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야산에 올라
사월이 되니 바야흐로 산나물의 계절이 돌아왔다. 작년까지는 현직이라 주말에만 틈을 낸 산행에서도 산나물을 마련 집에서 찬거리로 삼음은 물론 주변 지기들과나 나누었다. 어느 날은 귀로에 아파트단지 맞은편 상가 주점에서 전을 부쳐 봄내음을 나누어 맡기도 했다. 근무지가 거제여서 토요일만 산행을 하고 일요일 점심나절은 거가대교를 건너가 새로운 한 주를 맞을 준비를 했다.
거제에 머물면서 창원으로 복귀하지 않은 주말에는 앵산이나 연초댐을 돌아가는 탐방로에서 두릅순은 채집하기도 했다. 채집한 두릅의 양이 많아 교내 급식소로 보내 동료들과 봄 향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정기고사 기간 오후는 자유로운 시간이 허여되어 국사봉에 올라 현지인들도 자생지를 모르는 곰취를 찾아 제법 따 왔다. 와실에서 여러 끼 찬거리로 삼고 곡차 안주로 알맞았다.
이제 퇴직을 하고 보니 쇠털 같이 많은 날들이 주어졌다. 청경우독 삼아 맑은 날은 야외로 나가 현장학습을 하고 비가 오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삼월 이후 비다운 비가 제대로 내리질 않아 도서관을 찾아갈 틈을 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연일 근교 산행을 다니는 중 몇 줌씩 뜯어오는 산나물로 우리 집에서는 푸성귀 찬거리는 시장에서 구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산중에서 마련한 산나물은 일용할 찬거리로 넘치기에 귀로에 지인과 나누기도 예사다. 어제는 구룡산에 올랐다가 짚신나물과 머위를 뜯어 내보다 먼저 퇴직한 친구에 안겨줬다. 같은 아파트단지 초등 꽃대감 친구는 돌나물을 무척 좋아하는데 내가 언제 한 번 걷어준다고 했다. 진례산성 너머 송정으로 가는 임도 길섶에 자생하는 돌나물을 봐둔 적 있어 틈을 내서 뜯어올 생각이다.
언젠가 내가 남겨가는 글에서 독자가 보기엔 다소 만용처럼 보일 표현을 한 부분이 있다. 법원 등기부에 내 이름으로 된 한 뼘의 땅도 없음에도 세상에서 내가 가꾸는 텃밭이나 꽃밭이 가장 크고 넓다고 큰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집을 나서 들녘이나 산천을 누비는 곳곳이 내가 관리하는 텃밭이고 꽃밭이라고 자부한다. 내 텃밭이나 꽃밭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정도다.
사월 초순 첫째 목요일 아침나절 산행 차림을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5번 시내버스를 타고 동정동으로 나가 북면 온천장 가는 버스로 갈아타 지개리 입구에서 내렸다. 대한마을 뒤 이름 모를 야트막한 산자락을 넘어 지인 농장을 찾을 생각이었다. 등산로가 없지만 숲을 헤쳐 산등선을 넘어가면 지인의 농장이 나온다. 이맘때 두릅나무에서 순이 나왔다면 채집하는 기회가 올 수 있다.
소나무와 오리나무가 섞여 자라는 숲을 오르다가 낮은 키로 자라는 오가피나무를 발견했다. 오가피나무는 잎이 다섯 장으로 펼쳐 나와 관심만 가지면 눈에 띄어 찾을 수 있었다. 오가피가 그늘에서 자라 세력이 좋지 않아도 여리게 돋아나는 순을 따 즉석에서 간식 삼아 입안에 넣어 씹었더니 특유의 향과 함께 달짝지근했다. 산목련꽃은 저물어가고 산벚나무는 꽃이 피어 눈이 부셨다.
산마루로 오르니 북향 비탈은 단감농장이 펼쳐졌는데 일손이 부족해선지 가지치기를 하지 않고 몇 해째 묵혀져 있었다. 산등선에는 두릅나무 군락지가 나왔으나 누군가 먼저 다녀가 이삭만 몇 개 꺾는 형편이었다. 두릅 순은 초벌을 따면 두벌 두릅 순이 나오기까지는 한 달 정도 경과해야 한다. 산등선을 따라 가면서 선행주자 손이 닿지 않아 남겨둔 두릅 순만 몇 개 따는 성과였다.
고압 송전탑이 세워진 산마루 이르니 이제 막 고사리가 돋고 있어 내가 차지할 수 있었다. 아기가 손가락을 펴지 않고 주먹을 쥔 모습처럼 돋아나는 고사리였다. 고사리를 꺾은 뒤 단감농원 비탈을 내려가 지인 농장을 찾아갔다. 지인 농장에는 재료연구원에서 은퇴한 친구가 찾아와 민들레와 시금치를 캐 다듬었다. 나는 살림 공간에서 라면을 끓여 셋이 점심 요기를 때우고 나왔다. 22.04.07