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호리로 가려했는데
사월 첫째 수요일은 청명에 이은 한식이다. 한식은 청명과 같은 날이거나 하루 차이인데 동지로부터 기준을 정한다. 중국에서 건너온 풍습으로 조상 산소를 둘러보며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날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이제 세월 따라 고유의 전통과 풍습이 퇴색해 감은 어쩔 수 없다. 한식날 성묘객이 산소를 찾았다가 산불이라도 일으키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테다.
아침나절 초중학생이 등교를 마친 무렵에 느긋하게 길을 나서려고 집에서 미적대며 시간을 보냈다. 용지호수 어울림도서관에서 빌려다둔 책 가운데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펼쳤더니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 얘기를 듣고 그린 몽유도원도가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려고 곳곳에서 강연을 펼치다 불의의 백혈병으로 생을 일찍 마친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새벽에 조반을 들어 오시가 되기 한참 전 새참 격으로 집에서 점심 끼니까지 해결하고 현관을 나섰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 용강고개를 넘어가는 버스를 탔다. 학생들의 등교와 회사원의 출근 시간이 지났으니 대중교통은 혼잡하지 않았다. 자연학교 학생은 불가피한 사정이 아니라면 유동인구가 적은 시간에 현장학습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해고속도로가 14호 국도와 걸쳐 지나는 남산리 입구에서 내렸다. 동읍 남산리는 육군 종합정비창과 인접한 구룡산 기슭의 남향이다. 정비창은 삼십여 년 전 부산 도심에서 외곽으로 이전해 온 동읍 일대인데 이제 그곳도 한적하지 않다. 정비창 구성원은 공병 병과 현역 군인보다 군무원이 더 많은 특수성이 있다. 주남저수지 인근에 군무원들의 거주지가 되는 아파트단지도 있다.
구룡산 기슭으로는 감계 신도시 주민들의 시내 접근이 원활하도록 작년 말 터널이 개통되었다. 산자락이 잘려나가고 상당 면적의 단감과수원도 도로 부지에 편입되었지 싶다. 엊그제는 용전 요금소 근처에서 구룡산 기슭으로 들어가 머위와 바디나물을 채집해 해발고도를 높여 산마루로 올랐더랬다. 다호리로 내려가려니 산세가 험한 산등선이 한 겹 더 버텨 있어 남산마을로 내려왔다.
이번엔 남산마을 안길을 거쳐 구룡산으로 올라 다호리로 하산할 동선을 계획했다. 구룡산을 통과한 터널을 국도 14호와 25호에 접속시키려고 정비창 곁을 빙글 둘러가는 도로망인데 남산 나들목에는 인부들이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산기슭으로 오르니 희미한 등산로 길섶에 짚신나물이 보여 가던 길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배낭의 칼을 꺼내 짚신나물을 캐 모았다.
짚신나물을 캔 뒤 경사진 등산로를 따라 오르니 숲은 소나무와 낙엽활엽수가 섞여 자라는 혼효림이었다. 낙엽활엽수는 오리나무와 아카시나무들이었다. 오리나무는 잎이 돋으면서 연녹색으로 물들어갔다. 아카시나무는 꽃과 잎이 동시에 피면서 바람이 스치면 은물결로 일렁이는데 아직 철이 일렀다. 아카시꽃 향기가 번질 때면 벌들은 꿀을 모으느라 몸살 할 정도로 바삐 움직인다.
구룡산 주 등산로는 굴현고개에서 다호리로 내려가는 일자형이다. 용전이나 남산마을에서 오르는 길은 오래 전 땔나무를 해오거나 산나물을 채집할 때 오르내렸지 싶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다니질 않아 묵혀지다시피 했는데 송전탑을 관리하는 관계자가 간간이 오르내린 정도였다. 정상에서 오는 등산로에 못 미쳐 개척 산행으로 숲으로 드니 협곡을 건너는 트레킹으로 무척 힘들었다.
다호리로 가는 등산로까지는 산세가 험해 나아가질 못하고 골짜기로 내려섰더니 정비창과 경계를 이룬 철조망이 나왔다. 계곡에 머위가 군락으로 자라 몇 줌 캐 산등선을 오르니 아까 지나온 남산마을이 보였다. 송전탑을 세우면서 중장비가 지난 흔적을 따라 용전으로 내려가 시내로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귀로에 사림동 주점에서 지기들과 마주앉아 잔을 기울였더니 날이 어둑했다.22.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