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니 큰언니
깨묵 같은 큰언니
아직은 난 새 밑천이
바닥 아니 났으니,
언니 언니 큰언니
三更 같은 큰언니
눈 그리메서껀 아울러
안아나 한번 드릴까.
-「재롱調」 전문
서정주의 이 시는 동시풍이다. 형제 많은 집의 큰언니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어머니와 함께 늙어가며 동생들을 돌본다. 깨묵은 경상 방언으로는 ‘깻묵’이고 전라 방언으로는 ‘깜부기’다. 깜부깃병에 걸려서 까맣게 된 곡식 따위의 이삭이니 큰언니는 노동의 나날을 보내느라 겉늙은 이가 돼버렸다. 밤 열한 시에서 새벽 한 시 사이가 삼경인데 “삼경 같은 큰언니”는 무슨 뜻일까. 이 시간이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잠을 못 이루게 하는 무슨 집안 일이 있다. 길쌈을 하든 다듬이질을 하든 무슨 일인가 해야 하는 큰언니에게 어린 동생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눈 내린 날, 눈사람의 그림자처럼 옆에 서서 “안아나 한번 드릴까” 하고 마음으로나마 위로해주는 것이다. 나의 재롱에 큰언니가 과연 기뻐할까? 뭐 이런 뜻이 담긴 시다. 「영산홍」이나 「내가 돌이 되면」 「四更」 같은 짧은 시도 서정주의 언어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하지만 아래의 시는 유머 감각을 십분 보여준 시다. 재치의 시, 재담의 시라고 할까.
밤새워 긴 글 쓰다 지친 아침은
찬술로 목을 축여 겨우 이어가나니
한 수에 오만 원짜리 회갑시 써 달라던
그 부잣집 마누라 새삼스레 그리워라.
그런 마누라 한 열대여섯 명 줄지어 왔으면 싶어라.
-「찬술」 전문
스스로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무등을 보며」)라고 했지만 돈에 쪼들리는 시인의 일상이 자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시인은 시 한 수에 오만 원을 받은 적이 있었나 본데, 마침 그때 청탁을 했던 이가 “회갑시 써 달라던/ 그 부잣집 마누라”였다. 그런 여인 열대섯 명 줄지어 오면 얼마나 내 술상이 풍요로워질까,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는 노 시인의 위트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이런 시는 길어지면 맛이 죽는다. 백석의 시 중에는 산문시도 많고 제법 긴 시도 많지만 짧은 시도 많다.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비」 전문
녯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흰 밤」 전문
앞의 시는 비가 온 날을 스케치한 것인데 시각적 이미지와 후각적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다. 떨어져 내린 흰색 꽃 위로 개비린내가 몰려오는 순간이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다. 흰색의 순결함과 개비린내라는 풋내가 젊고 싱싱한 감각을 몰고 온다. 습도를 머금은 공기가 금세 폭우를 쏟을 듯 팽창하는 공간에서 시적 화자는 그 비를 흠뻑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시도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지만 뒤의 시 또한 그렇다. 마음의 슬픔이 절절이 배어 있는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과 같다. 백석과 동시대의 시인으로 처음에는 모더니즘에서, 뒤에는 전통 지향의 정신주의에서 일가를 이룬 정지용의 시다.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湖水만 하니
눈 감을 밖에.
-「湖水 1」 전문
오리 모가지는
湖水를 감는다.
오리 모가지는
자꼬 간지러워.
-「湖水 2」 전문
앞의 시는 이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고 뒤의 시는 오리가 노는 물의 동심원 모양을 묘사한 것이다. 오리 목이 간지러운 것이 아니라, 물의 모양을 보니 오리가 간지러워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손바닥을 울리는 소리
곱드랗게 건너 간다.
그뒤로 힌게우가 미끄러진다.
-「湖面」 전문
비ㅅ방울 나리다 누뤼알로 구을러
한밤중 잉크빛 바다를 건늬다.
-「겨울」 전문
정지용의 이런 시도 짧고 재미있다. 무슨 소리가 들려 호수를 보니 소리가 먼저 곱게 건너가고 그 뒤로 흰 거위가 미끄러진다. 뒤의 시는 겨울에 비가 내리다 누뤼알(우박)로 바뀐 정황을 그리고 있다. 바다에도 비가 내릴 테니 얼마나 추울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1950~60년대에 활동한 시인 가운데 김종삼과 박용래의 시가 특히 짧았는데 김종삼의 「墨畵」나 「掌篇 1」 「掌篇 2」 같은 시는 짧은 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墨畵」 전문
할머니가 소를 끌고 나가 밭을 갈았으니 집에 남편도 장정도 없다. 종일 밭갈이 일을 시킨 소에게 물을 먹이는 할머니는 소가 고맙고 소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 목덜미에 손을 얹는 것으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시한다. 동양화의 아름다움을 흔히 ‘여백의 미’라고 표현하는데, 이 시야말로 여백을 두어 독자들을 사유의 공간으로 인도한다. 황동규는 김종삼 시의 이런 특징을 ‘잔상의 미학’이라고 했다.
아작아작 크고 작은 두 마리의 염소가 캬베스를 먹고 있다.
똑똑 걸음과 울음소리가 더 재미있다.
인파 속으로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나 같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녀석들을 죽이지 않겠다.
-「掌篇 1」 전문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掌篇 2」 전문
예전에는 시골 노인네가 흑염소를 몇 마리 도회지에 끌고 와서 파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흑염소는 병후 회복에 특효약이라는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속설이 있어서 복날 개고기로 몸보신을 하는 것이나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시인의 눈앞에서 양배추를 먹고 있는 염소 모자 혹은 부자는 죽을 운명에 처해 있다. 팔리면 곧 죽는다. 시의 마지막 행에서 시인의 생명존중사상을 읽어낸 학자도 있지만 나로서는 두 마리 염소가 종내 팔리지 않고 다시 시골로 가서 풀을 뜯어먹으며 살기를 바란 시인의 측은지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뒤의 시는 그렇게까지 짧은 시에 속하지는 않지만 제목이 ‘掌篇’이므로 짧게 쓴 것이라고 시인이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청계천변에는 음식점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균일상이란 백반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소녀의 부모는 두 분 다 장님이었다. 거지꼴을 한 세 사람이 들어서자 주인 영감이 고함을 꽥 지른다. 하지만 소녀는 10전짜리 동전을 두 개 보여준다. 두 상을 차려달라는 몸짓이었다. 두 분 중 어느 한 분의 생일인데 밥을 얻어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사 먹으러 온 것이라고 동전 둘을 내보이는 모습이 애처롭지 않고 당당하다. 소녀가 10전짜리 동전을 딱 두 개만 갖고 있었을까? 자기는 안 먹어도 좋으니 상을 차려달라고 하니, 어버이를 위하는 소녀의 마음이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준다. 김종삼의 짧은 시 가운데 「민간인」이란 것도 있고 「북치는 소년」도 있다. 이 모든 시의 공통점은 시인의 감정이입을 전혀 하지 않고 자신이 본 것, 혹은 들은 것을 무미건조하게 전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를 극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최동호 교수가 주장하는 극서정시라고 할 수 있을지. 아무튼 대상을 간단히 스케치할 뿐, 군더더기 설명을 일절 배제하는 데서 시의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그러니까 짧은 시는 정문일침, 일목요연, 촌철살인의 세계를 지향한다. 아래의 시를 보라. 단순미가 얼마나 큰 매력을 발산하는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섬」 전문
2행시 가운데 이 시보다 더 유명해진 것이 있을까. 섬이란 바다 가운데에 있거나 바다와 육지 사이에 있는 것인데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한 것도 상상력이 창안해낸 역설적인 표현인데 종결구로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하여 시에 관심이 있건 없건 간에 이 시는 정현종 시인으로 하여금 잊을 수 없는 시를 쓴, 잊히지 않는 시인이 되게 하였다. 그의 등단작 「獨舞」나 「和音」 같은 난해하고 긴 시와는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이 시를 박덕규가 패러디했다.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사이」 전문
이 시는, 이 땅의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극우와 극좌 양극단으로 나뉘어 대결을 벌이던 1983년에 발표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은 ‘빨갱이’, ‘좌경화’, ‘종북좌파’ 혹은 ‘보수꼴통’, ‘극우’, ‘우경화’ 같은 용어를 아무런 제약 없이 쓰게 했는데, 사실은 위험천만한 용어들이다.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두 극단 사이에 있으려고 하면 양쪽 다로부터 비판을 받는 것이 우리네 정치 상황이었다. 시인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데, 그래서 쓴 시가 「사이」다. 회색인 혹은 박쥐는 설 자리가 없었던 상황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사이」는 사실상 항변이라고 할 수 있다. 꼭 어느 진영에 들어가서 상대방을 비판해야만 하느냐고 볼멘소리로 외쳐 묻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발표 시기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봐야 한다.
지금 이 시대의 시인 가운데 짧은 시를 가장 잘 쓰는 시인은 유안진이다. “봤을까?/ 날 알아봤을까?”가 전문인 「옛날 애인」에서 시적 화자를 못 알아본 양 스쳐 지나간 옛날 애인이 마음이 너무나 궁금하다. 분명히 옛날에 사귀었던 사람인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날 보고도 못 본 체하니 내가 늙었다는 것인가 변했다는 것인가. 정말 나를 못 알아본 것일까, 알고서도 모른 체한 것일까.
그랬어?
그럼
그렇지
그러니까
그래서
그토록
그렇게도
그랬었구나.
-「오해, 풀리다」 전문
이런 시도 위트가 넘치지만 “아기 안은 엄마를 구경하던 원숭이가/ 쪼르르 달려가더니/ 제 새끼를 안고 와 보여준다.”가 전문인 「자랑거리」 같은 시는 짧은 시의 매력을 십분 보여주고 있다. 뇌리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혀 재미를 주고 충격을 주고 기쁨을 준다. 혹은 아픔을 준다. 아주 상큼하게. 아래 시에서도 유안진은 짧은 시의 매력을 십분 보여준다.
현재는
가지 않고 항상 여기 있는데
나만 변해서
과거가 되어 가네.
-「시간」 전문
불교적 시간론, 우주적 시간론, 개별 철학자의 철학적 시간론 등이 있지만 딱 한 마디로 줄인 시인의 시간론에 탄복하며 무릎을 치게 된다. 매 순간 순간은 현재고 인간은 현재를 살 뿐인데 나는 계속 변해서 과거가 되어 간다는 말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문이 “어제는/ 나 그대와 같았으나/ 내일은/ 그대가 나와 같으리라.”인 「은발이 흑발에게」는 지극히 인간적인 시간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history는 너무 오래 남자들 얘기였어
이제부턴 여자 얘기herstory로 바뀌어야 해
너무 너무 늦었지만.
-「페미니즘」 전문
에덴 동산이 한국 땅에 있었더라면
안타깝다
아담이 한국 남자였더라면
절대로 아내 말을 듣지 않았을 텐데.
-「한국 남편」 전문
1970년대부터 이 땅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온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쓴 시와는 다른 측면에서, 유교적 전통에 뿌리는 둔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있는 시다. ‘herstory’는 조어인 듯한데 ‘history’와 대조를 이루어 재미있고 「한국 남편」은 구약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멋지게 응용하여 재미를 배가시킨다. 유안진은 2000대 극서정시의 대표 시인으로 시사에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