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6 /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신 예수님
(요 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요 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요 5: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요 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요 5: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요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1~4 예수님은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유대인의 3대 명절은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입니다. 우리는 명절이 되면 고향으로 가서 가족 중심으로 교제를 나누는데 유대인들은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가서 7일 동안 성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 중심의 민족적인 축제를 합니다.
이런 축제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소외되고 슬픈 곳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을 찾아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여러 문이 있습니다.
속죄 제물로 쓰일 양을 끌고 들어오면 양문이라고 합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오는 문은 어문이라고 합니다. 대변이나 쓰레기를 퍼 나르는 문은 분문(dung gate)이라고 합니다.
속죄양이 드나드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습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라는 뜻입니다. 베데스다 못에는 정자 다섯이 있었습니다.
정자 안에는 하나님의 자비를 기다리는 여러 병자가 있었습니다. 맹인, 다리를 저는 자, 혈기 말라 마비된 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자비를 아직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현대사회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첫째는 병든 사회입니다. 이곳은 병든 사람만 모인 곳입니다.
현대인들은 육체적으로 병들든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고 영적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육체적으로 한 가지씩 병이 없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저도 이명이 있습니다.
정신적인 질병도 부쩍 많아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많습니다.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황장애가 오면 숨쉬기가 어렵습니다. 자폐증도 많습니다.
조현증이 있어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허무, 무의미, 절망, 두려움, 고독과 소외는 영적으로 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베데스다 연못은 경쟁사회입니다. 그곳에는 천사가 물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물이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치료받습니다. 1등만 낫습니다. 그들은 1등을 하고자 경쟁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취업 승진의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늙어서 요양원에 가는 것도 경쟁하고 공원묘지에 가는 것도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쟁으로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그로 인하여 소화불량이나 불면증, 잦은 감기, 기억력 상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경쟁하면서 사람들은 열등감과 교만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돕다가도 경쟁할 때는 자비가 사라지고 이기적인 관계가 됩니다.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우월감으로 교만해지고 진 사람은 열등감에 빠집니다.
셋째는 요행심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우리가 경쟁하여 노력한다고 다 우리의 노력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력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는 ‘가끔’ 물에 내려와 물을 움직였습니다. 천사가 내려올 때 물 곁에 있는 사람, 깨어 있는 사람이 가장 행운을 잡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들에게 행운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베데스다 연못가처럼 서로 자비를 베풀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내면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를 찾아가 무엇을 하셨습니까?
(요 5: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요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베데스다에 가신 예수님은 많은 병자 중에서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셨습니다.
베데스다 못가에서 가장 오래된 병자를 주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병이 오래된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첫 번째 질문으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는 낫고자 이곳에 와 있는데 예수님은 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을까요?
첫째, 낫고자 하는 뜨거운 소원을 심기 위해서입니다. 병이 오래되다 보면 병과 친근해집니다. 낫고자 하는 소원이 희미해지고 막연해집니다. 1년에 한 번씩 물이 움직였다면 38번 실패한 것입니다. 이렇게 실패하면 몸이 기억하고 물만 움직여도 두려움에 몸이 마비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아시고 그에게 낫고자 하는 소원을 불러일으켜 주셨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뜨거운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병이든 낫고자 하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로다. 치료의 하나님이지만 모든 사람을 다 치료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소원이 있는 자를 치료하십니다. 우리는 말을 물가까지 데리고 갈 수 있지만 먹게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병자를 치료해 주실 수 있지만 소원이 없는 자를 치료해 주시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낫고자 하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죽을 때는 건강하게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고자 하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원을 갖는 자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질 때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도 실상으로 하나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병을 낫게 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낫고자 하느냐 물으신 것은 그가 낫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면 낫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돈이 있냐? 물어보는 것은 두 가지 경우입니다. 그에게 돈을 꾸어 달라고 하든지, 돈이 없으면 돈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낫고자 하는 물으신 것은 낫고자 하는 소원을 심고 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병을 치료하시는 치료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병도 치료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소원이 있을 때 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불러일으켜 주시고 우리의 병을 치료해 주십니다.
우리는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주시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우리 안에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소원은 새 번역에는 ‘염원’이라고 나옵니다. 염원은 간절한 소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매일 매일 간절한 소원을 주십니다. 말씀을 공부할 때 소원을 주십니다. 기도할 때 소원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이 생기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은 성령님이 주시는 소원에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일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래된 병이 있습니다.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병을 앓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래된 병을 아시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십니다. 말씀을 공부할 때, 기도할 때 성령님이 소원을 두고 일하십니다.
우리를 치료하시기 전에 먼저 강렬한 소원을 심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강한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소원을 갖고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치료하시고 건강하게 하십니다. 아무리 오래된 병이라도 치료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때로는 병을 치료해 주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바울이 병이 낫고자 하는 소원으로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바울은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의 병을 치료해 주시면 그는 교만해져서 교주가 되어 지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병을 갖고 겸손하게 살다가 자신도 천국에 가고 많은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병이 낫고 건강한 몸으로 지옥에 가는 것보다 병이 있고 병든 몸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병도 없고 고통도 슬픔도 없이 사는 행복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우선은 병이 낫고자 소원해야 합니다. 간절히 소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받으시고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이 병을 치료해 주시지 않을 때는 병이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