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지의 밤
황병승
호주머니를 잃어서 오늘 밤은 모두 슬프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모두 서른두 개
나는 나의 아름다운 두 귀를 어디에 두었나
유리병 속에 갇힌 말벌의 리듬으로 입 맞추던 시간들을.
오른손이 왼쪽 겨드랑이를 긁는다 애정도 없이
계단 속에 갇힌 시체는 모두 서른두 구
나는 나의 뾰족한 두 눈을 어디에 두었나
호수를 들어올리던 뿔의 날들이여.
새엄마가 죽어서 오늘 밤은 모두 슬프다
밤의 늙은 여왕은 부드러움을 잃고
호위하던 별들의 목이 떨어진다
검은 바지의 밤이다
폭언이 광장의 나무들을 흔들고
퉤퉤퉤 분수가 검붉은 피를 뱉어내는데
나는 나의 질긴 자궁을 어디에 두었나
광장의 시체들을 깨우며
새엄마를 낳던 시끄러운 밤이여.
꼭 맞는 호주머니를 잃어서
오늘 밤은 모두 슬프다
<여장 남자 시코쿠>-문예중앙.
이승에서의 그를 무어라 불렀든, 고거형이 된 그의 삶을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이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며, 그의 죽음과는 무관하게 꾸역꾸역 시간이 흐른다. 함부로 정의하기엔 벅찬 게 '삶'이지만 그래도 반 이상은 건너 보았으므로, 정의가 아닌 그저 소회에 가까운 감정으로 말하건대, 삶은 외발로 걷는 동안인 것 같으다. 본디 한 짝인 삶과 죽음을 이제 그는 온전히 한 켤레로 신고 저 세상 어디쯤을 균형잡힌 두 발로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느닷없는 그의 부음에서 조금 떨어져, 오늘 나의 이 글은 조금은 감정적이며 두서 없을 것이 틀림없지만, 그래서 숱한 시들 중에 그가 마지막에 입었음직한 검은 옷이나 꺼내 입히지만, 그러니까 다음 생엔 천 근 무거운 발로 걷는 시인 말고 놈팽이로나, 그보다 하염없이 가벼운 나비쯤으로나 태어나시길.
입이 크기도 하지, 죽음은. 명예도 멍에도 다 쓸어삼키고 오로지 시만 남았다. 돌뿌리처럼 누군가의 발을 걸던 그의 시들, 그가 걸려 넘어진 생조차도 돌뿌리 같은 시 어디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나는 왜 이다지도 모르는 일 투성이일까. 다 모르겠기에 그냥 시나 던져놓고 물러 앉는다.
당신들은 그저 삶도 시도 견고해서 도무지 상처 따위는 받지 말고 늘 잔잔한 호수나 같아라. 난 조금 모자란 김에 이리저리 쓸리는 와중을 좀 더 건들거리다가 그가 견디던 어떤 시간이든 시든 맛보고 꿰맨 자리 가득한 한 쪽 신발을 마저 찾아 신기로.
<감상>
-임재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