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4. 토요일. 무척이나 무덥다.
오후에 바람쐬려고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서 송파구에 있는 석촌호수로 나갔다.
무더운 날씨 탓인지 호수 한 바퀴 산책로를 따라서 걷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산책로에 기어나온 개미가 이따금 눈에 띄였기에 이 날도 눈여겨보았다.
또한 해충인 꽃매미를 발견할까 싶어서 산책로 바닥을 찬찬히 살폈다. 꽃매미는 해외에서 유입한 해충이다. 나무의 즙을 빨아먹어서 큰 나무라도 죽인다. 10여 년 전 해외에서 유입되었으며, 한국 기후에 적응했는지 해마다 엄청나게 많이 번식 중이다. 이들은 몸집이 작고, 동작이 무척이나 빨라서 톡톡 튕겨서 날쌔개 다른 곳으로 내빼기에 발로 밟아서 으깨여 죽이려면 무척이나 어렵다. 정마로 어쩌다가 성공할 수도 있지만서도...
시멘트로 만든 산책로에 기어나온 기다란 지렁이 한 마리를 보았다. 겨우 꿈틀거리는 수준...
산책로를 가로로 지르지도 못한 채 버름적거리다가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에 밟혀 죽을 게 뻔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화장지를 조금 꺼내서 지렁이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별로 미동도 하지 못할 만큼 축 늘어졌다. 그늘이 많은 나무 아래로 살짝 내려놓았다. 떨어진 나뭇잎 속으로 파고 들었으면 싶다. 아쉽다. 지렁이의 상태, 움직임이 별로 없었다. 나무 그늘 속에서 고통을 덜 받았으면 싶다. 기운을 되찿으면 더욱 좋으련만...
호수 한 바퀴를 천천히 돈 뒤에 잠실 삼전동에 있는 꽃가게에 들러서 가게 바깥에 내다놓은 화목과 화초들을 내려다보았다.
거의 다 외국식물이다. 사고 싶은데도... 그냥 눈길을 돌리고는 잠실 새마을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새마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도 꽃을 파는 가게도 있고... 몇 군데의 이마트 안에서도 화초가 조금이나마 전시되었다. 어쩌면 마지막 떨이일 것 같다. 사고 싶은데도 눈 딱 감고는 새마을시장 안으로 들어가서 채소전을 기웃거렸다.
내 관심 분야는 오로지 식물이다.
다양한 채소류, 말린 약재류도 잔뜩이다. 싱싱한 오이, 단호박, 애호박, 양파, 풋마늘 등이 즐비하다. 채소류의 모종을 조금 사서 서해안 산골마을에 있는 텃밭에 옮겨 심었으면 하는 생각이 꿀떡같았으나 당분간 시골에 다녀올 계획이 전혀 없기에... 차마 사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은 시골에서 살지도 않거니와 설령 시골집에 어쩌다가 내려가서 잠깐 머문다고 해도 텃밭에 채소류를 가꿀 만한 시간적 여유은 없다. 시간적 여유를 만든다고 해도 함께 내려간 아내한테 지청구나 먹을 게다.
'그런 거 왜 심어요?'
* 시장에서 사 오는 게 훨씬 물건이 좋고, 가격도 쌀 터.
재래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먹을거리, 내가 텃밭에서 가꿨으면 하는 채소류를 둘러보았다.
맨손으로 귀가했다.
아파트 현문을 열고 실내에 들어서니 왠 유모차 한 대가 있다.
누가 왔나?
거실에 들어서니 몸집이 뚱뚱한 둘째사위가 눈에 띄였다.
나한테 인사하고는 선물이라면서 비닐봉지에서 손가방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얼핏 보니 어깨에 매기에는 다소 크다.
'이거 도로 가져 가. 나한테는 돈으로 줘.'
* 지난 번에도 손가방을 선물받았으나 크기가 무척이나 작아 실용성이 없기에 내가 퇴짜를 놓은 적이 있다.
사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잠깐 쳐다보았다.
사위는 신문지로 둘둘 만 선물을 또 내밀었다. 신문지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전혀 보이지는 않았으나 무게와 부피로 봐서는 그게 작은 화분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했다.
신문지를 펼치니 예상한 대로 작은 포트에 심은 외국식물이다. 이름은 모르겠다.
'이런 거 사 오지 마셔. 나한테는 현금으로 줘.'
내가 선물보다는 '돈으로 줘'라고 말한 이유는 있다.
나한테는 선물(물건)이 별로이다. 나한테는 현금이 낫다. 나중에 사고 싶은 거 살 수가 있기에.
내가 돈이 없을까? 아니다. 자식들, 사위들, 며느리보다 내가 가진 게 훨씬 더 많다. 자식들은 직장생활을 하기에 다달이 월급을 받을 게다. 그들한테는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기에 돈은 늘 아쉬울 게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들보다 더 부자이고, 더 여유가 있다고 본다.
요는 이렇다. 나한테는 선물을 아예 준비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그저 자주 들러서 얼굴이나 보여주는 게 훨씬 낫기에.
그나저나 작은사위가 사 온 외국식물은 '레드스타'.
내일 큰 화분에 옮겨 심어야겠다.
인터넷으로 '레드스타' 재배에 대한 정보도 검색해야겠다.
나는 외국식물보다는 우리나라 토종식물이 훨씬 낫다. 실용적이라면 더욱 좋다.
작은사위의 부모님은 충남 태안군 백화산 아래 마을에서 사신다.
태안군은 '6쪽마늘'의 주산지.
나는 사위한테 말했다.
'다음부터는 외국 화초는 사 오지 말고, 대신에 태안 6쪽마늘이나 사 와. 시골 텃밭에 마늘을 재배하고 싶으니까.'
옆에서 듣던 아내가 나를 제지했다.
'일전 6쪽마늘을 사 왔잖아요? 왜 사위한테 부담 주어요?'라고 직설적으로 나를 탓했다.
사위는 '의성마늘도 유명한데요.'라고 말했다.
나는 '의성마늘은 6쪽이 아니라 8 ~10쪽이다. 남해안에서 나오는 벌마늘도 있다. 벌마늘은 마늘통은 무척이나 크나 마늘쪽수는 15개 쯤이다. 잔쟁이 마늘쪽수이기에 별로이다'라고 덧붙였다.
마늘을 재배했던 나는 안다. 6쪽마늘은 마늘통이 다소 작으나 마늘쪽은 단단하다.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나한테는 6쪽마늘이 훨씬 실속이 있다.
내가 6쪽마늘에 욕심을 낸 이유는 있다.
충남 태안군은 6쪽마늘의 주산지이다. 이 지방(태안군, 서산군, 보령시)에서 나오는 6쪽마늘이 진짜이다.
수십 년 전인 1960년대 말, 70년대 초.
보령군 화망마을에서 사는 내 어머니는 6쪽마늘을 재배했고, 해마다 여름철이면 400 ~ 500접 정도를 '차떼기' 도매로 팔았다.
아쉽게도 어머니가 늙어갈수록 마늘농사를 접었다. 2021년 지금에는 그 종자는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런 아쉬움이 있기에 내가 작은사위한테 욕심을 내며, 말했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
육쪽마늘의 원산지이다.
내가 고향인 충남 보령에 있는 화망마을 시골집으로 내려갈 때에 서해고속도로 내려가다가 서산이나 태안으로 살짝 에둘러서 가면 육쪽마늘 원주산지로 직행할 수 있다.
나는 식물을 좋아하며, 외국식물보다는 우리 토종작물을 훨씬 선호한다. 정원수, 화목, 화초보다는 재배하기 쉽고, 먹을 수 있는 등 실용성이 있는 작물에 애착이 더 간다.
자식들이 나한테 선물하는 것을 나는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식들은 봉급생활자이며, 부양하는 가족들이 딸렸기에 어렵게들 산다.
자식들에 비하여 나는 이제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별로 없다. 아내와 나. 특히나 나는 날마다가 노는 날이며, 쉬는 날이며, 휴일이다. 나이가 많은 나한테는 많은 잡동사니와 물품에 싸여 있다.
내가 사는 서울 송파구 잠실아파트 안이다. 많은 살림살이들이 있고, 내가 책벌레이기에 잡다한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디. 또한 내가 저장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헌 물건이라도 버리지 않고 모아 둔다. 하나의 예다. 비좁은 베란다에는 화분이 110개 쯤이 늘 놓여 있다. 크고 작은 화분이 가득 찼기에 화분 하나라도 추가로 올려놓기가 영 마땅하지 않다.
나는 집나이 일흔네 살, 만72살이다. 이렇게 늙은 내가 무슨 물품과 물자가 추가로 더 필요할까?
현재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날이 기울어져가는 내 건강을 생각하면 .. 새로운 생활물품이 나한테는 그냥 사치에 불과하다. 허영 덩어리일 뿐이다.
나는 1949년 1월생.
서해안 산골마을에서 태어났기에 어린시절부터 가난한 산촌농촌의 삶과 경험들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어머니와 떨어져서 객지로 전학갔고, 가난한 소년시절, 청년시절을 보냈다.
정년퇴직한 뒤의 지금도 그렇다. 물자를 소중하게 여기는 심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얘들아. 아비한테는 선물보다는 그저 돈으로 줘'라고 서슴치않고 말하는 나.
그들이 아비인 뜻을 알아차렸으면 싶다. 어렵사리 번 돈을 아껴 쓰고, 한번 구입한 물품은 철저하게 다 쓰고, 더 나아가 다른 용도로도 재활용하라는 뜻이다. 최종 쓰레기를 가장 적게 내놓자는 뜻이다.
일전 작은딸은 하나뿐인 아들을 데리고 친정인 잠실로 왔다.
얼마 전 네 돌을 맞이한 아들(나한테는 하나뿐인 외손주).
친정에서 사흘 밤을 자고는 오늘 오후에는 남편을 따라서 자기네 아파트로 되돌아갔다.
내년 6월에 경기도 과천에 있는 신규 아파트로 븐양받아서 이사갈 예정이란다.
내가 딸네 아파트에 처음으로 방문할 때에는 내 아파트 실내에 있는 화분 가운데에서 작은 화분 하나라도 들고 가야겠다.
비싼 것보다는 흔하디 흔한 식물을 심은 화분 위주로 골라야겠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시골출신이다. 서해안 산골마을의 가난한 촌사람의 자손이었기에 그저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 훨씬 더 좋다. 내년 6월에 선물할 화분을 올 여름부터, 벌써부터 고르기 시작해야겠다.
레드스타 : 학명 Fittonia Red.
- 페루가 자생지인 '피토니아(Fittonia)'의 원예종으로 반음지성 식물.
- 잎의 색에 따라 "핑크스타", "레드스타", "화이트스타"라는 이름 붙이며, '피토니아 레드스타' 등으로도 유통된다.
2021. 7. 24. 토요일.
첫댓글 자식한테 선물 대신 "그냥 돈으로 줘' 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지요. 제 바같분이 백화점에서 핸드백을 하나 (생일이라고)사 왔는데 정말 이건 아니 올시다였습니다. 그래서 불쑥 그냥 돈으로 주지.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사다 주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그 때 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예.
임 선생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을 저는 짐작합니다.
저는 이따금 그렇게 말합니다.
남의 아파트에서 전세하는 자식들, 전세도 안 되는 전월세를 사는 자식들이기에...
선물꾸러미 하나라도 그게 다 돈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 돈을 아껴서 함께 사는 가족들 특히나 어린 아이들한테 더 배려했으면 합니다.
제 아내도 저한테 말하대요. '당신이 자식들한테서 선물받는 것을 거절하면 나중에는 선물이 아예 없다고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래도 저는 좋지요.
물론 국가경제, 사회경제가 돌고 돌려면 서로 주고 받은 행위 즉 상품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가 적절하게 어울려져야겠지요.
어쩌면 과소비도 그러할 터.
임 선생님의 뜻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깐깐스럽기만 한 제 성품도 되돌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