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그 자리의 분위기를 잡아라
직감적 번뜩임이 느껴지는 순간은 콘서트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다.
최근 들어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할 기회가 늘어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좋은 콘서트를 만들기 위한 지휘의 본질은 연습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연주한다고 하자.
그의 곡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 제각기 다르다.
따라서 나는 그 곡을 이렇게 해석해서 이런 느낌으로 연주하고 싶다는 말을 오케스트라에게 전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철두철미하게 연습한다.
그렇게 하면 좋은 음악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철저하게 연습하면 좋은 음악을 완성할 수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연습만으로는 최고의 무대를 완성할 수 없다.
애당초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함께 연습하는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얼마 되지 않는다.
막상 공연이 시작되면 그날의 관객 반응과 오케스트라의 반응, 그때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언뜻 보기에 매우 사소한 부분인 경우도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 몇 명이 밤을 새운 탓에 피곤하다든지, 그날 비가 내린 탓에 관객들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든지, 그날따라 유난히 중년의 관객이 많다든지...
이런 식으로 그때 그 장소에만 있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 분위기를 파악하면 "오늘은 이렇게 하자"라는 방향성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지휘대 위에 올라선 순간, 또는 지휘봉을 휘두른 순간, 그 분위기 속에서 소리를 잡을 수 있으면 그 콘서트는 반드시 성공한다.
연습한 그대로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템포를 빠르게 하거나 조금 늦추는 등 마음대로 바꾸어도 상관없다.
"어? 템포가 왜 이렇게 빠르지?"
이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템포가 빠르면 빠른 대로 좋고, 느리면 느린 대로 좋다.
오히려 무대 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편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연습할 때와 똑같은 상태를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것은 이성적인 작업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똑같은 절차를 밝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연주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청중들의 상상을 배신하지 않는 정도, 즉 70점 이나 80점 정도의 만족감밖에 줄 수 없다.
반면에 그 자리의 분위기를 잡았을 때는 관객과 오케스트라가 하나가 되어 대단히 감동적인 콘서트가 펼쳐진다.
정확한 연주보다 더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것이 라이브의 묘미가 아닐까?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납득이 되는 순간, 그 자리의 분위기를 잡는 순간은 몸으로 느끼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기를 쓰거나 이를 악물어도 노력만으론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직감이다.
이쪽으로 가면 도달점에 도착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면 모두 그렇게 했으리라.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괴로움 속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악전고투를 거듭하는 것이 아닐까.
감성을 연마한다는 것은 결국 직감을 단련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단을 내릴 때는 납득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로 판단하는 일이 많다.
몇 년 전에 중국의 영화음악을 만들기로 하고, 녹음을 일본에서 하느냐 중국에서 하느냐로 한참을 망설인 적이 있었다.
물론 중국에도 훌륭한 스튜디오가 많이 있었다.
또 스태프들도 열심히 일하고 의욕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적인 면에서 일본이 훨씬 앞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베이징에서 녹음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큰 과제가 남아 있었다.
현재의 영화음악은 5.1채널 믹스다운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은 6.1채널이다)
5.1채널은 스피커를 앞쪽의 왼쪽과 중앙,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 개, 뒤쪽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두 개, 그리고 저음을 잡는 서브우퍼 스피커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최근 대부분의 영화는 5.1채널로 믹스다운을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아직 5.1채널 믹스다운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일본에서 녹음을 하는 쪽이 편하리라는 것이 눈에 뻔히 보였다.
더욱이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음악의 내용 면에서 중국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일본에서 녹음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그 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결국 일부러 베이징에서 녹음하는 길을 선택했다.
나는 원래 다른 사람이 시도한 적이 없는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성격이다.
더구나 타고난 청개구리 성격 탓인지 두 가지 길이 있으면 쉬운 길을 놔두고 일부러 어려운 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모처럼 중국의 영화음악을 만들 수 있고, 게다가 처음으로 중국 사람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것은 중국에서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성과는 다른 곳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에서 5.1채널 믹스다운이 정착한 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성공한다면 영화음악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문화교류로 의미 있는 일이 되리라.
결국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결단은 베이징에서 녹음하는 것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어중간하게 선택하면 도중에 큰 시련을 만났을 때 좌절하기 십상이다.
때로는 이 길을 선택하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가슴을 펴고 고생과 실패를 떠맡을 수 없지 않을까?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있다 중에서
히사이시 조가 말하는 창조성의 비밀
히사이시 조 지음, 이선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