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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0
전화위복 / 홍문수 목사
유한양행 창업자 고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독립운동가, 교육가, 그리고 기업가로 많은 미담들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는 1920년대 미국에서 숙주나물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 돈을 들고 귀국해서 1926년 이 땅의 병든 민초들을 위해 유한양행이라는 제약회사를 창업했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큰돈을 벌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값싸고 영양가 높은 숙주나물 사업이 잘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미국인들에게 생소해서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포기할까 고민하던 중 하루는 뉴욕 한복판에서 출근길에 숙주나물을 배달하던 트럭이 상가 건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트럭이 뒤집히고 싣고 있던 숙주나물이 거리에 나뒹굴게 됐습니다. 그 바람에 뉴욕의 교통이 마비되었고, 라디오와 신문에서 속보를 내보내고 난리가 났습니다.
이젠 망했구나 생각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언론에서 숙주나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고기를 많이 먹는 미국인들이 많이 먹어야 된다고 선전해 주었습니다. 그 후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런 걸 가리켜 뭐라고 하죠?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합니다. 화가 복이 되는 경우입니다. 인생 살면서 이런 고난만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고난을 당해도 나중에 잘 된다면 얼마든지 고난을 환영하고 기분 좋게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인생 살면서 정말 속상한 경우는 언제입니까?
고생만 실컷 하고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경우입니다. 이런 고난을 생고생 혹은 헛고생이라고 하죠. 정말 약이 오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에게는 모든 고난이 생고생이 아니라 전화위복의 기회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 살면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결코 생고생을 시키지 않으십니다. 고난을 허락하시지만 분명히 그 가운데 뜻이 있고,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축복이 있습니다. 부디 이 사실을 믿으시고 고난 앞에 주눅이 들거나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인생은 일반 경주가 아니라 허들 경주다! 우리는 러너(runner)가 아니라 허들러(hurdler)이다! 장애물이 있지만 그것을 하나하나 잘 넘어가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그런 지혜를 얻으셔서 아무리 인생이 고단해도 소망을 갖고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보면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너무 유명한 말씀이죠. 이 말씀을 잘 분석해 보면, 나아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고 그의 고난은 생고생이 아니라 전화위복이 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누구에게나 있는 고난 : 나병에 걸린 군대장관 나아만
무엇보다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고난은 예외 없이 닥쳐온다는 사실입니다. 나아만은 인간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만큼 대단한 조건들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고난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1절 보시죠.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군대장관은 요즘 말로 하면 국방부 장관입니다. 그는 유명한 장군 출신이고 구국공신입니다. 아람 나라가 아주 약했는데 강국 앗수르와 맞붙어 승리하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나아만은 큰 공을 세웠습니다.
아람은 그 후 주변 국가들이 두려워하는 강국이 됐으니 왕의 입장에서 나아만이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나아만은 실세 중의 실세로 왕 다음 가는 유명 인사였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증거합니까?
그가 큰 용사였지만 나병환자였다고 말합니다.
나병은 지금도 고치기 힘든 병이지만, 고대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죠. 불치병에다 저주의 상징으로 너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병입니다. 그 정도의 사람이면 별의 별 방법으로 병을 고치려고 애쓰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 할지라도 나병으로 인해 인생이 얼마나 괴롭고 슬펐을까요? 얼마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을까요?
이런 것을 보면 인생이 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겉으로 볼 때 화려하고 남들이 다 부러워해도 속으로는 나름대로 이런 저런 고난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고난이란 불청객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불쑥 찾아옵니다. 인생이 이처럼 온갖 고난을 당하다가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간단히 생로병사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2] 하나님 안에서 고난의 승화 : 전화위복을 체험한 나아만
그런데 하나님 안에서 고난의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얼른 보면 신자나 불신자나 고난당하는 게 비슷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에게 고난은 생고생으로 그칠 공산이 큽니다. 반면 하나님이 있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아름답게 승화됩니다. 한 마디로 전화위복이 됩니다. 나아만 장군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나아만이 근심 속에 살아가던 어느 날 그의 집에 하녀로 일하던 이스라엘 출신 소녀가 하나님에게 대해 증거합니다.
3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선지자는 엘리사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면 나병을 고칠 수 있다고 증거한 겁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처럼 소녀의 말은 그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소망이었습니다.
마침내 나아만 장군은 왕에게 허락을 받아 이스라엘로 떠납니다. 왕이 그를 얼마나 위했는지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는 친서까지 써 줍니다.
나병을 고쳐내라는 친서를 받은 이스라엘 왕이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시비를 걸어 침략하려는 것으로 오해할 정도였습니다. 그 때 엘리사가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통지해고 결국 나아만은 엘리사가 증거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은 후 나병을 완전히 고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플러스알파가 있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를 만났고 새로운 삶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병을 주셨지만 약도 주시고 복도 주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고난은 전화위복의 기회인 것입니다.
① 회복 :
나아만 장군은 먼저 하나님 안에서 회복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나병에서 완전 치유된 것입니다. 9절~10절.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 일행이 엘리사의 집으로 갔는데 엘리사가 나와 보지도 않습니다. 사환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만 합니다. 나아만이 화가 났습니다. 자기가 아람의 2인자인데 속된 말로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말만 툭 던지니 그럴 만했습니다. 그는 씩씩거리며 자기 나라에 더 좋은 강들이 있는데 미쳤느냐며 돌아가려고 합니다.
다행히 그의 종들이 현명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시켜도 지금 할 판인데 몸을 씻는 쉬운 일을 해보지도 않고 그냥 가면 안 된다고 만류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이 맞는 겁니다.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밑져야 본전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가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왕하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그가 온전히 순종했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거짓말처럼 깨끗이 나은 겁니다. 여기 저기 터지고 흉측했던 피부가 어린 아이 살처럼 깨끗해졌습니다.
② 구원 :
나아만 장군은 치유 과정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영혼 구원까지 받게 됩니다.
그는 아람에서 우상신을 섬겼습니다. 지금까지 그 신이 진짜 하나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인해 실상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겁니다.
치유 받은 그가 엘리사를 찾아가 한 말이 왕상5:15(상)에 나옵니다.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 ” 분명한 신앙 고백입니다.
여러분, 만일 그에게 나병이란 고난이 없었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아마 그럭저럭 육신적으로 안일하게 살았을 뿐,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부귀영화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것으로는 영혼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고난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을 만났고 영적인 눈이 떠져서 천국을 소망하고, 영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③ 새로운 삶 :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이제 새로운 삶으로 인생이 완전히 변화됩니다. 말하자면 인생이 새로운 차원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육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육신의 욕망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교만에 빠져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져 살았습니다. 나병을 고치러 오는 주제에 군대를 이끌고 좋은 물품들을 갖고 으스대면서 온 꼴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위인이었기에 일부러 엘리사가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에게 시켜 요단 강물에 몸을 씻으라고 했을 겁니다.
그때 나아만의 반응을 보면 그가 어떤 위인인지 여실히 드러납니다.
왕하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병에 걸려 그 지경이 됐는데도 여전히 교만합니다.
자기 생각이 최고입니다. 자기 생각에 버선발로 뛰어 나와 영접하고 안수기도라도 해줄 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 후 어떻게 변화됩니까?
왕하5: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이제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제사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흙을 달라는 겁니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 마음 자세는 가상합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나아만 장군 속편을 기록했다면 어떤 내용들이 기록되었을까요? 하나님께 기쁨으로 예배하는 나아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나아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나아만, ... 이런 내용들이 아니었겠습니까? 나아만은 고난을 당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이 업그레이드된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까, 나아만 장군에게 오히려 고난이 축복입니다. 오히려 고난당한 게 다행이었습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하나님 안에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제2의 인생을 살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닥쳐올 때 무조건 부정적으로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고난을 긍정적으로 진취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더욱 새롭고 복된 인생으로 변화시켜 줄 겁니다.
영국의 국왕 조오지 5세의 이야기입니다.
선왕 에드워드 7세는 왕위계승의 1순위로 장남인 앨버트 빅터를 지명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젊은 나이에 일찍 사망하자 차남인 조오지 5세에게 왕위를 승계합니다.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 왕위를 이어받은 그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긴장된 생활 속에서 오는 불안감으로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도시를 순방하다가 그곳의 도자기 공장을 방문하게 됩니다. 평소 도자기에 관심이 많던 그는 모처럼 평안함 마음으로 공장 둘러보았습니다. 그는 도자기들이 전시된 방에서 아름다운 도자기들을 보며 탄복에 탄복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코너에 두 개의 꽃병이 나란히 전시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같은 원료와 같은 문양으로 만들어진 두 개인데, 하나는 윤기가 흐르고 생동감이 있는 예술품의 수준인 데 반해 다른 하나는 투박하고 볼품이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조오지 5세가 수행 중인 공장장에게 물었습니다.
“공장장! 여기 있는 이 두 개의 꽃병 중 하나는 너무 조잡한데 왜 두 개를 나란히 전시했소?”
그러자 공장장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전하, 멋진 도자기는 불어 구워진 것이고, 투박한 토기는 아직 불이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인생은 고난을 통해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법이지요. 그런 교훈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나란히 전시한 것입니다.”
그 말에 큰 감동을 받은 조오지 5세는 그 후 고난 가운데 확신을 갖고 국정을 이끌었고, 그 결과 근대사에서 성공한 입헌군주의 국왕으로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인물이 됐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119:67,71 “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이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는 고백입니다. 너무 귀한 고백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세상 살면서 이런 저런 고난을 당할지라도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이 더욱 새롭게 변화, 또 변화되는 간증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3] 고난을 대하는 성도의 자세 : 하나님 앞에서 인내와 기도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고난을 극복하고 더욱 아름답고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고난을 대하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호6:1~2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회개하고 돌이키면 치우되고 회복되고 새로워집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가까이 오라고 부르시는 신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닥칠 때 세상으로 가서 이런 저런 해법을 찾지 마십시오. 당장 하나님께 달려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해답이 되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마자 문제가 해결되고 고난에서 회복될 수도 있지만 시간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사항입니다. 그 때를 겸손히 기다리는 인내가 중요합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고난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대개 낙담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극복하기 힘들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나아만 당시 나병은 1%의 치유 가능성도 없는 불치병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불신자였을 때 비천한 소녀의 말 한 마디를 듣고도 소망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고난 가운데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 확신을 갖고 인내하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기도로 부르짖는 게 중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고난 가운데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여러분, 혹시 스콧 해밀턴을 아십니까? 세계적인 피겨 스케이팅 선수입니다. 그는 1984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이며, 그 이전에는 전미 선수권 대회·세계 선수권 4회 연속 우승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성공 뒤에는 남모르는 고난과 역경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는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생후 6주만에 입양됐습니다. 게다가 두 살 때부터 원인 모를 희귀병을 앓았습니다. 다행히 9세에 피겨 스케이팅에 입문해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에 연달아 두 가지 암이 닥쳐옵니다. 천신만고 끝에 승리하는 그는 그 후 암환자 자선센터를 운영하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고난 중에도 승리한 비결은 내가 얼음판에서 항상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나 혼자라면 절대 이룰 수 없는 경지까지 나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내 인생의 코치는 전능자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얼음판 같은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이 춥고 외롭고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
신의 백성을 홀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꼭 기억하면서 그 어떤 고난을 당한다 해도 생고생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꼭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나아만이 고생만 하다 인생을 끝냈다면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그 고난이 그 좋은 조건들을 다 삼켜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고난을 극복하고 전화위복의 축복을 얻음으로 성경에 빛나는 인생으로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어떤 고난을 만나도 절대 비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전화위복의 큰 승리를 경험하고 간증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