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갈보리 산의 십자가
가정을 떠난 이현필이 그때부터 도암의 화학산에 들어가서 기도 생활을 하면서, 이세종 선생과 같은 수도자의 모습이 되어갔다. 3년여에 이르는 산중 기도생활을 마치고 여러 곳으로 전도활동을 가기도 하였는데 특히 남원을 찾아가서 그 남원지방에서 교회 다니는 교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남원을 처음 방문하던 해가 1943년 무렵이었다. 그때 서재선 배영진과 함께 삼일 목공소를 하던 오북환 집사를 만나 평생의 동지가 되었다. 그 밖에 김금남의 모친 강남순을 비롯한 강씨 자매들과 방순갑 방순녀의 모친인 지당어머니 그리고 복은순 복태경의 모친 응실어머니 등이 삼일 목공소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오북환집사는 삼일 목공소를 닫고 이현필을 따라 화순 도암으로 떠나자 남원에서 김금남과 모친 강남순은 지리산의 갈보리나 서리내(仙人來)에서 깊은 기도를 했다. 서리내는 남원 수지면에서 지리산을 등산하는 도중에 있는 선경(仙境)으로 화전민 몇 사람만이 살고 있었다.
이현필은 우거진 솔밭, 갈대밭 속에 한번 엎드리면 꿈쩍도 않고 언제까지나 일어날 줄 몰랐다. 산에 사는 까마귀는 송장인 줄 알고 곁에 와서 까악, 까악 울다가, 그래도 움직이지 않으니 부리로 쿡쿡 찍었다고 한다. 그런 모양으로 기도하며 밤을 지내고 새벽이면 산에서 내려왔다. 그 잔등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수염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밀려와 감격과 통곡으로 「갈보리 산」이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