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심문모전]제3부 함안댁 (제26회)
-3. 무태 농가와 로차 고아원(2)
(처음부터 읽지 못한 분을 위한 재수록입니다.)
영춘의 형은 이 집안의 맏이로 아버지를 도와 착실하게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젊은 농부였다. 그는 해방 이듬해 봄에 결혼해서 영춘이가 체포될 무렵 조카가 태어나 있었다.
누나는 다른 고장으로 시집을 가서 그 집에 살고 있지 않았다.
동생들 중 바로 아래 누이동생인 그 집 둘째딸은 꼽추였고, 셋째 딸은 남로당 도당 비밀당원의 아내였다.
“그 비밀 당원이 권 변호사의 사무장이라 카던데 맞습니꺼?”-심
“맞아, 그 변호사는 우익 정객이지만 그가 거느린 인간들은 모도 뺄갱이들이었으니 나 참. 법률가라 카는 사람이 사람을 채용하면서 지대로 조사도 안 해 보고 했는지, 원. 그래서 권 변호사가 애 좀 묵었제. 운전수도 그 사무장이 델꼬 왔다 안 카나. 그런데 그 사무장 마누라가 사공영춘이 누이라 말이제?”-염
“맞심더.”
그러니까 이 집안에서 소위 남로당 당원이거나 공산주의자로 지목될 수 있는 이는 영춘이와 그 누이동생이라는 셋째 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집에 민애청 대원들이 숨어들었었다는 첩보가 있었기 때문에 그 집 자체가 감시 대상이 되었던 거다.
그런데 지난해(1949), 보도연맹이 조직될 때 공산주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영춘이 형이 동네 이장과 지서장의 무리한 권유로 가입했다는 것이다.
빨갱이 소굴로 지목되고 있는 집에서 정작 아무도 연맹원으로 가입을 하지 않으니까 그 동네 이장이나 지서장으로서는 난감해 했던 것 같다. 실적에 관한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 사공영춘은 감옥살이하고 있었다.
소년 납치 사건 때 주모자로 체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가입한 사람이 없다고 누구든 가입하도록 강압한 것이었다. 결국 맏아들이 그 동생들 대신 희생양이 된 셈이었다.
맏아들은 이듬해 전쟁이 나자 피아간 낙동강 전선을 형성하기 직전, 그 여름 보도연맹원들에 대하여 그 끔찍한 ‘묻지마!’ 처형이 있을 때, 이른바 ‘골로 간’ 것이었다.
어떤 이는 그 골이 가창골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경산의 무슨 광산 갱도라고 했고, 어떤 이는 두 군데 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쉬쉬하면서 밝혀지지 않는 어두운 역사가 되었다.
그러나 사공 가의 비극은 맏이가 억울하게 죽고, 둘째는 감옥에 있고, 딸 하나는 사위와 함께 소식 없이 사라지는 것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그 집은 빨갱이 소굴로 불리면서 사람의 내왕이 일체 끊어져 버려 순식간에 마치 죽음의 동굴과 같았다.
자식들을 잃은 늙은이들은 넋을 놓았고, 큰며느리는 울지도 못하고 자지러저 있다가 미친 사람처럼 맨발로 아기를 안고 사라져버렸다.
이 농가의 뒤 채에 남매를 데리고 남편을 기다리며 살던 곽양수의 부인 함안댁으로 불리는 옥미우는 안절부절못했다.
도저히 하루도 그 집에 기거할 처지가 아니었건만 어쩐지 곧장 인민군이 낙동강을 건너 대구로 쳐내려올 것 같았고 그러면 남편은 당당한 모습으로 개선장군처럼 나타날 것 같아서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이 난리에 두 아이를 놓질 가봐 절대 마당에도 내려가지 못하게 방 안에서 부둥켜안고 지냈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를 잃을 가봐 걱정이 되기보다 곁에 아이 마저 안 보이면 혼자된 것 같아 두렵고 떨려서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종의 공황장애 같은 것이었을까?
난리로 나라가 뒤집히다시피 되었어도, 학교는 여름방학이라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집 안팎에서 쫓아다니며 놀았다. 정신없이 놀다가도 저녁 때가 되면 꽁 보리밥 한 덩이를 찬 물에 말아서 시고 짠 짠지와 함께 정신없이 씹어 삼키고 나면, 모기에 뜯기면서도 아무 데나 뒹굴어져 잠드는 것이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한 밤중에 불이 났다.
본채가 순식간에 홀랑 타버리는 화재가 난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 끄러 달려와 주는 사람이 없었다.
동네에서 외따로 떨어져 지은 집이어서 그렇다고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몸 성한 젊은 남정네들은 누구나 군인이 되었고, 더러는 집을 비우고 피란 가버린 탓에 동네에서 떨어져 있는 농가를 위해 소화 작업에 나서 줄 손들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사공 가(司空家)의 늙은이들은 땅을 치며 울부짖거나 정신없이 우왕좌왕했고, 어린 것들은 울고불고 하느라고 날이 새기도 전에 집채 하나가 그대로 폭삭 내려앉았다.
딸로서 둘째인 꼽추 딸이 집을 불 질러 버린 것이었다. 그는 불속에서 스스로 타 죽었다. 타 죽은 사람은 곱추 딸 뿐 다른 가족은 어린 아이까지도 무사했지만 재산은 전혀 건지지 못했다.
다행히 본채만 타버리고 옥미우가 방 하나를 얻어 거처하는 별채는 온전한 상태였다.
불이 삭아버린 아침이 되어서야 경찰과 한 대의 소방차와 소방대원들이 종일 들쑤시듯이 들락거렸고, 그 집에서 좀 뚝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마을 쪽 사람들도 몰려와 구경들을 하며 법석을 떨었다는 것이다.
사후약방문이었다.
그러는 동안 별채의 옥미우는 두 아이를 꼭 껴안고 방안에서 꼼짝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다른 남은 사공 가의 가족들과 함께 지서까지 불려가서 심문을 당하다가 저물어서야 혐의가 없음이 들어났음인지 풀려났다.
지서에서 풀려나 사뭇 울면서 달려온 옥미우는 불탄 집으로 들어서자 두 남매부터 찾았다. 종일 저희들끼리만 있었을 남매 생각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물을 씻고 입을 앙다물고 불길을 피해 온전한 집채인 그의 거처로 달려 들어갔다.
그 껌껌한 방 안에는 하루 종일 쫄쫄 굶주리며 공포에 떨며 지냈던 두 남매가 종일 울다가 지쳐서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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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말마다 토/일 양일간 2회분씩 재수록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