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선교회 헌신예배를 맞아 혼인잔치 때 주님의 신부로서 합당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성결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식 때 신부였던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혼식 날만큼은 최고로 예쁘게 단장을 하고 그날의 주인공이 되어 많은 사람의 찬사와 축복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 여러분에게는 어떤 신부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신부가 될 순간이 다가옵니다. 마지막 때 다시 오실 주님의 신부로서, 7년 공중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정녕 주님의 혼인잔치를 사모한다면 성결을 이루기 위해 애쓰실 것입니다. 마음의 악을 신속하게 다 버리고 온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되어 있을 때라야 장차 담대하게 주님 품에 안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이 땅에서 어떤 일을 이룰 때도 성결이 기본 조건이 됩니다.
1) 성결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만을 깨뜨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육 교육을 비롯하여 사람의 마음과 본성까지 알게 하는 말씀들이 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날마다 새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아는 것과 마음에 성결을 이루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었다 해도, 교회에서 많은 일을 감당하는 일꾼이라 해도 그것만으로 성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자칫하면 영적인 눈이 가리워져 스스로 변화되어야 할 모습을 깨닫지 못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된 일꾼일수록 더욱 철저히 낮아진 마음으로 날마다 자신을 발견해 나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9:27에 보면 큰 권능을 행했던 사도 바울조차도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했고, 고린도전서 15:31에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말한 것을 봅니다.
이처럼 우리도 근신하며 날마다 죽어지려는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로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깨우치기 위해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말씀을 들을 때도 “나도 그렇게 순종하려고 노력하니까, 그래도 이만큼 이뤘으니까.” 하며 높아진 마음으로 들을 때는 영적인 발전의 속도가 늦춰지게 됩니다. 교만으로 인해 신앙의 정체현상이 일어나고 직접적인 지적이나 책망의 말씀을 들어도 자신을 잘 인정하지 못합니다. 입으로는 “감사합니다, 돌아보겠습니다.” 한다 해도 변화되려는 노력이 별로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스스로의 모습이 거울에 보듯 비춰 보이게 됩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놀라며 마음에 절절이 깨우쳐지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이런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항상 낮아진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나름대로 충성한다고 행하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교만이 쌓여지게 됩니다.
사소한 교만한 말과 교만한 행동이 습관적으로 자리잡아 버리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리더십을 가지고 강하게 인도한다는 것이 상대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이 되기도 하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 주지 않고 내 입장만 강요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진리를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여 만들어 놓은 자기 의와 틀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잠언 18:12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하셨고, 잠언 16:5에는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하셨으니 오직 겸손하고 겸비하여 존귀한 주님의 신부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2) 성결을 이뤄 감에 있어 교만을 깨뜨리면 덕이 임하게 됩니다
교만하지 않고 겸비하며 겸손한 사람은 항상 온유하게 상대를 섬기게 되지요. 섬김이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 해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주는 것은 참 섬김이 아닙니다. 상대의 마음을 편케 해 주어야 섬김이지요.
상대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려 섬기되 단 진리 안에서 좋은 것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어떤 일을 추진하고자 할 때 반대하고 마음을 모아 주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럴 때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만 상대의 입장과 의견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더 좋은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혹여 상대가 진리를 벗어나게 행한다 해도 믿음 없음을 이해해 주며 긍휼히 여깁니다. 판단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품고 이해하며 용서하지요. 어찌하든 더 따스하게 대하고 더 섬겨 주며 상대가 진리로 행할 수 있는 힘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5:1-2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말씀하신 대로 교만을 버리고 섬김과 온유함으로 영혼들을 품어 가면 그만큼 덕이 임하게 됩니다.
그럴 때 오랫동안 일꾼으로 충성하면서도 결코 주변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고 늘 은혜로운 얼굴로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열심과 충성이 있고 열매도 잘 내면서 질서상 윗사람이나 아랫사람, 주변 일꾼들까지 누구도 어렵게 하지 않고 두루두루 품어 나가는 것이지요. 이런 분들을 만나고 대할 때는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덕을 갖게 되면 더 신속하게 온전한 성결을 이룰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이 복음화되고 주위 사람들에게서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상대의 감정과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툭” 던지듯이 말할 때는 남편이나 자녀들의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그들의 마음을 살 수 없고, 오히려 반발만 사는 경우가 많으니 더 섬기고 온유해져야 합니다. “내 말이 진리의 말인데 왜 받아들이지 않고 걸림이 되는가. 내 자녀인데 왜 눈치를 봐야 하나, 남편이 잘못하는데 왜 내가 숙여야 하나.” 이렇게 높아진 마음으로 자신을 고집할 때는 아무리 기도한다 해도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남의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2:11에 보면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는 말씀처럼 성결을 사모할수록,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섬길수록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덕스럽게 됩니다. 겉으로만 부드럽게 말하고 깍듯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상대를 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되는 만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게 되고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혜가 임하여 하나님께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따뜻하게 녹여 주십니다. 일가친척이나 이웃을 전도하려고 해도 이렇게 덕스럽고 사랑스럽게 행하면 전도가 수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교만을 버리고 온유한 마음에 덕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자로 나올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교만으로 인해 패망의 길로 갔지만 사울도 처음부터 교만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 왕으로 세움받을 때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민망하여 행구 사이에 숨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되고 점차 마음이 높아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말았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의 권세를 누리고 섬김을 받다 보니 마음이 높아져서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 의지하며 온유하고 덕을 이룬 사람은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크게 체험합니다. 에스더가 바로 그런 사랑을 받은 여인이지요.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을 버리며, 덕스러운 말과 행실을 이루니 특별히 장식하여 꾸미지 않았는데도 그를 보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니 왕의 사랑을 받게 되므로 포로로 잡혀온 평범한 한 처녀일 뿐인데도 바사 제국 왕후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하면 삶 가운데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건강, 물질, 가정의 복음화든 마음의 소원을 품기만 해도 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공의에 맞는 조건을 갖출 때라야 그 사랑을 입을 수가 있지요. 잠언 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는데, 마음에서 악을 버리고 성결될 때라야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할 수 있습니다. 겸비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덕을 쌓아 나갈 때라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사람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하며 축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언 31:28-30에 보면 부지런히 집안을 돌보는 현숙한 여인이 주변에서 칭찬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치 현숙한 여인이 가정을 성실하게 돌보는 것처럼 여러분도 교회의 분야 분야에서 많은 일들을 감당해 주고 계시지요. 정녕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온전히 영광돌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삶 속에서 매순간 하나님께 크게 영광돌릴 수 있고, 마음의 소원마다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높아져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자신을 발견하고 인정하며 변화되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지시하고 명령하고 가르치려고 들며, 자기 의와 틀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덕스럽게 섬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영혼들에게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신랑되신 주님께도 칭찬받고 인정받는 사랑스러운 신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