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14,2-10; 마태 10,16-23
+ 찬미 예수님
오늘까지 제1독서에서 호세아서의 말씀을 듣고, 내일부터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듣습니다. 강경한 어조로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던 호세아 예언자는, 회개 이후 이스라엘이 걸어갈 새로운 길에 대한 희망을 선포합니다.
중요한 말씀은 2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아, 야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야훼이시고, 가나안이 섬기던 신의 이름은 ‘바알’이었습니다. ‘바알’이라는 말은 ‘주인’, 또는 ‘남편’을 뜻하기도 하는데요, 우상 숭배가 만연하다 보니, 이스라엘에서 하느님을 지칭하는 데에도 이 ‘바알’이라는 이름을 쓰는 관례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호세아는 이에 대해 격노하며 너희 하느님 이름은 ‘바알’이 아니라 ‘야훼’이시고, 바알이 아니라 야훼께서 너희 남편이시라고 외쳤습니다.
이제 이러한 예언의 결론으로 “이스라엘아, 야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라고 선포하며, 야훼께 돌아와 어떻게 아뢰어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이렇게 죄악을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리라는 희망을 전하며 호세야 예언서는 끝을 맺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시며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작년에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해야지, 뱀처럼 영악하고 비둘기처럼 띨띨해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어떤 주석가도 비슷한 얘기를 했더라고요. 뱀처럼 사악하고 비둘기처럼 멍청해서는 안 된다고요.
‘순박하다’는 말은 ‘순수하다’는 의미인데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슬기로운 행동이 순수한 동기와 갈림 없는 마음에서 비롯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하시며 다양한 박해를 예고하시는데요, 첫째, 의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채찍질 당할 것인데, 이는 동족인 유대인들에 의한 박해입니다. 둘째,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해야 할 것인데, 이는 이방인들로부터 오는 박해입니다. 셋째,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라 하시는데, 이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도 오는 박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미카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는 듯 한데요,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대든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미카 7,6)는 말씀입니다. 종말의 때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는데, 이는 ‘모든 종류의 사람’ 즉 동족, 이방인,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으로부터도 박해가 올 수 있음을 각오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이에 대해 세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 사람의 아들이 오는 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그분의 왕국이 세워진 때를 가리킨다는 해석이고요, 둘째, 예수님께서 심판하러 다시 오실 때까지 제자들이 이스라엘을 향한 복음 선포를 끝내지 못하리라는 해석, 그리고 셋째, 예수님의 부활 이후 이스라엘을 향한 선교가 예수님의 재림 이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해석입니다. 사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좀 비슷하고, 전반적으로 이 말씀은 수수께끼 같은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제 복음과 마찬가지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박해가 올지, 그 종류를 예언하시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대로 살려고 할 때에 따라오는 반대와 박해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느님 나라를 거스르려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즈음 자전거를 타는데요, 길에서 마주치는 한분 한분이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누구나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수행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계시잖아요? 아침에 학교에 가는 초등학생도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그냥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한분 한분이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면서 누구에게 감사하고 있나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감사하는 대상이 나의 하느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진 재물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누구는 자신이 소유한 권력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바알이라고 바꾸어 부르듯, 그렇게 우상을 하느님으로 섬기며 살아가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는, 얼마나 열심히 사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힘으로, 누구에게 감사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야훼 너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라는 호세아 예언자의 말씀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두치오, 호세아 예언자 (1308-1311년 작)
첫댓글 "하느님의 이름을 바알이라고 바꾸어 부르듯, 그렇게 우상을 하느님으로 섬기며 살아가고 있기도 합니다."
신부님, 이 말에 불편하고 찔리는 것은 제가 그렇게 살기도 하다는 거지요?
지금 앉은 자리에서 성호경을 그어봅니다. 나의 주님께 !! 충성하겠다고!!
단장님 말씀을 듣고 저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성찰하게 되네요.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