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밥집에서의 1년(황찬욱, 아우구스티노, 명동밥집 봉사자)
제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까지만 해도 명동은 대한민국의 중심지였습니다. 거의 모든 금융기관과 화려한 패션상가, 일류 제화점들이 있었고, 옆 동네 충무로는 문인들과 영화인들로 붐볐습니다. 그런 화려한 욕망의 명동에서 저는 1982년 은행원으로 저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는데, 근 40년이 지나 이번에는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명동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명동대성당 안에 있는 무료 급식소 명동밥집에서 말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침체 속에서 어딘가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중 우연히 명동밥집 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봉사에 대한 거창한 의미나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그렇게, 우연히 시작했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봉사를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저에게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주어진 것을 받아들인 것뿐이지요. 모르는 사람과 가까워지기 힘든 성격의 제가 지난 1년 동안 명동밥집에서 봉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신기합니다. 솔직히 봉사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은 뿌듯하기보다는 피곤하고, 늘 저녁에 있을 레지오 주회합 준비를 걱정하는 마음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명동밥집이 지난 1년 사이에 꽤 이름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누구나 알만한 연예인도 다녀가고, 심지어 대통령 당선인도 다녀갔습니다. 명동밥집이 무료 급식소 중에서 제법 그럴싸한 곳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생각하기에도 좀 어이없지만, 명동밥집 봉사를 그저 우연히, 정말 우연히 시작했던 제가 요즈음은 이런 유명한(?) 명동밥집 봉사자라는 것에 스스로 뭐라도 된 양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마치 제가 처음부터 커다란 뜻을 가지고 봉사를 시작했고, 저를 포함한 봉사자들의 노력 덕분에 명동밥집이 이렇게 빨리 자리 잡고 유명해진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앞길을 계획하여도 우리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시듯이(잠언 16,9) 오늘의 명동밥집이 있기까지 그분의 이끄심이 있었음에도, 그리고 저는 그저 곁에서 “예,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것뿐이었음에도, 그분께서 하신 일을 마치 제가 한 일인 양 뻐기고 있는 것이 제가 생각해도 참 염치없는 일입니다.
이런 저의 염치없는 생각과는 별개로 지난 1년 동안의 엄청난 변화를 생각하면 그분께서 앞으로 1년 동안 또 어디로, 어떻게 명동밥집을 이끌어 가실지 내심 기대가 참 많이 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저를 불러주셔서 기쁘고 감사드리면서, 주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듭니다. 게다가 일을 썩 잘하는 편도 아닌데, 저를 굳이 불러주신 이유를 알고 싶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계속 봉사를 다닐 수밖에 없겠습니다. 아마 이렇게 계속 봉사를 다니다 보면 염치없는 착각도 자연스럽게 고쳐주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