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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1
바람 한점 없는 포근한 날씨다. 옷을 가볍게 준비한다. 아픈 다리에 손이 간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버티기를 기원한다. 달이 처연히 밝다. 섬세하고 영롱한 드뷔시의 달빛이 밤 하늘에 수많은 음표를 뿌려낸다. 은은하고,교교하며 육감적이고 서정적인 달빛이었다.
03:22
촛대봉
촛대봉 이름 그대로 제법 가파른 길을 30여분 오르자 두동강난 촛대봉 표지석이 나타났다 감흥없는 一物이었다. 이별은 짧고 無味햇다.
03:23
촛대봉의 촛대 바위
03:33
한 10여분 거리에 투구봉이 보인다. 정상석은 없었다.
03:56
20여분이 지나자 또 시루봉 안내표가 나타난다 여기도 정상석은 없다
스트레이트로 세개의 봉우리를 한꺼번에 넘어보기는 처음이다. 이번 구간은 그만큼 봉우리가 많아 업다운이 고된 구간이다.
04:28
1084봉 위치에 배봉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제2유두봉이라고도 불린다. 배봉에서 내려가면 배재가 있고 배재를 지나면 유두봉이 나타난다. 여성의 인체를 빗대어 재미 삼아 붙여진 이름이다. 어느 봉우린들 유방을 담지 않은 봉우리가 어디있겠는가.
04:45
배재
눈 덮힌 아가씨의 배를 사뿐히 저려밟고 손살처럼 달아난다.
유두봉에서
배재에서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유두봉에 다달았다. 유두봉을 지배한 남자가 상남자다. 오늘 후미조에 두분이 합류하셨는데 대연동이님과 뜬구름님이다. 두분은 11기 회원으로 백두대간 전반기에 함께 산행 한 바있다. 뜬구름님은 오늘로 백두대간을 두번 완주하신다. 두번의 완주란 단어를 머리에 떠올리자 마자 곧 질려버렸지만 체력만 된다면 나도 마음에 드는 구간을 골라 다시 걷어 보고싶은 욕심이 없지않았다. 하지만 눈 앞의 현실이 워낙 열악한지라...
두번째 백두대간을 타고 있기는 대연동이님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러셀을 위해 후미대장을 선두로 보내고 본의 아니게 두분이 후미를 대신 맞게되었다. 산행 내내 골치 덩어리를 맡아 역량껏 페이스를 펼치지 못하게되었으니 얼마나 답답할 노릇이겠는가. 설원을 달리는 준마를 우리에 가두어버린 셈이다.
05:19
싸리재
어둠에 취한 달이 마침내 불그스레한 얼굴이 되어 새벽을 준비했다. 밤을 걷는 내내 달빛이 어깨 너머에 걸려있었다. 산길에 달이 훤하다는것은 누군가 함께있다는 비할 바없는 안도감을 준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인지 달빛이 한층 따사롭다. 어둠에 젖은 검은 풍경들도 이제 밤의 수의를 벗고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지금쯤 어머니는 새벽 예불을 들이고 계실것이다. 그 새벽 예불의 주인공이 내가 될것은 불문가지지만 그 나직한 예불 소리처럼 세상은 변해간다.
밤의 산길은 캄캄했으나 이미 익숙한 어두움이었다. 이제 밤길을 즐길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드니 오늘 밤길에 더 소중한 애정이 느껴졌다.
어두운 밤길,렌턴 불빛을 음표삼아 아다지오의 속도로 길을 걷는다. 바람의 노래가 흘렀다 일찌기 노자가 가르쳐 준 노래이다. 달의 나무가 장엄한 누락처럼 하늘에 걸려있다. 어둠의 비밀을 발쇠한 달이다. 흑과 백의 질소한 아름다움 속에 살아있는 모든것들이 끝내 죽음으로 마감된다는것이 형언할 수 없는 비감으로 다가왔다.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고기가 되어 월광이 화살처럼 쏟아지는 밤하늘을 떠다녔다.
흙목 정상이라고는 하지만 여기를 왜 흙목이라 부르는지 아무런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07:06
새벽 먼동이 트인다. 달을 머리에 인 산들은 아직 밤의 지배를 다 물리치지 못한탓에 어두움의 권위에 눌려있다.
세상의 첫 걸음과 같은 장엄한 여명이 어둠을 혁명하는 가운데 산꾼들의 마음에 새로운 투지를 채운다. 깊은 숨을 들이 마신다. 차가운 공기가 폐장에 붙은 어둠을 털어낸다. 몸 전체가 묘한 투명감으로 가득 찬다. 아니 세상이 아침 그대로 유리알처럼 투명했다.
세상은 헛된 가운데 참되고 나는 참된 가운데 헛된다. 진리는 사람만을 향해있지 않으며 사람도 진리를 붙들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은 늘 느슨한 헛됨일 뿐이다. 헛됨 하지만 세상에는 헛됨가 그렇지 않음을 분별할 수 있는 잣대가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모든 헛됨은 스스로 헛되며 모든 신실함도 스스로 신실하다. 헛됨을 밟듯, 눈밭을 꾹꾹 도장 누르듯 밞아가며 길을 헤쳐간다.
06:49
길을 간다 하얀 눈꽃은 만리향과 같은 향기를 품고 있다. 뒤의 물이 앞의 물을 따라 흐르듯 마치 향기를 품은 미지로 내 몸이 따라 흐른다. 흐른다는 느낌처럼 즐거운 기분은 없다 몸과 마음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때 비로소 行者는 길의 흐름을 느끼게된다. 눈 앞에 들어선 대간길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흥분을 고조시킨다. 미래에 대한 상상 앞에 지난 길의 아름다움이 묻혀버리는것도 어쩌면 길에대한 집착 때문일지 모른다. 과거는 집착의 변두리다. 스쳐온 지난 길이 점등처럼 어득하다. 곧 무덤이 될 현재의 주검들을 아쉬워하며 길을 또 걷는다.
07:09
헬기장에서의 아침 식사
아침으로 산 김밥이 목에 넘어가지 않는다. 뜨거운 물 한모금에 김밥 한알 씩 번갈아가며 넘기다 김밥 한줄을 다 못먹고 말았다. 동녘에는 어느새 장미를 닮은 여명이 가득하다 절망도 아닌,희망도 아닌 마음이 착찹한 저기압처럼 가슴을 누른다. 문득 텃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글을 염두에 두고 풍경을 감상하는것은 일종의 지적 놀음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만가지 눈이 있듯 세상을 표현는 만가지 방법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것 만큼 세상을 표현하기도 힘들다.
세상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정교해 질수록 내 감성의 영역은 이스트를 넣은 빵처럼 부푼다.
마음이 극락의 뭉게구름처럼 꽉 차오르는 내적 충밀함으로 가득찰 때 나는 비로소 산을 걷는 행자로서의 기쁨을 느낀다.
나는 왜 지금까지 지나온 산길과 별 다를 바 없는 곳을 두고 이토록 아름다움을 과장하며 고민할까? 왜 내 눈에만 아름다운가?
그것은 작위가 없는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 본 까닭이다. 有爲의 세상은 꿈이요,그림자요 이슬이며,우뢰일 뿐이다.
쓰임세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 본다면 대상에 감추어진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내가 바라보는 아름다움은 근본의 아름다움이다. 만물에 고루 어리는 세상 근원에 대한 아름다움이다. 그 담백한 진실이 심금을 자극한다.
07:52
솔봉을 향하여
어둠이 걷히는 산을 등지고 걸었다. 나는 질펀한 급류를 타고 가는 작은 배처럼 유장하게 흘러갔다. 바람이 물결처럼 거품을 만들며 부딪혔다. 먼산에 구름이 울지 못하는 새처럼 걸려있고 구름이 앉은 산은 곧 시야로부터 사라졌다.
길과 사람 사이의 이 깊은 침묵이야말로 두 존재를 하나로 묶는 종교라할 수 있다. 한밤에 산길을 걷는 의식의 집중보다 더 선예한 집중을 경험한 바 없다.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길이 열리는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길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살고 죽는다. 뱀을 먹는 보아뱀처럼 나는 길을 빨아들인다.
헬기장 지나 1063봉에 이르는 구비길에 접어들자 마침내 밤새워 지나 온 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물결 그대로다. 자유분방한 물결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질서 정연한 리듬감이 더 느껴진다. 촛대봉,투구봉,시루봉에 이어 흙목이까지 이어지는 연봉의 모습이 잘 다려진 하얀 제복을 차려입은 해군들의 도열한 모습 그대로이다
가야할 쪽의 산들도 보인다. 묘적봉 너머 도솔봉이 보이고 그 너머의 삼형제봉은 신갈나무 우듬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길은 따사로운 巳時의 햇살을 되받아 세상에 사납게 되쏘고 있었다.
길은 제멋대로 휘어지다 무슨 생각인지 외로운 직진을 계속했다. 데자부처럼 문득 길에대해 너무도 친숙한 느낌이 생겨 났다. 마치 세상이 나를 이곳에 있게하기 위해 변해버린것처럼 모습을 바꾸었다. 사실 산길은 단 한번도 그대로 있어 본 적이 없다. 움직이고 변화하는것이 산길의 본래 모습이다. 세상처럼 산길도 무상하다. 어머니도 무상이요,깨닫은 자도 무상이며 부처도 무상이고 애욕도 무상인것이다 무상이 세상인것이다.
무상의 화성이 변화를 일어키며 무궁동의 곡처럼 반복되어진다. 無常과 윤회의 정교한 변화 속에 인생의 고락을 접목시키는것이 삶이라면 산이 곧 삶이요, 산의 관념이 곧 삶의 관념이 되듯 세상 만물의 모든 법성은 둘이 아닌, 오직 하나일지 모른다.
09:18
묘적령에서
솔봉에서 묘봉 다시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의 3악장을 떠올리게했다 이 곡은 세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셰익스피어 희곡의 내용과는 관계없고 다만 곡이 주는 격정적이고도 경쾌한 기분을 부제로 차용한 곡이다.
소백산의 긴 능선이 너울처럼 눈 앞을 가로막는데 산을 오르내리는 기분이 마치 거대한 폭풍속에서도 거침없이 나아가는 희망의 범선을 보는듯했다. 빌헬름 캠프의 현학적 피아니즘, 허공을 지긋이 주시한 가운데 폭풍처럼 달려가는 손놀림. 靜과 動의 톱니바퀴와 같은 맞물림.. 나도 음악처럼 알레그레토의 현란한 발걸음으로 산길을 폭풍 질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편 프리드리히 굴다의 이지적이고 따뜻한 색감, 긍정적이며 희망을 가져다주는 자유분방한 연주도 떠오른다. 불구의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며 만든 위대한 소나타,템페스트. 내 아픈 무릎이 얼마 남지 않은 대간 산행을 위태롭게 하는 가운데 고통을 이기는 방법은 역시 처연한 낭만 밖에 없는것일까? 악성이 남긴 이 소중한 소나타를 되새김질하며 서서히 밀려오는 고통의 공포를 잠시 잊어본다.
묘적령에서 약간 비켜나간 곳에서 바라본 자구지맥의 수려한 능선
자구산
자구지맥은 백두대간 묘적령으로부터 맥이 뻗어져 옥녀봉 자구산 부용산 매봉산 냉정산 남산을 거쳐 예천군 계포면 담암리에서 생명을 다하는 한천 동쪽 지맥이다.
10:00
묘적봉에서
묘적봉 뒤로 도솔봉의 봉우리가 보인다.
도솔봉
도솔봉의 도솔은 도솔천에서 차용한 명칭으로 사후 세계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석가모니도 보살 시절 도솔천에서 수행하셨고 미래 부처님이신 미륵불도 도솔천 내원에서 사바세계로 내려갈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 지명이 도솔인 이유는 소백산 비로봉을 비로자나불 즉 부처님이 살고있는 세계로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소백산은 불국토이며 도솔봉은 불국으로 가는 사바세계의 마지막 관문인 셈이다. 도솔천은 산스크리트어인 tusita의 음역으로 한문으로 知足,妙足,喜足,喜樂이며 우리말로는 '만족시킨다'는 뜻이다. 왜 이 말을 하는가하면 도솔봉 앞의 묘적봉의 묘적은 앞서 말한 妙足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도솔과 같은 뜻이된다.
그러므로 도솔봉은 희망의 지명이다. 도솔봉에 이르러 마침내 소백의 눈덮힌 설산을 보니 마치 수미산처럼 어엿하고 과연 연화처럼 아름답다.
-펌- 참고: 도솔천의 “도”는 투구두(兜)자를 써 우두머리솔(率) 혹은 거느릴솔(率)자와 결합하였다. "山"을 쓰지 못하고 "峰"을 쓴 것은 소백산이 있기 때문에 산 보다 한 단계 아래인 "峰"을 붙였다. 도솔봉은 소백산군에 속하면서 죽령을 경계로 남쪽 산줄기의 시작점에 우뚝히 솟아 있다.
지나온 산들의 파노라마
11:00
도솔봉 오르는 계단을 처연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얼마나 산길을 걸었을까 일부러 시간을 묻지 않았다 걸어오는 동안 나는 마음을 오로지 길의 방향으로 정치시켰다. 마음이 길이고,길이 마음이었다 마음의 길이 우주에 끝없이 흐르는것처럼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그 길로부터 서서히 자유를 얻어갔다. 싱싱한 고독이 몸의 피로를 몰고갔다. 나는 견뎌야한다. 견딜수 있다는 자기 암시를 끝없이 쏟아부었다. 나는 통증을 어느정도 유지함으로써 산행의 순수함과 구도적 의미까지 찾으려하고 있었다. 산길을 걷는 동안 오직 나 자신만이 전부요,신앙이며,희망이었다. 나는 내 부실한 다리 하나로 오직 나 자신의 현재를 해결해야하는것이다.
도솔봉에서의 파노라마
저수령으로부터 촛대봉, 투구봉, 시루봉, 솔봉 , 묘적봉, 도솔봉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산봉우리를 넘어왔지만 어느것 하나 산이라 이름 붙여진것이 없는것은 오로지 소백산만이 산이고 나머지는 소백산이 품은 산들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소백산을 바라보는 산들은 산이라기보다는 더 넓은 세상처럼 보였다 물새들이 하늘 속으로 날라 그들의 높이를 키우듯 산들도 모여 그들의 웅장함을 과시했다.
모든 삶은 죽음을 만들듯 그렇게 세상을 장엄한 산들은 또 더 높은 산을 만든다.
하얀 눈들은 말을 배우는 어린 아이처럼 사심이 없는 마음을 세상을 빼곡이 매운다 시들지 않는 푸른 잎들은 청년의 푸른 욕망처럼 얼굴을 드러낸다.
숭엄한 세상이다. 비록 찰라라 하여도 세상의 축복 속에 내가 놓여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해야할 일인가!
도솔봉 조망 바위에서
대연동이님 감쏴^^*
11:04
뒤를 돌아보니 당진에서 온 백두대간 산행팀이 빠르게 우리 팀에 접근하고 있었다. 눈덮힌 산길에 사람들이 꼬이는것은 어느모로나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행들이 속력을 내어 걷기시작함과 동시에 내 기력은 급속히 소진되어갔다. 묘적봉에서 도솔봉에 이르는 동안 힘을 너무 쓰버린 결과이다. 숨이 턱턱 막혔지만 풍경 감상이고 사진이고 다 내팽게치고 오직 발걸음을 재촉한다. 차분히 올라야할 계단을 속보로 오르니 숨이 턱턱 맞힌다. 어쩔 수 없다 달아나야한다.
11:15
도솔봉에 올랐지만 사진 한장 찍고 주위 한번 돌아보고 얼른 떠난다. 뒷팀의 소리가 벌써 귓가에 다가왔고 그러는 사이에 성미 급한 선두가 이미 도솔봉에 도착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얗게 눈이 쌓인 소백산 봉우리들이 마치 바람부는 날의 파도처럼 하얀 포말을 남기며 동쪽으로 나아간다. 눈부신 청백의 조화가 가슴을 뛰게했다. 내가 마지막 걸어야할 길 답게 길 스스로 장엄했다. 결국 저 길을 위해 나는 솔봉에서 도솔봉에 이르는 험한 산의 강물을 건너야했다. 길은 기도요 수행이었다. 우주의 크기로 마음이 팽창해 나갔다.
가요 가요 도솔봉 지나 저 소백산 비로봉으로 가요 걸어서 깨닫음을 얻고자함이 아니라 깨닫음을 증거하기 위해가요. 내 걸음 속에 오롯한 깨닫음을, 몸으로 터득한 이 상처보다 깊은 깨닫음을.
도솔봉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는 나무 계단 아래에서 길은 우측으로 꺽이며 삼형제봉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급한 비탈이었다. 발뒤꿈치로 간신히 브레이크를 걸며 눈으로 뒤발한 급사면을 조심해 내려갔다. 누군가 미끌어진 흔적이 눈 위에 깊은 스크래치를 남겼다. 교훈을 주는 상처였다.
도솔봉을 뒤돌아 보며
11:41
아무리 봐도 아름다운 지나온 산들의 궤적
산 사람들은 새로운 산을 만나면 언제나 세상에 새로이 태어난듯 자신을 깨친다. 맑은 마음도 어린아이아 같은 천진함도 다 깨우침의 결과이다. 어짜피 깨우침의 결과는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것. 산을 통해 새로이 생겨나는 이 미묘한 각성이야말로 바로 깨우침이 아닐까
도솔봉에서 삼형제봉에 이르는 궤적.
삼형제봉을 지나 온것 같았지만 삼형제봉을 알리는 표지같은것은 없었다. 다만 입에 단내가 나도록 계속 산을 오르내렸다. 삼형제봉을 지나면 우측으로 하산길이 나온다고 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해석같았다
삼형제봉 아래에서 마지막 배낭털이를 하였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하산길은 삼형제봉이 아니라 1291봉 우측으로 나있었다. 희망이 절망을 부풀였다. 모르면 그냥 걸어갔을 산길도 기대를 비켜나자 어마어마한 고통이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죽령에서 도솔봉을 향해오는 산팀과 조우해 진행이 더 무뎌졌다. 산을 먼저 오르던 대원들이 노루와 같은 슬픈 눈으로 씩씩거리며 올라오는 나를 바라보았다. 억지로 파이팅을 외쳐보지만 이미 의지가 바닥난 상태였다.
1291봉 오르는 지점에서 길은 급히 우측으로 꺽이며 비로소 하산길을 열어주었다. 직진하면 1291봉으로 나아가지만 그기는 금지된 통로이다. 혹 호기심 많은 사람이 그 금선을 너머 봉우리에 다달으면 조촐한 봉분 하나가 놓여있다. 1291m 정상에 놓여있는 에굽왕과 같은 거대한 욕망의 응집물. 인간 욕심의 무한함을 함께 보리라!
11.52
끝없는 하산길은 나를 절망시켰지만 솜털만한 희망도 주었다. 대간길 고달팠던 고비마다 나를 위무한 한마디.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통으로 신음하는 나를 대신해 남양씨가 배낭을 대신 짊어져 주겠다고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것처럼 고마왔지만 나는 사양했다. 내 마지막 자존심었다. 그것이 소중한것인지 어떤것인지 몰라도 그래서는 안될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빠르게 길을 내려갔다.
14:06
샘터에 왔지만 물을 마시러 갈 힘도 없어 그냥 지나쳤다. 하산길은 그야말로 지루했다. 멀리 조령탐방 지원센터가 보였지만 거리는 좀처럼 줄지않았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낙타가 죽는 법은 없다 낙타는 사막의 끝 초원의 바람이 낙타의 코끝을 간질 무렵 마침내 쓰러진다.
고통을 의심하는 자여! 이제 곧 자유를 증명하는 바람이 불것이다. 고통은 의심이 시작될 때 비로소 시작하는것. 고통의 의심은 죽음을 각오한 의심이다.
낮은 산 두개를 넘자 차마고도와 같은 외로운 길이 홀연히 나타났다. 정감을 자아내는 외로운 소로였다. 역경을 회복하기에 알맞은 길이었다. 또한 열반에 들듯 근심 잊기에도 좋은 길이었다. 걸음이 수행처럼 걸음을 재촉했다. 어른이 되어 나이를 먹기에도 좋은 길이었다.
14:30
마침내 죽령
- 후 기-
먼 길 앞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 진리요, 여과없이 받아들이는것이 다 진리이다. 똥 마려울 때 똥을 싸고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중에서
Erstarrung(Numbness)-동결 얼어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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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졸업은 해도 졸업식은 함께 할 생각입니다.
다리 힘 좀 추스려서 다음 산행 때 좋은 모습 보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방금 뉴스속보 경주리조트강당이 무너저 대학생50~60명이 매몰됬다네요...빠른 구조를 빌며...
마지막 한구간을 남겨둔 님의 두 다리야 말로 위대한 칸의 그것입니다....암요
그래요,저 아까운 목숨들을 어찌합니까 ㅠㅠ
poll원장님!
멋진설경 예쁘게 잘 담으셨습니다.
끝을향한 발길에 더더욱 가속이 붙어
이제는 뜬구름님 처럼 2회차 대간종주를 하셔도 무방하리라 여겨지구요,,
늘 입춘다경으로 화평하시길 빕니다.
정말 대간을 통해 제대로 산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대간길은 생각보다 더 큰 스승이었어요.
하지만 다 아시다시피 저는 대간을 계속 걸을 여건이 못됩니다.
그 동안 대간길을 계속 탈 수 있었던것도 다 우리 후미조의 정말 각별한 배려 때문이지요.
제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숟가락 하나 얹고 따라간것이지요.
저에게 대간 완주는 그야말로 기적입니다^^*
완주 코 밑을 추카함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어요.
폴님 아니 계시면 우리도
카운터다운.
왠지 이별이 무서버.
회장님 잘생긴 코만큼 엄살이 심하십니다.
함께 가시면 됩니다.
무조건 함께 가신다면 저같은 놈도 완주할 수 있는것이 백두대간입니다^^*
다음 산행이 졸업입니까?
POLL 님의 글과 사진을 계속 접할수 있을지...
네,벌써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제 후기는 11기 방에 가면 있습니다...
대간을 타면서 제일 큰 고역은 앞서 도착한 분들을 오래 기다리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 고통으로부터는 해방입니다.
초이님을 비롯한 선두조에게 정말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