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집
김휼
이곳의 주식은 바람입니다
흔들림을 요리하는 일은 사소한 일에 속합니다
한 번 맛을 보면 다시 찾게 되는 이 집의 별미는
풀잎보다 낮게 누워 먹는 양간지풍*과
온몸에 힘을 빼고 마시는 춘풍태탕**입니다
세상 풍상風商이 모이는 탓에
먼바다로부터 건너온 이들이 몸에 묻은 파도를 털어내느라
오전 한때는 몹시도 소란스럽습니다
살아갈 기력이 바닥났다면
당신에게 바람의 집 별미를 권해봅니다
휘도는 길목마다 밤새 우려낸 춘풍태탕 한 뚝배기
눈을 감고 들이키면 마음 갈피로 번지는 삶의 기운
한숨을 돌리고 걷다
골과 마루 사이에 놓인 양간지풍 한 사발은
피돌기 따라 흐르는 근심의 찌끼를 씻어내지요
매우 드문 일이지만
그래도 오목가슴에 단단한 멍울이 만져지거든
안으로 고개를 돌려 피는
죽로차 한 모금 입안에 머금다 넘겨보세요
혀끝을 어루만지는 보드라운 감칠맛
간직했던 진심이 세파에 흐릿해질 때
바람의 집 죽녹원을 찾아주세요
와서, 대숲 사이 온몸을 맡기노라면
한소끔 식어진 마음에는 생기가 돌고
상처 난 울대엔 새살이 돋을 겁니다
*3,4월에 서쪽에서 부는 국지성 강풍을 지칭하는 말.
**봄바람이 온화하게 분다, 라는 뜻.
―계간 《시에》(2025, 가을호)
첫댓글 다 읽지 않아도 집의 주식이 바람이고 그 바람을 요리한다는 표현에서 이 시를 더 읽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