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영 시집 {능소화 핀 집} 출간
정미영 시인은 전남 무안에서 출생했고, 2019년 애지로 등단했으며, 현재‘애지문학회 회원’과 ‘시마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미영 시인의 첫 시집 능소화 핀 집은 ‘어떤’ 대상을 위한 따뜻한 시학들로 읽힌다. 그에게 ‘어떤’의 의미는 막연한 대상이나 가치가 없는 ‘어떤’이라기보다는 개념을 포괄하고 당위성을 대변하는 ‘어떤’으로써 목적이나 주제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어떤’은 두 가지 면에서 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하나는 형식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내용상의 측면이다. 먼저 형식적인 측면은 시의 운율, 문체 등과 관련하여 시인이 시를 직조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기법이나 그만의 독특한 톤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다. 다음으로 내용상의 측면은 서정, 감각, 이미지, 주제 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으로 시인의 시세계나 뚜렷한 개성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정미영 시인의 시는 폭주하는 이 세계의 속도와 상관없이 "자늑자늑 느리게 걸어보는" 시간과 알맞게 발을 맞추고 있다. 이 시집, {능소화 핀 집}의 거의 모든 작품에는 식물과 꽃이 등장하는데, 시인은 꽃의 화려한 개화보다는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뒷면을 응시한다. "살다 보면 뒤쪽이 더 진실일 때가 있다"고 확신하면서 세상의 이면을 탐구하다가 보면 "낮은 집들만 있으니 하늘이 넓어 좋아"라는 놀라운 미적 통찰에 이르게 된다. 이 시집의 언어들이 다독이고 위무하는 손길이 유독 다정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랑과 긍정의 눈으로 대상을 읽으려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걸 발견하는 독자들의 눈에도 오얏꽃이 필 것이다. - 안도현 시인,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버스에서 내리면 세븐마트가 보일 거야/ 거기서 꼭 여름과 1시 방향으로 가야 해/ 길이 여러 갈래라 헷갈릴 수 있거든/ 허리의 각도는 살짝 언덕으로 하고/ 10분의 시간만 건너면 당도할 거야/ 낮은 집들만 있으니 하늘이 넓어 좋아/ 그래, 햇빛을 따라가면 되겠지/ 파란 대문 집을 지날 때는 아마 개 짖는 소리가 들릴거야/ 만약 조용하다면 낮잠에 빠졌거나/ 주인을 따라 산책이라도 갔겠지/ 건넛집 옥상에는 오늘도 빨래가 널려 있을 거야/ 빨랫줄에 새하얀 옷들이 구름이 지나다/ 걸린 줄 알았다니까/ 그곳을 지나면 두 개의 골목이 나타날 거야/ 거기 서서 가슴을 펴고 크게 호흡을 해봐/ 꽃향기가 마중 나와 있을 테니까/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햇빛 한 조각 머금은/ 연 선홍 능소화 기다리고 있을 거야// 지금도 가면/ 능소화 담장 너머로/ 고개 내밀고 기다리겠지 ----정미영, [능소화 핀 집] 전문
정미영에게 ‘어떤’은 분리수거를 하다 겪게 되는 “버려진 것들의 일부는 땅에 묻히고/ 일부는 또 버려지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수거함 같은 장례식장”(「어떤 장례식장」)으로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도 없이 문상을 하는 현실의 공간에서의 ‘어떤’ 곳이자 “바람이 성호를 그으며 지나가는” 의식으로 “시간의 흔적이 뒤섞여 있는 몰골들”에서 자아를 확인하는 ‘어떤’ 곳이기도 하다. 또 ‘어떤’은 “생각 뭉치 때문”(「어떤 처방전」)에 아픈 “중심을 잡아주는” ‘어떤’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화살이 무디다거나 비아냥거려도/ 시위를 늘 중심에 두고 있다”(「오랜 말」). 그에게 ‘어떤’은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사소한 행위에서 비롯되고 있지만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결국 ‘어떤’의 시가 되도록 잘 획득해낸다. 정미영에게 시론은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내용이고 시작품에서의 시론은 정미영 자신이 크나큰 시론이 된다. 그에게 시는 정미영 너머의 있는 시로서 정미영을 관통하여 표적지에 꽂힌 화살과 다름없는 그 이상의 것이다. 그에게 ‘어떤’은 형식상이나 내용상 모두를 차치하더라도 시로서 ‘어떤’을 아우르는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정미영의 시는 ‘어떤’의 의미나 강조만으로 이미 대상들을 충분히 따뜻하게 보듬고 자아나 타자를 떳떳하게 드러내 놓았다. 물론 여기에는 그가 받은 상처나 고통, 그리고 빛바랜 기억들이 뒤섞여 혼재하고 있지만 정미영은 여타의 유파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신만의 시세계를 구축하여 왔다. 아치볼드 매클리시의 「시학」에 나오는 것처럼 그도 나름대로의 “감촉할 수 있고 묵묵해야” 하는 ‘어떤’ 시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며 부단히 시를 써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그의 시가 그러하리라고 여겨진다. 정미영에게 ‘어떤’ 대상들은 “잊혀진다는 것은/ 혼자 조용히 그리움을 삭히는 것”(「공중전화」)으로 나타나다, “주인을 기다리던 반려견의 눈빛”(「가을비」)에서 “칸나로 붉게 떨어”지는 뜨거운 흐느낌을 뚝뚝 흘리는 가을비 같은 것으로, “살다 보면 뒤쪽이 더 진실일 때가 있다”(「사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나이를 먹고 쌓여가는 세월에서 화석이 되는 것을 “한 소절씩 앓는 소리를 내며/ 덤덤히 돌아가는 선풍기 같다”(「오래 된다는 것」)는 사실적인 표현에서도 “살아간다는 것은 소소해서/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거나/ 내가 향기에 흔들리는 것이다”(「감국을 따던 날」)라고 자아를 받아들이며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심지어 “열섬에 갇힌 도시의 사람들”(「열대야」)마저 “움켜쥐지 못한 때의 얼룩이 그림자처럼/ 오랫동안 마음 한켠에 갇혀”(「때를 놓치다」) 있는 현대인의 녹록하지 못한 생활에서 “그늘진 틈 사이로 난 햇살 위를 길 삼아/ 겨울을 건너”(「춘분」) “봄도 조금씩 꽃피며 따뜻해지는 날이” 올 것이라는 ‘어떤’에 대한 예시와 희망으로 대상들을 위로하며 보듬고 있다.
전철에는 달팽이가 앉아 있어요/ 모두가 같은 모양의 수신기를 차고/ 외계로부터 전파를 받아/ 스마트 속으로 스마트하게 접속해요/ 두리번거리며 총을 쏘고 있는/ 젊은 눈과 마주쳤어요/ 눈길을 돌려/ 같은 종족이라는 표시로/ 깊숙이 넣어둔 무전기를 꺼내/ 만지작거립니다// 내가 지구 밖으로 떨어져 나와/ 이 전철 안에 있는 걸까요/ 낯선 것들이 펼쳐져 있어서/ 정복당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색한 표정으로 순간이동이/ 빨리 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어디가 종착지일까요/ 첫 사람/ 첫 눈빛이 그리워져서/ 휴대폰을 눌러/ 따뜻한 고향으로 전화를 하고 싶은/ 여기는 어디일까요 -「달팽이 전철」 전문
「달팽이 전철」은 달팽이처럼 더디게 사유하는 현대인들의 행동과 모습을 특징적으로 잘 잡아 희화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시의 묘사나 내용이 전철을 타고 오고 가는 현대인들이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의 이기에 그야말로 스마트한 각자의 생활방식을 새로 만들어 적응하며 생존하여 왔다.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찾게 되었고 잠자기 전에도 확인을 하지 않고는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현대인들은 그만큼 중독되어 있다 하여도 과한 말이 아닐 것이다. 얼마나 중독이 심하면 밥을 먹으면서도 보고, 길을 걷다가 넘어지고,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놓친다. 하물며 전철 안은 오죽하겠는가. 비슷한 사람들의 비슷한 모습, “외계로부터 전파를 받아/ 스마트 속으로 스마트하게 접속”을 하고 “같은 종족이라는 표시로/ 깊숙이 넣어둔 무전기를 꺼내” 동족임을 증명한다. 정미영이 바라본 전철 안의 기괴한 풍경은 “낯선 것들이 펼쳐져 있어서/ 정복당한 것인지도”, 아니면 “지구 밖으로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헷갈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순간이동이/ 빨리 되기를 기다리”는 달팽이 전철 안은 “첫 사람/ 첫 눈빛이 그리워져서/ 휴대폰을 눌러/ 따뜻한 고향으로 전화를 하고 싶은” 그런 곳인데, 현실은 달팽이처럼 우글거리며 모두 한곳을 응시하고 있는 “같은 종족의 표시”로 앉아 있다. 이런 진지한 관찰을 하는 화자에 정미영은 어떤 방어기제나 폭력적인 시어를 전혀 선택하지 않고 “낯선 것들이 펼쳐져 있어서/ 정복당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정중한 인정과 순간이동에 대한 따뜻한 말로 스스로 위안을 얻으려 하고 있다.
은행나무 사거리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유리로 된 집이 있다// 한때 사랑에 애타던 사람들이/ 문 앞에서 서성이던 곳/ 그 집에 들렀던 사람이라면/ 눈물 한쪽 분량쯤 되는 기억을/ 넘기고 있을 텐데/ 딸깍이던 소리에 조바심 내면서/ 수화기 너머로 주고받던 무수한 사연은/ 푸른 은행나무 길을 휘돌아나간 바람처럼/ 여러 번 새잎이 돋아도/ 돌아오지 않는다// 잊혀진다는 것은/ 혼자 조용히 그리움을 삭히는 것/ 빗장을 닫아걸고/ 덧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은행나무 사거리 빵집 앞에는/ 아직도 유리로 만든 집이 있다 -「공중전화」 전문
이 시는 앞의 「달팽이 전철」과는 다르게 정미영만의 시풍이나 문체가 잘 드러난 시가 아닌가 싶다. 서사나 서정이 무난하고 억지스러운 데가 없고 앞뒤 구절이 잘 맞아 이해도 쉽게 되지만 받아들이는 서정의 진폭도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중전화”를 “유리로 된 집”이나 “한때 사랑에 애타던 사람들이/ 문 앞에서 서성이던 곳”이라는 일반적인 표현에서 “딸깍이던 소리에 조바심을 내면서/ 수화기 너머로 주고받던 무수한 사연은/ 푸른 은행나무 길을 휘돌아나간 바람처럼/ 여러 번 새잎이 돋아도/ 돌아오지 않는다”로 청각 효과를 내며 이미지의 상승효과를 등가시켜 나타낸다. 그러면서 “잊혀진다는 것은/ 혼자 조용히 그리움을 삭히는 것”으로 파악하여 “딸각이던 소리에 조바심을 내면서”의 부분과 병치를 이루면서 “유리로 된 집”에 대한 특성과 여러 풍경들을 ‘어떤’에 반추시키는 인물이나 사건이 있었음을 잘 지적해낸다. 정미영에게 「공중전화」는 “잊혀진다는 것은/ 혼자 조용히 그리움을 삭히는 것”으로 화자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은행나무 사거리 빵집 앞”에 있는 “유리로 만든 집”을 떠올리며 혼자 “조바심 내면서” 지난 시간의 공중전화를 통해 다시 대화를 하고 싶은 자성의 시간이 응축된 화자의 안타까운 심정이 수채화같이 맑게 잘 드러낸 작품이다. 정미영에게 “공중전화”는 한때의 사랑이나 그리움을 삭히며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는 ‘어떤’ 곳에서 서정의 대상이 되면서 또한 ‘어떤’의 동기가 될만한 시학이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미영 시집 {능소화 핀 집},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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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애 많이 썼습니다 거듭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