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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려 탄해심판 7차 변론기일에는 백종욱 전 국가정보원 3차장과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용빈 사무총장과 국회 측 변호인단(탄핵소추 주장 측)은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 특히 중국인의 선거 개입 주장은 말도 안 된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하지만 과거 총선이나 지방선거, 대통령 선거 때 중국인이 선거와 관련한 업무를 맡았다는 보도는 적지 않게 나왔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 중국 출신 여성이 중앙선관위에서 활동을 한 사실이 퍼지고 있다. 이 여성은 중국 비밀경찰서 논란의 대상인 동방명주를 찾은 바 있고, 왕해군 씨로부터 어떤 직위에 임명된 적이 있다고 SNS에 글을 올린 것이 포착됐다.
◇ 中 산둥성 출신 왕 씨, ‘동방명주’ 드나들며 선관위 자문위원·초빙교수 활동
지난 1월 20일 전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왕 모 씨라는 중국 출신 이민여성에 관한 글이 올라 왔다. 이 여성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는지 아니면 아직 중국 국적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네티즌들은 이 여성이 그동안 SNS에 올렸던 글과 사진을 뒤져 중앙선관위, 동방명주, 왕해군 등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왕 씨는 2020년 9월 20일 "화조센터 8번째 사랑봉사단 현판식, 어제 동방명주에서 거행했다"며 중국교민재한협회총회 왕해군 회장님, 화조센터 비덕령 회장님께 위임을 받았다"며 동방명주 사진 등을 공유하고, 서울화조센터,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 중국주한국대사관영사부를 해시태그로 달았다.
같은 해 10월 14일에는 "중국 제20회 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의미) 개최에 앞서 재한 산동동향회 100인 행사 오늘 동방명주에서 개최~ 케익을 동향인이 직접 만들었고 삼성생명 강남지역단에서 후원품을 제공했다"는 글과 동방명주 및 증정품, 행사사진 등을 올렸다.
여기까지는 2022년 말 큰 논란을 빚었던 중국 비밀경찰서 의혹과 한 중국 출신 이민여성 간의 관계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그 이전에 올라온 글들을 찾아냈다.
왕 씨는 2018년 5월 1일 "중앙선관위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우리 다문화가정 식구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좋은 제안이 있으면 언제든 알려달라"는 글과 함께 중앙선관위로부터 받은 위촉장 사진을 올렸다. 위촉장에는 임기가 2018년 4월 26일부터 2020년 4월 25일까지로 돼 있었다.
왕 씨는 2019년 2월 22일에는 "올해도 다문화가족 민주시민교육에 힘 쓰겠다"는 글과 함께 선거연수원 초빙교수로 위촉한다는 위촉장 사진을 올렸다. 위촉한 사람은 당시 선거연수원장이던 송봉선 전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이었다. 같은 해 4월 5일에는 "2019년 제1차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회의가 개최됐다"는 글과 함께 자료 사진을 올렸다.
최근 오픈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워낙 발전해 있기 때문에 사실 확인을 했다. 2019년 4월 25일 중앙선관위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2019년 선거자문위원회 개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보면 "자문회의는 4월 26일 권순일 중앙선관위원장(임기 2017년 12월 27~2020년 11월 1일) 주재로 지난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및 4?3 보궐선거 결과 등 설명과 현안 토의 순으로 진행된다"고 돼 있다.
중앙선관위는 이어 보도 참고자료로 중앙선관위 자문위원 26명의 명단과 약력을 소개했다. 여기에 왕 모 씨가 들어 있었다. 2018년 4월에 중앙선관위 자문위원에 위촉됐다는 그의 말은 사실로 보였다. 왕 씨는 문재인 정권 때 소위 ‘다문화 여성’을 대표해서 자문위원과 초빙교수를 맡은 것으로 보였다.
◇ ‘동방명주’ 등 논란에도…‘간첩죄 개정’ 강력 반대한 대법원 법원행정처
왕 씨가 종종 찾았던 서울 송파구 한강변의 중식당 ‘동방명주’는 2022년 12월 중국 비밀경찰서로 지목됐다. 중국 공산당과 동방명주 사장인 왕해군 씨는 이를 철저히 부정했다. 하지만 우리 정보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2023년 5월 ‘한국경제신문’은 "정보당국이 동방명주(東方明珠)가 사실상 중국 정부의 ‘비밀경찰’ 역할을 했다고 잠정 결론을 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정보당국은 ‘첩보활동’ 논란을 빚은 동방명주를 조사한 결과 영사 업무를 대리 수행하고, 한국 내 중국인의 중국 송환 업무를 처리하는 등 비밀경찰 역할을 수행했다고 내부 결론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신문에 따르면 우리 정보당국은 ‘동방명주’가 중국 대사관이 주재하는 각종 행사를 도맡아 개최한 점과 한국 내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시상식을 전담해온 점 등을 의심했다. 하지만 현행 간첩법 때문에 왕해군 등 ‘동방명주’ 관계자들은 처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간첩죄 개정을 서둘렀다. 하지만 2023년 7월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강력히 반대해 1차로 무산됐다. 그러나 중국인 유학생과 중국인 관광객이 해군작전사령부, 국가정보원, 제주공항 등 주요시설을 드론으로 무단 촬영하면서 지난해 간첩죄 개정안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이 갑자기 간첩법 개정안 논의를 중단하면서 결국 ‘중국 간첩 단속’은 어렵게 됐다.
◇ 현행 선거법, 개표 참관인은 우리 국적만…직접 개표하는 사람은 국적 무관
다시 선거 문제로 돌아가면, 우리나라 선거에 중국인이 관여했다는 의혹은 2020년부터 5월부터 알려졌다. 당시 유튜버 ‘하면 되겠지’와 우파 인터넷매체 ‘파이낸스 투데이’가 "서울 은평구 개표 현장에서 다수의 중국인이 개표사무원으로 일하며 투표용지를 집계하고, 봉인된 투표함과 개표기를 관리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하면 되겠지’는 은평구 선관위에 확인한 결과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 여러 명이 개표사무원으로 일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서울 은평구뿐만 아니라 관악구에서도 개표사무원을 공개 모집하지 않고 특정단체에 위촉해 사람을 모집한 뒤 선관위가 승인하는 형태로 뽑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사항을 재차 확인한 결과 현행 선거법에는 개표를 감시하는 개표 참관인은 우리 국민이 아니면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투표용지와 투표함, 개표기를 직접 만질 수 있는 개표사무원에 대해서는 국적뿐만 아니라 별다른 자격요건을 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중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유학생들도 개표사무원으로 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22년 2월 중앙선관위에 문의한 결과 "개표사무원 모집에 특별한 제한이 없다"며 "국적이나 선거권을 따지는 개표 참관인과 달리 개표사무원은 18세 이상의 성인이면 국적이나 자격 등을 따지는 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외국인 개표사무원이 몇 명이었는지 알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중앙선관위는 "외국인 개표사무원 현황은 보유·관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중앙선관위는 "2022년 3월 대선 때도 중국인 유학생이 개표를 맡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지난 11일 헌재 탄핵심판 7차 기일에서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이 "중국인 개표사무원 1명만 확인했다"는 말은 실제 중국인 개표사무원 수는 모른다는 뜻이었다. 이런 부분이 많은 국민들이 ‘중국의 선거개입’을 의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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