼아, 각 단마다 예수님 생애의 중요한 사건들을 묵상하면서 성모님과 함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기도이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복음서 전체의 요약"이라고 했을 정도로 중요하고 의미깊은 기도입니다.묵주기도는 라틴어로
로사리오(Rosario, Rosarium)라고 부릅니다. 장미 꽃다발 또는 장미 꽃밭이라는 뜻이지요. 이 기도를 중국에서는 매괴신공이라고
불렀습니다. 매괴란 장미과에 속하는 떼찔레꽃을 말하는데 서양 꽃인 장미를 중국에서 매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매괴신공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만, 지금은 묵주기도(默珠祈禱)라고 부릅니다. 신공이란 기도를 뜻합니다. 박해 시대에 로마에서 순교자들이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가 사자의 먹이가 될 때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면 박해를 피한 신자들이 몰래 그 시신을
거두어들이면서 장미관을 모아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한 가지씩 바쳤다고 하지요. 한편 수도자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막의 은수자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매일 시편을 50편, 100편 또는 150편을 바쳤는데, 이것이 나중에 수도자들의 성무일과(聖務日課, 기도)가 됐습니다. 그런데
글을 모르는 수도자들의 경우에는 시편 대신에 주님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바치는 회수를 세기 위해 작은 돌맹이나 곡식알 같은 것을 실로 묶어서
굴리면서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묵주로 발전한 것이지요. 12세기 이후 특히 삼종기도가 널리 보급되면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깊어지자
열심한 신자들은 주님의 기도 대신에 성모송을 50번 또는 150번씩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묵주기도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된 것은
15세기에 와서입니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알랑 드 라 로슈 수사가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를 나누어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했고, 이것이
퍼져나가면서 전통적인 15단 묵주기도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앞서 13~14세기에 프란치스코 수도회 등을 중심으로 성모님의
7가지 기쁨을 묵상하면서 묵주기도를 바치는 관습이 퍼져나갔는데 7락 묵주기도 혹은 7단 묵주기도라고 해서 프란치스코회에서는 오늘날에도 이 기도를
즐겨 바치고 있습니다.교황 비오 5세는 1569년 묵주기도의 기도문과 형식을 정했습니다. 즉 묵주기도를 환희의 신비 5단, 고통의 신비 5단,
영광의 신비 5단, 모두 15단으로 정하고 각 단은 주님의 기도 한 번과 성모송 10번, 영광송 1번으로 이뤄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환희의
신비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고통의 신비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영광의 신비는 수요일과 토요일 및 주일에 바치토록 했습니다. 최근까지 이어져오던 이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였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재위 25년 첫 날인 2002년 10월 16일에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를 반포하고, 묵주기도를 바칠 때 전통적으로 묵상하던 세 가지 신비 외에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다섯 가지 중요한 사건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를 추가토록 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또 빛의 신비를 가능하면 환희의 신비와 고통의 신비 사이에 바칠 것을
권고했습니다. 월요일은 환희의 신비를, 화요일에는 고통의 신비를, 수요일에는 영광의 신비를 바치는 것은 종전과 같지만, 목요일에는 빛의 신비를,
금요일은 고통의 신비를, 토요일에는 환희의 신비를, 그리고 주일에는 영광의 신비를 바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목요일에 빛의 신비를 바치는
것은 성 목요일이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고, 빛의 신비 제5단이 바로 이 신비를 묵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토요일에 환희의 신비를 바치는 것은 전통적으로 토요일이 성모님 신심과 관계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2002년
10월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라는 교서를 통해 묵주기도에 '빛의 신비'를 추가하면서 묵주기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이 교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 복음의 요약 묵주기도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환희의 신비)을 시작으로 예수님께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말씀과 행동으로 선포하신 공생활(빛의 신비)과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희생(고통의 신비), 그리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승리(영광의 신비)까지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묵주기도는 '복음의
요약'입니다.
◇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기도 묵주기도는 성격상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께
바치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는 묵주기도가 바로 관상기도임을 뜻합니다. 관상의
차원이 없으면 묵주기도는 그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는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관상하는 묵주기도의 성격을 다섯 가지로
제시합니다. △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기억하기 △ 성모님께 그리스도를 배우기 △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닮기 △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께
기도하기 △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기입니다.말하자면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우리는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놀라운 구원의 신비를
기억하며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또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노력하며,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그리스도께 우리의 간절한 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나아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가 묵주기도를 바치는 그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 평화의 기도이자 가정의 기도 묵주기도는 평화의 기도입니다. 평화의 임금이시며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분쟁, 각종 폭력으로 평화가 위협당하는 이 시대에 묵주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참 평화를 구하고 평화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합시다. 묵주기도는 나아가 가정의 기도이자 가정을 위한 기도입니다. 가족이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는 가운데 우리는 가정의 일치와 화합을
되새기며 나자렛 성가정의 모범을 본받아 성가정을 가꾸어갈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녀들을 위해서뿐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며 날마다 가정기도 시간을 갖도록 하라고 권고합니다.
(15) 전구기도(轉求 ; 영어
Intercession 또는 An Intercessory Prayer)
원래 다른 사람을 위해 탄원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성모님 마리아나 성인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바를 간접적으로
하느님께 전달하는 기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보통 “성모님
마리아(혹은 ∼성인)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주
천주께 빌으소서”와 같은 형식을 취한다.
신학적으로 보아 전구에는 ‘희망적인
전구’(intercessio impetratoria)와 ‘속죄적인 전구’(intercessio satisfactoria)가 있다.
희망적인 전구란
성모님
마리아나 모든
성인들에게 우리가 바라는 바를
하느님께 전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말하고,
속죄적인 전구는
연옥의 영혼이나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 대신
기도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전구는 초기
교회시대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것으로 초대 교회에서는 신자들이 서로를 위하여 기도와 단식을 하였고 2, 3세기에는
배교자(背敎者)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도록
순교자를 통하여 전구하였다. 4, 5세기에는
성인을 통한 전구에 대한
교리가 완전히 확립되었다. 성모님은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구속사업에 협력하셨고
성인들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우리를 위한 전구자가 될 수
있다(Denz 18:21, 2마카 15:11-16). 이 전구는 믿는 이들과 예수님과의 직접결합을 돕는다(교의헌장
60).
(16) 중보기도(中保 祈禱
지킬보; 영어 An Intercessory Prayer)
누가 인간의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말하는가? 하나님과 너
사이에 어찌 내가 중보자로 개입하여 너를 위한 나의 기도가 하나님께 중보기도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예수님에게만 붙여야하는 용어를 우리
인간에게도 붙인다면 우리들은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왜 하필 중보기도라는 용어로 고집을 부리는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으면
바울이 말한 것처럼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Ephesians 6:18)라고 했듯이 "for all the holy ones 성도를 위하여
기도"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1st
Timothy 2:5)
총회 결의 :참고로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합동) 제
89회 총회(2004)는 신학부를 통해 "중보기도"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중보기도" 용어 대신
"이웃을 위한 기도"라는 용어로 사용하기로 결의 했다. 아직도 우리 합동총회에 소속 된 교회 중에 교단의 신학적 입장을 외면하고 목사 개인의
교리에 근거해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시정해야 한다. 목사의 소속인 노회에서는 적절하게 지도하여야
한다.
디모데전서 1st Timothy 2장 1-5절의 내용을 보면 중보기도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을실 만한 것이니 (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진정한 중보기도자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1절에 보시면 '간구', '기도', '도고'와 '감사'를 하되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십니다.이중에 '도고'라고 하는 말은 요즘 별로 사용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도고'라는 말이
바로 "중보기도"라는 말입니다. 영어성경에는 Intercession prayer 라고 합니다.
즉 중보기도는 기도의 한 종류로서 중보기도는 글자 그대로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기도입니다. 중보기도의 대상은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입니다. 개인이나 단체, 혹은 나라와 민족,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18)
Prayer
(Greek
euchesthai, Latin precari,
French
prier, to plead, to beg, to ask earnestly).
An
act of the virtue of
religion which consists in asking proper gifts or graces from God. In a more general sense it is the
application of the mind to Divine things, not merely to
acquire a knowledge of them but to make use of such
knowledge as a means of union with
God. This may be done by acts of
praise and thanksgiving, but petition is the principal act of prayer. The words used to express it in
Scripture are: to call up
(Genesis
4:26); to intercede (Job
22:10); to mediate
(Isaiah
53:10); to consult (1 Samuel
28:6); to beseech (Exodus
32:11); and, very commonly, to cry out to. The Fathers
speak of it as the elevation of the mind to God with a view to asking proper things
from Him (St. John
Damascene, On the Orthodox
Faith
III.24); communing and conversing with God (St. Gregory of
Nyssa, "De oratione dom.", in P.G., XLIV, 1125); talking with
God (St. John
Chrysostom, "Hom. xxx in Gen.", n. 5, in P.G., LIII, 280). It is therefore
the expression of our desires to God whether for ourselves or others.
This expression is not intended to instruct or direct God what to do, but to appeal to His
goodness for the things we need; and the
appeal is necessary, not because He is
ignorant of our needs or sentiments, but to
give definite form to our desires, to concentrate our whole attention on what we
have to recommend to Him, to help us appreciate our close personal relation with
Him. The expression need not be external or vocal; internal or
mental is sufficient. By prayer we acknowledge God's power and goodness, our own neediness and dependence. It is therefore an
act of the virtue of
religion implying the deepest reverence for God and habituating us to look to Him for everything, not
merely because the thing asked be good in
itself, or advantageous to us, but chiefly because we wish it as a
gift of
God, and not otherwise, no matter how good or
desirable it may seem to us. Prayer presupposes faith in God and hope in His goodness. By both, God, to whom we pray, moves us to prayer. Our knowledge of God by the light of natural
reason also inspires
us to look to Him for help, but such prayer lacks supernatural inspiration, and though it may
avail to keep us from losing our natural
knowledge of God and trust in Him, or, to some
extent, from offending Him, it cannot positively dispose us to receive His
graces.
Objects of
prayer
Like every
act that makes for
salvation, grace is
required not only to dispose us to pray, but also to aid us in determining what to pray for. In this "the spirit
helpeth our infirmity. For we know not what we should pray for as we ought; but the Spirit
himself asketh for us with unspeakable groanings" (Romans
8:26). For certain objects we are always sure we should
pray, such as our
salvation and the general means to it,
resistance to temptation, practice of
virtue, final
perseverance; but constantly we need light and the guidance of the
Spirit to
know the special means that will most
help us in any particular need. That there may be no possibility of misjudgment
on our part in such an essential obligation, Christ
has taught us what we should ask for in prayer and also in what order we should ask it. In
response to the request of His disciples to teach them how to pray, He repeated the prayer commonly spoken of as the
Lord's
Prayer, from which it appears that above all we are to pray that
God may be glorified, and that for this purpose men may be worthy citizens of His
kingdom, living in conformity with His
will.
Indeed, this conformity is implied in every prayer: we should ask for nothing unless it be strictly
in accordance with Divine
Providence in our regard. So much for the spiritual
objects of our prayer. We are to
ask also for temporal things, our daily bread, and all that it implies, health,
strength, and other worldly or temporal goods,
not material or corporal only, but mental and moral, every accomplishment that may be a
means of serving God and our fellow- men.
Finally, there are the evils which we should pray to escape, the penalty
of our sins, the dangers of temptation, and every manner of physical or spiritual
affliction, so far as these might impede us in God's service.
To whom may we
pray
Although
God the
Father is mentioned in this prayer as the one to whom we are to
pray, it is not out of place to
address our prayers to the other
Divine persons. The special appeal to one does not
exclude the others. More commonly the Father is addressed in the beginning of
the prayers of the
Church, though they close with the invocation,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Thy Son who
with Thee liveth and reigneth in the unity of
the Holy
Ghost, world without end". If the prayer be addressed to God the
Son, the conclusion is: "Who livest and reignest
with God the
Father in the unity of
the Holy Ghost, God, world without end"; or, "Who with Thee liveth and
reigneth in the unity,
etc.". Prayer may be addressed to
Christ as
Man,
because He is a Divine Person,
not however to His human nature as such, precisely because prayer must always be addressed to a
person, never to something impersonal or in the abstract. An
appeal to
anything impersonal, as for instance to the Heart, the Wounds, the Cross of
Christ, must be taken figuratively as
intended for Christ Himself.
Who can
pray
As He has promised
to intercede for us (John
14:16), and is said to do so (Romans
8:34; Hebrews
7:25), we may ask His intercession, though this is not customary in public worship.
He prays in virtue of His own
merits; the saints intercede
for us in virtue of His merits,
not their own. Consequently when we pray to them, it is to ask for their intercession in our behalf, not to expect that they can bestow
gifts on us of their own power, or obtain them in virtue of
their own merit.
Even the souls in purgatory, according to the common opinion of
theologians, pray to God to move the
faithful to
offer
prayers,
sacrifices, and expiatory works for them. They
also pray for themselves and for
souls still on earth. The fact that Christ
knows the
future, or that the saints may know many future things, does not prevent them from praying. As they foresee the
future, so also they foresee how its happenings may be influenced by their
prayers, and they at least by
prayer do all in their power to
bring about what is best, though those for whom they pray may not dispose themselves for the
blessings thus
invoked.
The just can
pray, and sinners also. The
opinion of Quesnel that the prayer of the sinned adds to his
sin was condemned by
Clement
XI (Denzinger, 10 ed., n. 1409). Though there is
no supernatural merit in
the sinner's
prayer, it may be heard, and
indeed he is obliged to make it just as
before he sinned. No matter how hardened he may
become in sin, he needs and is bound to pray to be delivered from it and from the
temptations which beset him. His prayer could offend
God only if it were
hypocritical, or
presumptuous, as if he should ask God to suffer him to continue in his
evil course. It goes without saying that
in hell prayer
is impossible; neither devils nor lost souls can pray, or be the object of prayer.
For whom we may
pray
For the blessed
prayers may be offered not with
the hope of
increasing their beatitude, but that their glory may be better esteemed and their deeds
imitated. In praying for one
another we assume that God will
bestow His favours in consideration of those who pray. In virtue of the solidarity of the
Church, that is, of the close
relations
of the faithful
as members of the mystical Body of
Christ, any one may benefit by the good
deeds,
and especially by the prayers of
the others as if participating in them. This is the ground of
St.
Paul's desire that supplications, prayers, intercessions, and thanksgivings be made for all men
(Timothy
2:1), for all, without exception, in high or low station,
for the just, for
sinners, for infidels; for the dead as well as for the living; for enemies as well as for
friends. (See COMMUNION OF
SAINTS).
Effects of
prayer
In hearing our
prayer God does not change His will or
action in
our regard, but simply puts into effect what He had eternally decreed in view of our prayer. This He may do directly
without the intervention of any secondary cause as when He imparts to us some
supernatural
gift, such as actual
grace, or indirectly, when He bestows some natural
gift. In
this latter case He directs by His Providence the natural
causes
which contribute to the effect desired, whether they be moral or
free agents, such as men; or
some moral and
others not, but physical and not free; or, again, when none of them is free.
Finally, by miraculous intervention, and without
employing any of these causes,
He can produce the effect prayed
for.
The use or habit of
prayer redounds to our advantage
in many ways. Besides obtaining the gifts and
graces we need, the very process
elevates
our mind and heart to a
knowledge and love of Divine things, greater
confidence in God, and other precious sentiments. Indeed, so numerous and
so helpful are these effects of prayer that they compensate us, even when the special
object of our prayer is not
granted. Often they are of far greater benefit than what we ask for. Nothing
that we might obtain in answer to our prayer could exceed in value the familiar converse with
God in which prayer consists. In addition to these effects of prayer, we may (de congruo)
merit by
it restoration to grace, if
we are in sin; new inspirations of grace,
increase of sanctifying
grace, and satisfy for the temporal punishment due to
sin. Signal as all these benefits are, they are only
incidental to the proper effect of prayer due to its impetratory power based on the
infallible promise of God, "Ask, and it shall be given you;
seek, and you shall find: knock, and it shall be opened to you"
(Matthew
7:7); "Therefore I say unto you, all things whatsoever you
ask when ye pray,
believe that you shall receive"
(Mark
11:24 -- see also Luke
11:11; John
16:24, as well as innumerable assurances to this effect in the
Old
Testament).
Conditions of
prayer
Absolute though
Christ's assurances in regard to prayer would seem to be, they do
not exclude certain conditions on which the efficacy of prayer depends. In the first place, its object must be
worthy of God and good for
the one who prays, spiritually or
temporally. This condition is always implied in the prayer of one who is resigned to
God's will,
ready to accept any spiritual
favour God may be pleased to grant, and
desirous of temporal ones only in so far as they may help to serve
God. Next, faith is needed, not only the general
belief that God is capable of answering prayer or that it is a powerful means of obtaining His
favour, but also the implicit trust in God's fidelity to His promise to hear a
prayer in some particular
instance. This trust
implies a special act of
faith and hope that
if our request be for our good,
God will
grant it, or something else equivalent or better, which in His Wisdom He deems
best for us. To be efficacious prayer should be humble. To ask as if one had a binding
claim on God's goodness, or title of whatever colour to
obtain some favour, would not be prayer but demand. The parable of the Pharisee and the Publican illustrates this very clearly, and
there are innumerable testimonies in Scripture to the power of
humility in prayer. "A contrite and
humbled
heart, O God, thou wilt not despise"
(Psalm
1:19). "The prayer of him that humbleth
himself shall pierce the clouds" (Eccl., xxxv, 21). Without sacrifice
of humility we may and should try to be sure
that our conscience is
good, and
that there is no defect in our conduct inconsistent with prayer; indeed, we may even
appeal to
our merits so
far as they recommend us to God, provided always that the principal
motives of one's confidence are God's goodness and the merits of
Christ.
Sincerity
is another necessary quality of prayer. It would be idle to ask favour without doing all
that may be in our power to obtain it; to beg for it without really wishing for
it; or, at the same time that one prays, to do anything inconsistent with the prayer. Earnestness or fervour is another such
quality,
precluding all lukewarm or half-hearted petitions. To be resigned to God's will in
prayer does not imply that one
should be indifferent in the sense that one does not care whether one be heard
or not, or should as lief not
receive as receive; on the contrary, true resignation to
God's will is
possible only after we have desired and earnestly expressed our desire in
prayer for such things as seem
needful to do God's will. This earnestness is the element which makes the
persevering prayer so well
described in such parables
as the Friend at Midnight
(Luke
11:5-8), or, the Widow and the Unjust Judge (Luke
18:2-5), and which ultimately obtains the precious gift of
perseverance in grace.
Attention in
prayer
Finally, attention
is of the very essence
of prayer. As an expression of
sentiment emanating from our intellectual faculties
prayer requires their
application, i.e. attention. As soon as this attention ceases,
prayer ceases. To begin praying and allow the mind to
be wholly diverted or distracted to some other occupation or thought
necessarily terminates the prayer, which is resumed only when the mind is
withdrawn from the object of distraction. To admit distraction is wrong when one is obliged to apply oneself to prayer; when there is no such
obligation, one is at liberty to pass from the
subject of prayer, provided it be
done without irreverence, to any other proper subject. This is all very simple
when applied to mental prayer;
but does vocal prayer require the
same attention as mental,-in other words, when praying vocally must one attend to the meaning of words,
and if one should cease to do so, would one by that very fact cease to pray? Vocal
prayer differs from
mental precisely in this that
mental prayer
is not possible without attention to the thoughts that are conceived and
expressed whether internally or externally. Neither is it possible to pray without attending to thought
and words when we attempt to express our sentiment in our own words; whereas all
that is needed for vocal prayer
proper is the repetition of certain
words, usually a set form with the intention of using them in
prayer. So long as the intention
lasts, i.e. so long as nothing is done to terminate it or wholly inconsistent
with it, so long as one continues to repeat the
form of
prayer, with proper reverence
in disposition and outward manner, with only this general purpose of praying according to the
prescribed form, so
long as one continues to pray and
no thought or external act can
be considered a distraction unless it terminate our
intention, or by levity or irreverence be wholly inconsistent
with the prayer. Thus one may
pray in the crowded streets where
it is impossible to avoid sights and sounds and consequent
imaginations and thoughts.
Provided one repeats the
words of the prayer and avoids
wilful distractions of mind to
things in no way pertaining to prayer, one may through mental infirmity or inadvertence admit numerous thoughts not
connected with the subject of the prayer, without irreverence. It is
true, this amount of attention does not enable one to derive
from prayer the full spiritual
advantage it should bring; nay, to be satisfied with it as a rule would result
in admitting distractions quite freely and wrongfully. For this reason it is
advisable not only to keep the mind bent
on praying but also to think of
the purport of the prayer, and as
far as possible to think of the meaning of some at least of the sentiments or
expressions of the prayer. As a
means of cultivating the habit, it
is recommended, notably in the spiritual
exercises of St.
Ignatius, often to recite certain
familiar prayers, the
Lord's
Prayer, the Angelical
Salutation, the Creed, the Confiteor, slowly enough to admit the interval of a breath
between the principal words or sentences, so as to have
time to think of their meaning, and to feel in one's heart
the appropriate emotions. Another practice strongly recommended by the same
author is to take each sentence
of these prayers as a subject of
reflection, not delaying too long on any one of them unless one finds in it some
suggestion or helpful thought or sentiment, but then stopping to reflect as long
as one finds proper food for thought or emotion, and, when one has dwelt
sufficiently on any passage, finishing the prayer without further deliberate reflection
(see DISTRACTION).
Necessity of
prayer
Prayer is
necessary for
salvation. It is a distinct
precept of
Christ in
the Gospels (Matthew
6:9; 7:7; Luke
11:9; John
16:26; Colossians
4:2; Romans
12:12; 1 Peter
4:7). The precept
imposes on us only what is really necessary as a means of
salvation. Without prayer we cannot resist
temptation, nor obtain God's
grace, nor grow and persevere in it. This necessity
is incumbent on all according to their different states in life,
especially on those who by virtue of their office, of priesthood, for instance, or other special
religious
obligations, should in a special manner pray for their own welfare and
for others. The obligation to pray is incumbent on us at all times. "And he spoke also
a parable, to them that we ought always to
pray, and not to faint"
(Luke
18:1); but it is especially pressing when we are in great
need of prayer, when without it
we cannot overcome some obstacle or perform some obligation; when, to fulfil various
obligations of
charity,
we should pray for others; and
when it is specially implied in some obligation imposed by the
Church, such as attendance at
Mass, and
the observance of Sundays and
feast-days. This is
true of vocal prayer, and as regards mental prayer,
or meditation, this, too, is necessary so far as we may need to apply our
mind to
the study of Divine things in order to acquire a knowledge of the
truths necessary for
salvation.
The obligation to pray is incumbent on us at all times, not that prayer should be our sole
occupation, as the Euchites,
or Messalians, and similar
heretical sects professed to believe.
The texts of Scripture
bidding us to pray without
ceasing mean that we must pray
whenever it is necessary, as it so frequently is
necessary; that we must continue to pray until we shall have obtained
what we need. Some writers speak of a virtuous
life as
an uninterrupted prayer, and
appeal to
the adage "to toil is to pray"
(laborare est orare). This does not mean that
virtue or
labour replaces the duty of prayer, since it is not possible either to practise
virtue or
to labour properly without frequent use of prayer. The Wyclifites and
Waldenses, according to
Francisco
Suárez, advocated what they called vital
prayer, consisting in
good works, to the exclusion even of all vocal
prayer except the
Our
Father. For this reason Francisco Suárez does not approve of the expression, though
St. Francis de
Sales uses it to mean prayer reinforced by work, or rather work which is
inspired
by prayer. The practice of the
Church, devoutly followed by the
faithful, is to begin and end the day with
prayer; and though morning and
evening prayer is not of strict
obligation, the practice of it so well
satisfies our sense of the need of prayer that neglect of it, especially for a long time is
regarded as more or less sinful, according to the cause of
the neglect, which is commonly some form of
sloth.
Vocal
prayer
Prayer
may be classified as vocal or mental, private or public. In vocal prayer some outward action,
usually verbal expression, accompanies the internal
act
implied in every form of
prayer. This external action
not only helps to keep us attentive to the prayer, but it also adds to its intensity. Examples of
it occur in the prayer of the
Israelites in
captivity
(Exodus
2:23); again after their idolatry among the
Chanaanites (Judges
3:9); the Lord's
Prayer (Matthew
6:9); Christ's own prayer after resuscitating Lazarus (John
11:41); and the testimonies in Hebrews
5:7, and 13:15, and frequently we are
recommended to use hymns, canticles, and other vocal forms of
prayer. It has been common in the
Church from the beginning; nor has
it ever been denied, except by the Wyclifites and the
Quietists. The former objected to it
as unnecessary, as God does not need our words to
know what goes on in our
souls, and prayer being a spiritual
act need
be performed by the soul alone without the body. The latter regarded all
external action in
prayer as an untoward disturbance
or interference with the passivity of the soul required, in their opinion, to pray properly. It is obvious that prayer must be the action of
the entire man, body
as well as soul; that
God who
created both is pleased with the service of
both, and that when the two act in
unison they help instead of interfering with one another's activities. The
Wyclifites objected not only to all external
expression of prayer generally,
but to vocal prayer in its proper
sense, viz. Prayer expressed in
set form of
words, excepting only the Our
Father. The use of a variety of such forms is
sanctioned by the prayer over the
first-fruits (Deuteronomy
26:13). If it be right to use one form,
that of the Our
Father, why not others also? The Litany, Collective and Eucharistic
prayers of the early Church
were surely set forms,
and the familiar daily prayers,
the Our
Father, Hail
Mary, Apostles'
Creed, Confiteor, Acts of
Faith, Hope, and
Charity,
all attest the usage of the Church in this respect and the preference of the faithful
for such approved forms to
others of their own composition.
Postures in
prayer
Postures in prayer are also an evidence of
the tendency in human nature to express inward sentiment
by outward sign. Not only among Jews and
Christians, but among
pagan peoples also, certain
postures were considered appropriate in prayer, as, for instance, standing with arms raised
among the Romans.
The Orante indicates the postures
favoured by the early Christians, standing with hands extended, as
Christ on
the Cross,
according to Tertullian; or with hands raised
towards heaven, with bowed heads, or, for
the faithful, with eyes raised toward
heaven, and, for the
catechumens, with eyes bent on the earth;
prostration, kneeling,
genuflection, and such gestures as
striking the breast are all outward signs of the reverence
proper for prayer, whether in public or
private.
Mental
prayer
Meditation is a
form of
mental prayer
consisting in the application of the various faculties
of the soul, memory, imagination, intellect, and
will, to
the consideration of some mystery, principle,
truth, or fact, with a view to exciting proper spiritual
emotions and resolving on some act or
course of action
regarded as God's will and
as a means of union with Him. In some degree or other it has always been
practised by God-fearing souls. There is abundant evidence
of this in the Old
Testament, as, for instance, in Psalm
38:4; 62:7; 76:13; 118
throughout; Sirach
14:22; Isaiah
26:9; 57:1; Jeremiah
12:11. In the New
Testament Christ
gave frequent examples of it, and St.
Paul often refers to it, as in Ephesians
6:18; Colossians
4:2; 1 Timothy
4:15; 1 Corinthians
14:15. It has always been practised in the Church. Among others who have recommended it to the faithful
as Chrysostom in his two books on prayer, as also in his "Hom. xxx
in Gen." and
"Hom. vi. in Isaiam";
Cassian in
Conference
9; St.
Jerome in Epistle
22; St.
Basil in his "Homily on St. Julitta, M.", and "In regular breviori", 301;
St.
Cyprian, "In expositione orationis
dominicalis"; St.
Ambrose, De sacramentis VI.3; St. Augustine, Epistle 130, nos.
5-7; Boetius,
"De spiritu et anima", xxxii; St.
Leo, Sermon
46; St.
Bernard, "De consecratione'", I, vii; St. Thomas, II-II.83.2. The writings of the Fathers
themselves and of the great theologians are in large measure the fruit of
devout meditation as well as of study of the
mysteries
of religion.
There is, however, no trace of methodical meditation before the fifteenth century. Prior to that time,
even in monasteries, no regulation seems to have
existed
for the choir or
arrangement of subject, the order, method, and time of
the consideration. From the beginning, before the middle of the twelfth century,
the Carthusians had times set apart for
mental prayer,
as appears from Guigo's
"Consuetudinary", but no further regulation. About the beginning of the
sixteenth century one of the Brothers of the Common
Life, Jean Mombaer
of Brussels, issued a series of subjects or
points for meditation. The monastic rules generally prescribed times
for common prayer, usually the
recitation of the Office,
leaving it to the individual to ponder as he might on
one or other of the texts. Early in the sixteenth century the
Dominican chapter
of Milan prescribed
mental prayer
for half an hour morning and evening. Among the Franciscans there is record of
methodical mental prayer
about the middle of that century. Among the Carmelites there was no regulation for
it until Saint
Theresa introduced it for two hours daily. Although
Saint
Ignatius reduced meditation to such a definite method in his spiritual
exercises, it was not made part of his rule until thirty years after the
formation of the Society. His method and that of St. Sulpice have helped to spread the
habit of
meditating beyond the
cloister among the faithful
everywhere.
Methods of
meditation
In the method of
St. Ignatius the subject of the
meditation is chosen beforehand, usually the previous evening. It
may be any truth or fact whatever concerning
God or the human
soul, God's
existence, His attributes, such as
justice, mercy,
love, wisdom, His
law, providence, revelation, creation
and its purpose, sin and its penalties, death,
creation
and its purpose, sin and its penalties, death,
judgment,
hell, redemption, etc. The precise aspect of the
subject should be determined very definitely, otherwise its consideration will
be general or superficial and of no practical benefit. As far as possible its
application to one's spiritual needs should be foreseen, and to work up interest
in it, as one retires and rises,
one should recall it to mind so
as to make it a sleeping and a waking thought. When ready for meditation, a few moments should be given to recollecting what we are about to do so as to begin with quiet of
mind and
deeply impressed with the sacredness of prayer. A brief act of
adoration of
God naturally
follows, with a petition that our intention
to honour Him in prayer may be sincere and persevering, and that every
faculty and act,
interior and exterior, may contribute to His service and praise. The subject of
the meditation is then recalled to mind, and
in order to fix the attention, the imagination is here employed to construct some
scene appropriate to the subject, e.g. the Garden of
Paradise, if the meditation be on Creation,
or the Fall of Man; the
Valley of
Jehosaphat, for the Last Judgment; or, for Hell, the bottomless and boundless pit of fire. This is
called the composition of the place, and even when the subject of meditation has no apparent material associations, the
imagination can always devise some scene or
sensible image that will help to fix or recall one's attention and appreciate
the spiritual
matter under consideration. Thus, when considering sin, especially carnal
sin, as enslaving the
soul, the
Book of Wisdom
9:15, suggests the similarity of the body to the
prison house of the
soul: "The corruptible body is a
load upon the soul, and the earthly habitation presseth down the mind that
museth upon many things." Quite often this initial step, or prelude as it is
called, might occupy one profitably the entire time set
apart for meditation; but ordinarily it should be made in a few minutes. A
brief
petition
follows for the special grace one
hopes to
obtain and then the meditation proper begins. The memory
recalls the subject as definitely as possible, one point at a time, repeating it
over if necessary, always as a matter of intimate
personal interest,
and with a strong act of
faith until the
intellect naturally
apprehends the truth or the import of the fact under consideration, and
begins to conceive it as a matter
for careful consideration, reasoning about it and studying what it implies for
one's welfare. Gradually an intense interest
is aroused in these reflections, until, with faith quickening the natural
intelligence one begins to perceive applications of the
truth or fact to one's condition
and needs and to feel the advantage or necessity
of acting
upon the conclusions drawn from one's reflections. This is the important moment
of meditation. The conviction that we need or should do something in
accordance with our consideration begets in us desires or resolutions which we
long to accomplish. It we are serious we shall admit of no self-deception either
as to the propriety or possibility of such resolutions on our part. No matter
what it may cost us to be consistent, we shall adopt
them, and the more we appreciate their difficulty and our own weakness or
incapacity, the more we shall try to value the motives which prompt us to
adopt
them, and above all the more we shall pray for grace to
be able to carry them out. If we are in earnest we shall not be satisfied
with a superficial process. In the light of the truth we are meditating, our past experience will come to mind and
confront us perhaps with memory of
failure in previous attempts similar to those we are considering now, or at
least with a keen sense of the difficulty to be apprehended, making us more
solicitous about the motives animating us and humble in petitioning God's
grace. These petitions, as well as all the various emotions that arise from
our reflections, find expression in terms of prayer to God which are called colloquies, or conversations with Him.
They may occur at any point in the process, whenever our thoughts inspire
us to call upon God for our needs, or even for
light to perceive and appreciate them and to know the means of obtaining them. This general process is
subject to variations according to the character
of the matter
under consideration. The number of preludes and colloquies may vary, and the
time
spent in reasoning may be greater or less according to our familiarity with the
subject. There is nothing mechanical in the process; indeed, if
analysed, it is clearly the natural
operation of each faculty and of all in concert. Roothaan, who has prepared the best
summary of it, recommends a remote preparation for it, so as to
know whether we are properly disposed to enter into meditation, and, after each exercise, a brief
review of each part of it in detail to see how far we may have succeeded. It is
strongly advised to select as a means of recalling the leading thought or motive
or affection some brief
memorandum, preferably couched in the words of some text of Scripture, the "Imitation of
Christ", the Fathers of the
Church, or of some accredited writer on spiritual
things. Meditation made regularly according to this method tends to
create an
atmosphere or spirit of
prayer. The method in vogue among the
Sulpicians and followed by the
students in their seminaries is not
substantially different from this. According to Chenart, companion of
Olier and for a long time director of the Seminary
of St. Sulpice, the meditation should consist of three parts: the preparation, the
prayer proper, and the
conclusion. By way of preparation we should begin with acts of
adoration
of Almighty
God, of self-humiliation, and with fervent petition
to be directed by the Holy
Spirit in our prayer to know how to make it well and obtain its fruits. The prayer proper consists of
considerations and the spiritual
emotions or affections that result from such considerations. Whatever the
subject of the meditation may be, it should be considered as it may have been
exemplified in the life of
Christ, in itself, and in its
practical importance for ourselves. The simpler these considerations are the
better. A long or intricate course of reasoning is not at all desirable. When
some reasoning is needed, it should be simple and always in the light of
faith. Speculation, subtlety, curiosity are all out of place.
Plain,
practical reflections, always with an eye to self-examination, in order to see
how well or ill our conduct conforms to the conclusions we derive from such
reflections, are by means to be sought. The affections are the main object of
the meditation. These are to have charity
as their aim and norm. They should be few, if possible, one only of such
simplicity and intensity that it can inspire
the soul to act on
the conclusion derived from the consideration and resolve to do something
definite in the service of God. To seek too many affections only distracts or dissipates the attention of the mind and
weakens the resolution of the will. If
it be difficult to limit the emotions to one, it is not well to make much effort
to do so, but better to devote
our energies to deriving the best fruit we can from such as arise naturally
and with ease from our mental reflections. As a means of keeping in mind during the
day the uppermost thought or motive of the meditation we are advised to cull a
spiritual
nosegay, as it is quaintly called, with which to refresh the memory
from time to time.
Meditation carefully
followed forms
habits of
recalling and reasoning rapidly and with some ease about Divine things in such a
manner as to excite pious affections, which become
very ardent and which attach us very strongly to God's will. When prayer is made up chiefly of such affections, it is
called by Alvarez de
Paz, and other writers since his time,
affective prayer, to denote that
instead of having to labour mentally to admit or grasp a
truth, we have grown so familiar with it that almost the mere
recollection of it fills us with sentiments of
faith, hope,
charity;
moves us to practise more generously one or other of the moral
virtues;
inspires
us to make some act of
self-sacrifice or to attempt some work for the glory of
God. When these affections
become more simple, that is, less numerous, less varied, and less interrupted or
impeded by reasoning or mental attempts to find expression either for considerations
or affections, they constitute what is called the prayer of simplicity by Bossuet and those who follow his
terminology, of simple attention to one dominant thought or Divine object
without reasoning on it, but simply letting it recur at intervals to renew or
strengthen the sentiments which keep the soul united to
God. These degrees of prayer are denoted by various terms by writers on
spiritual
subjects, the prayer of the
heart, active recollection, and by the paradoxical phrases, active repose, active
quietude,
active silence, as opposed to similar passive states; St. Francis de
Sales called it the prayer of simple committal to
God, not in the sense of doing nothing or of remaining
inert in His sight, but doing all we can to control our own restless and
aberrant faculties
so as to keep them disposed for His action.
By whatever name these degrees of prayer may be called, it is important not to confuse
them with any of the modes of Quietism (see
GUYON, MOLINOS), as also not to exaggerate their
importance, as if they were absolutely different from vocal
prayers and meditation, since they are only degrees of ordinary prayer. With more than usual
attention to the sentiment of a set form of
prayer meditation begins; the practice of
meditation develops a habit of
centering our affections on Divine things; as this
habit is
cultivated, distractions are more easily avoided, even such as arise from our
own varied and complex thoughts or emotions, until God or any
truth or fact relating to Him becomes the simple object of
our undisturbed attention, and this attention is held steadfast by the firm and
ardent affection it excites. St. Ignatius and other masters in the art of prayer have provided suggestions for passing from
meditation proper to these further degrees of
prayer. In the "Spiritual
Exercises" the repetition of previous meditations consists in affective prayer, and the exercises of the second week, the
contemplations of the life of
Christ, are virtually the same as the prayer of simplicity, which is in its last analysis
the same as the ordinary practice of contemplation. Other modes of prayer are described under CONTEMPLATION; PRAYER OF
QUIET. The classification of private and public prayer is made to denote
distinction between the prayer of
the individual, whether in or out of the presence of others, for his
or for others needs, and all prayer offered
officially or liturgically whether in public or in secret, as when a
priest recites the
Divine
Office outside of choir.
All the liturgical prayers of the Church are public, as are all the prayers which one in sacred
orders offers in
his ministerial capacity. These public prayers are usually offered
in places set apart for this purpose, in churches
or chapels, just as in the
Old
Law they were offered
in the Temple and in the
synagogue. Special times are appointed for
them: the hours for the various parts of the daily
Office,
days of rogation or of vigil, seasons of
Advent and
Lent; and occasions of special
need, affliction, thanksgiving, jubilee, on the part of all, or of large numbers
of the faithful. (See
UNION OF
PRAYER.)
Sources
ST.
THOMAS, II-II, Q. lxxxiii; SUAREZ, De oratione, I, in De religione, IV; PESCH,
Praelectiones dogmaticae, IX (Freiburg, 1902); ST. BERNARD, Scala claustralium,
attributed to St. Augustine under the title of Scala paradisi in volume IX among
his works; ROOTHAAN, The Method of Meditation (New York, 1858); LETOURNEAU,
Methode d'oraison mentale du seminaire de St-Sulpice (Paris, 1903); 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 tr. DONOVAN (Dublin, s. d.); POULAIN, The Graces of
Interior Prayer (St. Louis, 1911); CAUSADE, Progress in Prayer, tr. SHEEHAN (St.
Louis); FISHER, A Treatise on Prayer (London, 1885); EGGER, Are Our Prayers
Heard? (London, 1910); ST. FRANCIS DE SALES, Treatise of the Love of God (tr.
London, 1884); ST. PETER OF ALCANTARA, A Golden Treatise on Mental Prayer (tr.
Oxford, 1906); FABER, Growth in Holiness (London, 1854). Among the many books of
meditation, the following may be mentioned: AVANCINI, Vita et doctrina Jesu
Christi ex quatuor evangeliis collectae (Paris, 1850); DE PONTE, Meditationes de
praecipuis fidei nostrae mysteriis (St. Louis, 1908-10), tr., Meditations on the
Mysteries of Holy Faith (London, 1854); GRANADA, Meditations and Contemplations
(New York, 1879); LANCICIUS, Pious Affections towards God and the Saints
(London, 1883); SEGNERI, The Manna of the Soul (London, 1892); ST. JOHN BAPTIST
DE LA SALLE, Meditations for Sundays and Festivals (New York, 1882); BELLORD,
Meditations (London); LUCK, Meditations; CHALLONER, Considerations upon
Christian Truths and Christian Doctrines (Philadelphia, 1863); CLARKE,
Meditations on the Life, Teaching and Passion of Jesus Christ (New York, 1901);
HAMON, Meditations for all the Days in the Year (New York, 1894); MEDAILLE,
Meditations on the Gospels, tr. EYRE (New York, 1907); NEWMAN, Meditations and
Devotions (New York, 1893); WISEMAN, Daily Meditations (Dublin, 1868);
VERCRUYSSE, Practical Meditations
(Lond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