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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축복의 열쇠 원문보기 글쓴이: 보아너게
시84편 제목 : 공중(公衆) 예배(禮拜)의 즐거움
(마음의 소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84;11)
개 요
시84편은 “고라자손의 시 ”깃딧“에 맞춘 노래”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시입니다. “깃딧”(gittith)은 시8,81,84편에 소개된 리듬 또는 악기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거문고”, “수금”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또한 “깃딧”은 히브리어로 포도주를 밟으면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으로 해석(解釋)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포도주 수확 때 아니면 추수 후에 축제(祝祭) 시 부른 노래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시84편은 시편의 진주(珍珠) (pearl of psalm)라고도 합니다.
고라 자손은 레위의 증손자로서 모세와 아론에 대한 반역(叛逆)을 도모하다가 죽은 자들의 후손입니다. 이들은 다윗에 의해 성전 문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 받았으며.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을 가까이 사모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시의 형식은 기본적으로 “찬양 시”이며, 구체적으로는 “시온의 노래”입니다.
본 시편의 저자는 확실치 않으나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제사장 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고라 자손은 이 시를 보관하였을 뿐입니다. 어떤 이는 저자를 다윗으로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저작 시기는 본문에 “주의 궁전”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바벨론 포로 이전으로 생각됩니다. 12절로 되어 있는 짧은 시 속에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복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길은 곧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요14;6)
순례자(巡禮者)가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지만 어떠한 눈물의 골자기를 통과해서라도 그곳 곧 하나님이 계신 곳에 이르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생의 참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이 하나님을 찾고 또 그분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이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價値) 있는 일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을 간절히 사모함과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순례(巡禮)와 하나님의 성전에 거함으로 만복을 누리는 복을 노래하며 본시를 끝냈습니다.
내용 분석
시84;1-4 하나님의 성전을 간절히 사모함
시84;5-8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순례함
시84;9-12 만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성전에 가함
시84편 해설(解說)
1. 시84;1-4 하나님의 성전을 간절히 사모함
1-2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1) 1-2절, “주의 장막이 . . . 사랑스러운지요” 이것은 성전(聖殿)의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시인은 주의 장막(帳幕)의 아름다움은 주님의 임재하심으로서의 아름다움입니다.
2) 사랑스럽다는 말은 인생에게 사용되는 말이지만 시인은 주님이 임재 하여 거하시는 주의 장막(將幕)을 사랑스럽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승리를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으면 그 사람의 심령은 주님의 임재의 장소이며 은혜, 평강 사랑으로 충만(充滿)하여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아름다움도 외적에 있지 아니하고 영적 은혜와 진리의 풍성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엡3;16-18)
4)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시인은 여호와의 궁전(宮殿)을 얼마나 사모하고 그리워했는지 영혼이 쇠약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5) 성전을 향한 시인의 사랑은 내 영혼, 내 마음, 내 육체라고 말함으로 전 인격적으로 감사하고 찬양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3-4절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1) 3-4절 나의 “왕” “하나님” “여호와” 시인은 하나님의 칭호(稱號)를 세 가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전쟁에 능하시며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2) “참세, ”제비“ 시인은 성전에서 보금자리를 얻은 새들을 부러워할 정도로 주님의 장막을 사모하고 사랑했습니다. 새들은 주님의 장막에서 자유롭게 새끼 둘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예배(禮拜)하며 찬양하고 섬긴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3) “주의 집에 거하는 자” 이 사람들은 복 있는 자들입니다. 시인은 성전을 주의 집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항상 주님을 사랑하여 찬송합니다. (셀라)
4) “셀라” (히브리어) 시편에서는 "멈춰서 들으라"라는 의미로 해석(解釋)될 수 있습니다. 앞 구절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셀라는 아멘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잠시 멈추어서 앞의 내용을 묵상(默想)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2. 시84;5-8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순례함
5-6절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1) 5-6절 “시온의 대로”(the highways to Zion) 시온(Zion)은 히브리어로 “찌욘”이라 하는데 “상승”(elevation) “뛰어남”(excelancy) “고봉”(peak) “정상(summit”의 뜻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2) 성경에서 시온 산은 모리아 산과 같은 지명입니다. 모리아의 히브리어 뜻은 “보다” “붙잡다” “차지하다” “선택하다” 등으로 “여호와의 보심” “여호와의 선택” “여호와의 이상” 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훗날 모리아 산(山)인 바로 그곳, “여부스” 사람인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성전을 건축하시기로 이미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성전 산이 되고 시온 산이 된 것입니다. 모리아 산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곳으로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보시고, 준비하신 곳입니다.
4) 모리아 산은 하나님께 번제(燔祭)물(物)을 바치도록 준비해 놓으신 곳입니다. 반면에 시온 산은 번제물을 바친 우리의 육적(肉的) 생명이 바짝 말라 죽음에 이른 뒤 부활(復活) 생명으로 높여진 곳입니다. 그러므로 시온 산이야말로 하나님의 거처가 있는 곳이며 그 거처는 변화된 우리의 거처이기도 합니다. 이 시온 산에
이르는 길이 바로 시온의 대로입니다.
“거기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사35;8-10)
5) 인생의 최상의 복된 길은 마음에 시온의 대로(大路)가 있는 길입니다.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주님께서 주시는 힘이 있습니다. 그 길은 거룩한 자만 올라 갈 수 있고 부정한자나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지날 수 없습니다. 오직 구속(救贖)함을 얻은 자만 지나갈 수 있습니다.
6) 성도들은 이 땅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자들이며 지나가는 나그네요 순례자(巡禮者)들입니다.
7) 그 길에는 눈물 골짜기(고난)도 있고 사망(死亡)의 음침한 골짜기도 있습니다. (시23;4) 그러나 주님께서 은혜로 항상 함께 하심으로 승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메시아의 오실 길을 침례요한이 외쳤고 주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救贖)의 일을 이루셨고 우리에게 새롭고 산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10;17-20)
7-8절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1) 7-8절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주님이 계신 성전을 사모하여 시온의 거룩한 길을 가는 성도들은 복된 자들입니다. 그것은 복의 근원(根源)이신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진 시련(試鍊)과 고난(苦難)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은 힘을 얻고 더 얻습니다.
2) “만군의 하나님”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야곱이 죄를 범하고 도망갈 때 만나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죄인을 만나주시고 말씀하십니다.
3) 야곱이 거짓 행위와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 만나 주시고 이름도 “야곱”(발뒤축을 잡음)에서 “이스라엘”(하나님이 투쟁하심)로 바꿔 주셨습니다.
4) 오늘 날도 성전을 사모하고 주님께 기도하는 이들을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대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암4:13)
3. 시84;9-12 만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성전에 거함
9-10절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 9-10절 “우리의 방패” 시인은 나의 하나님에서 우리 하나님으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성전을 사모하고 주님의 장막에 거하기를 갈망(渴望)했던 시인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교제함으로 누렸던 축복을 공동체(共同體) 즉 교회로 돌려서 그 대표자인 “주의 기름 부으신 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2)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직분 자들은 나라를 위해서 세우신 왕이나 제사장들일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고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들은 성전에 올라와서는 직분 자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3) 잘못된 왕들이나 제사장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다윗의 경우를 보더라도
부하의 아내를 취했다가 얼마나 개인적(個人的)으로나 국가적(國家的)인 시련을 겪었습니까?
4) 오늘 날에도 직분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평안하고 바른 신앙과 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5) 시인은 악인의 장막에 천 날을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궁전에서 하루를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은 악인의 장막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시기와 분쟁과 탐욕과 살인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의 장막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고 행복합니다.
6) 시인은 다시 주의 궁전(宮殿)으로 돌아 와서 뜰이나 문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주님의 궁전의 뜰이나 문간이라 할지라도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7) 여러분들은 주님 없는 악인들과 천 날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루를 살아도 은혜와 평안과 감사와 행복이 있는 곳에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까?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벧전3;8-12)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6;18-20)
11-12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1) 11-12절은 “해” 해는 생명과 기쁨을 주는 원천(源泉)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태양이십니다. 주님은 당신을 아는 자들에게 사랑을 계속하시며 정직한 자에게는 의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주를 아는 자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하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의를 베푸소서“ (시36;9-10)
2) 은혜와 영화“ 세상적인 것과는 대조되는 개념으로 복음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세계를 의미합니다. 전에는 죄인으로 구원(救援)의 은혜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3) 이 모든 것은 그리스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닮아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參與)하고 하나님처럼 되는 것, 이것이 주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은혜와 영광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8;28-30)
3) 시인은 처음에 “주의 장막” “뜰” “제단” “집“으로 시작하였지만 마침은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은혜와 방패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행복하여 주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이 시를 마쳤습니다.
4) 주님은 자신을 의지하는 자의 태양이시며 방패이시며 또한 주님은 “은혜”와 “영화”를 주시는 분이시며 정직한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5) 사도 바울은 이 은혜의 영광을 얻고 난후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排泄物)로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3;5-9)
결 론
시인은 주님이 계신 전을 사모했습니다. 주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 순례의 길을 가면서도 시인의 마음에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예배드리기를 눈이 짓 물리도록 사모했습니다.
어떠한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한다 할지라도 주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고 시온의 대로에 들어선 사람은 복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시인은 주님은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태양이시며 방패이시고 은혜와 영화를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시인은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신 세 가지 복을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첫째 “주님의 집에 거함” 둘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음” 셋째 “주님을 의지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자들은 복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자기중심의 삶에서 공동체 즉 교회를 위하고 사랑하며 직분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올바른 가르침과 인도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축복이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합니다.
성도들의 모든 어려운 시련들도 사실은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영광과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성도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까? 주님의 장막을 사모하고 사랑하십니까?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4;23-24)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8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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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축복의 열쇠 원문보기 글쓴이: 보아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