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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강 중류 반여동 상리 마을에는 여산 송씨(礪山宋氏)[영모재]와 남평 문씨(南平文氏), 삼어 마을에는 여산 송씨[영모당]·동래 정씨(東萊鄭氏)[인화당]·남평 문씨 세거지가 있다. 중리 마을에는 청도 김씨(淸道金氏)[동영재]와 남평 문씨 세거지가 각가 있다. 수영강 하류 재송동 재송 마을에는 압해 정씨(狎海丁氏)[장산재], 뒷골 마을에는 은진 송씨(恩津宋氏)[재송재, 송문 삼성 회관] 세거지가 있다. 해운대 춘천 유역 상류 좌동의 좌동 마을에는 김해 김씨(金海金氏)[덕송재]와 김녕 김씨(金寧金氏) 세거지가 있고, 춘천 중류 중동의 오산 마을에는 밀양 박씨(密陽朴氏)[행오재]·동래 정씨 세거지가 있다. 또 온천 마을에는 신안 주씨(新安朱氏)가 있다. 장지천 상류 우동의 장지 마을에는 김해 김씨 안경공파[선황사]와 한림공용파가 세거한다. 어촌 자연 마을인 중동의 미포 마을에는 인동 장씨(仁同張氏)[옥운재]가, 청사포에는 연일 정씨(延日鄭氏)가 세거한다. 송정동의 송정 마을에는 광주 노씨(光州盧氏)[문중 회관], 구덕포 마을에는 함안 조씨(咸安趙氏)가 세거하고 있다. 이상의 세거 성씨는 전국 여러 지역에서 들어와 자리 잡았는데, 주로 왕조 멸망, 전란, 정변, 사화 등을 피하여 동래 지방 산골 오지나 바다 해안을 통해 이거하였다. 이들 세거 성씨는 임진왜란 때 특히 공신을 많이 배출하였다. 선무 원종공신으로 장지 마을 김해 김씨 안경공파의 김희수(金希壽), 좌동 마을의 김녕 김씨 충의공파 김복, 석대 마을 창원 구씨 석대파 구영취, 반송 마을의 남원 양씨 평창공파 양조한·양통한, 중리 마을의 청도 김씨(淸道金氏) 서동파 김사위, 운봉 마을의 남평 문씨(南平文氏) 동래 종중 문덕겸(文德謙)·문세휘(文世輝)·문택용 등이다. 그러나 1970년대 도시 개발로 많게는 50여 가구에 이르던 세거 성씨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특히 다음의 여러 원인이 성씨 세거지의 해체를 부추겼다. 첫째는 혈연적인 결합 의식을 고취하는 문중 행사가 없고, 둘째는 정보 사회에서 지역적 공동체의 성격을 잃어 가며 동성 집단 성원의 많은 이주 대신 비동족의 전입이 많다. 셋째는 문중 가문을 고수해 온 종가의 몰락과 문중 주체 세력이 없어졌으며, 넷째는 가문을 중시하거나 조상을 숭배하는 등의 가치관이 변했기 때문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