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공동체 성경 행간 읽기 모든 글에는 행간이 있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건에서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아 독자가 스스로 빈 공간을 채워서 생각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 성경이야기(성경은 드라마다)에 대한 편집을 하다보니 행간의 중요성을 많이 가집니다. 편집자가 생각하는 것과 원고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다른 이해를 한다면 그런 걱정이 앞섭니다. 우리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읽히는 한 책(성경은 한책입니다)을 읽는데 모두 다른 말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마치 이단들이 그렇지 않은가요. 이번에 편집중인 책에 바로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가진 잘못된 행간 읽기의 대표적 예는 노아의 홍수에서 나오는 까마귀입니다. 까마귀가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기위해 노아의 말에 듣지 않고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은 안맞는 말입니다. 그 까마귀는 진정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살아갈 생각으로 가득해 있을 수 있습니다. 비들기도 돌아오지 않았던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은 어느곳에서도 사랑이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레위기에서도 무슨 음식은 먹지마라 어떤 음식은 먹어도 좋다. 더 앞으로 나가면 창세기에서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를 왜 하나님은 그런 나무를 두고 사람을 심판하시냐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하시고 사랑하시여 하신 일들이다 고 이해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행간 읽기는 까마귀에 대한 다른 성경본문과 더불어 교회 공동체로 타락한 이후에도 온 세상을 돌보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했듯 성도는 주님께서 모든 사람과 온 창조 세계를 사랑하셔서 구속하시기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고 그로 인해 밝은 낮이 왔다는 것을 기억하며 항상 밝고 긍정적인 의미에 중심을 두고 성경을 올바로 읽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옷을 입으라는 것은 교회 공동체가 온전히 성경 읽으라는 것에도 적용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을 지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기운이 넘쳐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성경을 잘못 읽던 일든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고대 유대인은 예언자들이 말한 인자가 오셔서 야웨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임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광경을 보기 원했습니다. 고대 유대인은 야웨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돌아오실 것이라는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기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인자의 날을 바라보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노아나 롯의 시대 때 사람들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과 온 창조 세계를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회개하여 심판을 피할 충분한 시간이 주었지만 결국 주님의 사랑과 뜻을 이해하지 못해 심판받게 될 것일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야웨 하나님께서 돌아오셨을 때 자기 백성은 그 심판을 피하고 살 것이라 확신하며 열심히 살았던 삶이 부정받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처럼 고대 유대인은 주후 70년 독수리를 상징으로 사용하던 로마 군인에 망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좋은 행간 읽기를 간직하기 위해선 항상 주님께서 세상에서 하시는 모든 일이 모든 사람과 온 창조 세계를 사랑하셔서 구속하시기 위함임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씀도 심판 그 자체에 무게를 실지 마십시오. 거룩한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했듯 성도는 주님께서 모든 사람과 온 창조 세계를 사랑하셔서 구속하시기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고 그로 인해 밝은 낮이 왔다는 것을 기억하며 항상 밝고 긍정적인 의미에 중심을 두고 성경을 올바로 읽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옷을 입으라는 것은 교회 공동체가 온전히 성경 읽으라는 것에도 적용됩니다.
기도 : 잘못된 행간 읽기는 공동체로 주님를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어디서나 바른 행간 읽기를 더불어 해야 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근대와 후기 근대주의 빠지지 말고 주님의 복음을 바로 알기를 원합니다. 저희에게 주님 말씀을 읽을 때, 바른 행간 읽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