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산책>
마음만 앞선 자객의 최후, 자객열전
리더의 주도면밀한 결단… ‘조직의 운명’ 좌우한다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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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자객 하면 살인청부업자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의리와 명분을 가지고 의인 혹은 우국지사로서 국가를 위해 살신성인한 인물들이다. 사마천은 이런 자객들을 후세의 귀감으로 삼아 열전에 기록했다. 그중 가장 심도 있게 다룬 자객이 바로 ‘형가(荊軻)’다.
‘형가’의 행동, 연나라의 멸망 이끌어
형가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학문과 검술에 뛰어나 유세가가 되려 했지만 ‘원군’이 외면하자 연나라로 갔다. 당시 연나라는 태자 ‘단’이 진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막 돌아온 후였다. 태자 단은 훗날 ‘진시황’이 된 ‘정’과 죽마고우로 지냈지만, 진시황의 야심을 알았기에 그를 암살하고자 했다. 그래서 연나라 선비 ‘전광’에게 적임자를 의뢰했고, 전광은 단에게 형가를 추천하고는 계획이 새 나갈까 염려하는 단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태자 단이 형가에게 암살 계획을 맡기자 형가는 곧바로 준비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태자 단은 이리저리 재기만 할 뿐 속전속결이 요체인 암살 계획을 차일피일 미뤘다. 진시황에게 접근하려면 그가 혹할 만한 선물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형가는 진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연나라로 도망쳐 온 ‘번오기’의 목과 연나라의 기름진 땅 독항의 지도를 선물로 바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단은 여전히 쉽게 나서지 않았다. 훌륭한 선비 전광을 죽게 했고, 이제 번오기마저 죽이면 곁에 남을, 믿을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답답해진 형가는 이제 단독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직접 번오기를 만나 태자 단의 계획과 자신의 생각을 전한 것. 번오기는 “이것이야말로 밤낮으로 이를 갈고 가슴을 치며 고대하던 일”이라며 스스로 자신의 목을 쳤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형가는 번오기의 목을 상자에 담고 둘둘 만 독항의 지도 속에 비수를 숨긴 후 진시황을 만나러 떠났다. 진시황은 선물에 만족하며 그를 가까이 오게 했다. 마침내 형가는 지도 속에 숨겨둔 비수를 꺼내 들었다. 놀란 진시황은 칼이 길어 뽑지도 못한 채 도망쳤고, 당시 황제 근처의 신하들은 무기를 소지하지 못했기에 맨손으로 형가를 공격할 뿐이었다.
형가가 진시황을 내려치려 하는 순간 어떤 신하가 진시황에게 “칼을 등에 지십시오!”라고 외쳤고, 진시황은 그제야 칼을 뽑아 형가의 왼쪽 다리를 베고 여덟 군데나 상처를 입혔다. 결국 형가는 진시황 암살에 실패했고, 잔인하게 살해됐다. 이 일의 배후를 알게 된 진시황은 태자 단까지 암살하고 연나라도 5년 만에 멸망하고 만다.
사람이 행동할 때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먼저 생각을 정리하고 행동하는 사람, 행동부터 한 후 생각하는 사람이다. 속도를 추구하는 오늘날, 천천히 생각하고 계획한 후 행동을 하다가는 빠른 세상을 따라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획 없이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형가처럼 되돌릴 수 없는 참담한 결과를 낳기 쉽다. 게다가 리더의 행동은 조직의 운명을 가르기에 특히나 신중해야 한다.
쉽게 감정 드러내지 않는 치밀한 ‘장의’
이번에는 다른 유형의 인물을 소개한다. 바로 ‘사기-장의열전’에 기록된 ‘장의(張儀)’ 이야기다.
위나라 사람인 장의가 학업을 마치고 유세를 위해 초나라 재상과 술을 마시던 때의 일이다. 공교롭게도 초나라 재상이 구슬을 잃어버리자 모두가 객사에서 쉬고 있는 장의를 의심했다. 재상의 측근들이 말했다.
“장의는 가난하고 행실이 좋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그자가 재상의 구슬을 훔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장의를 붙들어 수백 번 매질을 가했다. 하지만 장의가 끝내 구슬을 훔쳤다고 말하지 않자, 풀어주었다.
죽을 만큼 맞았던 장의는 엉금엉금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자신을 모욕한 초나라 재상에게 당장 복수하거나 따지지도 않았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훗날 펼칠 원대한 계획을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 일을 마음에 품고 진나라로 가 힘을 키웠다. 그러고는 마침내 진나라 천하 통일에 이바지한 후 초나라 재상에게 격문을 보내 경고했다. “난 그대의 구슬을 훔치지 않았건만 그대는 나를 매질했소. 그대의 성읍을 단단히 지킬지어다. 내 반드시 보복하리라”라고 말이다.
장의는 참을 수 없는 모욕에도 쉽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치밀하게 자신을 키웠다. 반면 형가는 마음이 앞서 대사를 그르치고 말았다. 형가의 행동이 연나라의 멸망을 이끌었듯이, 리더의 결단은 자신의 운명만 좌우하지 않는다.
만약 형가와 태자 단이 조금 더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웠다면, 묵묵히 때를 기다려 진시황 암살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작은 판단에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 원 중 단국대학교 교수/사기 완역자
추억의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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