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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봉인을 여실 때 (21)
말씀: 계 8:1-11. 2024년 9월 1일 일요일 오전 11시
계6:1절에서 첫째 봉인을 열며 12절의 여섯째 봉인까지 열었을 때 요한은 왕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의 진노가 이 땅에 쏟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큰 환란은 점점 강도를 더해갑니다.
“하늘은 두루마리가 합쳐져서 말리는 것같이 말려 떠나며 모든 산과 섬도 그것들의 자리에서 옮겨지더라.”(계6:14), 하늘과 땅에서는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왕들로부터 노예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굴과 산들의 바위들 속에 숨어서 죽기를 구합니다.
“산들과 바위들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우리를 숨기라.”(계6:16). 그들은 산들과 바위들 속에 살기 위해 숨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진노를 감당하지 못해 차라리 바위들이 자기들 위에 떨어져 깔려죽기를 바라지만 그들의 간절한 죽음의 소망은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죽음의 소원마저도 외면합니다.
“그 날들에는 사람들이 죽음을 구하여도 그것을 찾지 못하겠고 죽기를 바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라.”(계9:6)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심판 밖에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어린양의 진노의 포도즙 잔을 고스란히 모두 마셔야만 합니다.
여섯째 봉인이 열린 후에 주님은 곧 바로 일곱째 봉인을 열지 아니하시고 큰 환란 동안 이 땅에서 구원 받는 혼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7장은 큰 환란에서 구원 받은 두 부류의 성도들이 있는데 144,000명은 큰 환란에서 왕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각 지파별로 봉인된 하나님의 종들로 이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을 받습니다(계14:1,2).
다른 한 부류는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로 곧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큰 무리들은 큰 환란 기간 동안에 이긴 자들로서 목 베임을 당해 죽었다가 부활해서 저 하늘로 들림을 받아 왕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 있습니다(7:9,10). 이들은 모두 성소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7:15). 저 하늘에는 부활한 구약 성도들, 부활과 휴거를 통해 올라간 신약 성도들, 그리고 큰 환란 때 올라간 환란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첫째 부활에 속한 자들”,(계20:6)로 부활의 “첫 열매들”(고전15:20,23, 약1:18, 계14:4)입니다. 큰 환란 전에 크리스천들이 모두 하늘로 들림을 받고 큰 환란이 끝나기 전에 환란 성도들이 모두 들림을 받습니다.
그 외에 큰 환란 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육신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천년 왕국으로 들어갑니다. 이들이야말로 “큰 환란을 통과한 사람들”이며 육체로 구원 받은(마24:22) 자들로 환란 성도의 부활이나 휴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들은 7년이란 기간을 끝까지 잘 견디고 환란이 끝나면 천년 왕국으로 들어가 천년 왕국에서 육체의 몸으로 나무의 수명처럼 오래 살면서 결혼하고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며 죽기도 합니다(사65:20).
천년왕국은 어린 아이들이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해를 입지 않는 시대지만 아담으로부터 이어지는 죄인들의 본성은 여전히 잠재되어 있다가 1,000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사탄이 풀려나 민족들을 미혹할 때 그들에게 동조하는 자들은 어린양의 도성을 에워싸지만(계20:8,9) 엘리야 때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로 말미암아 한 순간에 그들은 멸망합니다(계20:9). 이렇게 큰 환란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을 본 후에 요한이 본 것이 일곱째 봉인입니다.
이제 일곱째 봉인이 열리는 것을 보겠습니다.
1절입니다. [그분께서 일곱째 봉인을 여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라.](계8:1).
사도 요한은 어린양께서 일곱째 봉인을 여실 때에 하늘이 반(半) 시간쯤 고요했다고 그 분위기와 그 정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목하십시오.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일곱째 봉인은 하늘에서 본 것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다섯째 봉인에서 요한은 제단 아래 있는 혼들을 보았고 여섯째 봉인에서 하늘과 땅에 대대적인 지각변동과 어린양의 진노를 견디지 못하여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의 죽음을 구하는 고통을 보았고 일곱째 봉인에서는 격변의 여섯째 봉인과는 대대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첫째로 그가 본 것은 반(半) 시간 정도의 고요함입니다. 하늘의 정적으로 고요한 이 반 시간은 세상 사람들의 식사 시간이나 영화 한편 보기에도 짧은 시각입니다. 그러나 응급환자에게 수술 시각 30분은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는 일분이 아니라 일초가 급합니다. 불 속에 갇힌 사람에게 1분이란 시간은 충분히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늘에서 반시간의 고요함은 이 땅에서는 얼마의 시간인 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의 고요함이 땅에 미치는 영향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온 땅 역시 시간이 멈춘 듯 잠잠할 것입니다. 하늘은 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반시간쯤 고요하더라.”(1).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태풍 전야의 고요함이라 하고 무대 전환을 위한 일시 정지, 쉼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자, 우리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주}는 자신의 거룩한 전에 있으니 온 땅은 그의 앞에서 잠잠히 있을지니라. 하시니라.](합2:20). 하늘에서 고요할 때 온 땅은 그분 앞에서 잠잠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첫째 봉인이 열릴 때부터 여섯째 봉인 때까지 땅은 각종 재앙으로 평안이나 고요함이 없었습니다. 일곱째 봉인이 열리자 온 땅은 그분 앞에서 잠잠하게 된 것입니다. 일곱째 봉인의 ‘고요함’은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종결하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를 보여 줍니다. 고통으로 울부짖던 사람들이 갑자기 잠잠해지면 잠들었거나 죽은 것입니다. 병원 의사들은 환자의 고통이 반복되면 진통제를 주사해서 잠을 재웁니다.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땅은 사람들로 인해 더럽혀졌습니다. 땅에는 어린양의 진노가 쏟아졌습니다. 하늘에 고요함이 있을 때까지 땅은 안식이 없었습니다.
2절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를 보았는데 그들에게 일곱 나팔이 주어졌더라.](계8:2). 일곱째 봉인이 열리자 요한은 하늘에서 본 것들을 기록하는데 하늘의 고요함 다음으로 본 것은 하나님 앞에 서 있던 일곱 천사들이 저마다 나팔을 받은 것입니다. 나팔을 받은 천사들은 찬양대원이나 성가대원이 아닙니다. 그들이 받은 나팔을 불 때마다 땅에는 재앙이 쏟아집니다. 봉인을 열 때와 다른 재앙들이 땅위에 쏟아지는데 내용은 8-11장까지입니다.
앞서 5-7장은 어린양의 손에 있던 봉인된 책에서 봉인이 열릴 때마다 재앙을 보았는데 이는 이 심판의 주체가 어린양이심을 보여 줍니다. 주님의 심판은 미리 책에 기록된 대로 임하는 심판이란 것입니다. 주님의 심판, 재앙, 저주는 책에 기록된 대로 임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실 것이며 오히려 그때에 {주}의 분노와 그분의 질투가 그 사람을 대적하여 연기를 뿜겠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가 그에게 놓이리라. {주}께서 그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리시고 {주}께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분리하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언약의 모든 저주에 따라 화를 받게 하시리니](신29:20-21).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란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봉인된 책을 손에 잡고 그 책에 기록된 재앙을 쏟는 것이 5-7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주}의 분노가 이 땅을 향해 타올라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그 위에 내리셨으며](신29:27). 이 말씀은 큰 환란 때 문자 그대로 성취됩니다. 역사적으로도 여러 차례 집행되었지만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이 죄에서 돌이키도록 저주가 아닌 징계는 자주하십니다.
8-11장에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던 천사들이 받은 나팔들을 통해 이 땅에 임하는 재앙들을 봅니다. 큰 환란 때 심판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사들이란 것입니다. 주님은 구약에서처럼 이교도들을 들어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을 사용하셔서 하늘, 땅, 바다를 모두 심판하십니다. 계시록의 사역자들은 대언자, 사도, 목사, 선교사들이 아니라 ‘천사들’입니다.
첫째 나팔은 땅, 둘째 나팔은 바다, 셋째 나팔은 강, 넷째 나팔은 하늘, 다섯째 나팔은 땅의 사람들, 여섯째 나팔은 군대와 유프라테스, 일곱째 나팔은 민족(나라)들에게 쏟아지는 재앙입니다.
이런 재앙들은 구약성경에 관련 구절들이 모두 발견됩니다. 성경에서 트럼펫(나팔)은 전쟁을 할 때, 성도들의 집회를 할 때, 이스라엘이 진영을 옮길 때 사용되었습니다. 나팔들은 절기 때에도 불었고 왕이 세워질 때 불었습니다. 시내 산에 주님이 임하실 때에도 큰 나팔 소리가 울렸습니다(출19:16). 나팔 소리는 주의 음성, 천사장의 외침 소리 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나팔을 받은 천사들이 나팔을 불기 전에 다른 천사들이 하는 일을 보았습니다.
3-5절은 나팔을 불기 전에 있던 일로서 일곱째 봉인의 사건입니다.
3절입니다. [또 다른 천사가 금향로를 가진 채 와서 제단 앞에 서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것은 그가 그 향을 모든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그 왕좌 앞에 있는 금제단 위에 드리려 함이더라.](계8:3).
요한 계시록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 중에 하나가 제단인데 총 7번 나옵니다(6:9, 8:3, 8:5, 9:13, 11:1, 14:18, 16:7). 나팔을 든 일곱 천사 외에 다른 천사가 금향로를 가진 채 와서 제단 앞에 섰습니다. 이사야가 영광의 주를 보았을 때 스랍들 중에서 하나가 제단에서 살아 있는 숯을 취해 손에 들고 날아와 입술에 댄 그 제단입니다(사6:6,7).
하늘에는 금 제단이 있습니다.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제단 앞에 서고 ‘많은 향’을 받았는데 그 향은 모든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그 왕좌 앞에 있던 금 제단 위에 드리려 함입니다.
“금향로와, 향과, 금 제단”입니다.
우리는 지상의 성막, 성전이 하늘에서 본 양식대로 만들어진 것임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행7:44, 히8:5). 지상에서 성막과 성전은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섬기고 하늘의 성소에서는 천사들이 직접 섬깁니다.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제단 앞에 서고 ‘많은 향’을 받았습니다. 천사가 받은 향은 성도들의 기도를 말합니다. [그분께서 그 책을 취하시매 네 짐승과 스물네 장로가 저마다 하프들과 향이 가득한 금병들을 가지고 [어린양] 앞에 엎드렸는데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계5:8).
향이 무엇인지 성경 스스로 정의해 줍니다. 향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천사는 그 향을 “모든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왕좌 앞에 있던 금 제단 위에 드리려 합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주님 앞에 드려지는 향이요, 향과 함께 희생물로 드려진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내 기도가 주 앞에 향같이 놓이게 하시며 내 손을 들어 올림이 저녁 희생물 같게 하소서.](시141:2). “향같이...저녁 희생물같이”란 말은 기도에 대한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드리는 기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의 본질은 주를 위한 것이며 주께 드리는 향이요, 희생물이란 점을 잊고 성도들은 자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는 주를 위한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가 성경적으로 올바로 드린 향이요, 희생물입니다.
4절입니다.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피어난 향의 연기가 그 천사의 손에서 나와 [하나님] 앞에서 위로 올라가더라.](계8:4).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주님께서 들으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 흠향하시는 ‘향기’로 피어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향의 연기가...............하나님 앞에서 위로 올라가더라.”(4) 하는 말씀은 제사장이 분향하는 시간에 백성들은 밖에서 기도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눅1:10,11). 분향 시각에 백성들은 기도했는데 향의 연기는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본문에서 말한 “성도들의 기도”는 신약 성도들의 기도가 아니라 환란 때 제단 아래서 “.......오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주]여, 주께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사 우리 피에 대한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얼마나 더 지속하시리이까? 하더라.”(계6:10)라고 했던 그 기도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한 기도에 대해 이제 응답하실 차례입니다.
5절입니다. [그 천사가 향로를 취하고 그것을 제단의 불로 가득 채워 땅에 던지니 음성들과 천둥들과 번개들과 지진이 있더라.](계8:5).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향이 하늘에 올라가자 그 천사는 향로를 취해 그것을 제단의 불로 가득 채웠습니다. 제단의 불은 항상 타고 있는 하나님의 불입니다(레6:9). 제단의 불은 그 위에 놓는 헌물들을 모두 태우는 불입니다. 이 불은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심판의 불입니다.
향로를 취한 천사가 제단의 불로 가득 채워 땅에 내 던졌습니다. 즉시 하늘과 땅에서 “음성들과 천둥들과 번개들과 지진”이 났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왕좌로부터 나오고(계4:5),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릴 때 언약궤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계11:19).
일곱째 봉인이 열렸을 때 하늘에서 반시간쯤의 정적 후에 이 땅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이로써 왕좌에 계신 분의 손에서 받은 봉인된 책의 일곱 봉인은 어린양께서 다 떼셨습니다. 이제 계시록 5,6장의 책에 기록한 일곱으로 봉인된 재앙은 끝나고 7장의 구원받은 환난 성도들에 관련된 기사가 나온 다음 8장으로 들어가 나팔 재앙이 전개됩니다.
6절입니다.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준비하더라.](계8:6). 2절에서 본 일곱 나팔을 가진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준비합니다. 5-7장까지는 온통 ‘어린양’이란 단어로 넘쳤는데 8-11장까지의 나팔 재앙에서는 ‘어린양’이란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일곱 나팔 재앙은 넷과 셋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부터 넷째까지는 땅, 바다, 강, 하늘 등 자연 환경에 쏟아지는 재앙입니다. 다섯째부터 일곱째까지는 사람들에게 직접 쏟아지는 재앙입니다. 하나님은 봉인 재앙에서 보여 주신 것들을 좀 더 상세하게 나팔 재앙을 통해 큰 환란에서 이 땅에 있을 일들을 보여 주십니다.
처음 넷은 어떤 장소에 부어지는 재앙입니다. 뒤의 셋은 어떤 사람들에게 부어지는 재앙입니다. 처음 넷은 자연재앙을 통해서 물질(material)적 손상을 가합니다. 뒤의 셋은 사람에게 가해지는 고통입니다. 처음 넷은 생명의 부산물들을 치는 것입니다. 뒤의 셋은 생명 그 자체를 치는 것입니다.
봉인 재앙에서는 첫 봉인부터 여섯째 봉인까지가 모두 땅에 관련되어 있고 일곱째 봉인만 하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나팔 재앙에서도 똑같이 여섯째 나팔까지는 땅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일곱째 나팔을 불 때 하늘이 나옵니다(계11:15-19).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요한은 곧바로 하늘의 하나님, 스물 네 장로, 하늘의 성전이 열리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에 나오는 네 개의 자연 재앙은 큰 환란 초반 즉 전 삼년 반에 있을 일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연 재앙에서 144,000명이 해를 입지 않고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7절입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잇따라 나와서 땅에 쏟아지므로 나무들의 삼분의 일이 타고 모든 푸른 풀이 타더라.](계8:7). 요한은 봉인을 뗄 때마다 보았던 재앙들이 떨어지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큰 환란 동안에 이 땅에 일어날 일들을 여러 번에 걸쳐 보여 주신 것입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 위에 쏟아졌습니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무엇인지는 그 정체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의 출애굽 전에 이집트에 내렸던 재앙 중에 불 섞인 우박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 이것은 자연 현상에 따라 내린 우박이나 불이 아니란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는데 그 자체가 주님이 주신 표적입니다.
자연 현상으로 주는 표적은 불신자들,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이 계시면 증명해 보라고 외친 것들에 대한 응답입니다. 많은 이들이 표적이나 증거를 보면 믿겠다고 하는데 큰 환란 때는 자연이나 과학, 이성을 초월하는 표적들의 연속입니다. 땅 위에 쏟아진 피 섞인 우박과 불로 인해 나무의 1/3이 불에 타고 모든 푸른 풀이 탔습니다. 푸른 풀이 탈 정도면 그 화력이 어느 정도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 7장에 144,000명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을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치지 말라” (계7:3)는 명령을 권능을 가진 천사들이 받았습니다. 아울러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인을 맞은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도 큰 환난에서 아무런 해(害)를 입지 않을 것입니다. 그 근거는 이들이 모두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서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계14;1). 이런 재앙에서 초자연적인 보호를 받는 자체가 엄청난 이적이요 표적입니다. 왕국 복음은 표적을 동반하며 육체적으로 보호를 받습니다.
특히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고전1:22)은 자신들 가운데 144,000명이 각종재앙에 해를 전혀 당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며, 이들이 온 세상의 민족들에게 왕국 복음을 전할 때에 어느 민족이나 이 광경에 놀라지 않을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피가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산이나 들의 나무들의 1/3이 불타고 풀들이 불에 탈 때 어떤 이들은 지구의 종말이 왔다고 생각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더욱 우상을 찾게 될 것입니다. 종교인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섬기던 신들을 찾아서 이 땅에 닥친 재앙을 물리치겠다고 하겠지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마리아를 찾든지, 알라를 부르짖든지, 부처를 찾든지 그들의 기도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제사장들의 기도보다 더 효력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찾는 그들의 신들은 휴가를 갔거나 낮잠을 자거나 도와줄 능력이 없거나 도망가고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뽑은 하나님의 종144,000명은 온 땅의 민족들에게 왕국 복음을 전하며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를 선포할 것입니다.
왕국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거부하고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때 믿는 성도들이 큰 환란 성도들로서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모든 민족들과 족속들과 백성들과 언어들에 속한 큰 무리”(계7:9)들입니다.
이들이 왕국 복음을 믿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들에 넘겨주고 회당들에서 너희를 때릴 것이며 너희가 나로 인해 치리자들과 왕들 앞에 끌려가 그들을 대적하여 증언하리라. 또 먼저 복음이 반드시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전파되어야 하느니라. 그러나 그들이 너희를 끌고 가서 넘겨줄 때에 너희가 무엇을 말할까 미리 염려하거나 미리 궁리하지 말고 그 시각에 너희에게 무엇이 주어지든지 그것을 말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한편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아들을 배반하여 죽음에 넘겨주겠고 자식들이 자기 부모를 대적하여 일어나 그들을 죽게 할 것이며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 바로 그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막13:9-13).
주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복음 선포자들에게 있을 일들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일은 사도들이 행한 사도행전의 사건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큰 환란 때의 문맥이요, 문자 그대로 있을 일입니다. 큰 환란 때 왕국 복음을 믿게 될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은 공회에 넘겨지고 매를 맞고 치리자들과 왕들 앞에 끌려가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복음은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 왕국 복음으로 반드시 모든 민족들 가운데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큰 환란 때 왕국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형제가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들을, 자식들이 자기 부모를 대적하여 그들을 죽게 하는데 이는 사랑이 식어지고 본성의 애정이 없어지기 때문에 서로가 고발 자가 됩니다. 이 말씀을 현 시대에 적용하여 크리스천이 되면 가족 간에 불화하게 되고 원수가 된다고 말하지만 교리적 적용은 환난 때입니다. 죄인들이 복음을 믿게 되고 사람이 새롭게 변화되면 원수까지도 화목하게 되는 것이 은혜의 복음입니다(롬14:18).
[그들이 너희를 회당들에서 내쫓을 것이요 참으로 때가 오면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자기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리라.](요16:2). 환란 성도들은 초대 교회 때 로마의 박해를 받던 성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박해를 받습니다. 큰 환란 때 적그리스도의 종교는 적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섬기기 때문에 복음을 믿는 자들을 죽이는 자마다 자기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무슬림들이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을 죽이면 자기가 알라(하나님)를 잘 섬긴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의 말씀에 떠는 자들아, 너희는 그분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를 미워하고 내 이름으로 인해 너희를 쫓아낸 너희 형제들이 이르기를, 이 일로 {주}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서 너희의 기쁨이 될 것이요,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사66:5).
복음을 믿는 자들을 미워하고 쫓아내는 자들이 하는 말이 “주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받습니다.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왕좌 앞에 서게 되고 “하나님의 하프들을 가지고 유리 바다 위에 서서”(계15:2) 주님을 섬기고 찬양합니다(계15:3,4).
8-9절입니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므로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었으며 또 바다에 있으면서 생명을 가진 창조물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부서지더라.] (계8:8-9). “불타는 큰 산”은 문자대로라면 화산이 폭발한 산으로 용암이 분출하는 산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 와서 ‘불타는 큰 산’을 보았습니다. [너희가 가까이 와서 산 밑에 섰는데 그 산은 하늘 한가운데까지 불이 붙었고 어둠과 구름과 짙은 어둠으로 덮였느니라.](신4:11). 주께서 강림하셨을 때 시내 산은 완전히 불타는 산이었습니다. 산에 불이 붙어 버렸던 것입니다. [산들이 그분 밑에서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져서 불 앞의 밀초같이, 가파른 곳에 쏟아진 물들같이 되리라.](미1:4).
주님의 강림 특징 중 하나가 산이 불타고 녹아 버리는 것입니다.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므로” 이런 일은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땅이 이동되든지 산들이 끌려가서 바다 한가운데 빠지든지](시46:2). 땅이 움직이고 산들이 바다에 빠지는 일은 큰 환란 때 문자 그대로 일어날 일입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산들이 흔들리고 작은 산들이 녹으며 그분의 얼굴 앞에서 땅이 불타나니 참으로 세상과 그 안에 거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도다.](나1:5).
첫째 나팔에서도 불, 둘째 나팔에서 불, 셋째 나팔에서도 불....온통 불입니다. 이것은 불세례나 불 성령이 아니라 심판의 불입니다.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는데 그 결과는 바다의 1/3이 피가 된 것입니다. 물이 피로 바뀐 예는 출애굽기에 나옵니다(출7:20).
[그분께서 그들의 물들을 피로 변하게 하사 그들의 물고기를 죽이셨도다.](시105:29). 출애굽기에서 보여 준 재앙은 큰 환란 때 내릴 재앙의 맛보기 정도에 해당합니다. 지구의 2/3가 바다입니다. 둘째 천사의 나팔 재앙에 바다의 1/3이 피가 되어 버렸습니다. 바다의 물고기들의 1/3이 죽음을 당했고 배들의 1/3이 부서졌습니다. 이 정도면 무역상들, 물류 시스템은 완전히 마비됩니다. 화물 운송 가격은 천문학적으로 치솟게 됩니다. 자급자족이 되지 않는 모든 나라들은 완전히 망해 버립니다.
10-11절입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등불처럼 타는 큰 별이 하늘로부터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물들의 근원들 위에 떨어졌는데 그 별의 이름은 쑥이라 하느니라. 그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물들이 쓰게 되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 물들로 인해 죽더라.](계8:10-11).
나팔 재앙의 특징은 뭔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떨어졌고(7) 두 번째는 불타는 큰 산(8)과 같은 것이 바다에 떨어졌고 세 번째는 ‘등불처럼 타는 큰 별’(10)이 하늘로부터 떨어졌습니다. 이는 심판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심판의 집행자들은 천사들입니다.
사람들은 이 땅의 주인이 사람들인 줄로 알지만 사람은 이 땅에서 아무 것도 자신의 소유가 없습니다. 환경보호론 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환경을 전혀 보호할 수 없습니다. 지구(땅-earth)를 어머니라고 외치는 이들 역시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이런 것들로부터 땅을 지킬 수도 보호할 수도 건질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늘과 땅이 저절로 존재하거나 수백 억년에 걸쳐 진화한 줄로 여길지 몰라도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창조 신앙은 모든 신앙의 기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늘들을 창조하신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친히 땅을 조성하고 만들며 굳게 세웠으되 땅을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거주하도록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니라. 나 외에는 다른 자가 없느니라.](사45:18). 하나님께서 거주하도록 조성하신 땅은 그 사람들의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고 사람은 땅을 갈고 씨 뿌려 먹고 살다가 땅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등불처럼 타는 큰 별”은 유성이거나 혜성이거나 문자 그대로 별입니다. 천문학자들이 늘 예언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불타는 별이 지구에 떨어지면 핵무기 수백, 수천 개의 위력보다 더 크므로 그것이 인류의 재앙이나 종말이란 것입니다. 그들의 그런 말은 계시록 8:8,10절에서 문자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 별의 이름은 “쑥”(wormwood)입니다. 수많은 성경 주석가들, 신학자들이 기록된 그대로 믿기보다 달리 해석해서 믿기를 좋아하는 고로 이 구절에서 큰 별은 천사이거나 위대한 종교 지도자, 정치 지도자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거짓 대언자나 적그리스도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영적 해석을 즐기는 이들은 문자 그대로 읽고 믿는 이들이 한심해 보이고 무지해 보이고 수준이 낮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성경에서 타 오로는 등불이라고 하면 침례인 요한과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타오르면서 빛을 내는 등불이었으므로 너희가 한동안 그의 빛을 기뻐하기 원하였으나](요5:35),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허리에 띠를 띠고 너희 등불을 타오르게 하며](눅12:35)란 명령을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등불처럼 타오르는 큰 별이 떨어진 것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침례인 요한과 같은 사람, 크리스천들이 떨어졌다는 것인데 이는 전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위대한 종교 지도자는 땅에서 난 사람들이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큰 별을 천사나 적그리스도에 비유하면 그들은 진리를 가르치는 ‘등불처럼 타오르는 큰 별’이 될 수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기록된 대로 믿어야 할 말씀에 영적 해석을 하는 것은 그럴 듯 해 보여도 언제나 오류입니다. 성경은 읽는 대로 믿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쉽고 안전합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떨어진 등불처럼 타는 큰 별의 이름을 “쑥”이라고 하셨는데 이 이름은 천문학자들이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별들을 만드신 분이신데 별들마다 이름을 지으시고 그 이름대로 부르십니다. [그분께서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그것들의 이름으로 부르시는도다.](시147:4). 여기서 별은 문자 그대로 별입니다. 별들 중에 ‘쑥’이라 불리는 별이 강들의 삼분의 일과 물들의 근원들 위에 떨어진 것입니다.
둘째 천사가 분 나팔로 바다의 1/3은 피가 되었고 셋째 천사가 분 나팔로 강과 물들의 1/3은 쑥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쑥을 약으로 쓰기도 하고, 쑥떡이나 쑥국을 끓여 먹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쑥은 독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군대들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고 쓸개 물을 주어 마시게 하며](렘9:15).
주님은 이미 큰 환란 때 있을 일들을 미리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고”란 말은 사약(死藥)을 준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군대들의 {주}가 그 대언자들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신성을 더럽히는 일이 예루살렘의 대언자들로부터 나와 온 땅으로 들어갔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고 쓸개 물을 마시게 하리라.](렘23:15).
“쑥을 먹이고”란 말씀은 죽게 하겠다는 심판입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기뻐하며 사흘 길을 걷다가 만난 물이 라마의 쓴 물이었습니다. [그들이 마라에 다다랐을 때에 마라의 물들이 써서 마실 수 없었으므로 그곳의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출15:23) 주님은 마라에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어떤 재앙도 내리지 않고 또 하나님은 그 쓴 물을 고쳐주시며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주님이심을 그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식수(물)입니다. 쓴 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갈증으로 죽고 마시면 쓴 물로 죽습니다. 자, 모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주께서 보여 주신 한 나무를 물들에 던졌습니다(출15:25). 그러자 쓴 물이 민물이 되었습니다. 이 나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나무입니다.
구약에는 쓴 물에 관한 또 다른 표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퍼서 사람들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그들이 죽을 먹다가 소리 지르며 이르되, 오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이 있나이다, 하고 그것을 먹을 수 없었으나](왕하 4:40). “솥에 죽음이 있나이다.” 이들이 끓인 죽에는 물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때 엘리사는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그것을 솥에 던졌는데 깨끗이 해결되었습니다. 주님은 생명의 빵이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입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큰 환란 때의 성도들은 이런 표적들이 따를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고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많은 사람들이 쑥이 된 물을 마시면 죽지만 주를 믿는 자들은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습니다. 환란 성도들은 신약 성도들과 달리 많은 표적들을 체험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물들로 인해 죽더라.”(11). 오늘날 교회시대에 이런 표적을 행하겠다고 하는 이들은 거짓입니다. 신약의 초기에서 이런 표적들은 사도들에게 주어졌습니다.[모든 혼 위에 두려움이 닥치고 사도들을 통해 많은 이적들과 표적들이 이루어지매](행2:43). 이적들과 표적들은 사도들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신자들 아무에게나 표적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도는 구약의 제사장 직분처럼 계승되거나 후계로 세습되는 직분이 아닙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해 백성 가운데 많은 표적들과 이적들이 일어나매 (그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솔로몬의 주랑에 모여 있었고](행5:12). 표적들이 누구를 통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이미 믿는 자들이 수 천 명이 넘지만 표적들과 이적들은 사도들의 손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이적들과 기적들이 성도들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 간혹 있지만 표적은 사도들의 손을 통해서만 일어납니다(행6:8). 왜 그렇습니까? 사도의 표적들이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인내와 표적들과 이적들과 강력한 행위들로 사도의 표적들을 행하였노라.](고후12:12). 우리는 에베소 교회처럼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해서 그들이 거짓말하는 자들임을 알아내야 합니다(계2:2). 사도의 표적들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큰 환란에서 많은 성도들이 목 베임을 당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은 이런 표적들을 동반한 권능의 보호하심 때문입니다.
복음서에서 12 사도나 70인의 제자들이 왕국 복음을 선포할 때 표적들이 동반되었듯이 큰 환란 때 믿는 자들에게도 놀라운 표적들이 동반될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복음을 믿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표적이 아니라 믿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표적을 구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를 잘 분별하지 못하면 큰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의 대상, 시대를 정확히 나누어서 알고 적용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을 자신에게 해당되는 줄로 알다가 불신에 빠지거나 말씀에 맞추려고 영해를 하거나 비유로 적용하는 것은 모두 오류입니다. 주의 말씀은 순수하고 완전합니다. 성령께서 친히 주의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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