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내요, 푸른 하늘 / 신현지
연일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한반도를 달구고 있는 열기가 대단하다. 밭 가장자리에 놓아 둔 컨테이너 문을 열면 달아오른 지열에 얼굴이 뜨겁다. 뙤약볕을 피해 강으로 바다로 몰려가는 계절이지만 낡은 컨테이너 한 동으로 꾸며진 사무실과 그 앞에 펼쳐진 밭에서 올여름을 보내기로 했다.
불볕더위에 바짝 타들어가는 밭작물에게 미안하다. 뜨거운 지열에 오히려 감사하며 이 더위를 탈출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또 미안해진다. 어쩔 수 없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이 이 뙤약볕과 가지에 달린 크고 탐스런 열매와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모자를 눌러쓰고 긴 옷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태양 아래 섰다. 발그스름하게 익는 털복숭아. 그 사랑스런 복숭아를 따서 바구니에 담으니 흐르는 땀을 닦을 시간조차 아까워진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이 눈에 가득 고인다. 시야가 흐려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이가 드니 주책없어진다는 남편의 말이 고맙게 느껴진다. 그만큼 오랜 시간 살아가기 위해서 주책없이 살아야 했다.
남편이 복숭아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더 이상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는 남편을 말리지 못한 게 시작이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힘든 일 한번 겪어보지 않았던 남편은 자신감에 넘쳤고 여러 가지 일에 손을 댔다. 현실은 남편이 원하던 세상과 거리가 멀었다. 새로운 일을 벌일 때마다 새로운 가지가 벌어졌고 빚이라는 열매가 덩그러니 달려버렸다. 빚은 자꾸만 커지고 영글어 갔다. ‘끝없는 나락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때 알았다.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일은 더 꼬여버렸다.
남편 대신 누군가가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야 했다. 자격증 하나 없이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내게 세상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면접을 보고 떨어지고 또다시 면접을 보고. 겨우 일자리를 얻어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그동안 남편은 꾸준히 무언가에 도전하고 실패를 거듭했다. 남편이 벌려놓은 가지의 순을 자르고 더 달리지 못하게 열매를 솎아내느라 해가 뜨고 지는 줄도 몰랐다. 그러는 사이 아들은 저 혼자 자라 어미의 짓눌린 가슴을 뚫어주는 청년이 되었다.
몇 해 전, 남편이 아버님 소유의 땅에 복숭아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무덤덤했다. 일을 크게만 벌이지 않았으면, 인생의 한방은 허황된 꿈이란 걸 알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제발 불다마는 바람 같은 것이었으면 했다. 한차례 휙 불고 지나가면 이리저리 날린 쓰레기를 치워야하는 청소부 역할을 이젠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님 땅에는 오래된 복숭아나무가 우후죽순으로 자라고 있었다. 땅이 팔리면 나무 값이라도 받자고 심어놓은 나무였기에 제대로 된 복숭아를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익은 것은 듬성듬성 점이 박히거나 아예 쓴맛만 나는 복숭아였다. 복숭아를 받을 때면 감사한 마음보다 반은 버렸고, 그중 괜찮은 것은 골라 설탕을 듬뿍 넣고 통조림을 만들어 겨우 먹었다. 바쁜데 일거리 하나 더 주신다고 늘 투덜거리기만 했다.
제대로 된 복숭아가 열릴 것 같지 않은 나무를 남편은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주위에선 나무가 오래되고 관리가 안되어 좋은 열매를 얻기 힘드니 베어버리고 신품종을 심으라고 부추기기 시작했다. 남편이 고민할 때마다 눈물이 핑돌았다. 내 가슴에 불그스름하게 커가는 멍을 남편은 알지 못하는 게 아닌가싶어 화가 났다. 그때만큼은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나무를 베어버리면 묘목값이 들어가야 하고, 자라기까지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지쳐버렸다. 남편은 아무말 없이 밖으로 나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사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농사꾼의 전락해버린 남편이 지금 벼랑위에 서 있다는 것을. 자존심도 버리고 마지막 보루에 서서 자신보다 먼저 가족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도 물러설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아들에게 이제라도 남들처럼 해주고 싶은 엄마로서의 욕심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도 가족을 위해서 선택한 고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 말이 없이 고민만 하던 남편은 온갖 정성을 다해 나무를 가꾸기 시작했다. 모자라는 기술은 농업기술센터에 나가서 배우고 작목반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노하우를 전수받으려고 했다. 작목반 선배 중에 전국에서 제일 좋은 복숭아를 생산하는 분이 계셨다. 매일 그 분 밭에 가서 인사를 하고 따라다니며 일하시는 모습을 관찰했다. 남편은 삶의 바닥을 친 사람 같았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스스로 다그치는 것 같았다. 바닥을 쳤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빚이 열리는 나무가 아니라 돈이 열리는 나무를 보여주겠다던 남편은 석달 동안 작목반 선배의 농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거추장스럽다고 내치시던 그분도 어느 틈에 친동생처럼 여기며 근성이 좋다고 칭찬해 주셨다.
“가지치기도 사업과 같아. 아깝다고 남겨두면 안되는 거다. 아까울수록 과감하게 내쳐야 다른 가지가 햇빛을 받아 잘 자라는 걸 잊지 마라.”
남편은 선배님의 말씀을 들으며 진정한 농사꾼이 되어갔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허드렛일을 거들어주고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분도 처음으로 맘에 든 제자를 두었다고 차근차근 일을 일러주셨다. 하얗던 남편의 얼굴이 까맣게 익어갔다. 불룩하게 튀어나왔던 배도 들어가고 곡괭이 한번 들어본 적 없는 팔뚝에 근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분의 농장 일을 거들어주고 밭으로 돌아와 우리 나무를 돌보다보니 새벽에 나가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밤엔 복숭아 관력 서적을 읽으며 지식을 넓혀갔다.
남편은 나뭇가지를 자르는 일부터 정성을 다했다. 가지를 잘라 충분한 일조량을 확보하고 꽃을 따서 열매의 수를 줄여갔다. 아버님은 아까운 열매를 다 없앤다고 난리를 치셨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해 나갔다. 일손을 구하면 인건비가 나가니 혼자 그 일을 다 해냈다. 예전 같으면 시키는 입장에서만 하던 일을 남편은 손수 해내기 시작했다.
태풍이라도 불면 하나도 남아날 것 같지 않은 수만 남기고 다 잘라버린 열매를 보면서 남편은 경우의 수를 모르나 싶었다.
만약을 대비해야 조금이라도 건질 수 있지. 이러다 복숭아 농사짓는 집에서 우리 먹을 것조차 남지 않겠다며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열매에 하나하나 봉지를 씌우기 시작했다.
“크고 좋은 열매를 만들어야 상품이 되는 거다. 아깝다고 남겨두었던 게 크고 실하게 자라는 걸 방해하는 거야.”
남편의 고집처럼 완고한 열매들이 그만 포기하라던 나무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태양을 받으며 잘 자라 당도를 더해가는 복숭아는 한 입 베어 물면 자꾸 입맛을 다시게 했다. 떫은맛을 내던 복숭아 대신 크고 탐스런 복숭아가 향기를 내고 있었다. 벌레조차 파먹지 않던 복숭아 열매는 아무나 맛볼 수 없는 고급 복숭아로 돌아왔다. 주위 농장에서 놀란 눈으로 구경오기 시작했다. 올해는 경매에서 매번 일등을 하는 최고급 복숭아를 생산하게 되었다.
남편은 빚 대신 빛의 가지를 뻗어갔다. 빛의 가지에선 빛의 열매가 열리고 우리 가족의 얼굴에도 빛이 돌기 시작했다. 남편은 대한민국 복숭아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포부를 품고 땅을 세내어 신품종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몇 년 후엔 맛과 향이 뛰어난 신품종 복숭아로 수출의 길을 열고 고부가가치를 실현하겠다고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1차 산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6차 산업과 연계하여 농촌의 새로운 활력을 찾겠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올해는 휴가 기간 동안 남편과 함께 복숭아를 따며 보내기로 했다.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일등 복숭아를 키워내는 남편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은 아내의 마음이 더위를 이긴다.
열매를 따기 위해 사다리를 올라간다. 사다리 위에서 하늘을 본다. 복숭아 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푸른 하늘을 아이디로 쓰는 남편, 하늘처럼 넓은 가슴으로 가족의 열매를 키우는 남편을 보니 눈이 부시다. 아니, 눈물이 난다. 기쁨의 눈물이다. 난 이렇게 평생을 푸른 하늘에 닿기 위한 사다리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함께 힘을 내요. 그렇게 두 손 꼭 잡고 살아가자고 푸른 하늘에게 눈짓을 보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