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적미군 赤眉軍
서쪽으로 5리 정도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말을 몰던, 강 맹우는 어떤 기미 機微를 느꼈는지 뒤따르는 기마병을 돌아보며 “중걸, 빨리 가보자” 하더니 고비를 당긴다.
중걸 仲杰도 “넵”하더니 고삐를 낚아채며 박차 拍車를 가한다.
저녁 거미가 내리자 주위가 어스름하게 변하며 주위 사물들이 흐릿해진다.
그때,
저 멀리 숲속 어딘가에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렸다.
강 맹우는 말을 급히 몰아 싸움터로 돌진했다.
숲속 공터에는 2대의 마차 옆에 5명의 남녀가 어울려, 서로 창과 칼로 찌르고 베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3명의 사내 중 1명은 장창을 사용하고 2명은 단창을 이용하여 일사불란 一絲不亂하게 2명의 여인을 공격하고 있었다. 장시간 정규적인 창술 훈련을 받은 노련한 솜씨다.
젊은 한 여인은 한 자루 장검으로 상대들을 날카롭게 베고 찌르며 진퇴를 거듭하고, 다른 젊은 여인은 짧은 쌍검을 양손으로 나누어 잡고, 화려하게 검무 劍舞를 춤추고 있었다.
두 명의 젊은 여인은 옷차림새나 외모가 상당히 닮아 보였다. 아마도 자매지간인 것으로 보인다.
여인 2명이 장정 3명을 상대하는데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간간이 상대방들을 한쪽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싸운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지, 두 여인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있다.
“멈추시오!”
강 맹우가 양측 싸움터의 가운데로 뛰어내리며, 쌍검을 휘두르는 여인의 허리를 찌르고 있는, 장정의 장창을 오른발로 차서 걷어내었다.
그러자 단창 2개가 동시에 강 맹우의 허리와 가슴을 노리고 찔러왔다.
강 맹우는 좌측으로 몸통을 비틀어 가슴팍을 향해 찔러 오는 창을 피하며, 어느새 뽑아 든 묵도 墨刀를 휘둘러 허리를 찌르는 다른 단창을 우측으로 튕겨낸다.
강 맹우의 재빠른 동작과 창을 막아내는 도법 刀法에 모두를 탄성을 지른다.
“햐~”
순식간에 상대방의 3초 식 공격을 모두 저지시켜 버린 것이다.
장내에 뛰어 들어온 강맹우를 본, 여인네들은 “강 교위님!” 하며 반색한다.
3명의 장정도 잠시 얼이 빠졌다.
자신들의 소속 집단에서도 3인조는 일장이창 삼협 一長二槍 三俠으로 불리며 으스대는 솜씨인데, 단 한 명에게 3초 식의 공격이 무위 無爲로 돌아가자 속으로는 뜨끔하였으나, 내색하지 않고 짐짓 큰소리로 물었다.
“그대는 또 누구요?”
“산동 성내에서 온, 교위 강 맹우라 하오” 이어
“그런데, 여러분들은 왜 여기 낭자들을 공격하였는지요?”
그러자 옆에서 씩씩대며, 쌍검을 들고 있던 젊은 여인이 먼저 소리친다.
“강 교위님, 저 불한당 不漢黨들이 다짜고짜 우리 마차를 세우고 시비를 걸어 왔어요”
그러자, 긴 장창을 든 사내가 항변한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 지역을 통행하기에 검문하는 중인데, 낭자들이 불손하게 굴지 않았소?”
강 교위는 그제야 장정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세 명 모두 눈썹이 유난히 굵고 붉은색이 선명하였다.
아니 눈썹에 붉은 색칠을 진하게 덧칠 한 것이다.
또, 장정들은 ‘교위’란 직책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무식한 자들인 거 같다.
어느 정도 상식을 갖춘 자들 같으면, ‘교위’란 직책만 들어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먼저 사과하고, 도주하기 바쁠 것인데, 그들은 지나가는 길손 대하듯이 태연자약 泰然自若하다.
다만,
강맹우의 뛰어난 무예 실력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한 태도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다.
강 맹우는 ‘아차, 이들이 적미군 赤眉軍이군’ 속으로 경계심을 숨기며 양손으로 포권의 예를 갖추고,
“아하, 산동성 북해에서 위맹을 떨치고 있는 적미군의 삼대협 三大俠이셨군요,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그러자
적미군 들은 "아니오, 대협을 진작에 마중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라며 제법 격식을 갖춘 어투로 답한다.
그들은 '교위'란 처음듣는 직책도 벌써 잊어먹고, '대협'이란 일반명사를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하, 별 말씀을..."하더니,
강맹우는 그들이 사용하는 몇 마디 단어 만으로도 상대들의 수준을 이미 짐작하고,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짓고자 두 낭자를 보고는,
“두 분, 설 낭자는 삼대협에게 사과드리고 화해합시다.”라며 쌍방이 화해 和解하도록 종용하였다.
두 낭자는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강 교위의 타협 제시를 거부할 수 없기에,
“삼 대협님, 저희가 실수한 것 같습니다. 너그럽게 봐주세요” 불만을 감추고, 일부러 코맹맹이 소리로 마지 못한 듯이 사과한다.
적미군 삼협, 3명은 소속 단에서도 다른 동료들이 자신들을 부를 땐 “삼협”이라 호칭하지만 뒤돌아서면 “삼우 三愚”라고 비웃는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는바, “삼대협”이란 호칭을 들으니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다.
또한, 두 여인을 상대하기에도 버거운데, 상대방의 머릿수도 이제 자신들보다 많아졌고, 더구나 강 맹우의 무술 실력을 보니, 시비가 계속되면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 자명 自明하다.
이런 분위기에선 체면을 세워 줄 때, 재빨리 빠지는 것이 모양새를 갖추는 것임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좋소이다, 잘 가시오, 우린 귀대할 시간이 되었으니 그만 가보겠소. 그럼, 다음 기회에 뵙기로 합시다” 그렇게 양측간에 벌어졌던 결투는 선선히 타협되었다.
일장이창 삼협이 물러가자, 쌍검을 든 설 낭자가 첫 번째 마차로 다가가
“비야, 설비야 나오렴”하고 마차의 휘장을 들쳐 올렸다.
“아니, 얘가 어딜 갔지? 비야”
두 번째 마차의 휘장을 걷어봐도 찾는 사람이 보이지 않자 울상이 되었다.
“목란 언니, 비야가 없어졌어”
“초란아, 무슨 소리야, 좀 전까지 멀쩡히 앉아 있던 얘가 없어지다니”
마차를 몰던 마부들을 보고 되묻는다. 그러나 마부들도 꿀 먹은 벙어리다.
다섯 사람들이 처음에는 말로만 옥신각신 다투기 시작하더니, 점차 말투가 험악해지더니, 결국에는 각자 소지한 칼과 창을 들고 병장기로 싸우는 것을 보고, 좀처럼 보기 드문 남여간의 집단 칼싸움에 정신을 빼앗긴 마부들 역시 아무것도 모른다.
이에,
난감해진 강 맹우는 마부들에게 모닥불을 피울 것을 지시하고, 중걸과 방향을 나누어 말을 타고 수색에 나선다.
설목란, 초란 두 자매 역시 방향을 나누어, 오빠의 고명딸인 설비야를 찾으러 각자, 가까운 주변부터 하나하나 둘러본다.
한 시진 이상을 수색하였으나, 아무런 단서도 없이 다시 공터로 되돌아온 일행들.
주위의 어둠만큼이나 분위기가 침울하다.
저녁을 해결한 후, 다시 찾기로 하고 모닥불 옆에서 야영 野營을 준비한다.
마차를 바람이 이는 북서 北西 쪽에 세워두고, 중걸은 말 안장 뒤쪽에 얹혀 있는 동복 銅鍑을 내려 모닥불 옆에 세웠다.
설목란은 마차에서 노루 가죽으로 만든 물통을 내리고, 마대에서 조와 피를 두어 줌씩 끄집어내 물에 두어 번 헹 군 후, 동복에 넣고 물을 넉넉히 붓는다.
그리고, 마대에서 마른 육포 한 줌을 집어내 같이 동복에 넣고, 모닥불 위쪽 가로걸이로 만든 나뭇가지에 동복 손잡이를 건다. 아마 육포 죽을 끓일 모양이다. 익숙한 솜씨다.
조용한 숲속, 모닥불의 장작 타는 소리가 깊은 가을밤으로 유인한다.
6. 다물 多勿
한편,
강 맹우 교위 일행을 기다리다 다소 늦게 저녁을 먹은 후, 장영은 박지형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박달 거세의 지휘하에 요서 벌에서의 한사군 중, 현도군 병사와의 전투전을 이야기하면서,
도중에 자신의 무용담을 슬쩍 곁들인 입담 좋은 장영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박지형.
오랜만에 듣는 아버지의 근황 近況 이야기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때, 옆집의 이중부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인사한다.
“식사하셨어요?”
“어, 중부형 어서 와”
“응, 중부 왔구나, 이리와 앉아”
어리지만 젊잖아 보이는 이중부는 방문 가까이에 자리한다.
그러자 장영은 조금 전, 저녁에 있었던 궁금한 사항들을 묻기 시작했다.
다물 타봉술에 관해 재차 질문한다.
“낮에 그 타봉술 누구에게 배웠다고?”
그러자, 이중부는 왼손으로 박지형을 가리키며
“지형이한테 배웠어요”한다.
놀란 장영은
“응? 지형이에게...”
“예, 마자요”
“허~ 그렇구나, 지형이가 벌써 그 정도 실력인가?”
‘다물’
다물은 ‘고토 회복 古土回復’ 이란 뜻의 순수 우리말 단어이다.
한자로 표기하면 ‘多勿’이 된다.
타봉술은 조선 중기부터 단군 왕가에서 전해 내려온 봉술인데, 부여 왕족 王族 즉, 단군가 檀君家의 비학 祕學들 중 한 가지다.
처음엔 그냥 ‘타봉술’이라 칭하였으나, 조선의 세가 위축되어 북쪽 송화강 부근으로 밀려가자, 부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조선의 고토회복 古土回復이란 의미의 다물多勿을 타봉술 이름으로 바꾸어 불렸다.
이후,
다물 多勿 정신은 고주몽에 의해 고구려의 국시 國是로 이어진다.
고구려의 국시,
다물 정신은 이후 대성공을 거둔 것으로 후세 사학자들은 평가한다.
중원의 산동성과 그 남쪽 일대 양쯔강 부근을 제외하고는 조선의 영토 대부분을 고토 회복화 시킨 것이다.
광개토태왕의 좌충우돌 左衝右突식 서진북벌 西進北伐의 영토확장과 장수왕의 남진 南進정책을 거쳐, 고구려 제국의 최대 영토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중앙아시아 및 동북아시아 전체를 호령하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국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각 교과서에는 상당히 축소된 영역을 그림으로 제시하며, 문자왕 文咨王 시대가 고구려의 최대영토라고 기술 記述되어 있다.
그런데 어찌 박지형이 부여 단군가의 비학 祕學을 전수 傳受 받았다는 것인가?
궁금한 이중부, 도리어 장영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박지형이 어떻게 다물 타봉술을.”
장영은 “하하” 웃더니.
“박씨 朴氏가 바로 단군가의 후세이며, 단군의 적통자 嫡統子 가문이다.”하면서
박씨 朴氏의 한자 漢字를 해자 解字 풀이한다.
나무 목(木) 옆의 점 복(卜)자를 합치면 박(朴)씨가 된다.
그러니 박달나무(神木) 옆에서 점을 보던 단군님이 바로 박씨란 뜻이다.
박혁거세 거서간이 단군이란 의미다.
제정일치 祭政一致의 선사. 청동기시대의 자연발생적인 성씨 姓氏 유래다.
박씨는 중국에서는 희귀 성씨다. 그들은 동이족 출신이다.
그러면서 “중부 자네 성씨는 이씨 李氏지?, 우리 동이족의 이씨 역시 단군가의 또 다른 적통자로 보고 있지, 이씨를 한자로 파해 破解 해보면 역시, 그 뜻이 숨어있지.”
“나무 목(木) 아래에 아들 자(子)가 합쳐 이씨(李氏)가 되잖아, 나무의 자식 子息, 그러니까 신목 神木의 아들 즉, 단군 님을 상징하자 그러니 성씨를 함부로 지을 수도, 사용할 수도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
이중부는 속으로 장영이 험상궂은 인상과는 달리 무척 박학다식 博學多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장대협의 성씨는요?”
“어! 날카로운 질문이군”
“하하하. 아직 성씨가 몇 안 되니 장 씨, 최 씨, 강 씨, 예 씨 등 동이족의 다른 성씨들도 대부분 단군의 자손들이지, 다만 박씨나 이씨들, 아~ 그리고, 해(解)씨와 고(高)씨는 한 가문이고, 하(河)씨 또한, 적통자 집안이지, 이 때문에 타 성씨들은 적통자로 자처 自處하기에는 모양새가 아니니 큰소리치지는 못하지!” 그러더니,
“자네가 다물 타봉술을 사용하기에 또 다른, 숨은 다물의 전수자 傳受者가 나타났는가 싶어 재차 물어본 것이야.”
“아~그렇군요”
이중부는 대답하고는 3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 19. 元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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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하다 보니 순서가 뒤바뀌었습니다. ^^;;
다물의 뜻을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얫날 직장 다닐때 다물정신 교육 받은 기억이 새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