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입 외 1편
마경덕
한때 입이 열 개가 넘었다
밤새 불어난 소문이 구석진 골목길 평상에
아침밥처럼 차려졌다
싱거운 소문도 이곳에 오면 소금이 뿌려지고
입 하나를 건너갈수록 점점 간이 세서
골목의 며느리들은 벌컥벌컥 냉수를 들이켜기도 했다
매번 뒤꿈치를 따라오던 따가운 눈총을 피해
애먼 길로 돌아가던 동네 골목길
목련나무집 담벼락을 타고 올라간 나팔꽃이 입을 다물어도
해거름까지 둘러앉은 잡다한 이야기로 하루치 명을 이어 붙이던
그토록 걸쭉한 입담들
입으로 쓴 동네 내력이 두툼한 소설책 몇 권이었다
골목의 입이 하나둘 사라졌다
담을 넘던 박장대소와 커다란 양푼에 버무려진 열무김치와
너나없이 달려들던 숟가락과
얼음을 띄운 커피믹스도 기운을 잃고 돌아오지 않았다
가을비에 젖은 어둑한 골목
우산을 쓰고 문 앞에 홀로 앉은 노인,
무슨 일인지 뼈가 시리도록 그날 밤을 깔고 앉아있었다
끝내 낡은 장롱과 눈에 익은 방석은 밖으로 밀려나고
골목은 마지막 입을 닫았다
소란한 아침들
믹서는 폭력적이다
터치 한 번에 자세가 돌변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급회전에
레몬 사과 당근 사각얼음 뼈가 으스러진다
딸기의 살은 붉습니까
아니오
레몬은 노란 피를 가졌습니까
아니오
오답뿐인 일상
빙하를 갈아 만든 냉커피에 졸음의 꼬리가 잘리고
지친 세포가 눈을 뜬다
무지근한 아침
자극적인 발언은 밥상에 올리지 마세요
한마디 경고음에 분노가 휘몰아치고,
이웃한 거리에서
기아와 전쟁과 뼈도 못 추릴 죽음이 뒤섞인다
드론이 날고 미사일이 무차별 아파트를 폭격한다
국경을 넘어 난민이 떼로 몰려온다
빙산이 무너져도 테이크아웃은 늘어만 가고
줄지어 식탁까지 날아오는
기괴하고 불안한 세상의 아침들
ON
굶주릴수록 믹서는 난폭해진다
OFF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동작을 멈춘다
마경덕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사물의 입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외.
선경문학상, 모던포엠문학상 외 수상.
현재 시창작 강사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