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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차 강조하고 있지만, 무예 수련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즉 술기와 철학, 힐링은
Energy Flow의 반복된 체험과 이해가 가장 근원적인 바탕이 되며,
그것을 기본으로 올바른 심신 수련의 시작이 가능해진다.
수련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체험에 따라 동양철학에서의 도(道)의 개념과 서양철학의 실존주의적 요소 (삶의 본질에 대한 직관적 깨달음)들에 대해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가지게 된다.
무술 수련을 통해 자연의 이치에 따라
인간 삶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철학적 통찰적 의지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이다.
특히 진영쌍검류 해동검도의 기본 수련인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원리"에
대한 이해와 체험은
무술 수련뿐만 아니라
종교적, 철학적 수행의 최상급 단계를 구현하는 기본이 된다.
그것은 "무념무상(無念無想)"과 "무위자연(無爲自然)"등과 같은 말로도 설명이 가능하지만, 진영쌍검류에서는 그것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무위정법"이란 단어를 빌어 주로 사용한다.
이는 무술이 단순한 힘과 기술의 수련뿐만이 아니라,
심신 수련을 통해
세상이 돌아가는 하나의 이치를 깨닫고,
무예라는 단어를 삼원 철학의 구조학적 의미로 분석과 이해가 가능해지며,
각자의 의식 변화와 혁신으로
사는 동안
인간 삶의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게 한다.
단순히 동작의 반복 수련이 아니라,
인간 삶의 근본 이치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말하며, 21세기 현대인들을 위한 진정한 무예 수련의 방법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럼, 아래 제목을 통해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제목: 알면 단순 명료해지지만,
모르면 말이 길고 복잡해진다.
■ 단순함 속의 진리 이해
무술뿐만 아니라 여러 수행 단체나 종교 단체에서는 수행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각 동작이나 행위들에 대한 단계나 상황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그와 관련된 어떤 말이나 용어를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직접 체험하고 깨우치는 것은 평생을 수련해도 이루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수행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원적인 핵심을 알아차리고 나면,
그에 대한 표현과 설명은 여러 방식으로 자유롭게 가능해진다. 또한 상대의 수준에 맞게 설명하거나 표현을 이해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마음을 비워라' 혹은 '자신을 버려라'라는 말을 단순히 표면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려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이다.
마찬가지로 '사랑해야 한다', '사랑해라', '효도해야 한다'와 같은 말도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면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말들이 지시하는 단어 자체는 그 목적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이
목적하는 바 혹은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진실되게 외부로 드러날 때, 그것을 본 제 3자가 '사랑한다', '효도한다'라는 단어들을 빌어서 표현할 뿐이다.
단순히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 의미 없는 빈껍데기일 수도 있다.
사랑이란
단지 말 자체의 의미로 전달
혹은 실천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며,
믿는 것이고,
지혜로워지는 것이며,
깨달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사랑의 본질적,실천적 의미다.
■ 진영쌍검류 수련과 삶의 이치
진영쌍검류 해동검도의 수련은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원리"를 실제로 체험하고 그 이치를 알아차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원리를 이해하게 되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무술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 수행 단체에서 이야기하는 최고 수준의 표현과 설명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된다.
즉,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고 느끼며,
그것을 이해하고 표현함으로써,
다양한 관점 속에서 생각의 개념을 바꾸고, 의식을 변화시키며, 스스로 성장과 발전을 이뤄나가게 된다.
진영쌍검류는 최고의 엘리트 과정이고, 최고의 정상을 가르친다고 자주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남과 비교해 우위를 가늠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초적인 단계부터(시작점, 기본) 최고 수준까지의 과정(종착역, 최종목표)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알도록 한다는 의미다.
■ 수련과 삶, 그리고 이치의 발견
무술 동작이나 심신 수행의 과정에서 난해한 한자 표현이나 종교 경전의 복잡한 설명은 동작이나 호흡 수련을 종종 추상화하거나 신비화시키는 경향이 종종 있다.
특히 호흡 수련에 대한 설명은 매우 다양하고, 그 표현 또한 신비스럽고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내용을 이해하고 수련을 통해 체득한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깨달음은 보장될 수가 없다.
많은 이들은 평생 수련을 해도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알 듯 말 듯" 지나쳐 버리기 십상이며,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안개 낀 미로 속을 헤매듯 몽롱하게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이치에 대한 깨달음이란,
알거나 모르거나 둘 중 하나일 뿐, 어중간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알면 단순하고 명료해지지만,
모르면 말이 길고 복잡해진다.
■ 이치와 삶의 본질
많은 사람들이 음양을 이야기하고, 태극이나 무극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움직이고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러한 이치 속에 구현되고 있고, 삼라만상이 살아 움직이고 숨 쉬는 것도 그러한 이치의 표현이며, 지금까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호흡 또한 태어날 때부터 본래 갖추어진 대로 잘 작동되고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또한 세상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은
세상을 모두 통달한다는 것이 아니다.
알아차린 것을 일상 속에서 올바르게 적용하여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지 않아야 할 일, 엉뚱하고 헛된 일에 쓸데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덜 소모하게 된다.
대신 현실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자체가 이미 이치에 따라 세상에 구현된다는 뜻이다.
음양, 태극, 무극과 같은 표현들은 그 이치를 설명하려는 여러 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무지와 욕심"은 주변의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귀와 눈을 스스로 닫아버린다.
■ 궁극적 깨달음
As above, so below.
As within, so without."
이 세상은 하나의 이치에 따라
돌고 돈다.
다만 흔들리는 것은
인간의 마음뿐이다.
마음은 오직 한 길뿐인
한 마음이다.
수시로 튀는 마음 한 가닥만
순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그때그때
즉시즉시
요동치는
세상 흐름에
바로 서기도 한다.
한 번의 목숨,
한 번 오는 이 세상.
조금 더 천천히
갈 수 있다면,
좀 더 넓은 세상을
좀 더 많이 구경 하면서
좀 더 더디게 갈 것이다.
2025년 1월 28일 화요일
진영쌍검류 김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