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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심오산나 우리가 날마다 주를 거룩한 마음으로 찬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1월 마지막 주일이자 또 설 명절이 있기도 합니다. 이번 화요일부터 성명절이 시작이 됩니다. 고향을 오가는 모든 길 속에 우리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설 명절은 뭘 조심하라고 했죠? 설 명절은 명절 마귀를 조심해라. 명절 마귀라고 해서 뿔이 달렸거나 흉측한 모습을 한 그게 아니고 우리의 마음 감정을 건드리는 마귀를 조심하라 그런 뜻입니다. 명절이 우리 고유의 명절이기도 합니다만 명절에 불상사가 일어나는 일들이 참 많고 또 명절에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일들이 많이 있기에 우리가 이 명절을 정말 신경 써서 잘 보내야 합니다.
특히 명절에는 고향으로 오갈 때 이 차 안에서 대화를 잘해야 됩니다. 어디서 대화를 잘해야 된다고요? 차 안에서 웃는 분들은 다 뭔가 좀 있을 것 같아요. 이 좁은 공간에서 이런저런 좋지 않은 말을 쏟아부을 때 그때 마음이 상하다 보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 또 상처 주는 말, 험담하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
반대로 이번 명절은 좋은 말, 선한 말, 위로가 되는 말, 힘을 주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라 사정도 안 좋고 경제도 나쁜데 이럴수록 정말 좋은 말, 격려하는 말, 축복하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이번 명절은 은혜스러운 명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은 시험이 우리 앞에 있을 때라는 말씀의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시험이 어디에 있을 때 우리 앞에 있을 때라는 말씀입니다. 예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전도를 할 때는 예수 믿으면 복 많이 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많이 받습니다는 것으로 전도를 많이 했습니다.
요즘은 전도 훈련을 잘 받아서 그런 모습들이 잘 없습니다만 예전에는 예수 믿으면 무조건 복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무조건 잘 됩니다. 병 고침 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아기 낳습니다. 뭐 이런 전도 그런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설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믿는다고 해서 만사가 다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풍랑은 일어납니다. 우리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널 때에 이 풍랑이 몰아쳐서 배가 뒤집힐 줄 위기에 처해져 있었던 겁니다. 제자들은 물에 빠져 죽을 것 같다고 아우성치면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 가운데 시험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 고난을 당하게 되면 시험을 당하게 되면 낙심하게 되고 또 심지어는 교회를 떠나는 경우들도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주님과 함께 있어도 풍랑이 있고 시험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에는 반드시 그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뭐가 있다고요? 네 시험에는 반드시 그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로 알아야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바로 그 거기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2절에서 4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아멘 앞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주님과 함께 동행해도 풍랑이 있듯이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든 시험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엄밀하게 말하면 시련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시련 이 야고보서에서 보면 이 시험이라는 말이 몇 차례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첫 번째이고 또 12절에서 두 번째로 나옵니다. 우리 12절 말씀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여기에 보면 시련이 나옵니다. 시련 바로 시련 그리고 11절, 12절 이하, 그리고 13절, 14절에도 시험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시험이라는 말은 조금 다른 의미로써 쓰여집니다. 우리 13절 14절 말씀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치니 아무도 뭐 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무엇에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다.
앞에 시험과 방금 읽은 시험이 다릅니다. 앞에 시험은 바로 던져본다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한번 건드려 본다. 즉 테스트를 해본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바로 시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읽었던 13절 14절의 시험은 바로 이 유혹을 말합니다.
뭘 말한다고요? 바로 유혹 우리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찾아오는 유혹이 있습니다. 물질을 통해서 찾아오는 유혹이 있을 수가 있고, 또 이성을 통해서도 유혹이 찾아올 수도 있고, 또 명예 명예심으로 오는 유혹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존심으로 찾아오는 것도 있고, 때로는 육신의 병, 병으로 때로는 실패로 등등 이러한 이런 유혹들, 우리를 탈락시키기 위한 유혹들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성의 자랑이 바로 이런 유혹에 속한 것입니다.
이런 유혹은 우리 신앙과 상관이 없고 하나님과도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즉 이런 시험은 내 자신 스스로가 이 유혹에 빠져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이러한 시험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이 유혹은 내 자신, 내 자신의 연약함, 그런 유혹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미끼로 던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명절에 이런저런 시험을 당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는 단지 자신의 고집 아집 또 집착 욕심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험을 잘 분별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또 이런 시험에 큰 시험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험은 피해야 되는 시험인데요. 요셉이 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고 들어올 때에 도망을 쳤듯이 유혹이 다가올 때는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런 시험이든 저런 시험이든 우리가 그것을 이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이 시험은 유혹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뭐라고요? 시련이라고 했잖아요. 시련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련과 고난이 우리 앞에 많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인물 중에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라는 그런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입니다.
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핍박을 많이 받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 다니지 말아라 예수 믿지 말아라 이런 시험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가 성실히 일하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 삶에 있어 경제 위기도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험도 있습니다. 때로는 병도 듭니다. 이렇게 우리 앞에 많은 시험과 시련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내가 예수 믿는데 왜 하나님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하면 시련이 없어야 되는데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큰 시련을 주십니까? 때로는 우리가 불평하고 하나님 한가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고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아이들도 자라면서 병치레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이런저런 역정을 겪으면서 면역력이 생기기도 하고 또 성장해 가는데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 어린아이에서 이렇게 자라서 청년의 신앙으로 또 어른의 신앙으로 자라가는 데 있어서 그 가정에 많은 시험이 있고 이것을 잘 견딤으로 해서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말씀 보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2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절의 말씀 시작
아멘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어떻게 여겨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이 시험을 만날 때 우리가 기쁘게 여겨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시험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구로부터 왔다고요? 그렇죠?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고 연단시키기 위한 그 중요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깨닫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조상들 성경에 보면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훈련시킬 때에 여러 가지 시험을 주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을 주었고, 야곱은 형 에스를 피해서 하람으로 도망가라고 했고, 요셉은 형제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애굽의 노예가 되는 그런 신세가 되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 산에서 바울과 아세라 선지자를 상대로 850명과 상대를 이겼습니다만, 이스벨의 말 한마디로 인해서 낙심해서 로덴 나무에서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들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런 시험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의 과정을 통해서 깨닫는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 시험을 통해서 뭘 깨닫습니까? 그 한 가지라고 했는데 여러분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까? 이 시험을 통해서 바로 우리가 인내를 깨닫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인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신앙의 성숙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기던가요? 단번에 신앙이 훅 자라든가요? 아닙니다.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인내를 통해서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을 깨닫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왜 나에게 이렇게 아픔을 주십니까? 참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질이 나면 부룩하고 무슨 일이 터지기 하면 조급해갖고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인내하라고 주시는 것이구나 이 인내를 통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농부의 인내를 보시면 우리가 좀 알 수가 있을 겁니다. 농부가 열심히 수고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가뭄이 올 수도 있고 또 태풍과 홍수를 통해 피해가 오기도 합니다.
그때 농부가 뭘 합니까? 잘 참고 인내하죠. 그 인내는 앞으로 결실을 바라보면서 참고 인내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인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 아픔과 상처와 눈물을 통해서 하나님 나를 단련하시고 연단하셨고 내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구나. 그것이 바로 신앙의 성숙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험의 결과는 나에게도 복이 되지만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 같이 한번 읽어보세요. 4절의 말씀 시작 아멘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무엇이 없게 하려 함이라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 온전히 이루라는 이 말은 텔레오스라고 하는데 주어진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뜻입니다. 주어진 목적지에 도달한다.
여러분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도달할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목적지에 도달할 때 우리 여행을 한다거나 또 등산을 한다거나 또 마라톤을 하거나 또 아니면 뭘 만들어서 했을 때에 목적지에 도달을 했을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정말 너무 기쁘지 않습니까?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을 잘 참고 인내하게 되고 그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에게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구비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구비한다는 말은 모두 다 완전해진다는 뜻입니다. 완전해진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는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즉 쉽게 얘기하면 우리가 부족한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이죠. 때로는 성격이 못한 부분도 있고 또 인내심도 참 부족하고 또 인간관계도 잘 안 되고 또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뿐만 아니고 물질을 제대로 또 사용도 잘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실현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도 알게 되고 내 삶의 가치관도 새롭게 변화되고 그래서 우리의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에 개인 사업을 운영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수십 년 동안 사업을 꾸준히 해오는 과정에 이런저런 위기를 많이 겪은 분이십니다. 때로는 이분이 컨테이너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있었고 또 직원들끼리 관계가 좋지 않아서 힘들 때도 있었고, 경제 위기가 왔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잘 인내하며 기도하며 이겨 나왔습니다. 아주 큰 사업체는 아니지만 이제는 안정적인 또 사업체를 꾸리고 있습니다. 그분을 가끔씩 만나서 인사를 하면 사업은 잘 되십니까? 하고 물으면 언제나 웃음 뛰는 얼굴로 하는 말이야. 그저 하나님 은혜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달려 있지요. 그저 저는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게 답합니다. 요즘같이 경제적으로 불황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늘 언제나 만족합니다. 잘 안 된다고 낙심하지도 않고, 또 잘될 때는 잘 된다고 목이 뻣뻣하거나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은혜입니다. 언제나 감사입니다. 이것이 구별해서 부족함이 없는 성도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잘될 때도 있고 또 잘 안 될 때도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잘 된다고 해서 부족함이 없을까요? 또 잘 안 된다고 해서 부족함이 많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어떤 양이나 결과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잘 되어서 부족함이 없고, 우리가 하는 일이 잘 안 되어서 부족함이 많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늘 언제나 부족함이 참 많습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편의 말씀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무엇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많은 인생임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고 주님이 내 인생 가운데 함께해 주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는 것이지, 내가 잘 되어서 부족함이 없고 내가 잘못되어서 부족함이 많은 것 아닙니다. 그건 세상적인 논리죠. 가지면 좋고 안 가지면 불행하고 그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마음 심령 가운데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나와 동행하신다는 그 믿음이 바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앞으로 사흘 동안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앞으로 어떤 시험이 찾아올지 모를 정도로 계속해서 시험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이 시험은 내가 지금 40일 금식 기도를 한다고 해서 시험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때도 시험이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10에 1조를 드리고 10에 2주 3조를 드린다고 해서 시험이 없는 게 아니고 시험이 그때도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더 온전하게 세우시기 위해서 더 큰 은혜와 축복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께 주시는 축복의 통로라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예수 믿고 사니 내게는 만사 형통만이 있는 것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사는 날 동안 더 많은 시련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부족함이 없는 우리의 삶이 될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족한 인생 속에서 우리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나와 동행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시는 이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나를 성공과 같이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시고 우리 앞에 다가오는 시련 시험을 기쁨으로 맞이함으로 하나님 앞에 더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