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인의 눈으로 본 천자만평)
시란 무엇인가
김부회 시인,문학평론가
오래전 시를 배우고자 하는 열댓 분을 모시고 시의 기본 이론과 시를 짓는 방법에 대해 1년간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첫날 첫 시간 시를 배우시고 쓰려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드렸다. 나름의 답변은 모두 달랐다. 하지만 귀결점은 하나, 자존감의 회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살아온 흔적을 남기는 것은 남이 나를 기억하는 것보다, 내가 타인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를 쓴다는 것의 여러 가지 목표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다. 무엇인가를 쓰기 위해서는 삶의 뒤안길을 더듬어 봐야 한다. 잘 살아왔든 그렇지 않든, 지금 이 시각의 내가 존재하는 것은 누적된 시간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누적된 시간에 대한 자기반성과 그것을 통한 미래지향적 사고 혹은 사고의 傳承이 필요한 것이다.
앞으로 달리기만 해도 바쁜 세상에 언제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만큼 존재하는 것이다. 요컨대 실천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바로잡는 것이 사람의 본질일 것이며, 잘된 부분이 있다면 널리 알려 모범이 되면 좋을 것이다. 그것이 나눔의 본성이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잘못을 하며, 누구나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인정이라는 말이다. 실수에 대한 인정, 잘못에 대한 인정, 거짓말에 대한 반성 등등이 수반되지 않으면 잘못은 잘못에서, 실수는 실수에서, 거짓은 거짓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사람의 사고가 진화한다는 것은 인정에서 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인정을 하기 위해 가장 좋은 도구가 글을 쓰는 것이며 좁히면 시를 쓰는 이유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의 서정적인 측면에서 애써 억눌러온 나의 감정을 발견하고 그 감정에 충실하게 나를 표현하거나, 보고 들은 현상이나 사물의 풍경 속에서 남과 다른 내 생각의 독특한 점을 발견하고 자신의 재능을 더 발전시켜 나간다면 가장 좋은 시 쓰기의 이유가 될 것이며 시라는 장르가 가진 순기능의 목적이 될 것이다. 좋은 작품을 누구나 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좋은 작품의 기준이라는 것이 때론 모호하다. 문장력, 수사법, 함축, 비유 모든 기술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에 대한 진심이다. 글은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가짜가 아닌 진짜 글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진실에 대한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위에서 전술한 시를 배우는 분 중에 여든에 가까운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농사를 짓는 분인데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수업을 거의 빼먹지 않고 나오셨다. 수업하다 가끔 보면 졸기도 하고, 눈 감고 기도도 하는 분이다. 연말에 수료식을 하며 물었다. “많이 공부하셨어요? ” 답변이 시다. “여기 나오는 게 공부여!” 정확하게 옳은 말씀이다. 그 열정, 사랑, 끈기, 자세, 모든 점이 시의 기본이다. 문장은 나중 문제다. 어쩌면 나는 기술을 가르치고 할머니에게 정신을 배운 것 같다.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관계란 무엇인가? 모든 것에 붙여 원용해서 사용해도 통하는 말이다. “여기 나오는 게 공부여!” 지금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가르침에 고개가 숙여진다.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24.07.31 김포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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